(시작 기도)
주님,
어제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후딱 지나가 버릴 계절, 가을입니다.
그러나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좋은 가을을 누리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히브리서의 은혜에 빠져들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주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나아가오니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문 주해)
8~10절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가야 할 곳도 모른 채 자기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땅에 가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갈 곳 없는 나그네처럼 살았고,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터가 있는 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세우신 성입니다.”(쉬운 성경)
8절의 ‘믿음으로’라는 내용에는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이미 그 방향과 목표와 순종까지 들어있는 것에 대한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이 점점 알게 되어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9절의 ‘믿음으로’라는 내용 속에는 동일하게 부르심을 입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외방에 있는 것처럼 장막에 살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약속의 땅에 왔는데 그곳조차 외방에 온 것임을 알고 영원한 약속의 나라를 사모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에 언제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이 바로 이들이 동일하게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 부르심이 같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장막에 거하면서 영원한 나라, 즉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10절)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11~12절 : 사라와 관련된 ‘믿음으로’(11절)이다.
사라에게 있어서 믿음의 일이란 죽은 자와 같은 몸에서 후손이 나와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진 것이다.
사라는 처음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웃었지만, 결국 이삭을 낳게 되자, 약속하신 분의 신실함을 알았다는 것이다.
13~16절 : ‘이 사람들’이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을 가리킨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 한번 드리고서는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이 믿음이 세상에 드러나는 모습이요, 이 믿음을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 버리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이란 이 세상에서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에녹은 이미 딴 세상을 살았던 존재였다.
노아는 이 세상이 심판받아야 마땅한 이유를 보여주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장막에 살면서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실 터를 바라보며 살았다. 이것이 믿음을 따라 죽은 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영원한 세상이 아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시고 경영하실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나그네라고 하여 정처없는 나그네가 아니다.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실 나라인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되는 일이기에 구약에서 믿음을 따라 죽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것이다. 아직 약속의 실체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였다는 것이다.
(나의 묵상)
창세기에는 길게 소개되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의 믿음에 대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서는 간략하게 나온다.
아브라함과 사라 앞에 ‘믿음으로’라는 부사어가 있다.
하지만 창세기에 나오는 그들의 행보를 볼 때 이 ‘믿음으로’ 하는 부사어가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사라에게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우상을 만드는 집안이니 믿음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실 때 믿음과 순종의 마음을 함께 주신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복음을 알게 하시고 생명의 삶을 살도록 불러내실 때, 나는 아무 믿음도 순종의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시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차츰차츰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브라함의 연약함과 실수가, 사라의 웃음이 너무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몰고 가신 것처럼 나를 몰고 가심을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신다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때를 보며 기뻐하는 아브라함으로 이끌어내신 것처럼, 나로 하여금 말씀을 통하여 더 분명히 예수님을 보게 하셨으니, 내가 받은 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아브라함보다 더 빨리,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의 실체를 받지는 못하였지만, 한결같이 그 약속을 바라보면서 살다 죽은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그들은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았는데 그 이유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보다 더 빨리,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알게 된 나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가 생각해 본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전부이고, 이 세상이 영원한 줄 알았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던 세월이 있었다.
주님께서 복음에 눈을 뜨게 하시고, 매일 주님과 교제하게 하심으로 이 땅은 내가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믿는 자의 ‘나그네 삶’에 대한 말씀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처럼 여겨졌다.
이제 이와 같은 말씀이 마음에 팍팍 꽂히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어제 형님과 찬송가 485장의 은혜를 나누었다. 생소한 찬송을 우연히(성령께서 듣게 하셨다!) 듣게 되었는데 반복해서 들으니 곡조도 가사도 참 은혜가 되었다.
나그네의 삶과 본향에 대한 내용인데 ‘내 친구 건너가네’ 하는 구절에 가슴이 찡하였다.
단순한 이별 때문에 찡한 것이 아니라, ‘드디어 본향집에 도착하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감격이 있었다.
<1. 세월이 흘러가는데 이 나그네 된 나는 괴로운 세월 가는 것 막을 길 아주 없네
2. 저 뵈는 하늘 집에서 날 오라 하실 때에 등 예비하라 하신 말 나 항상 순종하네
3. 어두운 그 날 닥쳐도 찬송을 쉬지 마세 금 거문고를 타면서 나 주를 찬양하리
4.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본향 찾아가리
후렴 : 저 요단강가 섰는데 내 친구 건너가네 저 건너편에 빛난 곳 내 눈에 환하도다>
이 땅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나는 하나님 품속의 평안을 누리기에 이미 천국을 누리며 사는 자이다. 그런데 이 삶이 내가 장차 들어갈 천국, 주님을 만나 뵈올 그 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들 때마다 내게 있는 쓸데없는 것들이 하나둘씩 땅에 툭툭 떨어지니, 본향 집을 찾는 나그네의 짐이 가벼워지고......
드디어 오직 십자가 하나로 담대히 천국문 앞에 서게 될 것을 그려본다.
(묵상 기도)
주님,
정처 없는 나그네가 아니라,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던 줄들을 다 끊어지게 하시니
그것이 고통스럽기 짝이 없지만
본향 찾는 나그네의 몸을 가볍게 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붙잡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브라함과 동행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성령님, 저와도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