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 축문(전문)*
유 ~ 세 ~ 차
단기 4352년 서기 2019년 기해(己亥)년 3월 10일 우리 대구상고 40회 산악회 일동은 이곳 우가산에서 천지(天地)를 창조하신 신명께 聖스러운 祭를 올리나이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의 산행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올 해도 건강하고 안전한 산행을 위한 보살핌을 기원(祈願)하는 마음으로, 전 회원님들이 정성(精誠)을 바쳐 천지신명께 간절한 기도를 올립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을 맞아 산행의 즐거움은 한층 더해서 봄기운이 절로 솟아오르니, 푸른 산 넓은 들은 눈과 귀를 맑게 하고 하늘과 계곡물은 가슴을 씻어주어 마음도 시원해서,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지켜주신 신령님의 은총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 또한 천지의 모든 생육들은 저마다 아름답고 고귀한 삶이 있나니 산행을 맞아 다시 한 번 만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을 몸에 간직하면서 그 터전을 파괴하거나 더럽히지 않고 추한 것도 덮어주고 아름다운 것은 그윽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그들과 벗하고 사랑하며 “산을 닮아 좋은 사람들”이 되고자 다짐합니다.
우리 대구상고 40회 산악회원 일동은 산행을 통해서 의욕을 다시 얻어 심신을 단련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사랑과 우정 이해와 화합으로 가정과 동기회를 더욱 굳건히 지키고 발전하는데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천지신명이시여! 거듭 비옵건데 우리가 가는 곳마다 안전한 산행을 보호하시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또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신의 가호를 입게 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이에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예를 올리오니 조촐하오나 정성으로 어여삐 여기시고 즐거이 받아 거두시며 음향 하시옵소서!
단기 4352년 서기 2019년 기해년 3월 10일
대구상고 40회 산악회 일동
☯축문에 대한 내 생각은…
우리들 대부분은 신(神)에게 기도할 때 무어무엇을 베풀어 달라는 주문(注文)과 주문(呪文)에 치중한다. 기도에 임하는 자세는 신이 내려준 고귀한 진리를 부여받아 그것을 내 것으로 해서 열심히 노력 할 테니 신의 가호(加護)가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신 앞에 내가 노력하겠다는 의지는 담겨있지 않고 그냥 바라기만 한다면 과연 신으로부터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게으름만 키워 갈 것이다. 신의 대상이 무엇이든 신 앞에서 기도 할 때는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임하면서 마음에 품은 뜻을 신에게 호소하며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면서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비는 자리다. 신 앞에서 나는 이렇게 다짐을 할 테니 신이여 도움을 주시옵소서! 라고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 신이 도와 줄 것이다. 신은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이기 때문에 신의 대상은 내가 우상이 될 수 있는 인간이나 자연이라면 그것이 신이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의 설교라도 내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반면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라도 그것은 하느님이 창조한 영물이라 생각하며 아끼면서 사랑하면 어떤 생각이 떠올라 반성을 한다면 그게 신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기원을 할 때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빌면서 내가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비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자연을 대상으로 신을 모시고 숭배하며 삶의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별과 달 촛불 등 밝은 빛, 호랑이를 비롯한 짐승들, 바위를 비롯한 돌,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 시냇물 계곡물을 비롯해서 심지어 그릇에 맑은 물을 떠 놓고도 빌었고 나무 조각에도 형상을 그려놓고 절하며 기도를 했다. 선비들도 꽃가지 꺾어놓고 술 마주해 읊조리며 다짐을 했다. 그 모든 것이 하늘이 내려준 신선한 창조의 신화물이기에 신이라 여기면서 기도를 한다. 그 기도는 끝없이 반성하고 성찰(省察)하며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간절한 소망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그리고 빌고나면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은 후련함을 느낀다. 따라서 기도에 임할 때는 자세를 가다듬고 진지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에 임해야 하는 것이 근본 예의라 할 것이다. 신의 가호(加護)가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해야 하는데, 옆에서 보기에 연기 연습을 하는 것 같은 기도로 보일 때는 과연 복을 받을 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를 할 때는 더욱 진지하고 정숙함을 유지해야 할 일이다. 제물을 앞에 두고 절하면서 잡담하고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일으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참석해서 신을 모시고 제를 지냈던 경우 정말로 진지하게 임한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단 축문을 읽을 때는 조용하고 엄숙했다. 그 이외 제사 묘사 등 예식도중에서 잡담하고 떠들고 사적으로 못다 한 이야기 절하면서 마저 다하고 말 걸고 하는 경우 허다했다. 모든 사람 생각이 같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평소 자신이 신으로 삼고 있는 종교를 존중하듯이 다른 종교를 믿는 나 이외 사람들도 존중하자는 의미에서다. 이를테면 산신제를 지내는데 예식을 경시한다거나 행사도중 소곤거린다든지 하는 마음은 결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이 아닐 것이다. 모든 신앙을 존중하는 어머니 천주교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 이유는 자신의 종교이외 다른 종교들도 다 존중하는데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예수의 진리는 풀 한포기 개미새끼 한 마리도 즉 유무형의 세상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뜻이 담긴 종교다.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다스린다. 그 대상이 워낙 광범위하니까 하느님은 아들 예수에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도록 위임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눈으로 보이는 것 마음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에 대하여 사랑하고 보호하는 섭리(燮理)의 이치에 따라야 할 것이다. 1890년도 조선 8도를 여행했던 선교사인 게일은 강원도를 여행 할 때 길가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남녀노소 사람들이 나무에 장승을 세워두고 절하며 비는 모습을 보고는 선교사인 자신도 함께 빌었다. 가는 곳마다 조선인들 행사에도 먼저 따라하고 기독교를 전하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받들고 실천하는 선교사였다. 양인(洋人) 배척에 완고했던 조선의 대원군시대 때 기독교가 급격히 전파된 여러 경우 중 중요한 하나의 사례다. 지난해 고향에 있는 한 교회에서 학생들과 교인 200여명에게 강의를 부탁받고 강의를 한 내용의 한 부분이 생각나서 썬 글이다. 나는 교인이 아니고 그저 책에서 보고 스스로 생각해본 내용인데 대구상고 40회 카페는 친구들이라 이런 저런 생각을 늘어놓아 써본 내 이야기다. 2019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