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잃은 뒤에야
묽은 고깃국에 소금 녹듯
미래가 한순간 녹아버리는 것을 느껴본 뒤에야
정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손에 쥐고 있는 것,
소중히 여기고 조심조심 지켜온 것,
이 모든 걸 잃은 뒤에야 정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얼마나 황량한지 알 수 있다.
달리고 또 달리는 버스 안 승객들이
옥수수와 치킨이나 뜯으며
영원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면,
너는 얼마나 오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겠니.
하얀 판초를 입은 인디언이 죽은 채로 길가에 누워 있다.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 온 뒤에야
정의 포근한 중력을 알 수 있다.
그 모습이 너의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 역시 무수한 계획을 꿈꾸며
어두운 밤을 여행했고, 살아 있을 땐
평범한 숨을 쉬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슬픔이 마음 중에서 가장 안쪽의 것임을 알고 난 뒤에야
정 또한 가장 안쪽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슬픔 속에서 깨어나 봐야 한다.
네 목소리에 지극한 슬픔의 실타래가 느껴질 때까지
슬픔으로 짠 천의 크기가 보일 때까지
슬픔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정만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신발 끈을 묶고 밖에 나가게 하고,
편지를 부치고 빵을 사게 하는 것도 정뿐이며,
세상의 군중 사이에서 고개 들어
그대가 찾던 것이 바로 나라고
말하는 것도 정뿐이며,
그림자처럼 친구처럼
네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는 것도 정뿐이다.
- Naomi Shihap Nye, Words under the Word (1995)-
(로저 하우스텐/ 김미옥, 윤영삼 역, <언제나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
21세기 북스 간행, 2009, 101~102쪽)
나오미 시하브 나이(Naomi Shihap Nye)는
1958년 팔레스타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문필가입니다.
아랍계 미국인이라는 출신 덕분에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어두운 그림자에 특히 민감한 시를 발표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에 충동한 참사가 일어난 직후,
그녀는 가까운 이들에게 시를 보냈다지요.
그녀의 시는 평이한 상상으로는 잡을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잡아내는 고유한 능력을 지녔기에
당시 암울했던 시기에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시인은 메일에서
“시(또는 문학)는 어떠한 뉴스나 종교도 하기 어려운 일, 즉 세상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한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모 고교까지 걸었습니다.
어제 저녁 안산 중앙공원에서 있었던 추모의 밤에서는
고인이 된 여고생이 부른 ‘거위의 꿈’ 동영상을 소개했다는데,
그 영상을 보면서 가사를 꼽씹어 보니 왜 이다지 눈물이 나는지요.
니체(F.W. .Nietzsche)가 그랬던가요,
“사람은 자기 체험한 만큼 읽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그저 미안합니다.
고개 깊이 숙여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2014. 6)
첫댓글 나는 나를 잃고 바보처럼 살다가 이 글을 접 했습니다.바보처럼.... 남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료한데...자신에 대해서는....쫌 답이 애매하네요.........또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내강외유(內剛外柔)
자신에게는 철저하고, 가족, 이웃 등 주변에게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아직도 소인배의 지적질이 참 지지네.
전 아직도 내 옆지기가 이쁜날보다 미운날이 더 많은데 어쩌죠? 살아온 정으로 귀하게 여기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만약 부부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평생동안 마음 속에 품어 그리워 했을 사람 아니었겠습니까?
미우니 고우니 해도 지내다 보면 가장 좋은 친구일 겁니다.
함께님! 내가 대인배의 기질이 있었으면 여기서 글 장난하고 있겠습까? 그리고 소인배를 그렇게 함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도 지지네요. 등신같은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