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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여행
바람이 불어오는 땅 - 그 길목에 서다
D M Z
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2018. 6 vol. 493
국경에 가로막힌 강원도 변방의 두 땅에 섰다.
분단국가 접경지역이라는 이름의 무게와는 달리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묘한 이질감은 들었지만 두려움이나 비장함과는 결이 달랐다.
눈에만 담고 돌아서야 하는 절경에 서운했고,
선으로 그어진 역사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이 땅에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write • photograph 박은경
YANGGU
금강산이 머무는 땅, 양구
양구는 인구 2만4000명의 소도시다. 터미널이 있는 읍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산과 수목이 사방을 호위해 어디로 눈을 돌려도 초록이 와 닿는다.
적막하리만치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땅은 한때 날카로운 포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6·25전쟁 당시 양구 일원, 지금의 비무장지대(DMZ) 주변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만 9개. 지금 양구에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은 군인이 당시 전투에서 산화했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안보관광지로 조성된 몇몇 장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이다. 두 곳 모두 방문하기 전 신분증을 지참하고 양구 통일관에 들러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통일관 옆에는 전쟁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양구 일대에서 있었던 치열한 전투를 영상과 모형을 통해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을지전망대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다. 군사분계선 1km 남쪽 가칠봉 능선에 자리했다. 가칠봉은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로 이곳을 더해야 1만2000봉이 된다는 뜻에서 ‘더할 가(加)’ 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전망대에 올라 서로 맞닿아 있는 남북의 땅을 굽어보면 ‘전쟁’과 ‘평화’ 두 단어가 교차한다. 북쪽으로는 모택동 고지, 스탈린 고지를 지나 매봉, 운봉, 박달봉, 간무봉 등이 가까우면서도 멀게 가슴에 들어온다. 매봉과 운봉 사이로 한 줄기 실오라기처럼 늘어뜨려진 물줄기는 선녀폭포다. 북한이 심리전을 위해 여군을 발가벗겨 목욕시켰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전한다.
날이 맑은 날 전망대에 오르면 박달봉과 간무봉 너머로 금강산을 만난다. 금강산이 보일 만큼 청명한 날은 1년에 80일 정도. 4번에 1번은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제4땅굴 앞에 전시된 관측기
펀치볼 마을
고개를 남쪽으로 돌리면 해발 1100m 이상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해안분지(亥安盆地)가 포근하다. 면적 44.7㎢의 거대한 분지 안에 평화로이 자리 잡은 마을이 이색적이다. 커다란 운석이 떨어지면서 생겼을 법한 움푹 파인 독특한 지형 덕분에 ‘펀치볼(Punch Bowl)’이란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펀치볼은 화채 그릇이란 뜻이다. 6·25전쟁 당시 한 외국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해안분지를 내려다본 뒤 펀치볼이라 불렀고, 그 이름이 여태 이어지고 있다.
제4땅굴은 1990년 3월, 양구 동북쪽 26km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됐다. 투명 유리 덮개가 있는 전동차를 타고 땅굴 내부를 관람한다. 땅굴 안은 서늘하다 못해 으스스하다. 천장은 낮고 양쪽 벽은 암반이다. 땅굴 앞에는 안보기념관과 기념탑, 땅굴 수색 당시 지뢰를 밟아 숨진 군견 ‘헌트’의 동상 등이 세워져 있다.
1 제4땅굴 수색 당시 숨진 2 민통선 안에 있는 을지전망대와 3 시래기로 밥 짓고 찬을 만들어
군견 ‘헌트’의 동상 제4땅굴을 보려면 출입 신고를 내는 시래기 정식. 펀치볼 마을의
한 뒤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시래기는 부드럽고 맛있기로 소문 났다
제4땅굴은 전동차를 타고 편하게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땅굴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 입구에 포토존이 있다.
상흔이 지켜준 자연, 상처를 보듬는 예술
양구는 DMZ와 맞닿아 있는 지리적 특성상 깨끗한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중 으뜸은 두타연이다. 두타연은 양구 전체를 통틀어 첫손에 꼽히는 절경이다. 반세기 넘도록 빗장이 단단히 채워졌던 덕에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두타연 탐방은 이목정 안내소에서 시작된다. 출입 신고서를 작성하고 위치 추적 목걸이를 받아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으로 들어간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주차장에 도착하면 차를 두고 걷는다. 여기서 10여 m만 내려가면 두타연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수입천 물줄기가 암벽 사이로 시원하게 쏟아진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감상하는 폭포수도 장관이다. 바윗골을 따라 이리저리 용틀임하는 물줄기가 한반도 모양을 그리며 검푸른 소(沼)로 내리 꽂힌다.
오른쪽 암벽 아래에는 커다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금강산 암자에서 수행하던 고승이 관음보살을 만났다는 보덕굴이다. 입구 지름이 10m, 길이가 20m쯤 되는데, 밖에서는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아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두타연 주변으로는 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조각공원, 전망대 등을 둘러보고 징검다리, 출렁다리를 건너는 기본 코스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구간별로 일련번호가 1부터 10까지 있지만 굳이 순서대로 걸을 필요는 없다.
1시간여의 짧은 탐방로가 아쉽다면 수입천 상류로 이어지는 비포장길을 따라 좀 더 걸어도 좋다. 숲 속 1길과 2길, 두타 1·2교를 차례로 지나며 3.6km를 오르면 하야교 삼거리에 이른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 금강산을 가던 나들목이다. 여기서 금강산 장안사까지는 35km 남짓 떨어져 있다.
양구에는 아름다운 자연 못지않게 마음을 보듬는 예술 공간도 있다. 박수근 미술관이다. 박수근은 1914년 양구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보통학교 무렵 양구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스케치를 했다. 양구의 소박한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그림의 소재가 됐다. 실제로 ‘나물 뜯는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 작품의 상당수가 양구를 배경으로 그려졌다.
박수근파빌리온 2층에 재현된 박수근의 서울 창신동 집
그가 남긴 작품과 삶의 흔적은 박수근 미술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2년 박수근 생가터에 문을 연 미술관은 전시장을 겸한 기념관과 현대미술관, 파빌리온 등 3개 동으로 이뤄졌다. 기념관에서는 그의 손때가 묻어 있는 사진, 안경, 편지 등 유품과 미공개 스케치, 유화, 수채화, 판화 등의 작품을 만난다. 내년 3월 24일까지 열리는 아카이브 특별전 ‘앉아있던 사람들’도 눈길을 끈다. 박수근은 물론 이중섭, 천경자, 김환기, 이응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4명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현대미술관과 파빌리온에서는 제2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이 한창이다. 파빌리온 2층 전시 공간에는 박수근의 아틀리에이자 보금자리였던 창신동 집이 설치작품으로 전시돼 있다. 붓을 들고 서서 아들과 아내를 바라보는 박수근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박수근미술관은 전시 내용도 흥미롭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크다. 화강암을 견고하게 쌓아올린 건축물의 투박한 질감이 그의 작품과 많이 닮아 있다. 주변은 자작나무숲, 빨래터 등 박수근의 그림 속 풍경들이 떠오르는 장소들로 채워졌다. 박수근 동상 뒤쪽으로 이어진 언덕에서는 박수근과 그의 아내가 함께 묻힌 묘를 만난다. 묘 앞에 놓인 작고 소박한 돌비석에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는 드로잉 작품 ‘노상’이 새겨져 있다.
1. 박수근과 그의 아내의 묘 앞에 놓인 소박한 돌비석
2. 박수근기념관 앞 자작나무숲에도 봄이 왔다
3. 2014년 박수근 탄생 100주년에 지어진 박수근파빌리온
양구ᆞ시티 투어
※ 10월까지는 신청자가 단 1명이라도 운행. 단 주중에는 10명이 넘어야 출발. 월요일은 운행 없음.
양구의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민통선 안에 위치해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사전 출입 신청은 물론이고, 군부대 훈련이나 날씨 등으로 입장이 불가능하지는 않은지 여행 당일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 또 차편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둘러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양구 시티투어는 이런 걱정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 버스를 타고 두타연, 박수근미술관, 을지전망대 등 양구의 핵심 관광지를 편안하게 누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해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미도 있다. 033-480-2183, 033-480-2278 www.ygcitytour.kr
펀치볼 코스
춘천역 ⇀ 양구명품관 ⇀ 해시계 ⇀ 통일관(전쟁기념관) ⇀ 을지전망대·제4땅굴 ⇀ 양구자연생태공원 ⇀ 춘천역
매주 일요일 출발 1인 8000원(식사 및 입장료 별도)
두타연 코스
춘천역 ⇀ 양구명품관 ⇀ 박수근미술관 ⇀ 중식 ⇀ 두타연 ⇀ 선사·근현대사박물관 ⇀ 양구명품관 ⇀ 춘천역
매주 토요일 출발 1인 8000원(식사 및 입장료 별도)
CHEORWON
평화를 되새기는 땅, 철원
1 철원 노동당사에 자라는 작은 풀 하나
2 백마고지 전적지 입구에 서 있는 새하얀 말 동상
3 백마고지 평화의 종
4 기념관에는 전투 당시 사용됐던 무기 등이 전시돼 있다
철원에 서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너른 평야에 마음이 느슨해진다. 대북확성기가 사라진 하늘에는 새소리,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가 돌아왔다. 땅도 하늘도, 분단의 현실을 잊을 만큼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다.
지금의 이런 모습과 달리 철원은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그래서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아 있다. 특히 백마고지는 남북이 가장 뜨겁게 총구를 겨눴던 장소다. 열흘 동안 12번의 전투가 펼쳐졌고, 무려 27만발의 포탄이 고지에 쏟아졌다. 포격을 심하게 받은 산등성이는 하얗게 벗겨져 마치 백마가 누운 형상이 됐다고 한다. 백마고지는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당시 처절했던 상황은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하얀 말 동상을 지나 태극기가 걸린 자작나무 길을 오르면 전승 기념비와 위령탑, 기념관 등을 만난다. 역사적 엄숙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평화의 종이 매달린 상승각 너머로는 백마고지가 보인다. 밋밋한 평야 위로 불쑥 솟아 있는 모습에서 비장하고 처연함이 느껴진다.
너른 평야 위로 솟아 있는 백마고지
벽체만 남은 노동당사
철원의 강물은 쉼 없이 흐른다.
땅에 그어진 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음새가 하나 없는 실처럼. 한 발 한 발 더 깊이 흐른다.
철원은 해방 이후 북한 관할구역이었다. 6·25전쟁으로 휴전선이 생기면서 땅이 두 동강 났고, 그 중 3분의 2가 남한으로 편입됐다.
노동당사는 1946년 철원이 북한에 속해 있을 때 지어진 건물이다. 6·25 전까지 북한의 조선노동당 철원 당사로 이용됐다. 전쟁 당시 폭격으로 대부분 무너지고 지금은 벽체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나마 1층은 방의 구조를 엿볼 수 있지만, 2층과 3층은 처참하게 내려앉아 형태를 파악하기 힘들다. 외벽엔 깊게 팬 총탄 자국이 수두룩하다. 건물 앞 중앙계단에는 미군 탱크가 밀고 올라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노동당사는 민통선 바깥에 있어 특별한 절차 없이도 갈 수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건물 앞마당에서 직거래장도 열린다. 철원군 관내 농가에서 생산한 제철 농·특산물과 가공식품, 수공예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기차는 달린다, 언젠가 길은 이어지니까
철원에는 우리나라 최북단역이 있다. 경원선의 종착역이자 출발역인 백마고지역이다. 경원선은 원래 백마고지역을 지나 철원역, 월정리역, 그리고 지금은 북한 땅에 속한 강원도 원산까지 이어진 철로였다. 하지만 남북 분단과 함께 길이 끊겼고, 북으로 달리던 열차도 운행을 멈췄다.
현재 백마고지역까지는 서울역에서 출발한 DMZ트레인과 경기 동두천역에서 출발한 경원선 통근열차가 다니고 있다. 북쪽으로 놓인 철로는 승강장을 벗어나자마자 허리가 잘렸다. 옆에는 철도종단점을 알리는 표지판과 북녘하늘 우체통이 세워졌다. 우체통은 2014년 경원선 건설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실향민들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모이는 곳으로, 실제 북으로 편지가 전해지지는 않는다.
철원역과 월정리역은 6·25전쟁 때 소실됐다. 철원역은 한 때 서울역보다 많은 역무원이 근무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일부 철로와 녹슨 신호기만 남아 자리를 지킨다.
철원역은 금강산 관광을 목적으로 부설된 금강산선(금강산 전기철도)의 시발지이기도 하다. 금강산선은 철원과 내금강 사이 116.6km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용 전기철도였다. 6·25전쟁 이후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면서 운행이 중단됐다. 민통선 안쪽 한탄강 상류 부근에 열차가 지나던 교량이 남아 있다.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하부에 최근 상판을 복원했다. 다리에 적힌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키로’라는 글귀가 애잔하다. 한국 근현대사 모습을 간직한 구조물로 인정받아 2004년 9월 등록문화재 제112호에 지정됐다.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은 현재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 있다. 원래 DMZ 안쪽에 있던 것을 198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했다. 역사(驛舍) 앞에는 6·25전쟁 당시 폭격을 맞고 종잇장처럼 구겨진 기차가 녹슨 채로 전시돼 있다.
역사적 엄숙함에 마음 숙연해지는 백마고지 전적지
금강산으로 가는 열차가 달리던 철길. 언젠가 이 길이 다시 열리기를
철원 DMZ 평화관광
철원의 DMZ관광은 크게 버스와 기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뉜다. 고석정 또는 백마고지역 앞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는 관광셔틀버스와 DMZ트레인(경원선)이 그것이다.
관광셔틀버스는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고석정 또는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한다.
DMZ트레인은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특별열차다. 왕복 열차편에 관광 일정, 점심 식사가 포함된 패키지 상품으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 최북단역인 백마고지역에서 내려 관광버스로 갈아타고 철원의 핵심 안보관광지를 둘러본다.
출발역(서울역·청량리역·의정부역·동두천역·소요산역)에 따라 상품 가격이 다르다.
동두천역과 백마고지역 사이를 운행하는 통근열차를 타고 철원 여행에 나서는 방법도 있다.
통근열차는 열차 등급 중 최하위 등급인 보통열차에 속한 완행열차다. 동두천역에서 1시간 남짓 달려 백마고지역에 닿는다. 역에 도착하면 관광셔틀버스 표를 별도로 끊어 여행에 나서야 한다.
관광셔틀버스
고석정(백마고지역) ⇀ 제2땅굴 ⇀ 평화전망대 ⇀ 두루미관·월정리역⇀고석정(백마고지역)
고석정 출발 9시 30분, 10시 30분, 13시, 14시 30분(1일 4회)
백마고지역 출발 10시 30분, 14시(1일 2회) ※매주 화요일 휴무
어른 1만4000원, 어린이 9000원(관광지 입장료 포함)
고석정 출발 코스 033-450-5559, 백마고지역 출발 코스 033-450-5683
DMZ트레인
서울역(청량리·의정부·동두천·소요산역) ⇀ 백마고지역 ⇀ 두루미 마을(중식) ⇀ 백마고지 전적지 ⇀ 노동당사 ⇀ 멸공OP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 두루미관·월정리역 ⇀ 백마고지역
⇀서울역(청량리·의정부·동두천·소요산역)
어른 1인 기준 3만8800원~4만5000원 ※출발역에 따라 이용요금에 차이가 있다
코레일 청량리역 여행센터 02-913-1788
경원선 통근열차
동두천역 ⇀ 소요산역 ⇀ 초성리역 ⇀ 한탄강역 ⇀ 전곡역 ⇀ 연천역 ⇀ 신망리역 ⇀ 대광리역 ⇀ 신탄리역 ⇀ 백마고지역
※백마고지역 하차 후 관광셔틀버스 별도 이용. 화요일을 제외한
매일 10시 30분, 14시 출발
1회 편도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1588-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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