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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세계복음화 로잔대회를 위해 세계 선교 현황을 분석한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가 나왔다. 2050년을 내다보며 10가지 세계적 관심 사안과 연관된 40개 트렌드를 제시했다. 디지털 기술과 AI 시대의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해가 그중 하나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위기의식이 선명하다. 특히 기독교적 인간관에 정면 배치되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에 맞서 “성경적 인간됨을 수호”하고 대위임령의 온전한 실천을 위해 인간과 구원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정립할 것을 요청했다.
AI 기술과 복음 선포: 대위임령의 실천 과제
AI 기술의 발전은 큰 기대와 함께 심각한 우려를 가져다줬다. 첨단기술은 늘 유토피아 비전만 아니라 디스토피아 악몽을 같이 던져 주곤 한다. 보고서는 AI 활용에 대한 의구심은 윤리와 신학적 문제만 아니라 그것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도 비롯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AI 기술도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성의 산물이기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문제다. AI와 신기술의 선교적 잠재력은 엄청나다. 하지만 그것의 도입은 철저한 신앙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효율과 편리함보다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바로 이해하고, 특히 기계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며 써야 그 잠재력을 바로 활용할 수 있다. 최선의 대응은 성경적 책임감에 기초한 활용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적 분별력과 목회적 지혜와 선교적 안목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AI 활용의 실제적 과제들을 염두하고 기대치를 바로 설정할 것을 주문한다. 이 기술이 아무리 강력해도 선교와 교회의 사명 전체를 감당하거나 모든 문제를 맡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확률적 계산에 의해 처리하는 기계적 방식으로 작동한다. 본질적 한계가 분명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럼에도 너무도 명민하게 작동해 인간인 것 같은 ‘환각’을 일으킨다. AI를 마음이나 영혼을 가진 무엇으로 ‘의인화’하는 것은 최악의 환각이다. AI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의지적 기획을 이해할 수 없다. “현실과 사실에 대한 인식, 공감 및 기타 인간 의식의 핵심적인 측면이 결여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것을 당부한다.
이 기술을 선교를 대신할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AI가 복음을 설명하거나 인간이 할 수 있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해도 진실한 증언이나 설교는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도구들은 복음의 핵심인 죄로부터의 구속을 경험할 수 없으며,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지식의 습득으로 축소될 수 없다.” 복음 선포는 정보 전달을 넘어, 성령의 능력으로 이뤄지는 전인적 변화를 목표로 한다. 선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에서 비롯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현지 사역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가 도달하기 쉽지 않은 장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데 기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도, 이 신성한 사명을 단순히 자동화하거나 기계를 통한 결과물로 전락시킬 수”는 없음을 강조했다.
AI 기술과 인간 이해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기술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속에서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형성하는 영향력을 가진다. “망치를 손에 쥔 사람은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속담은 이를 잘 보여 준다.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보고서도 AI 기술이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술은 삶에 답을 주기도 하지만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세계관의 핵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방식은 삶의 모든 영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2019년에 발표한 AI에 관한 복음주의 원칙 선언(Artificial Intelligence: An Evangelical Statement of Principles)은 그 어떤 기술도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지배권과 관리의 책임을 빼앗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되며” 반대로 “기술에 인간다움, 가치, 존엄, 혹은 도덕적 행위 능력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이 선언은 정통신학의 인간론에 기초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연관된 “높은 수준의 이성(실체적 관점), 사교성(관계적 관점), 대표성과 책임(기능적 관점)”을 인간의 특성과 능력으로 규정한다.
보고서는 이런 특성이나 능력이 존재론적으로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피조물과 차이를 보여 주는지에 대해서는 여지를 둔다. 가톨릭 철학자 로베르트 슈페만의 인간을 존재론적 특성 즉 ‘무엇’이 아니라 ‘누구’인지로 규정하라는 제안을 예로 든다. 인간의 가치는 기능적 능력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료 인간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창조주의 고유한 형상”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인간의 존엄성도 “인간 종의 생물학적 구성원”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 개개인의 특정 속성이나 능력의 유무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 지능이나 사회문화적 능력이 결여되거나 망가져도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닌 존엄성은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 본질적인 지위는 앞으로 AI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음을 강조한다.
트랜스휴머니즘: 극단의 유물론 진화론적 인간관
보고서가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트랜스휴머니즘이 AI가 가져온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유물론적 자연주의 세계관에 입각해 인간을 자연적 진화의 산물로 규정한다. 이제는 육체를 넘어 기계와의 혼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당연시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을 넘어선 존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유전공학, 분자 나노기술, 슈퍼컴퓨터, 보철, 생명공학, 냉동공학, 마인드 업로드, 복제, 가상현실, 인공지능(AI)” 기술을 토대로 질병과 고통을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해 새로운 인류인 ‘포스트휴먼’을 지향한다. 궁극적 목표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디지털로 구현된 “사이버 불멸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비성경적인 인간관이 기술적으로 과연 실현될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 비전이 이미 현실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이미 상당 부분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며, 더욱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 분명한 만큼 그 잠재적 위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 기술이 가지는 다양한 윤리적, 신학적 함의에 대한 연구가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트랜스휴머니즘의 근본적인 사상적 배경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 문화의 역사상 가장 기독교 세계관에 반하는 내용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이 사상은 멀리 자연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물론적 형이상학에 그 기원을 둔다. 비물질적인 이데아를 존재의 근원으로 상정한 스승 플라톤과 달리 존재의 근원을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한 철학적 사유에 주의를 촉구한다.
인본주의적 휴머니즘의 근원인 18세기 계몽사상의 영향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그 위에 무신론적 진화론에 입각해 인류를 계속 개선시켜야 할 존재로 본다. “초월적인 영원한 진리”나 거대담론을 철저히 거부한다. 한마디로 유물론적 환원주의다. 경제적 관점과 계급투쟁적 혁명 사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마르크스의 세계관과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넘어설 것을 선언한 니체의 초인 사상을 따라 인간 이상의 존재로 발전하려는 욕망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의 능력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향상시켜 노화를 방지할 뿐 아니라 새로운 종으로 개선하려는 비전을 가진 ‘지적, 문화적 운동’이다. ‘실천적 운동’을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이며 강력한 최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어 더욱 위협적이다. 국가 간 경쟁과 미래 경쟁력이 이에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막대한 경제적, 군사적 이해가 걸려있다. 아울러 사회 윤리적으로 권력과 차별, 경제적 정치적 착취와 같은 문제들을 유발하고 있다. 특히 이기심이라는 죄악의 본성에 의해 추동되고 있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기술의 우상숭배와 기독교 세계관
트랜스휴머니즘의 문제는 인간중심주의만이 아니다. 아예 인간의 정의를 바꾸어 놓으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간의 몸을 감옥으로 여기는 현대판 영지주의라는 지적도 나왔다. ‘마인드 업로드’ 같은 기술을 통해 생물학적 몸에서 구원받아 불멸의 영생을 꿈꾼다. 이는 죄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적 반역이며, 그 결과로 온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과 부활로 극복하는 복음의 진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인간을 초월해 신이 되려는 ‘호모 데우스’의 비전이 가장 극적인 사례다. 철저히 자연주의와 유물론적 관점에서 정신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생체 신경 반응으로만 파악하는 환원주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트랜스휴머니스트인 맥스 모어의 주장을 인용해 그 점에 주의를 촉구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휴머니즘과 마찬가지로) 더 높은 힘, 초자연적 실체, 믿음에 호소하지 않으며 종교의 다른 핵심 특징 없이도 종교와 동일하게 기능하는 삶의 철학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유전자 변형, 세포 조작, 합성 장기” 등의 모든 필요한 수단을 통해 노화와 죽음을 넘어설 것을 제안하고, “얼마나 오래 살지는 스스로 결정할 것”을 촉구한다.
보고서는 이런 사상과 세계관이 “향후 25년간 세상과 교회와 대위임령에 미칠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는 “하나님 놀이”에 다름 아니다. 인간을 그렇게 모델링하여 파악해, 창조주의 영역으로 들어서 “하나님 행세”(playing God)를 하려는 순간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가 무너진다. 인류와 교회가 이런 세계관과 비전으로 인해 “기술 우상숭배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기적 죄성에 지배되고 있는 인류가 이러한 신적 능력을 갖게 된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AI 기술의 비전은 공상과학 예술을 통해서만 제시되지 않는다. 어떤 부분은 이미 기술적으로 현실화돼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같은 기술을 통해 삶에 파고들어와 있다. 우리는 이런 기술들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점차 경각심이 둔화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도 근본적으로 비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형성된 세계에서 살며 적응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 발전 방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져 가고 있다.
기술 발전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성경적 가치에 기초해 청지기적 자세로 참여할 것을 강조한다. 이런 자세는 선교는 사람 전도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총체적으로 동참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AI를 영적 분별력과 사랑의 원칙에 기초해 선교적으로 활용하려면 열린 마음과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보고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이 기술을 책임감 있게 사용함”을 통해 선교적 활용만 아니라 AI 발전 논의에도 건설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오늘 시대적 도전과 대처 방안
보고서는 오늘의 상황을 위기이자 기회로 본다. 기술은 우리도 그 속에 몸담고 살아가는 ‘총체적 환경’이다. 무시하거나 회피하기보다 적극적인 씨름을 통해 대위임령 실천의 기회로 만들 것을 요청한다. 고도화된 기술일수록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한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 교회는 이 요청에 “변증적”이며, 변혁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복음이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어떻게 전해질 수 있으며 이해될 수 있는지 씨름하기 위한 4가지 요점을 제시한다.
첫째, 무책임한 회피와 지나친 두려움을 모두 벗어야 한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명백한 도전과 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가 흔히 그렇게 하듯, 다른 모든 이념과 세계관과 문화현상과 마찬가지로 무시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한 대응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기도와 진지한 씨름을 통해 회피와 공포 사이를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둘째, 트랜스휴머니즘이 기독교와 공통적 관심을 갖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죽음과 고통의 문제와 이를 극복하려는 갈망이 그것이다. 그 이면에 자리한 “근본적인 실제 관심사”에 관해 같이 진지하게 대화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그것의 과장된 소망이나 허황된 주장에 대한 논란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며, 기독교 진리에 기초한 보다 나은 해결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도록 격려했다.
셋째, 교회가 AI 비전과 세계관에 무의식 중에 젖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이 기술이 형성하는 삶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생기는 맹점들에 대해서도 의식해야 한다. 교회 밖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도 AI 기술의 문제에 물들어 가고 있음을 말한다.
넷째, 트랜스휴머니즘에 깃들어 있는 이 시대와 문화의 우상들의 본질을 드러내 대처할 것을 요청한다. 인간을 “물질적 대상으로 전환”시킨 유물론적 세계관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조차 “정보의 형태”로 환원시켜, 뇌로부터 기계 장치에 업로드해 보존하고 재생 복제 가능한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개선되고 영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사는 것을 꿈꾼다. 이에 반해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하나님 형상으로 몸과 영을 지닌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주장하는 고전적 인간학의 관점 회복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가 바로 파악한 것처럼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 시대의 최대 관심사인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교회는 늘 세상의 위기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증인으로 이제까지 굳건히 서 있다. 창조로부터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증인의 부르심을 신실히 행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사명이다. 9월 로잔대회에 모인 세계복음주의자들의 공동체적 지성과 기도가 AI 시대의 위기를 복음 전도의 기회로 바꾸는 기반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