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역할 때 인상 깊게 보았던 책이 있었다. 벤 후퍼(Ben Hooper, 1870-1957)라는 아이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미국 테네시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벤 후퍼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다. 이러한 배경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사생아인 그를 비웃고 따돌렸다. 그의 소년 시절은 설움과 외로움뿐이었다.
12살이 되었을 때 그는 마을 교회에 부임한 젊은 목사님의 소문을 듣게 된다. 소문에 의하면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들은 후퍼는 호기심에 교회로 향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띌까 염려하여 늦게 갔다가 제일 먼저 재빨리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만히 머리를 숙여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잠잠히, 그렇지만 뜨겁게 찾아오셨다. 후퍼는 그날 은혜에 흠뻑 젖어 축도가 끝난 지도 모른 채 앉아 있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가려 했을 때는 이미 목사님과 악수하려는 성도들이 줄지어 복도에 서 있었다. 사람들 틈에 껴서 얼떨결에 악수를 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벤 후퍼의 차례가 되었다. 악수를 하려고 손을 건네면서 목사님이 벤 후퍼에게 말했다.
“넌 누구니?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
순간 주변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후퍼가 사생아임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후퍼가 고개만 떨구고 있는데, 목사님은 표정이 밝아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다! 네가 아버지를 닮아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지!”
깜짝 놀라 고개를 든 후퍼를 향해 목사님은 결정적인 말을 남겼다. 이 한마디는 훗날 후퍼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넌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평생을 어딘가에 소속되어본 적도,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본 적 없고 항상 혼자라고 느꼈던 벤 후퍼에게 이 말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당황한 벤 후퍼는 도망치듯 급하게 그 자리를 나갔다. 허둥지둥 빠져나가는 그의 등 뒤로 목사님은 계속해서 밝게 소리쳤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하게 살아라!”
처음으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후퍼는 ‘난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난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깨달음이 그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훗날 테네시주 주지사가 되어 두 번 더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크리스천 아내를 만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름다운 크리스천 명문 가정을 이룬 벤 후퍼가 된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남겼다.
“목사님으로부터 ‘넌 하나님의 아들이야!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아!’ 그 말을 들은 바로 그날이 테네시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자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누구를 닮았는지 깨달았을 때부터 비로소 그의 삶과 인생이 달라졌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우리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6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창세기에 나와 있다. 하나님은 많은 피조물들을 창조하셨지만, 그 어떤 동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특별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신다. “형상”은 히브리어로 ‘첼렘’(chellem)이라고 한다.
여기에 여러 뜻이 있지만 그중 “하나님을 닮다”, “하나님의 그림자”, “하나님을 나타낸다”라는 뜻이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말씀에서 규정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나는 하나님이 반영된 존재구나. 나는 그분을 닮은 존재구나”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는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아들 셋이 있는데 교회를 지나다니면 성도님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심지어 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된 새가족 분들도 “너 목사님 아들이구나!”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누가 봐도 내 아들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붕어빵처럼 나를 똑 닮았다. 이처럼 자녀는 부모와 얼굴이나 신체 조건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부모의 DNA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는 하나님의 DNA를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과 닮아 있고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들어 있다. 이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붕어빵이며 자녀이다. 이 놀라운 관계가 바로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인 것이다.
- 하나님의 DNA, 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