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근
황 석 영
두 달 전 어느 날 밤에 그가 자기의 자취방에 찾아왔던 일을 여자는 생각했다. 그는 만취해 있었다. 집을 나간 누이에게서, 소식이 왔다면서 좋지 않은 직장을 얻었다고 주정을 했었다. 그는 여자에게 말했었다. 가난을 파는 짓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누이동생이 물었다.
“저 분은?”
“그이 군대 동기래요. 여기선 기능공 책임자인 직장님이세요.”
직장이 양재기에 남은 술을 들이켜고 입 바람 소리를 냈다.
“그게 누굴까? 찔러넣은 놈이!”
여자가 우울하게 말했다.
“돌아선 사람들이 절반이 넘어요. 야근이 아니라구, 잔업두 집어치우구 많이 돌아갔어요.”
“날이 밝기 전에 아주 끝장을 내버려야지. 타협을 하구 있는 건가, 아니면 모두 돌아섰나.”
누이동생은 자꾸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래, 그밖엔 별 도리가 없었다. 계약동거도 끝장이 났고, 다시는 그런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나와서 이태원 케네디 아줌마를 찾아갔다. 직장은 술이 좀 오르더니 기분을 내는 모양이었다.
“이 밤이 지나가면, 저 녀석은 강물에 뿌려져서 흘러간다 그 말이지.”
여자가 조용하지만 날카르운 어조로 말했다.
“그만둬요.”
“성깔이 있는 놈이지. 기분파구 말야. 죽긴 왜 죽나.”
“그만두라니까.”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에 관한 모든 일이 생생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우리는 언제나 같이 있었다. 잠도 같이 잤던 날이 많다. 어제도 그랬고, 지금도 같이 있다. 직장은 그만두지 않았다.
“저 친구하구 군대, 사회, 오년이나 같이 근무했소. 어쩐지 믿어지질 않아.”
여자가 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오빠 몰래 엄마만 뵙구 가는 날이 많았어요. 호적을 떼러 왔다가 집에 들렀죠. 나 미국 들어가요. 엄만 안 계시구 오빠 친구분이 오데요.”
“어머니께두 알려드릴 걸 그랬어요. 어차피 아실 텐데.”
직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됩니다.”
그는 여자에게로 다가서서 여자의 귓전에 대고 재빠르게 속삭였다,
“저 친구 어머니가 이 일을 알면 당장 데려가겠다구 할 겁니다. 우리 일을 못하게 말릴 거요. 저 친구도 그런 건 원하지 않겠죠.”
누이동생이 어리둥절해져서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자신없이 끼여들었다.
“안되다뇨…… 어째서죠?”
“장례는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우리 쪽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모르겠어요. 무슨 뜻인지…….”
직장은 누이가 입은 무도복 모양의, 주름이 많고 엷게 비치는 흰 옷자락을 훑어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코쟁이들 앞에서나 입을 것이지.
“그러니까 오빠를 모른 거요. 오빠는 댁에 때문에 속깨나 썩었다구.”
누이는 그 말에 기가 죽었다. 그 여자는 아직 오빠의 죽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보통때처럼 얼굴이 굳어져서 자기를 다그친다면 아픈 얘기를 맞받아 해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케네디 아줌마를 찾아가는 방법밖에는 달리 살고 싶지 않았나. 남자와 헤어지고 다시 돌아와 공장에 견습으로 들어갈 일이 암담했다. 일당에 쫓기다가 코피를 쏟고 선 채로 졸다 쓰러지는 생활. 그늘 없는 뙤약볕을 끝없이 걸어가는 듯한 생활이었다. 누이는 은회색 매니큐어를 입힌 자기의 손을 펴들고 내려다보았다. 일을 잊은 지 오래된 손이었다. 가발을 다듬지도 않았고 목각을 깎지도 않았고, 인형, 구슬백도 붙이지 않았으며, 밭을 매어본 지도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굵게 불거진 손가락 마디 만은 남아 있었다.
"손바닥에 박힌 못이 여태 지워지지 않았네요. 이 손이 집에 있던 때의 내 생활 그대루예요.”
여자도 작업가운에다 손바닥의 땀을 닦고 나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한숨을 쉬고,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그이가 가난하구 어두운 생활을 계속하길 바란 건 아닐 거예요. 진실하게 살아가면서 조금씩 나아지자는 뜻이었겠죠.”
누이가 픽, 웃었다. 나아지다니! 세월이 지나면 그런 난장판에서 시집을 갔겠지. 나 같은 게 누구에게 시집을 가게 됐을까. 오빠 또래의 친구들이나 어슷비슷한 사람들이었겠지. 새벽에 나가서 야근까지 마치고 열두시가 되어서야 돌아오는 주제에, 쌀은 떨어지고, 식구는 늘고, 싸움질이 시작된다. 누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대어들듯이 말했다.
“아세요? 우리 엄마는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거의 날마다 두들겨 맞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간 뒤부터 엄마는 겨우 안정을 찾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게 어디…… 사는 건가요? 묘하죠. 우리 어머니는 그래두 그런 아버지가 좋았나봐요. 습관이겠지 뭐.”
두 사람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직장이, 닳아서 가물대는 토막초 위에 새것을 댕겨붙였다. 불꽃이 흔들릴 적마다 그들의 그림자가 잡동사니의 그림자 위에 솟아올랐다. 직장은 부드럽게 말했다.
“오빠를 좋아하쇼?”
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떠나던 오빠. 역사에는 코스모스가 피었고, 어머니가 고추 판 돈을 수건에 싸서 주었다.
“싸젠두 오빠에 관해서 알아요. 나는 계를 붓고 있었거든요. 싸젠이 백오십불씩 생활비를 가져오죠.”
누이가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 여자는 가스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어른 같았어요.”
소작붙이가 떨어져서 부모들은 일거리를 찾아 항구로 나갔고, 그들 남매는 마름네 집에서 일년 이상이나 밥벌이를 해야 되었던 때도 있었다. 누이가 그릇이라도 깨고 매를 맞고 쫓겨나와 울면 오빠가 나무지게에 누이를 태우고 산으로 올라갔다. 산 위에 올라가면 서쪽으로 군산 앞바다가 보였다.
“오빠가 언니께 홀딱 반했던 모양이죠. 어머니가 그랬어요.”
여자가 말했다.
“저분하구 안 건 석 달밖에 안돼요.”
공원이 천명이 넘는 공장이었다. 출퇴근길에 몸수색을 당하고 드나드는 공원들은 서로가 비슷한 꼬락서니여서 누가 누군지 낯을 익히기가 어려웠다.
“다른 작업장에 있다가, 직업병 걸린 사람들이 많아져서…… 나는 만성 기관지염이었어요·…‥ 어떤 사람은 해고당하구, 우리는 운좋게 작업장을 옮겼지요. 오빠가 근무하시던, 바로 옆이에요.”
회사 창립기념일이었던가. 축구를 하다가 다친 그를 여자가 세면장에서 씻겨주고 손수건을 찢어 감싸주었다. 첫날, 공단 다방에 나온 그는 면도를 하지 못해서 덥수룩했고 약간 덤벙대는 것 같았다.
“술 한잔 마시겠소?”
직장이 술병을 쳐들어 보이며 말했다.
“더워서 싫어요.”
“기분이 달라질 텐데.”
하고 나서 직장은 상자 사이로 나갔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스물네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창고의 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이 몰려나가고 있었다. 남은 사람들은 열 명쯤 되는 성싶었다. 직장이 물었다.
“뭐야! 모이구 있나?”
“높은 사람들이 방금 도착했어. 그리구 야근패들은 우리랑 합세했지. 기계를 지키러 나가는 중야.”
“잘됐군. 남은 사람들은 여길 지켜야 할걸.”
“인원은 충분해.”
직장은 상자 뒤로 돌아갔다. 그는 상자의 골목 사이에 잡동사니를 날라다 메웠다. 목재를 받치고 상자로 막았다. 직장이 땀을 씻으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들은 연락을 못 받았습니까?”
“물론 나는 저이한테서 자세히 들었죠. 그렇지만 대부분 여자들은 별루 실감을 못 느꼈어요.”
그들은 일제히 기계를 끄고 작업을 중단하기로 약속을 했었던 것이다. 언젠가 그런 약속이 새어나간 게 틀림없고, 미리 알고 있는 저쪽의 기세에 늘려 일단 분열되었던 것이다. 직장은 계획대로 기계를 껐다. 다같이 스위치를 내린 줄 알았다. 그는 전동기의 스위치를 내리면서 모두의 뜻이 아니면 기계는 절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여전히 시끄러운 피대 소리를 내며 기계가 돌고 있었다.
“우리 작업장에서두 전달을 받긴 했어요. 하지만, 여자들은 일단 일이 터지구 행동이 일어나기 전에 자발적으루는 결단을 못하거든요.”
여자는 아교칠을 마치고 일어났다. 어떤 여공은 못 세 개 박는 일을 그쳤고, 또다른 여공은 페이퍼질을 그쳤다. 여자는 이년 동안이나 합판의 네 귀퉁이에 아교칠을 하는 똑같은 일만 해왔었다. 그 여자가 자기의 뜻대로 일손을 멈추고 일어섰을 때, 그제야 여자는 그 풀칠의 의미를 알았던 것이다.
“모이라는 곳으루 나갔지만, 여자가 십여명 정도 복도루 나왔다가…… 조용하더군요. 쑥스러워져서 모두들 다시 돌아갔어요.”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얘기를 알아들으려고 애를 쓰던 누이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아, 이제 알았어요. 오빠를 누군가가 죽였군요.”
직장과 여자는 서로 마주보았다. 그들은 각기 되물었다.
“무슨 얘기예요?”
“누구요, 그게.”
누이가 차츰 확신을 가지고 명확하게 내뱉었다.
“댁이나 언니, 공장 사람들 모두가 오빠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죠.”
“저 친구가 죽은 건 순전히 저쪽에 붙어버린 놈 때문이오. 그래서 참다 못해 뛰어든 겁니다. 누구라두 그런 결심이 들었을걸. 저 친구가 먼저 그러지 않았더면, 내가 했을지두 몰라요.”
누이동생이 직장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누가 하든간에, 아주 냉정하시네요.”
“여자들은 이런 기분을 몰라요.”
여자가 당황해하며 그들을 번갈아 살폈다.
“이쪽은 동료구, 또 거긴 누이동생이니까 입장들이 틀려요.”
“어느 쪽이죠, 어떤 입장이신가요?”
누이의 끈질긴 물음에 몰린 여자는 자기의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꼭 누르고 잠깐 망설였다. 여자가 흰 광목에다 시선을 고정 시켰다.
“나는 언제나…… 저분 쪽이죠.”
“나는 대의 쪽입니다.”
라고 직 장이 말하자마자 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를 잘라냈다.
“그 잘나빠진 대의를 강조하지 마세요. 모두들이니, 여럿이니, 오빠가 바로 저기 누워 있는데…… 그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도대체 댁이 뮐 안다구 그러쇼. 이제서야 이런 꼴루 나타나서는…….”
“당신들은 오빠의 죽음만이 필요했죠? 나 혼자서라두 오빠를 떠메구 집으루 돌아갈 테에요. 어머니하구 조용한 장례를 치르겠어요.”
직장은 자제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가 친구들의 곁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소중했다. 직장은 차근차근히 말했다.
“이 친구는 지금 여기 누워서 우리들 전부에 맞먹는 실력을 행사하구 있는 겁니다.”
“어째서 오빠만이 그런 일을 감당해야 되나요? 다른 사람은 안되나요?”
“그 친구 죽은 건 전혀 우연이에요. 우린 저 친구 죽은 일을 늘 생각하구 뒤따를 각오만 가지면 돼요. 슬픈 건 댁뿐이 아니오. 큰 일두 있구, 작은 일두 있구…… 그렇죠?”
누이동생은 다시 상자 뒤로 쪼그리고 앉아서 잠잠해졌다. 직장은 소주를 따른 양재기를 입가에 쳐들었다.
“인마, 술이나 한잔 들어.”
여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쪽에서 끝까지 버티면, 우린 어쩌죠? 여기서 언제까지구 기다릴 순 없잖아요. 내일은 장례를 지내야 해요.”
“여름철엔 밥두 빨리 쉬는데, 저 친구를 여기다 방치하는 것두 도리가 아니구. 내일 밝은 날이 될지 어두운 날이 될지는 알 수 없어요.”
졸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누이가 중얼거렸다.
“밖엔 지금 비가 와요.”
“들립니다.”
직장이 드디어 술병을 비웠다. 그는 졸음이 오지 않도록 서성댔다. 아침에는 날이 개었으면 싶었다. 그는 자꾸만 흐릿해지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 사람아, 일어나. 이봐, 잠들었어?”
누군가 직장을 깨웠다. 창고지붕 위의 채광 슬레이트가 부옇게 밝아 있었다. 여자들은 상자 위에 머리를 묻고 잠들었고, 그의 곁에 최종반의 나이 많은 사내가 서 있었다.
“잠깐 깜박했는데, 지금 몇신가·…‥”
직장은 간신히 눈을 뜨고 멍하니 둘러보다가 팔목시계를 쳐들었다. 다섯시였다. 잠시 후면 야근조의 퇴근시간이었다. 합세했던 사람들 중에서 설득에 넘어가는 이탈자가 생길지도 몰랐다. 최종반 사람들이 말했다.
“날이 샜어. 가족들이 왔다면서?”
“저기서 자는군.”
“공장장이 만나겠대. 그치들두 뜬눈으루 새우구 있지.”
“간밤에 경영진 쪽에서두 회의를 했을걸. 무슨 대책들을 세웠겠지.”
“좌우간 좀 나가자구. 우리 쪽서 처음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 와 있어.”
그들은 상자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직장이 물었다.
"왜 그러지?”
“우리두 대책을 세워야지. 그것두 그렇지만…… 어떤 놈인지 잡아내야 할 거 아냐.”
창고를 지키는 사람들은 여전히 문가에 칠팔 명이 서 있었고, 주모자들 여섯이 둘러앉아 있었다. 납품반장, 공급실의 두 사람, 기능공 두 사람, 수지 반장 등이었다. 직장이 말했다.
“가족을 만나자구 그런다며?”
“죽은 사람과 쟁의를 관련시키지 말자는 거야.”
납품반장이 침울하게 말했고, 기능공이 거들었다.
“가족을 꼬일려는 수작일걸.”
“틀림 없어. 무슨 얘기 할 게 있으면 우릴 통해서 전하라구 그래.”
직장은 초록색 운동모자를 벗어서 바닥에 깔고 앉았다. 그가 말했다.
“빌어먹을…… 어째서 그 친구가 우리하구 관련이 없나. 그리구, 우리에게 노조가 어디 있어?”
노조는 언제나 말끔한 사무실 저 높다란 곳에 있었다. 뭐라구, 가족이 늘었어? 너무 많이 낳았단 말이지. 우리두 실력을 행사할 체면이 서는가. 자네, 우리가 위에 있었다는 걸 언제 알았나. 그럼 그전대루 모른 척하든지, 자네 자신들이 노력해보는 길밖엔 없네. 우리는 자네들 같은 노무자는 이미 아니니까. 허허, 살기가 어떻다구…… 그건 여기 모든 기업의 전반적인 조건이야. 그러면 우리들의 노조는 어디 있습니까. 이봐, 자네는 집 이 좀 헐었다구 그걸 두드려부수구야 새 집을 짓는다구 생각하나. 시간 가는 대루 수리를 해야지. 그건, 집이구…… 이건 사람 얘깁니다. 공급실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만들어서 가입해야지.”
“하지만 그때엔 벌써 우리 같은 놈들은 일손을 놓은 뒤란 말야.”
수지반장이 신중하게 얘기를 꺼냈다.
“저쪽에선 가족들과 직접 담판해서 위자료며, 충분한 산업재해 보상을 해주겠다는 거지. 그렇지만, 이 파업은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야. 회사두, 공원두 같이 살아야 할 거 아니냐, 그러더군.”
임금을 백퍼센트 올린다 치더라도; 현재 상태의 생산실적으로는 회사에 별다른 타격은 없으리라는 것이 그들의 평소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 그런 선까지 요구해온 것은 아니었다. 기능공이 말했다.
“공장의 슬로건을 알구 있겠지. 기계는 삼십퍼센트, 노동력은 칠십 퍼센트…… 우리의 피와 땀이 유일한 자본이라구.”
“그래, 물러서면 안돼.”
직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앉았다가 납품반장에 게 물었다.
“공장에 몇 명쯤 모여 있어?”
“한 사백.”
“여자들까지 오백이십 명이야. 걔들은 작업대 위에 드러누웠어.”
“기계는 전 공장에 걸쳐서 멈춰 있지. 썩은 기계. 누가 사지두 않을 고철!”
“우리가 제안한 개선책 중에서 두 가지를 양보하라는군.”
직장이 말했다.
“사람 한 목숨이 들었어. 비싼 대가였다구.”
그들의 제안은, 불량품인 원료가 생산과정을 거쳐서 불합격됐을 때 그 파손품을 공원들이 변상하도록 하지 말 것이었다. 또한 명목상의 도급제를 폐지할 것과, 시간노임제를 실시하고 유급 휴일을 달라는 것이었다. 수지 반장이 직 장에게 말했다.
“파손품에 대한 변상문제만을 시정해주기루 한다는 거야.”
“그따위 때문에 생사람이 고압선에 뛰어들었겠어. 절대루 양보할 타협안이 아냐.”
수지반장은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파손품에 대한 변상을 안하게 되면 자연히 노임이 오른 거나 마찬가지야.”
“마찬가지가 아니래두.”
애초에 원자재부터 파손될 위험이 있는 물건이 작업과정에서 상한 것이 어째서 공원들의 책임인가 하는 게 그들의 최초의 물음이었다. 당연히 원자재를 들여온 쪽일 것이다. 아니면 바다 건너편의 책임이었다. 도급제에 관한 물음도 그랬다. 법정 노동시간은 여덟 시간인데,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배가 임금에 의해서 두 시간을 추가할 수 있다는 선까지 나와 있었다. 그런데 기본노임은 싸고, 도급제로 바꿔놓으니까 실상은 몇 푼을 더 벌어보려고 남은 시간은 빼앗기는 셈이었다.
“우리두 잠을 자구 쉬어야 다시 일을 하지. 그러니 시간계산을 하구 휴일두 노임을 붙여달란 거지. 기계에두 기름을 쳐주는데 말이야. 여기, 일요일에 놀아본 사람 있어?”
공급실 사람이 별로 자신없이 말했다.
“하긴, 전반적인 현실일세.”
“법에 나와 있는 것두 모르는 녀석이 태반이란 게 그 현실이지.”
“어쨌든, 그런 얘기보다 구체적으루 어떻게 할 작정인가.”
최종반 사람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직장이 말했다.
“끝까지 밀구 나갈 생각이지.”
“저쪽의 최종 타협안을 수락하구, 죽은 친구 보상금이나 타게 해주지.”
공급실 사람이 말하자, 납품반장이 그 의견에 찬성 했다. 기능공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누구 맘대루. 당신네하구 우린 입장이 또 틀려. 그 친구는 기능공이었어.”
공급실 쪽과 납품반장이 그의 손을 잡아 억지로 끌어앉혔다.
“너무 홍분하지 말라구. 우린 다만…… 관에서 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루 온건하게 해결하구 싶어.”
“그건 온건한 게 아니야. 비겁한 거야. 누구보다두 당신네가 당신들 조건을 잘 알잖나.”
그들은 풀이 죽어버 다.
“잘…… 알지.”
“아무래두 처자가 있는 사람들하구 입장이 틀릴 테지. 목구멍이 뭐란 말두 있어.”
최종반장이 손바닥을 두들겼다. 그가 직장에게 말했다.
“그만해두고. 문제는 우리들 사이에두 있네. 지금 저기 누워 있는 친구 말인데 그 친구가 어째서 죽게 됐는지를 차근차근하게 얘기들 하자구.”
“사실 말이지, 나는 이런 얘긴 일이 모두 끝나구 나서 하구 싶었어. 우리가 모이구 야유회를 갈 때부터 누군가, 끄나풀이 끼여 있었지.”
“저 혼자만 살겠다는 놈!”
수지반장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글세…… 지나친 생각인데.”
“우리가 기계를 끄구 파업에 들어갈 일을 저쪽에서 미리 다 알구 있었으니까. 누군가 고자질을 했단 말야.”
그들은 어제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무엇인지 납득이 안 가는 점이 있기는 있었다. 수위실 옆 게시판에 평소처럼 견습공 모집광고가 붙어 있는 게 아니라, 경고장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어제 아침, 출근시간이었다. 경고 내용은―작업시간 중 허락 없이 자리를 비우거나, 고장수리 기타의 이유 외에 무단히 기계를 정지시키는 행위를 적발할 시는 해고 조처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공장장이 현장에 줄곧 붙어 있었지.”
“바로 그 점이네. 미리 알구 있었던 거야.”
정작 열한시가 되자마자 약속대로 기계 스위치를 끄고 작업을 멈춘 것은 절반도 못되었다. 경고와, 현장에 와 있는 공장장이 두려웠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다. 여전히 기계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갑자기 저 친구가 뛰는 결 봤겠지.”
“봤어. 우리들 사이를 헤치구 지나갔으니까.”
그가 사다리를 타고 뛰어올라갔다. 처음에는 모두들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붉은 쇠상자에 생각이 미치자 그제야 말려라, 끌어내려라, 하고 소리만 쳤다. 그는 동력선을 끄려고 했었다.
“그 해골을 그린 붉은 쇠상자 뚜껑을 열었지. ……퍼런 불이 번쩍했어. 흰 연기가 피어오르더군. 저 친구는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있구 말이지. 기계가 멈췄더군.”
“그래, 조용했지.”
“누구야? 위협공고를 써붙이게 하구 공장장이 현장에 붙어 있도록 나발을 분 놈은……그놈이 끄나풀이지. 대강 짐작은 가지만, 한번 따져 보자구.”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나는 껐어. 이십 번기야.”
“나두 먼저…… 기계를 꼈어. 십사번기.”
직장이 한 기능공을 향해 물었다.
“몇 번기였어?”
“잘 알잖우.”
“자넨 십오번기 였지 .”
다른 기능공이 말했다.
“참, 그렇군. 십오번기는 수리중이었어.”
“어떻게 아나?”
“십사번기 바루 내 옆자리거든. 지금 생각났어, 그렇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십오번기 자네 조수가 내 멍키를 빌려갔어.”
직장이 십오번기 공원을 지그시 쏘아보았다. 그는 뒷짐을 지고 동료들의 뒷전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채광창이 훨씬 밝아졌다. 촛불은 벌써 빛을 잃었고, 수족관처럼 녹색빛이 천장에서 배어들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수군대는 소리가 나더니 문가의 사람들 중 하나가 외쳤다.
“사장이 올라왔대, 여공들하구 상담중이야.”
“알았어. 이쪽으루 오면 들여보내지 말라구.”
직장은 십오번기의 ‘출근하자마자’ 라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 기계를 돌리기도 전에 고장이었다니 이상했다. 너무 공교로웠다.
“이봐, 저 친구 자기 기계 옆에 붙어 있었나? 그때 말이야.”
“가만있어…… 없었다. 그래, 틀림없어. 지금 생각이 났군.”
모두들 십오번기 공원에게로 시선이 집중했다. 직장이 그의 앞에 서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디 가 있었지? 그 시간에…… 우리가 전부 기계 옆에 붙어서서 기다리던 그 시간에 말이야.”
“나두…… 거기…… 있었다니까.”
“속이지 말라구.”
납품반장이 직장에게 말했다.
“저 사람 생산과장네 이웃에 살지. 부인이 그 집 가서 허드렛일두 해주는 모양이라.”
“생산과장은 공장장 직속이지.”
모두들 슬그머니 일어나 십오번기 공원에게로 다가섰다. 그는 뒷걸음질을 쳤다.
“미쳤어, 미쳤군. 난…… 아무것두 몰라.”
“더러운 새끼.”
“나는 모른다니까.”
직장이 그의 멱살을 잡아 메어다꽂았다.
“너 같은 벌레만두 못한 놈은 아주 밟아서 뭉개버릴 테다.”
“죽여, 죽여.”
사람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주먹과 발길이 그의 조그맣게 웅크린 몸 위에 떨어졌다. 그는 어이구, 사람 치네…… 소리치면서 벽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소란한 소리에 문가에 섰던 동료들도 우 몰려왔고 상자 너머에서 자고 있던 두 여자들도 질겁을 해서 뛰쳐나왔다. 최종반 사람이 젊은 축들의 혈기를 제지하고 그를 벽 쪽에 몰아세운 채 등을 돌리도록 했다. 그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셔츠 자락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이 한마디씩 떠들었다.
“얼마냐, 얼마에 넘어갔어?”
“얼마에 팔았냐구.”
“너 같은 놈 땜에 사람 하나 죽었다.”
그는 벽에 웅크리고 기댄 채 수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몰랐어…… 몰랐어.”
한사람이, 바닥에 뒹굴어 있는 각목을 집어들고 달려들자, 멍청히 섰던 여자가 꺅, 하는 소리를 치며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무슨 짓들이에요?”
여자는 손수건을 꺼내어 코피가 터진 공원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정신들 차리세요! 우리들끼리 피를 내구…… 말두 안돼요.”
공원은 얼굴을 가린 채 이럴 줄은 몰랐다고 자꾸만 중얼거렸다. 직장이 말했다.
“꼴보기 싫어. 얼른 밖으루 꺼져. 어이, 내보내.”
“그런 사고가 일어날 줄은 몰랐어.”
여자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저치가 우리 일을 모두 찔렀대요.”
여자가 공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흔들면서 물었다.
“사실이에요?”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모르구…… 나는 그저 귀띔을……”
“말해 줬군요.”
“나는 과장 덕분에 살구 있는 거나 같습니다.”
그는 웅크린 채 변명했다. 최종반 사람이 모여선 동료들을 밀어내며 말했다.
“자, 돌아갑시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간이니까.”
하고 나서 그가 직장에게 말했다.
"우린 가 있겠어. 수시루 연락하지.”
사람들은 흩어졌다. 직장은 넘어진 동료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밤새 지쳐버린 여자도 가운을 벗어들고 땅바닥에 쪼그려앉았다. 모든 일을 보고 있던 누이가 고개를 처박은 공원에게 말했다.
“댁에 때문에 오빠가 죽었군요. 그래요, 당신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공원이 머리를 쳐들고 세 사람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직장과 눈이 마주쳤다.
“자네두 알지. 우리 집사람 말일세. 이게 두 번이나 음독을 했어. 나올 적 엔 바깥으루 문을 잠그고 가둬놓고서두 마음이 안 놓여.”
“그게 어떻단 말야?”
“첫 애를 죽이구부터 사는 재미를 잃어버린 모양이네. 아다시피…… 과장은…… 잘해줬어.”
“그 사람은 사장 처남이야. 물론 좋은 사람이겠지. 하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선, 우리하구 다르다는 걸 몰랐어?”
“나는 새 공장으루 그 양반을 따라가게 되어 있었어. 신임을 잃고 싶지 않았어.”
“누구나 자넬 좋아했지. 친구들은 어쩔 생각이었나.”
“내가 어떻게 해서 이뤄놓은 가정 인데……그 여잔, 착한 여자야.”
그는 보육원에서 자라 군대의 하사관으로 어른이 된 사내였다. 제대하고 나서 이년 동안이나 강원도에서 머슴질도 살았다. 그는 회사 표창장도 두 번 받았다. 직장이 내뱉었다.
“자네는 볼장 다 본 놈이 됐군. 너 자신까지 팔아먹을 놈이지.”
“나는 새 공장에 기사가 되어서 갈 작정이었어. 생각해보게. 기사면 어엿한 사원이야. 공원이 아니지. 나는 그저…… 타협조루 과장께 얘기했을 뿐일세. 우릴 도와달라구 말이지.”
“너는 친구를 팔았어. 더이상 지껄이지 말구 밖으루 꺼져. 사무실에 가서 네 불행이나 호소해보지 그래.”
여자가 말했다.
“누구두 당신을 비난 안해요. 용서할 권리두 없구요.”
직장이 소리쳤다.
“권리라구? 쓸데없는 소리 작작 지껄이슈. 혼자서 잘살려구 여럿을 파는 권리는 있나, 그럼?”
직장은 주먹을 쥐고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그는 생각했다. 사람이 여럿이 모이면 책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친구의 죽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동등한 이익, 불행을 함께 나눠서 감수하는 용기, 하는 모든 것들은 비겁하고 나약해진 친구에게까지도 끝까지 책임을 요구하고 보여주어야만 한다. 공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지쳤어. 잘해볼려구 무척 애두 썼는데…… 열심히 살려구, 별짓을 다 했는데 뭐가 뭔지 이젠 풍지박산이 되어버렸지.”
“뭘, 열심히 살려구 해봤어?”
직장이 그를 귀찮은 듯이 내려다보았다.
“자녠 새끼줄에 끌려가는 염소꼴이야. 질짙 끌려만 다녔지. 줄을 끊을려구 한번이나 노력해본 적이 있었나? 자넨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허깨비지. 자네가 바꾼 건, 자네 자신이야. 그런 몹쓸병을 퍼뜨린 놈들이 나쁘지.”
문 앞에서 누군가 안쪽에다 대고 외쳤다.
“사무실 쪽에서 사람을 보냈는데……”
“뭐래?”
“사장님 말을 전하겠다구.”
“왔군. 몇사람이야?”
“셋.”
“대표루 한사람만 들여보내 .”
창고문이 덜컹거리며 빠끔히 열렸다. 말쑥하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뒤에서 뭐라도 당기는 것처럼 내키지 않는 자세로 안에 들어섰다.
채광창이 천장에 있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은데다, 빛이 푸르스름해서 창고 안은 어두웠다. 더구나 후덥지근하고 여럿의 땀냄새가 났다. 그는 직장에게로 걸어왔다. 안경의 콧대를 연신 밀어올리면서 그가 정중하게 물었다.
“고인은 어느 쪽입니까?”
직장이 말없이 그를 상자 쌓아놓은 구석으로 데려갔다. 사람들도 그들 뒤를 따라갔다. 신사가 촛불이 켜진 관 앞에 가서 잠시 묵념을 올리고 돌아섰다. 그는 어둠 속 여기저기에 모여선 사람들을 어림짐작으로 둘러보며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에…… 이번 일에 대해서는 회사로서도, 에…… 유감천만이며, 크나큰……에,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구 있습니다.”
“우리가 내놓은 세 가지 조건을 이행하시는 겁니까?”
신사는 직장을 힐끗 쳐다보고서 적어놓았던 것을 확인하려는 듯이 수첩을 펴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를 향해 제각기 말을 던졌다.
“우리보다 더 잘 아실 텐데.”
“그게 고인의 뜻이오.”
“당신들 땜에 우리 오빠가 죽었어요.”
신사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여자 목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신사는 누이 앞에 서서 인사를 했다.
“가족 되시는 분이군요. 죄송합니다. 에…… 뭐라구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에…… 회사측에서두 책임을 느끼구, 에…… 장례 일체를 떠맡기루 했구요, 에…… 위자료와 재해 보상금을 드리기루 결정을 봤습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가서 전하쇼. 장례는 친구들이 치른다구 말이죠.”
신사는 누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른 기침을 크게 하고 나서 천장으로 머리를 쳐들고 서 있었다. 누이가 말했다.
“친구분들이 저러시니 결정을 할 수가 없네요. 저희두 보상은 바라지 않아요. 친구분들이 장례를 치러주길 원합니다. 친척두 별루 없구…… 해서, 여기서 오빠만 모시구 나갈 수가 없군요.”
“허어……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사가 손바닥을 비벼댔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난 다음에 이 사람들과 우리가 상의할 문제라 그 말입 니다.”
직장이 말했다.
“그 친구는 쟁의 때문에 죽었습니다. 따라서 쟁의가 해결되면, 장례식은 곧 치를 수가 있습니다.”
“나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만, 에…… 지금 공장 밖에는 경찰두 와 있습니다.”
“불리한 건 오히려 그쪽일 텐데요. 우리가 범법을 하구 폭동을 일으켜서 치안을 어지럽히는 것두 아니구요. 다만, 장례식을 장례답게 치르겠다는 거 아닙니까. 고인의 뜻이 이루어져서 그가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원하는 겁니다.”
신사가 여유있게 웃었다. 그는 주위에 모여선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농담이지만, 집단해고를 시킨다면 어쩌겠소?”
“그럴 수는 없을걸요. 우리들 반수 이상이 기능공이니까. 아마 현재의 생산실적을 올리려면 석 달은 걸릴 겁니다. 그만한 기간이면, 회사로서도 치명적 일 테니까요.”
“어쨌든, 위에 올라가서 건의는 하겠소. 에…… 그리고 어제와 같은 방임상태의 조처를 취한 것은…… 에, 회사의 입장을 표명한 게 아니었다는 점을 밝힙니다. 우리는 에…… 어젯밤에 간신히 연락을 받았습니다.”
신사가 모인 사람들을 헤치고 나갔다. 풀이 죽어버린 사람도 있었고, 피로해서 잠에 곯아떨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십분쯤 지나서 그들은 떠들썩한 소리를 들었다. 창고 안에 대낮 같은 불이 켜졌고, 끓어오르는 듯한 기계 가동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소리가 정상적으로 힘차게 들려왔다. 그들은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공장건물에서 함께 밤을 새웠던 남녀 공원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마당에 몰려나오고 있었다. 직장과 몇 사람이 촛불을 끄고 관을 들었다. 여자도 한 귀퉁이를 쳐들면서 친구들에 게 맞은 공원을 불렀다.
“좀 거들어요.”
그가 여자 대신에 끼여들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관을 메고 아직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마당을 지나갔다.
〔현대문학 1973. 10;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동서문화원 ”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