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바둑 성적표로 나타난 한중일의 빛과 그림자 환호속의 한국과 달리 중국ㆍ일본은 자구책 마련에 부심
빛과 그림자. 아시안게임 바둑 경기가 한-중-일의 명암을 확연히 갈라놓았다. '완전 제패'의 빛나는 훈장과 더불어 연일 환호하는 한국이라면, 이웃 중국과 일본은 여론과 팬들의 호된 매를 맞고 있다.
첫 정식 종목의 역사적인 이름표를 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바둑이 채택된 데엔 중국의 역할과 노력이 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그 속엔 안방에서 성대한 잔치를 벌이기 위한 원대한 이상을 담아 두었다.
중국은 그러나 축배는 고사하고 잇단 참패 속에 '독배'를 들고 말았다. 애시당초 금메달 싸움은 한-중 간의 2파전이었기에 '은메달만 3개'는 참패나 다름없다. 바둑에서의 부진으로 사상 첫 '금메달 200개' 달성에도 한 개가 못 미쳤다.
전 경기를 승리하며 고군분투한 콩지에 9단은 성적 부진의 원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실력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고, 거기다가 컨디션 부진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으레 말하는 '실력 운운'은 이유가 되기 어렵고, 컨디션 부진은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연인 사이로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 왔던 탕이-류싱 페어. 북한팀에 패하는 등 실전 경기에서 손발이 맞지 않은 것을 두고 지나친 부담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선수단을 현지에서 행정지원한 최규병 기사회장은 "중국 선수들이 압박감 때문인지 제 기량을 펴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고 했다. "류스밍 중국기원 원장이 일주일 전부터 대회장에 와서 매일같이 선수단을 소집했는데 겉으로는 격려를 위한 자리였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그렇지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중압감은 실전 경기로 이어져 금메달을 눈앞에서 날린 페어전에서의 벌점, 또 단체전에선 공배를 메우는 도중에 대마의 눈이 달아난지도 모른 체 류싱의 대마가 태국 선수에게 몰살당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중국이 페어전에 쏟아부은 공력은 상당하다. 연인 사이로 알려진 류싱-탕이 페어를 대표팀 결성 이전부터 구성해 조기 훈련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한 자리는 지난 3월 페어월드컵 우승팀 씨에허-송용혜 페어에 맡겼다.
▲ 중국은 남자단체전에서 예선과 결승 모두 한국에 1-4로 무릎을 꿇었다.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남자단체전 대표팀이 시상대에 오르기 전 중국 선수들과 악수하고 있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자신감을 갖춘 중국은 페어전 경기 일정을 단체전 앞에다 배치했다. 페어전에서 기선을 제압한 뒤 그 기세를 몰아 단체전에서도 한국을 몰아치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류싱-탕이 페어가 북한에 지고, 씨에허-송용혜 페어가 어이없는 실수로 금메달을 헌납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결국 페어전 실패는 선수들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남자단체전은 예선과 결승 모두 한국에 1-4로 패했다. 두 번 모두 콩지에만 1승을 거뒀다. 여자단체전은 예선에선 한국에 2-1로 승리했으나 결승에선 믿었던 루이나이웨이 9단이 종반에 무너지며 1-2로 역전패했다. '당연히 금메달' 기대에 대한 한국 선수들에게도 부담감이 없지 않았지만 정신력과 실력으로 극복했던 데 비해 중국 선수들은 그러지 못했다.
일본은 더한 수모를 겪었다. 한국과 중국에 밀려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떤 부문에선 대만, 그리고 북한보다도 못한 성적을 나타냈다.
혼성페어전은 참패했고, 단체전은 남녀 모두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난 끝에 메달은 남자단체전의 동 1개뿐이었다. 페어전에선 스즈키 아유미-유키 사토시 페어가 9위, 무카이 치아키-다카오 신지 페어가 10위에 그쳤다.
단체전은 남자가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에 전승했으나 후반전에 대결한 중국, 한국, 대만엔 패했다. 대만과의 3위 결정전에서 간신히 이겨 메달을 획득했을 뿐 여자는 3위 결정전에서 대만에 패해 7개국 중 4위에 머물렀다.
감독을 맡는 오다케 히데오 일본기원 이사장이 "과연 일본이라고 생각되도록 금메달을 따오면 좋겠다"라고 한 격려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 풀리그 예선을 4위로 턱걸이한 뒤 대만과의 3위 결정전에서 3-2로 승리한 일본 남자단체전 팀이 동메달 시상대에 올라 있다.
일본은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짬을 내어 지난 8월 2박3일간의 합숙을 실시했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에 훨씬 못 미친다. 페어바둑의 경우 상대팀뿐만 아니라 파트너의 의중도 추리할 필요가 있어 의사 소통에 더 시간을 들여야 했다는 반성이 그래서 나온다.
'제한시간이 짧은 대국에 익숙지 않아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고 감싸는 측도 있다. 이번 대회의 제한시간은 45~60분의 속기. 한국과 중국의 국내기전이나 국제기전은 길어도 3시간, 짧게는 처음부터 1분 이내에 두는 기전도 있다. 반면 일본은 2일제 타이틀전이 중시되어 그것들에 힘을 쏟기 마련이다.
▲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감 탓인지 기어이 눈물을 짓고 만 일본의 스즈키 아유미 5단(왼쪽)과 요시다 미카 8단(오른쪽).
제한시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 대응하지 못한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혹자는 일본기원과 관서기원으로 이분화되어 있는 현실을 꼽기도 하고, 그것보다는 프로가 된 이후의 육성 시스템이 없는 것을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바둑은 예술이나 전통문화로 인식되어 왔는데 아시안게임 채택으로 '두뇌 스포츠' 측면이 커져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장을 맡은 야마시타 게이고 9단은 "과거의 좋은 성적을 원하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기사 스스로 세계대회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