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 보라”
오늘 부목사가 인도하는 ‘목회자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에 주님께 기도하는데, 세미나에 참여한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라’는 강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뜨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기 보다 사역의 열매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함께 하시는 주님’입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쓴 '이반 데비소니치의 하루'라는 소설의 주인공 이반이 형무소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 자주 벽에 기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옆에 있던 동료 죄수가 이반이 기도하는 줄 알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봐. 네가 여기서 기도한다고 해서 더 빨리 나갈 줄 알아?"
그때 이반이 자신을 조롱하는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이유는 여기서 빨리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형무소 안에서도 나와 함께 하셔서 이 모진 생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거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견딜수 있거든."
우리 안에 육신의 욕구는 너무나 강합니다.
세상 소식은 도처에 넘쳐납니다.
마귀의 역사는 무서울 정도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도 너무나 분명히 함께 하시고 너무나 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주님을 보면서도 알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는 "피조물로서 인간 최대의 존엄성은 주도권이 아니라 반응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믿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더욱 민감히 듣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프레드릭 부크너는 [추억의 방]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이란 가끔씩 뛰어난 웅변술을 보일 때가 있다.
별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다 불현듯 전혀 뜻밖의 순간에 강력한 말의 펀치에 허를 찔릴 때가 있다. 그 말이 어찌나 직선적인지, 꼭 내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다"
일상의 순간 속에서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 음성은 길가나 광장, 차가 막히는 도로에서나 극장에서도 들릴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에 들려올 수도 있고 인파 속의 혼잡한 순간에 들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를 나오면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을 보는데,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은혜로 덮고 계시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달 표면에는 운석이 수도 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 표면에 운석이 떨어지는 일이 너무나 드둡니다.
그러니 깨닫지 못할 뿐이지 늘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할 때, 조용히 “주님!” 하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아버지!” 하고 불러 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역사하신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갈망,
주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