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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첫째날
조 성 심(시인)
오랫동안 준비해 온 제2회 우리詩진흥회의 여름자연학교가 시작되는 날.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감동 깊은 詩,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주제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질 만큼 매력적인 2박 3일이 될 것 같아 발걸음이 저절로 신났다.
양재역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반가운 분들을 뵈었다. 낯선 분들도 꽤 여러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이 앉아 계tu서 내심 놀랐다. 관광이 아닌데 어떻게 2박 3일을 버티려고 함께 하셨을까 하는 기우가 들었지만 시를 공부하고자 하는 뜻으로 모였기에 남다른 준비를 하셨으리라.
45인승 버스는 자리가 거의 다 차서 양재역을 출발했다. 2시간이면 도착한다는데 피서철의 절정이라서 길이 막혀서 3시간 넘어서 도착했다.
송문헌 시인님의 친구 분이 운영한다는 괴산에 있는 신혼예식장 식당에 들어섰다. 여기에서 따로 출발하여 오신 분들과 합류하였다. 예식장 입구에는 ‘우리詩여름자연학교’ 팀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서 참 반갑고 고마웠다.
정성껏 끓여 낸 올갱이 해장국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수련관으로 향했다. 괴산의 깨끗한 자연 속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괴산청소년수련관이 눈앞에 들어왔다.
수련관 강당으로 가서 접수하는 팀, 자리 정리하는 팀, 앞좌석 마련하는 팀 등 각자의 맡은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전국 각지에서 오신 분들과 악수하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느라 얼굴 가득 웃음이 번졌다.
4시에 자연학교 개교식이 있었다. 홍해리 우리詩진흥회 이사장의 인사 말씀에 이어 임각수 괴산군 군수의 말씀이 이어졌다. 군의 행정 총수인 임 군수는 어찌나 군을 챙기시는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감자, 사과, 곶감 등 품질 좋은 농산물이 생산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괴산 청결고추라고 하시면서 이 청결고추가 있어서 괴산의 이혼율이 가장 낮다(?)고 하는 말씀은 모두에게서 폭소를 자아냈다.
조병기 자연학교 교장의 말씀이 끝나자 곧 이어서 나병춘 시인의 진행으로 워크숍이 이어졌다. 이 고장 출신 김동호 시인께서 ‘나의 詩 나의 삶’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셨다. 고향에서 우리시회 워크숍을 하게 되니 흥분이 되신다며 얼굴 가득 웃음을 담으셨다. 1934년생이시니까 일제시대에 어린 시절을 지냈고 또 6․25 전쟁도 겪으면서 성장기와 학창시절은 어두운 시대를 보내셨다는 것, 그리고 대학에서 T. S. Eliot이 시인이 된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 요즘은 댁 근처의 수리산에 오르면서 수리산에 대한 연작시를 쓰신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수리산에서 솟아나오는 옹달샘을 소개하고 시적 감흥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옹달샘이요 우리 일상의 보이지 않는 인연까지도 모두 옹달샘이라고 하셨다. 요즘은 ‘웃으며 산에 오르는 것’에서 시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 아직도 청춘이라고 하실 만큼 목소리가 맑고 힘이 넘치셨다.
다음에는 장영희 시인의 사회로 복효근 시인의 ‘나의 詩 쓰기에 대한 변명’이라는 주제의 강의가 이어졌다. 복효근 시인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림을 계속할 수 없는 현실에서 시를 쓰게 되었다는 것. 한 폭의 그림이 추구하는 점과 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는 것. 시 속에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과 독서를 통한 시 쓰기와 시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이 시간에는 강의도 재미있었지만 강의 후에 질의 및 응답이 더 재미있어서 오고간 대화를 써 보고자 한다.
황정산 : 그림과 시가 추구하는 것은 서로 같다고 하셨는데 시에서 음악성은 어떻게 살리는지?
복효근 : 우리 말 자체가 3글자 혹은 4글자로 구성된 단어가 많기 때문에 저절로 음악성이 곁들여 있어서 우리말로 시를 쓰면 음악성을 살리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다.
고성만 : 우리시회 모임에서 앞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고맙기도 하지만 안 좋지 않은 것은 졸려도 졸 수가 없다는 것이다.(청중 웃음) 복효근 선배는 시를 쓰고 나는 그 시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때론 화가 날 때도 있다. 시집을 6권 내셨고 교과서에 시가 많이 나와 있는데 그 고료로 얼마쯤 받는지 알고 싶다. 교과서에 실린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이라는 시를 보면서 질투심에서 나온 헐뜯음이라도 해도 어쩔 수 없다. 자료집 48쪽의 시「쟁반탑」과 49쪽의 시「아줌마, 아내」를 보면 시의 마지막 네 줄은 없었으면 좋겠다. 시인의 설명이 너무 길다. 잔소리 같기도 하다. 자신의 설명보다 상상력이 많은 시를 읽거나 가르칠 때가 더 좋다. 이에 대한 시인의 생각은 어떠신지?
복효근 : 7차 교육과정 들어 교과서에 시가 실려 있다. 전의 교육과정에서는 좋은 시가 실렸는데 현 교육과정에서는 교과서 단원의 의도에 맞는 시를 싣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렸다고 꼭 좋은 시는 아니다.(시인님의 겸손해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음) 사실 교과서에 시가 실린다고 해서 고료를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술값 정도일 뿐이다. 앞으로는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는데 어느 출판사에서 시가 아닌 저의 수필이 실려서 불만이었던 적도 있었다. 제 시에서 발견되는 사족을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시를 쓰는 분의 예리한 지적에 승복한다.
청중 : 복효근 시인이 자랄 때는 독립운동하면서 자란 것 같다. 앞으로도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말고 어렸을 때 나누었음직한 천진난만한 언어(?)로 된 시어로 시를 많이 써 주었으면 한다.
복효근 : 형에게 첫 시집을 보여드렸더니 어렵다고 해서 초등학교만 나온 우리 형도 읽을 수 있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쓸 때 너무 지적유희에 빠지지 말고 솔직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시를 쓰기를 바란다.
오후 내내 이어지는 강의에 더러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강당을 꽉 매운 회원님들의 열기가 있어 강의실 분위기는 매우 진지했다. 강의가 끝나고 저녁 식사가 있었다. 괴강 옆에 있는 매운탕집. 매운탕은 말만 들어도 매운데 괴산의 매운 고추가 들어간 매운탕을 보글보글 끊이면서 먹자니 땀이 줄줄 났지만 넓은 창 너머로 시원하게 비치는 청정 자연이 눈을 즐겁게 해 주어서인지 더운 매운탕도 시원하기만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8시부터 이승하 시인이 ‘한밤중에 쓴 3통의 편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다. 미당 선생에게서 시 공부를 하였다는 말씀과 함께 시를 썼기에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극한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문우들의 삶과 시를 소개해 주면서 시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일으키고 지탱해 주는가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쓴 시를 시낭송가의 입을 빌어 낭송하게 하면서 밤은 점점 깊어 갔다. 무려 밤 열 시가 되어서야 강의가 끝이 났으니 한 여름밤을 무색케 할 정도의 향학 열기였다.
10시에 강의가 끝났으나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시낭송도 진행되어야 했다. 진행석에 서서 청중을 보니 마침 따끈따끈한 대학찰옥수수가 배달되었다. 모두들 옥수수 하나씩 들고 동심으로 돌아가 옥수수하모니카를 즐겁게 불고 있는 듯 했다. 대학물을 먹은 옥수수인지라 냄새로 가히 그 어떤 옥수수가 따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향미를 풍겼다.
구수한 옥수수 냄새 속에 시낭송이 이어졌다. 하덕희 님의 오프닝으로 송문헌 작시 김동환 작곡 ‘그리움’이 청아하게 퍼지면서 진행되었다. 시낭송으로는 김석규 시인과 주로 괴산 문협 회원들이 시낭송을 하였다. 괴산 문협 회원들은 거의 시를 암송하여 낭송하였고 또 모두들 멋진 차림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살린 정성이 깃든 시낭송을 해 주었기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시의 재미에 푹 잠길 수 있었다.
시낭송 중간에는 바리톤 김재홍 님이 ‘그집앞’, ‘사랑’, ‘여고시절’을 노래하여 재미를 더해 주었다.
11시가 되어서야 시낭송이 끝났다. 밤이 늦었지만 회원들은 달빛에 이끌려 밤이슬을 맞으며 한여름밤을 노래하는 팀도 있었고 모처럼 만난 룸메이트들과 신나는 수다로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다.
향학열로 진지함이 더 해진 둘째날
아침에 눈을 뜨자 넓은 창으로 하늘이 쑥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잠자는 룸메이트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일어나 창가로 갔더니 푸른 초록이 아침 이슬을 받아 더욱 싱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열심히 그리고 깔깔대며 분단장을 한 후에는 서로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느라 입이 아플 정도.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처럼 열심히 공들인 만큼 달라지는 모습에 다들 즐거워했다.
밥을 하지 않아도 줄만 서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집을 떠난 여자의 특권. 아침 식사로 나온 맑은 무국이 시원하고 깔끔했다. 커피를 먹고 싶다고 징징거렸더니 커피를 한 보따리 사다 놓아서 커피에 중독이 된 나는 싱글벙글.
옛길을 걷는 프로그램이 이어지기에 행여 햇빛에 끄스를세라 모자를 쓰고 토시 끼고 양산까지 준비하였지만 뜨거운 태양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는 벼와 논둑에 심어진 콩과 깻잎에서 알뜰한 농부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달개비, 봉숭아, 등 많은 풀꽃이 피어서 낯선 방문객들에게 정겨운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간이 휴게소가 있었다. 따끈따끈한 대학찰옥수수를 한 봉지씩 쥐어주는 인심에 모두들 싱글벙글. 일부는 주막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막걸리 한잔의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나무그늘도 없는데 옛길걷기는 무리라고 투덜거리는 회원들도 몇 분 있었는데 임동윤 사무총장은 조금만 더 가면 나무길이 있는데 그게 진짜라면서 우리를 추스르셨다. 언덕길을 올라가자 긴 출렁다리와 그네가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네도 타고 출렁다리도 건너는 회원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벌벌 떨기도 하면서 즐거운 체험을 하였다.
괴산댐이 나왔다.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댐으로 역사가 오래된 댐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물을 보니 물빛도 한결 짙어 보였다.
드디어 임동윤 사무총장이 말씀하신 나무길이 나왔다. 댐 옆으로 주욱 부드러운 통나무로 길을 만들어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이 길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다녔을까 생각하니 지역 발전을 위한 사람들의 노고가 한결 고마웠다.
나무길 끝에는 간이 휴게소가 있었다. 박은우 시인이 하모니카 즉석연주를 하고 우린 노래를 부르고. 그리고 기념촬영도 하고.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가 싸악 가시자 다시 하산해야 할 시간. 그런데 너무 시간을 지체하여 점심 먹을 시간이 넘었다고 본부에서 연락이 오고. 올 때는 허둥지둥. 그래도 넘치는 낭만은 숨길 수 없어 내려갈 때도 주막에서 인삼튀김에 막걸리 한잔씩 걸치니 모두들 힘이 넘쳤다.
(둘째날 뒷부분은 최윤경 시인이 쓰기로 하였음)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눈 셋째날
눈을 뜬 아침. 부지런한 윤준경 시인은 아침 산책을 나가셨고 늦잠꾸러기 우린 부tm럭대며 일어나서 역시 아침 단장. 이제 짐을 꾸려야 할 시간. 향토경제 발전을 위해 대학찰옥수수를 구매하자는 의견이 돌아서 너도나도 한 자루씩 주문하고 돈을 계산하느라 바빴다.
이 아침도 창 넓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
그리고 수료식에 앞선 소감 발표. 임 사무총장의 부탁으로 소감 발표 시간의 진행을 위해 앞자리에 섰다. 좌석을 보니 셋째날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어서 고맙고 신이 났다.
어젯밤 캠프파이어 때 깜짝 춤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를 만회하기 위한 변명을 하고 소감 발표를 진행했다. 자유 발언으로 했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회원들을 지명하기도 했다. 모두들 우리詩자연학교에서 많은 공부를 하였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었다는 말씀이었다.
김영식 포토아티스트께서 다음번엔 그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미리 파악하여 그런 곳을 빼지 말고 가기를 바란다는 말씀. 그리고 멀리 제주에서 온 김민수 님은 제주에 대한 홍보를 침이 마르도록 하셔서 인상적.
드디어 시상식 시간. 난 꿈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백일장에서 분명히 장원을 할 것이라고 룸메이트들한테 큰소리를 쳤는데 자신이 점점 자신이 없어졌지만 가슴은 두근두근,
시부문부터 호명되었다. 참방, 차하가 불려지고 차상에 72번 번호가 불려져도 나를 부르는 것인 줄 몰랐다. 꿈 이야기를 너무 떠벌려서 장원이 못 되었나보다고 스스로 위안. 차상이지만 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기분 좋은 것. 시부문 장원은 황연진 시인, 오행시부문 장원은 남유정 시인이 차지했다. 장원하신 분들의 작품 낭송이 있었는데 역시 장원작은 달랐다. 두둑한 상금과 축하박수가 이어지는 시상식은 훌륭했다.
마무리 시간에 임보 우리詩진흥회 명예이사장께서 총정리 겸 이틀간 있었던 강의를 되새겨 주셨다. 그리고 홍해리 이사장은 수고하신 분들을 호명하시면서 공로를 치하. 가장 많이 애쓰신 분은 이사장이신 것을 우린 모두 다 알지요. 그리고 조병기 교장의 말씀을 끝으로 수료식을 마쳤다.
이제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나서야 할 시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할 사람들과 이별을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하천을 끼고 점심식사 장소로 향했다. 아슬아슬한 시골길을 버스는 잘도 걸어갔다. 이건 버스의 옛길걷기인 셈. 잠깐이지만 손에 땀이 다 났다.
담백한 닭백숙에다 괴산막걸리는 어찌나 톡 쏘고 맛있던지 한 모금씩만 해도 속이 다 후련했다.
식사 자리에 괴산문인협회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주시고 보살펴 주신 따뜻한 마음을 어찌 다 이르리오.
점심 식사 후 잔디밭에서 또 즉석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다가 버스에 올랐다. 남은 일정은 소설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 문학비 답사. 제월 옆에 있는 홍명희 문학비를 보고 제월대에 올랐다. 아담한 정자였는데 현판의 원본을 유지하느라 그대로 두었다는데 훼손되어가고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다시 차를 타고 홍명희 생가로 갔다. 차 안에서 허영란 시인이 문화해설사가 되어 홍명희의 집안 내력과 그의 행적을 설명해 주었다. 홍명희의 부친 홍범석은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1910년 8월 29일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장남인 홍명희에게 잃어버린 나라를 꼭 되찾을 것을 당부하였다. 그 후 홍명희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9년 삼일만세 운동 때 바로 지금의 생가에서 태극기를 등사하고 독립선언서를 만들어서 만세운동에 나섰다. 그 후 1948년 남북연석회의의 참가 차 김 구 주석과 함께 월북한 뒤 영영 돌아오지 않고 북한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해금되기 전 그의 이름이 홍○희로 표기되었던 것이 생각났다.
한참 달려 생가에 도착했다. 1727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홍명희 생가는 1034평의 대지에 옛 멋을 그대로 살려 작년 6월에 복원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행랑채와 창고 등은 아직 빈터로 남아 있어 완전한 복원은 아니라고.
고옥으로 문화유산으로 보존될 만도 한데 사상으로 인해 박해를 받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이 집은 잘 지어졌지만 어쩐지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마루에 앉기도 하고 방을 걸어다녀 보기도 했다. 그 옛날에 지어졌는데 오밀조밀한 구조와 미닫이 창 그리고 벽장 등이 정겨웠다. 옆채에 갔더니 바닥에 우산이끼 군락지가 있었다. 이끼가 자랄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없다는 증거.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이 적막함을 달래주었다.
뜨거운 햇빛으로 줄줄 흐르는 땀을 해설사 허영란 님이 얼음과자를 사서 버스에 넣어준 덕분에 모두들 맛나게 먹으면서 충주팀과 작별하고 서울로 향했다.
버스길이 막히지 않아서 5시경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재역에서 모두들 다음에 꼭 만나기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시가 있어서 함께 했고 시로 인해 정이 들었고 시를 위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모두들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행사 둘째날
최 윤 경(시인)
첫날의 긴장이 조금 누그러진 여유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아침.
전날 늦은 시간까지 정담을 나누느라 아침으로 이어져 풀리지 않은 피로를
회복해 주기라도 하듯이 괴산의 명물인 ‘올갱이 해장국’으로 식사를 마쳤다.
이어서 시작 되는 임보 선생님의 강의는 뜻 깊은 감동. 그 자체였다.
詩 쓰기에 있어서 문장 부호사용법과 마침표를 쓰지 않는 통례가 되어 있는 시 쓰기.
그러나 "산문시에 있어서는 마침표를 찍어 주는 것이 옳다는 것과
"詩"니까 문장 부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는 말씀을 남겨 주셨다.
첫날 보이지 않던 몇 시인께서 한 분 두 분 동참하셨으며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숙소의 푸른 숲에서 이루어진 글쓰기 행사에는 마침 "KBS 세상의 아침" 촬영팀이 촬영하는
가운데 시 쓰기의 배경과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우리詩’ 회원들은 거침없이 "세상의 아침"이라는 5행시를 즉흥적으로 지어냈고
글쓰기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털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아름다웠던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내내 진한 감동으로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었다.
결코 꾸미거나 억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함이 그렇게 8월의 열기만큼이나 우리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오후의 도종환 선생님의 강의는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한 반추와 글쓰기의 배경을 들어
더욱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음은 물론 많은 독자들의 사랑으로 강의가 끝난 후에도 회원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기념 촬영과 사인을 받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캠프파이어였다.
통돼지 바비큐 파티를 위하여 준비하는 모든 손길이 분주하다.
무대 중앙에 모닥불을 지피고 동그랗게 원을 그려 손을 마주 잡은 우리는 함께 웃으며 노래하며 오랫동안 그렇게 행복함을 간직하자는 마음으로 ‘우리詩’의 발전을 기원했다.
전날 강의를 마친 이승하 교수님도 끝까지 함께 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으며
도종환 선생님의 자작시 낭송은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주기에 충분하였다.
나무 사이로 떠오른 뽀얀 달은 우리들 가슴에 미소로 남겨져 있었고 밤하늘의 별들도 맞장구치듯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조성심 선생님의 멋진 춤은 세월을 초월한 것이었다. 이날을 위한 준비와 연습으로 소녀같이 달뜬 모습. 그 누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많은 회원들의 시낭송과 윤준경 시인의 멋진 열창과 박은우 시인의 하모니카 연주,
그리고 모든 행사를 완벽하게 진행하신 남유정 시인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 많은 음식과 진행의 준비를 위하여 온 정성과 마음을 바친 모든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리는 마음. 다시금 머리 숙여지게 함을 감출 수가 없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자리 정리정돈을 위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깔끔한 마무리를 해 내는 "우리詩" 회원님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달과 별을 향한 뜨거운 마음 나누려 마당에 누워 오늘 이시간이 있게 하심을 감사 하며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또 다시 내일을 향한 길을 열어야 하기에 밤은 우리들에게 더 많은 영양을 보충해 줄 것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빛이 나는 "우리詩", 우리 모두의 힘이 하나 되어 앞으로 나아갈 때
그 빛은 더욱더 선명하고 밝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간이 있기까지 노심초사, 동분서주하셨을 홍해리 회장님 이하 집행부에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괴산이 고향이었기에 고향의 지킴이로 행사일정에 많은 도움을 주신 송문헌 시인께도 우리 모두 감사드립니다.
쉽지 않은 일을 쉽게, 마치는 시간까지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동행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회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제각기 맡은 자리에서 빛을 발해 주심에 ‘우리詩’는 영원 하리라는 믿음도 가져 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끝)
첫댓글 꼼꼼하게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생각이 나는대로 옮겨 적다 보니 미흡한점이 많은 행사 후기가 되었습니다.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아 더 열심히 보고 배우겠습니다. 노력하는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들 분명 행복함인 것만은 틀림 없는 것 같아요. 회장님....고맙습니다. 우리시 회원님 모두 만만세!~~입니다. 건강한 날들 되시기를 빕니다...
오늘이 末伏이니 복달임 잘 하시고 건강,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많이 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성심시인님 최윤경시인님의 행사 이모저모에 대한 글을 보고 있자니, 지금 괴강을 천천히 산책하며 나무 그늘에 땀을 들이며 조용한 시심에 잠겨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정이 넘치는 글 감사합니다.
조 선생님, 최 시인 님, 심안으로 보시고 펼쳐주신 풍경과 기록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어줍잖은 글인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쓰다보니 제가 보고 제가 했던 활동들이 많이 들어갔네요. 그리고 실명을 거론하여 혹여 폐가 될 수도 있을 것임에도 상황을 실감나게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올렸고 또 어떤 내용은 제대로 기록하지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해량하여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다음 번 웍샵이 또 기다려 집니다.
잘 기록하셨습니다. 기록물이란 실명은 물론 때와 장소 등 모든 사항이 그대로 나타나야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 시인님!
2박3일간의 행사 내용을 한 편의 영상을 보듯 상세하게 기록해 주신 조성심, 최윤경 시인 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