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입니다. 무척 새삼스럽네요. 특히 파란 문장부분들 참 좋네요...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문학은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그 부정적 힘의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에 대한 부끄러움을, 한 편의 침통한 시는 그것을 읽는 자에게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소위 '감동'이라는 말로 우리가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는 심리적 반응이다. 감동이나 혼의 울림은 한 인간이 대상을 자기의 온 몸으로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그것에서 얻는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으므로 그 원초적 느낌의 단계는 감각적 쾌락을 동반한다. 그 쾌락은 반성을 통해 인간의 총체적 파악에 이른다. 문학은 억압 없는 쾌락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서 그것은 그것을 읽는 자에게 반성을 강요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싸울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이런 수모와 아픔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것을 안 당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느끼게 한다. 인간은 이래야 행복하다. 그러니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문학은 문학만을 위한 문학도 아니며, 인간만을 위한 문학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무지와의 싸움을, 의미론적 차원에서 인간의 꿈이 갖고 있는 불가능성과의 싸움을 뜻한다. 문학은 그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무지를 추문으로 만든다. 아무런 반성 없이 9 시에 회사 문에 들어서서 잡담하고 점심 먹고 5 시에 퇴근하는 그런 일과가 계속되는 일상인의 무딘 의식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뒤를 보지 못하는 갇힌 의식에, 문학은 그것이 진실 된 삶이 아니라 거짓된 삶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그것을 추문으로 만든다. 아니 더 나아가서 문학은 그것의 존재가 글을 못 읽고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무지를 그러므로 우리는 폭넓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이 ‘무지를 추문으로 만든다는 것은, 문맹인이 있다는 것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부끄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무디게 갇혀 있는 일상인의 의식이 하나의 코메디’라는 것을 드러내게 한다. 문학은 동시에 불가능성에 대한 싸움이다. 삶 자체의 조건에 쫓기는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유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꿈꿀 수 있다. 인간만이 몽상 속에 잠겨들 수가 있다. 몽상은 억압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몽상은 인간이 실제로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억압된 삶인가 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꿈이 있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거리를 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반성할 수 있다. 꿈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 거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 갇혀 버려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기만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첫댓글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아아......앗^^
샘, 이거 너무 좋다고 제가 전에 그랬는데~~~ ㅋ 다시 봐도 좋아요.. 늘 잊지못하는 문장!
네가 좋다고 했어? 하고 생각해보니, 네가 좋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기억이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