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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어느 귀향(歸鄕) 이야기
作: 이홍규 (동화작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에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이 봄햇살에 수줍음을 타고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와 정말 기분좋은 날씨이다.
박첨지는 두 아들을 데리고 포도원에서 퇴비를 나무에 주고 있다. 퇴비는 나무에게 있어서 밥과 같아서 나무가 퇴비를 먹고 건강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박첨지는 아들들에게 최고로 좋은 포도를 생산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포도나무가 튼튼하여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한 영양분을 제때에 맞춰 공급해야 하고, 나무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 잡초를 다 뽑아 주어야 한다”
박첨지는 병사골에서 제일 농사를 많이 짓는 부자이다. 젊어서 고생하면서 열심히 일하여 땅을 장만했다. 드넓은 한들의 논 백마지기를 짓고 있다. 평생을 농삿일과 함께 살아온 박첨지는 부자이지만 늘 부지런히 일을 한다. 그래서 두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농삿일을 하고 두 딸들은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있다.
큰아들 ‘근면’이는 항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열심히 일하여 박첨지는 항상 믿음직 스러워했다. 둘째아들 ‘근심’이는 잔꾀가 많고 게으름을 많이 피우는 아들 이라서 늘 박첨지는
걱정을 한다.
근심이는 화창한 봄날에 과수원에서 일하는 것이 못마땅 하여 투덜 거렸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꽃구경 갔으면 정말 좋겠는데 이게 뭐야 일이 정말 싫다.“
옆에서 일을 하던 ‘근면’이 타일렀다. “너 또 불평만 늘어놓고 있구나. 겨울동안 쉬었으면 됐지 왜 그렇게 투덜 거리니? 아버지 들으시면 야단 맞겠다. 조용히 일이나 하자”
박첨지는 두 아들과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해가 저물어 뉘엿뉘엿 저무는 석양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창고를 열어 농기구를 살펴보니 많이 낡고 녹이슬어 사용할 수 없는 낫,곡괭이,호미,쇠스랑,쟁기날 등이 많이 있었다. 여러해 동안 아껴사용한 박첨지의 절약하는 마음을 잘 읽을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근심(勤心)’을 불렀다. “둘째야 오늘이 병사골 장날 이란다. 장터 김서방의 대장간에 가서 농기구를 사 오너라. 사야 할 물건은 여기 종이에 적었으니 소달구지를 끌고 얼른 다녀오너라”
“예 아버지 장에 다녀 오겠습니다” ‘근심이는 소달구지를 끌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민들래가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삭양마을 들길을 걸어서 장터로 향했다. 장터에 도착하니 물건을 사고팔며 흥정하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장터를 가득 메웠다.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 돼지고기를 파는 푸줏간 아저씨, 엿장수 할아버지, 분가루 파는 장사, 비단장사, 박물장사, 떡장사... 많은 장사들이 물건을 파는 모습이 병영성 장날의 모습이다.
대장간에 앞에 다다르니 김서방은 벌것케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두르리며 낫과 곡괭이를 만들고 있었다. “안녕 하세요 아저씨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
눈코 뜰새없이 일에 정신이 없던 김서방은 ‘근면’이의 인사에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 근심이 왔구나. 참 오랜만이다. 아버님은 잘 지내고 계시지. 이제 근심이는 늠늠한 청년이 다 되었구나 “
“아저씨 올해 농삿일에 쓸 농기구 사러왔어요. 필요한 것을 여기 종이에 적어 왔습니다.”
김서방은 ‘근심’이가 건네준 종이를 보고 농기구를 달구지에 싣어 주었다. 농기구 값을 치룬 ‘근심’이는 아저씨게 인사를 드리고 대장간을 나왔다.
먼길을 걸어오느라 시장하여 주막문을 들어서니 보글보글 된장찌개 끊는 소리와 부침게 부치는 소리와 냄새가 온 몸을 사로잡았다.
“아주머니 여기 국밥과 막걸리 한병 주세요”
이윽고 주막집 아주머니가 차려온 상에는 향긋한 봄나물을 넣은 나물전과 국밥이 풍성함을 더해 줬다. 허겁지겁 국밥을 먹으며 시장기를 달래고 막걸리를 마시니 그 맛이 일품이다. 작년 가을에 들국화를 따서 만든 술이라서 국화의 향기가 가득 하다. 술맛이 어찌나 좋은지 임진년에 왜놈들이 쳐들어 왔을 때 왜놈의 수장이 이 주막에 죽치고 앉아 술을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막걸리 한병을 게눈감추듯이 비운 ‘근심’은 주막집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이 술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요. 술맛이 향긋하고 부드러워 술술 잘 넘어 갑니다.”
아주머니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술은 이근처 박서방에 운영하는 병세주조장에서 가져 옵니다. 그집은 5대째 술을 만들어온 집안인데 이곳 병사골 뿐만 아니라, 탐진골, 장흥골,낭주골에서도 술을 사러 온다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여기 병사골 장터는 장사가 참 잘되는 곳이군. 우리가 한양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십일만에 다 팔렸어. 여기 병사골에서 나오는 쌀을 사서 개경가서 판매하면 이익이 많이
남을 것 같아“
“그러세 마량포구에 가서 건어물과 김,미역,다시마를 사서 쌀과 함께 배에싣고 가서 상단
객주에게 넘기면 될 것일세. 이렇게 장사를 하면 머지 않아 부자가 되겠군. 허 허 허“
멀리 한양에서부터 전국을 누비며 장사를 하는 보부상들이 병영성 장에서 믈건을 팔고
있었다. 그사람들은 장사 수완이 좋아서 조선의 모든 상권은 그들이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근심’이는 장사가 잘 된다는 말에 솔깃하여 보부상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두분 말씀중에 죄송합니다. 여쭤볼 말이 있어서요”
“그래요 어디 말해 보시오.”
“장사를 하면 이윤이 많이 남는가요?”
“그건 왜 물어 보시는지요?”
“저도 장사를 해보고 싶어서요. 장사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이보시오 젊은이 장사는 아무나 하는줄 아시오? 잘못 했다간 하루아침에 망해서 거지가 되는 것이 장사요. 보아하니 젊은이는 장사할 사람이 아니니 행여나 생각도 하지 마시오“
‘근심’이는 보부상들에게 장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물어봤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떼를 쓰며 장사에 대해서 가르쳐 달라는 ‘근심’의 성화에 지친 보부상이 말했다.
“거참 끈질긴 젊은 이구만, 그래 좋소. 내 말해 주겠네. 우리는 한양의 임상옥 이라는 거상이 운영하는 상단에서 물건을 사다가 팔고, 또 지방에서 좋은 물건을 구입하여 납품하는 보부상 일세, 북쪽지방은 개성상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나오는 인삼과 약재를 구입하여 이곳 남쪽에 판매를 해서 이윤을 남기고 있네.”
그리고 장삿일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설명을 계속했다.
“물건을 봇짐에 지고 한양에서 전국을 다니다 보면 위험이 아주 많네 어쩌다 산적을 만나서 물건을 다 빼앗기고 목숨도 잃는 경우도 많이 있고, 돌림병이 도는 마을에 잘못 들렸다가 병에 걸려 죽는 경우도 많다네. 자네는 장사를 쉽게 생각 하지만 우리는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일세”
장삿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보부상들은 ‘근심’이를 만류했다. 내일모레 장사를 마치고 떠난다는 말을 일러주고 보부상들을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막을 나와 달구지를 끌고 집으로 오는 동안에 ‘근심’의 머릿속에는 전국을 누비며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버는 생각이 가득했다. 황소가 깊은 숨을 몰아쉬며 집앞에서 멈춰서자 농기구를 내려 창고에 넣고 아버지께 다녀왔다고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힘을 잃고 넉빠진 모습으로 깊은 생각에 잠긴 ‘근심’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뭔가 말못할 고민이 있음을 짐작했다.
“애야 너 무슨일 있느냐? 오늘 장터에서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는가 보구나.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니?”
“사실은 저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농삿일이 싫습니다. 농삿일은 어렵고 힘들어서 더 이상 못 하겠습니다. 한양에 가서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장사에 필요한 돈을 주시면 제가 꼭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오겠습니다.“
둘째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어이가 없었다. 세상물정을 모르고 너무나 철이없는 아들의 모습에 말문이 막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아! 네가 생각하는 장삿일은 쉽게 큰돈을 버는 일이 아니란다. 오랜경험과 장사수완이 있어야 하고, 손해와 위험을 마다않고 전국을 누비며 물건을 팔아야 하는 고달픈 일이란다. 그러니 장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농삿일을 열심히 하길 바란다.“
‘근심’이는 막무가내(莫無可奈)로 아버지께 떼를쓰며 장사에 필요한 돈을 달라고 애걸복걸 했다.
“형과 저에게 돌아올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저에게 나눠 주십시오. 지금까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린 품삭도 더해서 주세요.“
“뭐야 이녀석이 점입가경(漸入佳境) 이구나!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이 아비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유산을 나눠달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는구나.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썩 물러 가거라.“
박첨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집 밖으로 나갔다. 철없는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고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집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둘째에게 가서 말을 건넸다.
“아까 들어오면서 아버지와 네가 주고받는 말을 들었단다. 어쩌려고 아버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그런 말을 해서 야단을 맞느냐. 둘째야! 난 네가 보통의 사람들처럼 열심히 농삿일 하면서 나이들어 장가가서 애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길 바란다.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며 고생하는 네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니 이 어미를 생각해서라도 네 생각을 접으면 안되겠니?”
어머니는 둘째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근심’이는 기어코 장사을 하겠다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이사실이 첫째 ‘근면’이의 귀에 들어갔다. ‘근면’이는 이참에 철없는 동생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님이 집에 안계실 때 동생을 데리고 마을뒤 수인산으로 갔다.
“너 이녀석 네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아버지께 유산을 나눠 달라고 해! 이런 망나니 같으니 너 오늘 형한테 맞아야 겠다“
‘근면’이는 동생을 두들겨 패며 어떻게 해서든지 마음을 돌려놓으려 했지만 ‘근심’이는 울면서 끝까지 형한테 대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간 ‘근심’이는 이불을 둘러쓰고 아무것도 먹지않고 눈물만 흘렸다. 자기의 생각을 몰라주는 가족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자정을 훨씬넘긴 시간에 ‘근심’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봇짐을 챙기고, 부모님이 잠드신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 장롱에서 돈자루를 꺼내 살금살금 문들닫고 나와 마당에서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못난 자식을 용서하시고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눈을뜬 박첨지는 일어나 방문을 열고 대문밖을 나서는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험한 세상으로 나가 모진 풍파와 산전수전을 겪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황급히 집을 나와 ‘근심’이는 병사골 드넓은 들판을 지나 까치내재를 넘어 탐진골을 거쳐 먼 길을 걸어 동틀 무렵에 마량포구에 도착했다. 포구에는 배에 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장부책을 꼼꼼히 기록하는 보부상의 모습이 보였다.
‘근심’이는 보부상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아니 자네가 여기에 어쩐일인가?”
“어르신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어르신을 따라가 장사을 배우고 싶습니다.”
“글세 안된다니까 자꾸 성가시게 하는구만. 이보시게 젊은이 집으로 돌아가게.”
보부상은 손을 저으며 거절을 했지만 ‘근심’이의 고집을 꺽지를 못했다. 짐을 가득싣고
돗단배는 마량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드넓은 서해를 향해서 떠나갔다. 맑은 하늘에 평화롭게
구름이 떠가고 갈매기들이 날개짓 하며 반가움의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함께온 보부상 ‘임객주(客主)’는 ‘정객주’에게 말문을 열었다.
“이보게 자네 어쩌자고 저아이를 배에 태웠는가? 한양가면 당장에 먹고자고 하면서 일할곳이 필요한데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가? ”
정객주는 임객주를 안심시키며 ‘근심’이를 배에 태운 이유를 풀어놨다.
“저 아이는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모르지만 잘만 가르치고 다듬으면 큰 장사꾼이 될 가능성이 있어보여 허드렛일부터 시키면서 장삿일을 가르치려고 하네”
두사람은 젊은시절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어들었다. 모진 가난과 배고품을 잊고자 온갖 수모와 서러움을 당하면서 장삿일을 배우던 지난날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두사람의 기억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으며 삼십년을 함께 지내온 두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이다. 그래서 늘 함께 전국을 누비며 장사를 하고 있다.
칠일밤낮을 순풍(順風)을 따라 달려가다 한양의 마포포구에 도착했다. 포구에는 마중나온 사람들이 반겨 맞이했다. 임객주가 싣고온 물건들을 배에서 즐비하게 늘어선 큰 수레에 옮겨싣는 일꾼들의 모습이 분주하기만했다. 물건을 다 옮겨싣자 한양상단의 객주가 어음을 건네주고 떠났다.
‘임객주’는 '근심'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그를 반겨 맞으며 그동안 먼길을 다녀온 고생을 위로했다. 함께온 근면이를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앞으로 같이 일할사람 이니 잘 보살피라”고 신신당부 했다.
생전처음 멀고먼 바다여행을 해서 그런지 ‘근심’이는 잠자리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날이밝고 해가 뜨자 또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임객주는 근심이에게 가게의 청소와 물건정리를 맡기고 남대문 장터로 떠났다. 가게를 청소하며,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종류별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근심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임객주의 부인은 흐뭇해 했다. 처음온 젊은이가 차분하게 정리정돈을 잘 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이고 믿음직 스러웠다.
‘근심’이가 일하는 가게에 임객주의 딸 ‘달분’이가 새참을 내왔다. 열다섯 수줍움 많은 달분이는 새참을 내려놓고 ‘근심’이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채 봄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가게문을 나갔다. 삼단 같은 머릿결 ,앵두 같은 입술의 어린낭자를 처음본 ‘근심’의 얼굴은 뭔가에 홀린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절제하며 흔들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가게에 물건을 사러오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한 마포장터는 항상 북적거렸다. 여러날이 흐르고 잔심부름과 허드렛일을 하면서 차츰 장삿일에 익숙해 졌다.
임객주는 가끔씩 ‘근면’이를 불러 가게장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물건을 잘 팔라고 당부를 하곤 했다. 임객주는 두 아들을 데리고 한양의 여러장터와 상가를 돌며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근심’이가 돈자루를 가지고 온 것을 진작부터 눈치챈 임객주는 ‘근심’이를 불렀다.
“여기 약속어음이 있다. 네가 가지고있는 돈을 나에게 다오. 네가 돈자루를 가지고 있으면 도둑맞을 염려가 있다. 이 약속어음은 조선에서 가장큰 상단을 거느리시는 임상옥 어르신이 직접써준 것이다. 장사를 하는 곳에서 이 어음으로 물건을 살 수가 있단다.“
‘근심’이가 한양에 올라온지 육개월이 흘렀다. 물설고 낮설은 한양에서 오직 의지할곳은 임객주 밖에 없었다. 임객주는 그동안 ‘근심’이를 지켜 보면서 장삿일을 제대로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터와 상점들을 오가면서 좋은물건 고르는법,가격을 흥정하는법,물건을 파는법들을 가르쳤다. 장삿일은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다. 삼십년넘게 장사를 해본 임객주의 능수능날함을 배우기엔 너무나 역부족 이었다.
임객주는 두아들과 근심이에게 상인의 도리에 대해서 늘 설명했다.
“상인은 장사를 통해서 이윤을 남겨야 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상거래에 있어서 적정한 가격과 이윤을 남겨야 하고, 다른 상인의 장사구역을 침범해선 안된다. 또한 물건을 혼자 독차지하고 가격을 비싸게 팔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이것은 우리 상인들이 목숨처럼 지키는 율법(律法)이니라. “
조선시대의 상도(常道)는 매우 엄하게 지켰다. 상도를 어기고 매점매석(買占賣惜)을 하거나 상거래질서를 위반한 상인은 매우 엄한처벌을 받고 장사를 못하게 했다.
‘근심’이가 한양에서 장삿일을 배우며 일한지도 삼년이 흘러갔다. 세월은 어찌 이리도 무심히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박첨지는 ‘근심’이 생각에 늘 마음 편할날이 없었다. 철없는 아들이 어디서 무얼하고 지내는지 감감 무소식이니 항상 걱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겉으론 내색을 안하고 해질무렵이면 동구밖을 내다보고 행여나 둘째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큰아들 ‘근면’이는 장가를 들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고 성실하게 농삿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서 박첨지는 늘 믿음직 스러웠다.
박첨지의 부인은 둘째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며 안타까워 했다.
“부인 이제 둘째는 잊어 버리시오. 아비의 뜻을 저버리고 돈을 훔쳐 달아난 아들이 뭐가 불쌍하다고 그러시오.”
“영감은 둘째가 걱정도 안되시는가 봐요? 그 철없는 아이가 객지에서 고생을 하고 있을것인데 눈앞에서 아른 거려요”
고향의 부모님은 둘째아들 근심이 때문에 항상 마음편할날이 없었다.
근심이는 한양에서 장삿일을 잘 배워 마포장터에서 유능한 장삿꾼이 되었다. 임객주는 이제 근심이를 독립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근심이를 불렀다.
“네가 나를 따라 한양에 올라온지 벌써 오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그동안 너도 장사를 잘 배웠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너도 스스로 독립할 시기가 된 것 같구나. 네가 살길을 찾아 장사를 해봐라. 여기 장사밑천이다. 네가 맡긴 이백냥에다 이자를 합한 금액이다. 예전에 너에게준 어음을 이리다오“
“어르신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더 배워야 할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가라는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임객주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원래 장사는 오년 배우면 더 이상 배울것이 없다. 더 깊은 장사의 방법과 수완은 네가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그러나 내 말대로 독립해 나가거라.”
“그동안 저를 먹여주시고 보살펴주신 어르신의 은공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르신 부디 만수무강 하세요.”
근심이는 큰절을 올리고 임객주의 집을 나섰다. 임객주는 아들처럼 보살펴온 ‘근심’을 떠나 보내며 마음속으로 그가 잘 되기를 빌었다.
‘근심’은 그동안의 장사경험을 살려 남대문 장터에 조그만 가게를 열었다. 좋은물건을 구입하는 거래처를 확보하고 손님들도 제법 늘어나 장사는 날로 번창했다. 장사가 잘 되어 가게를 늘리고 일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장사가 잘되고 돈을 제법 많이 벌게되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근심’은 이윤이 가장 많이 남는다는 인삼장사를 하기로 했다. 청나라 에서는 조선의 인삼을 최고의 상품으로 알려져 아주 비싼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충청도 금산에 가서 인삼을 재배하는 농민으로부터 인삼을 몽땅 사서 다른 사람들은 인삼을 살 수가 없었다. 인삼을 가득싣고 청나라로 가서 인삼을 판매 했는데 비싼가격에 잘 팔아 돈을 많이 벌었다.
‘근심’은 계속해서 유기그릇,도자기,건어물,비단 등 수많은 물건을 몽땅 사서 창고에 쌓아두고 가격이 오르면 비싸게 팔아서 이윤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한양의 장터에선 물건값이 비싸다고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상인들은 팔물건을 확보하려고 해도 물건이 없어 팔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이 조선의 제일큰 상인 ‘임상옥’행수의 귀에 들어갔다. ‘임상옥’거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조선의 모든 상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근심’이에게 물건을 판매하거나 구입하지 못하게 하라” 조선의 모든 장사권을 거머쥔 ‘임상옥’거상의 명령은 곧 법이었다. 장사의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상인들에겐 가장 혹독한 형벌 이었다.
물건은 창고에 가득 채워났는데 장사가 안되어 ‘근심’이는 하는수 없이 손해를 보면서 물건을 아주 싸게 팔았다. 물건은 헐값에 팔았는데 사람들은 더 이상 ‘근심’이와 거래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주 많은 손해를 보고 빚까지 늘어나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 괴로움을 잊고자 날마다 술을 마시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어느 누구도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
‘근심’이의 발걸움은 자기도 모르게 ‘임객주’의 대문앞에 서 있었다. 대문밖에서 울면서 ‘임객주’를 불렀으나 대문은 굳게 닫힌채 열리지 않았다. 잠시후 ‘임객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에게 당부한 말을 잊었으냐? 너는 어찌하여 허망한 욕심을 부려 장사꾼이 해서는 안될일을 저질렀느냐? 네가 장사를 잘해서 이윤을 많이 남겼으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는 좋은일도 많이 하고, 다른 상인들과도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데 너는 너의 욕심만 채웠다. 이제 너와나의 인연은 여기서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거라“
‘금심’이는 복받치는 눈물을 흘리며 쏟아지는 장대비속을 걸어갔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몇날 몇일이고 걸어가다 날이 어두워지면 남의집 대문앞 처마밑에서 차가운 밤이슬을 피하고 밥을 얻어먹었다. 정처없이 거지가되어 떠도는 ‘근심’을 반겨주는 곳은 그 어느곳에도 없었다. 남쪽을 향해서 산을 넘고 물을건너고 들을 지나 몸은 지칠대로 지쳤다.
돼지를 기르는 어느 농장에 이르렀는데 너무나 배가고파 돼지가 먹는 음식찌거기를 허겁지겁 먹고 겨우 허기를 면했다. 그때 주인이 나타나 버럭 화를냈다.
“어떤놈이 남의 돼지농장에 와서 돼지사료를 훔쳐먹느냐? ”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열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돼지의 사료를 훔쳐먹었습니다.”
“그렇다고 돼지의 사료까지 훔쳐먹으면 안돼지. 밥을 먹으려면 여기서 일을 해라.”
오직 밥을먹기위해 ‘근심’이는 돼지농장에서 일을 했다. 일은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아침일찍부터 돼지들에게 사료를 주고, 돼지우리 청소와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문득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큰 욕심을 안부리고 고향에서 열심히 일했으면 이렇게 거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 가서 용서를 빌자“
근심은 고향 병사골을 향해서 또 걷기시작했다. 길은 수천리길 가도가도 멀게만 느껴졌다.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무서움을 이기고 풀숲에서 잠을자기도 했으며, 무서운 산짐승을 만나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구한적이 여러번 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긴수염의 모습으로 마을앞을 지날때면 동네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놀리기도했다.
참으로 멀고먼 길을걸어 어느덧 고향마을 병사골에 도착했다. 박첨지는 오늘도 행여나 아들이 돌아올까하는 마음에서 마루에 서서 동구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 어둠속에서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히 ‘근심’이의 모습이었다. 박첨지는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너 혹시 근심이 아니냐? 근심이 맞지? 어디서 뭘하다가 이 몰골로 돌아왔느냐?”
박첨지는 눈물을 흘리며 ‘근심’이를 껴 앉았다.
“아버지 이 못된 불효자를 용서 하십시오. 저는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저를 아들로 여기지 마시고 머슴으로 여기고 저를 받아주십시오. 엉.엉........엉“
“이녀석아 무슨 소리냐? 너를 일꾼으로 여기다니? 너는 분명히 네 아들이다”
박첨지는 ‘근심’이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가 온 가족을 불렀다.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형수가 조카들까지 나와서 ‘근심’이를 맞이했다. 박첨지는 잃었던 아들을 되찾은 기쁨을 온동네 사람들과 함께 너누고자 잔치를 별였다. 이때 들에서 일하고 돌아온 큰아들이 이광경을 보고 아내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길래 이렇게 시끌벅적 하는거요?”
“서방님 집나갔던 도련님이 돌아오셔서 아버님께서 잔치를 베풀고 계십니다”
“뭐라고? 말도 안돼”
큰아들 ‘근면’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버지께로 갔다.
“아버지 해도해도 너무 하십니다. 아버지의 돈을 훔쳐 집을 나가서 패가망신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동생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다니요 이것은 말도 안됩니다. 아버지 곁에서 열심히 일한 저에게 언제 친구들을 불러서 음식이라도 먹게 해주셨나요? 저에게는 야박하게 하시던 아버지가 저 망난이 녀석을 집안에 들어오게 하시다니요? “
박첨지는 큰 아들을 타이르며 말했다.
“큰애야 지금 나의재산은 내가 죽으면 다 너의것이다. 너는 항상 내곁에 있으면서 너의모습을 볼수가 있는데, 네 동생은 집나간지 십년만에 돌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이 아버지의 기쁜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한다. 그러니 노여움을 풀고 여기와서 앉거라”
‘근심’이는 형에게도 잘못을 빌었다. 아버지의 용서와 동생의 뉘우침을 보고 ‘근면’은 동생을
용서하고 화해를 했다.
참으로 뜻밖의 환대였다. ‘근심’이는 그동안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눈물흘리며 뉘우치고 열심히 아버지의 농삿일을 도았다. 한양에서의 장사경험을 바탕으로 병사골과 탐진골,청자골에서 나오는 좋은 물건을 상인들에게 납품하는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
큰 욕심 안부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근심’이가 시작한 장사일 때문에 병사골은 전국에서 장사꾼들이 물건을 사려고 몰려와 병사골은 조선시대 호남지역의 군사,행정,상거래중심지가 되었다. 그 오랜 전통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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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