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2차 대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달(6월) 4일 첫 반격에 나설 때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측은 2차 대공세를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측의 주장이고, 서방 외신의 객관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 정상들과의 개별및 공동 회담으로 바쁜 푸틴 대통령이 27일 일부러 짬을 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알릴 정도로, 2차 공세는 러시아에게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실제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쉬 알려지기 않은 채 양측의 주장만 난무하는 게 전쟁의 속성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첫 반격 당시에도, 푸틴 대통령은 닷새쯤 지난 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을 개시했으나, 어느 전선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7일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로제(자포리자) 방향에서 공격을 강화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우리 군도 손실을 피해갈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군은 200명 이상을 잃어 러시아군의 손실보다 10배나 많다"고 주장했다. 또 "적(우크라이나군)이 전날(26일) 흑해함대 제 810해병여단과 남부군관구 제 58군 제 42사단 제 71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지역으로 장갑차량 약 50여대를 앞세워 공격을 가해 왔으나, 탱크 26대와 장갑차 13대 등 모두 39대를 잃었다"고 설명했다.
스트라나.ua는 27일 밤 "우크라이나군에 의한 새로운 대규모 공격이 시작된 지 이틀째, '라보티노'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진행 상황이 없다"며 "우크라이나군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러시아는 '라보티노' 북동쪽을 향한 우크라이군의 모든 공격이 막대한 장비 손실을 입었으며, 격퇴됐다고 주장한다"고 정리했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SW)도 '오레호보'(орехово) 근처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새로운 공격 속도가 느려졌다고 인정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ISW는 지난 하루 동안 오레호보 근처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장갑 차량 공격을 새로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진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자포로제주 오레호프, 라보티노 공격 루드. 맨위가 오레호보, 아래 왼쪽이 라보티노, 오른쪽이 베르보보예다. 두 도시 사이에 '라보티노~베르보보예' 전선이 형성돼 있다/얀덱스 지도 캡처
'오레호보'와 '라보티노' 주변 상황이란 (언론이 분석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루트 3~4곳 중 가장 서쪽에 있는 자포로제주(州) '베르보보예(Вербовое)-라보티노(Работино)' 전선을 말한다. 1차 공세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은 크게 전진하지 못한 곳이다. '라보티노'를 거쳐 남진하면 자포로제주의 교통 요충지 '토크마크'로, 나아가 아조프해 핵심 항구도시인 '멜리토폴', '베르댠스크'로 진격할 수 있다. 성공할 경우,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 주둔하는 러시아군을 둘로 갈라놓을 수 있는 최적 진격 코스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푸틴 대통령의 격퇴 주장에 맞서 러시아군이 오히려 전투에서 10대 1의 손실을 냈다고 반박했다. 전사(戰史)에 따르면 공격과 방어의 손실은 3대1 정도다.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이날 전과를 공개한 곳은, 동쪽에 있는 도네츠크주(州) '벨리카야 노보셀카'(Великая Новосёлка) 반격 지점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안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27일 '스타로마요르스코예 마을'에 진입해 적 병력을 완전 소탕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원래 우크라이나군이 1차 공세에서 러시아 방어선 깊숙이 9~10km 전진하여 여러 마을을 해방한 곳이 이 방향이다. 계속 남진하면 개전 초기의 최대 격전지인 마리우폴로 이어진다.
벨리카야 노보숄카 반격 루트 지도. 맨위가 벨리카야 노보셀카이고, 맨 아래가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했다는 스타로마요르스코예다./얀덱스 지도 캡처
미국 전쟁연구소의 전황분석.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한 스타로마요르스코예 마을(원 표시)의 남쪽에 러시아군 방어진지가 빼곡히 구축돼 있다/출처:스트라나.ua
제임스 히피(James Hippie) 영국 국방차관은 이날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크라이나군은 우리(영국)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며 "지난 겨울에 우리가 미국 등과 함께 구상한 작전 계획을 이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은 적진을 돌파할 충분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9월까지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의 인터뷰는 우크라이나군의 2차 공세가 막 시작된 직후에 나와 현재 전황과는 관련가 없어 보인다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현재 러시아군의 지뢰밭 제거에 나서면서, 후방에 있는 러시아 포병 진지와 미사일 발사체 등에 대한 타격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군 주요 포대의 사거리(25~30㎞)보다 긴 미국의 다연장로켓발사체인 '하이마스'(HIMARS, 사거리 80㎞)와 엑스칼리버 자주포(사거리 45㎞) 등을 보유한 우크라이나군은 후방에 배치된 러시아군 주요 목표물에 대한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러시아 군사력을 하나씩 '고갈시키는 작전'(고사 작전)이라고 부른다. 동시에 우크라이나군은 지뢰 제거용 장갑차량을 동원, 진격 루트를 닦고 있다.
문제는 공격하는 우크라이나측의 군사 자원(병력과 탄약 등)도 급격히 소진된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 가동 예비 자원을 더 많이 확보해 두고 있는가에 승패가 가릴 것이라는 게 스트라나.ua의 지적이다. 다만, 최전선에 배치된 러시아군 부대는 오랫동안 교체되지 않아 지쳐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야간 사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또 하나 주목할 것은 BBC 방송에 나온 핀란드 군사 전문가 에밀 카스테헬미(Emil Castehelmi)의 전황 분석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카스테헬미는 28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각기 강점이 있는 곳에 돌파구를 마련해 상대의 전체 전력을 흩뜨리는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자포로제주와 도네츠크주에서, 러시아군은 루간스크주와 하르코프주에서 적진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이 지역의 '오스콜강'과 '오스콜 저수지'를 전방에 둔 방어진지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여러 날째 진격을 계속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카스테헬미는 "양측은 서로 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상대의 예비 전력을 그 곳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그 전략은 자칫 자신들의 방어망이 상대에 의해 쉽게 무너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격을 한쪽에서 너무 치중하다 보면, 다른 곳이 너무 쉽게 뚫릴 수도 있다는 경고다.
스트라나.ua는 28일은 "우크라이나 반격 작전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지난해 가을과 달리, 각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며 "공격과 방어 모두 손실이 많은 이같은 소모전은 손실을 즉각 보충할 수 있는 예비 자원(병력과 군수물자)의 유무에 승패가 달려 있다"고 결론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