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김포문학상 대상]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
최재영
물에 젖기 위해
백년을 걸어가는 나무가 있지요
퉁퉁 부르튼 맨발 사이로
세상의 저녁은 소리없이 스며들고
다가오는 천년을 가만 응시하느라
나는 바싹 가물어 있었지요
간절함은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
한 획씩 혈관을 파고 들어갈 때마다
산벚의 흰 그늘까지 움찔거렸겠지요
한걸음 걸을 때마다
제 근원의 몸부림으로 뜨거웠을 시간들
그때의 다급한 호흡은
어떤 이의 애달픈 기록이었을까요
산벚이 거느린 골짜기들이
일제히 먹빛의 힘으로 일어서는 저녁
경판에 서려있는 푸른 맥박소리
온 산 가득 울려 퍼지는데
먹물보다 진한 핏빛눈물 하얗게 쏟아지네요
오래 전 생의 바깥에 등불을 밝힌 이들은
지금도 구국의 화엄을 새기고 있을까요
봄이면 경판 속의 활자들 환하게 피고지고
짜디짠 소금기 허옇게 일어서는지
골짜기마다 산벚나무는 절뚝이며 피어나요
팔만의 꽃잎들이 봄의 한복판을 걷고 있어요
*산벚나무: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시 조성된 팔만대장경의 경판으로 쓰였으며 벌채한 나무를 판자로 자른 후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후 옻칠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원문출처 김포신문
제19회 김포문학상 대상 -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 - 김포신문 (i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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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詩한 요일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 / 최재영 [제19회 김포문학상 대상]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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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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