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그늘 아래, 밀양향교를 걷다
밀양향교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된 기와도 풍화루의 위엄도 아니었다. 담장 너머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 배롱나무꽃이었다. 한여름 햇살을 받아 붉게 피어난 꽃들이 검은 기와지붕 위에 내려앉은 듯했다. 수백 년을 견딘 건축물과 한철의 꽃이 한 풍경 안에서 만나는 모습이 묘하게 마음을 붙잡았다. 오래된 것은 침묵하고 꽃은 말없이 피어 있는데, 그 사이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풍화루 앞에 섰다. 높직한 누각은 이름처럼 바람이 드나들기에 좋은 모습이다. 처마 끝은 날렵하게 하늘을 향하고 굵은 나무기둥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청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했지만 빛바랜 색감은 오히려 깊이를 더한다. 새것의 반듯함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누군가 기대었을 기둥과 수없이 오르내렸을 문턱을 바라보니 향교가 갑자기 먼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체온이 남은 공간처럼 다가온다.
풍화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바깥의 도시 소음이 한 발씩 멀어진다. 마당 건너편으로 명륜당이 단정하게 앉아 있다. 밀양향교의 명륜당은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던 강학 공간이다. 현재의 건물은 1618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정면 5칸에 측면 2칸 규모다. 가운데 넓은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모습에서 옛 교육 공간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돌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문득 수백 년 전 이 계단을 오르던 젊은 유생들을 떠올려 본다. 새벽부터 책을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한 이도 있었을 것이고, 스승의 질문에 답하지 못해 밤새 글을 읽은 이도 있었으리라. 때로는 공부가 싫어 마당 끝을 서성이며 먼 산을 바라본 젊은이도 있지 않았을까. 시대는 달라도 배우는 사람의 마음까지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명륜당 현판을 올려다본다. ‘명륜(明倫)’. 사람 사이의 도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두 글자가 오래 마음에 머문다. 이곳에서 가르친 것은 글자와 경전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벗과 벗 사이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배웠다. 지식을 많이 쌓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삶에 옮길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던 옛 교육의 정신이 그 이름 속에 남아 있다.
요즘 우리는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 하나로 세상의 지식을 순식간에 찾아낸다.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데 몇 초면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도리를 배우는 데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깊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명륜당 마루를 바라보며 문득 배움의 방향을 생각한다. 교육이 사람을 앞서가게 하는 일이라면, 배움은 때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일이 아닐까.
마당을 돌아 풍화루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붉은 배롱나무꽃이 처마 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백일 가까이 꽃을 볼 수 있어 백일홍이라 불리지만 한 송이가 백 일을 버티는 것은 아니다. 꽃이 지면 다른 꽃이 피어나고, 다시 지고 피기를 거듭하며 긴 여름을 완성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향교와 배롱나무가 더욱 닮아 보인다.
전통도 한 사람이 지켜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세대가 물러나면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스승에게 배운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가르치고, 먼저 살아 본 사람이 뒤에 오는 이에게 삶의 지혜를 건넨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 배롱나무가 꽃을 바꾸어 가며 백 일을 붉게 밝히듯 사람도 서로의 자리를 이어 주며 긴 시간을 만들어 간다.
돌담 너머로 현대식 아파트가 고개를 내민다. 기와지붕과 고층 건물이 한눈에 잡힌다.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처럼 보였지만 오래 바라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오히려 이것이 오늘의 밀양향교가 살아 있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은 과거 속에 홀로 남아 있는 섬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재 한가운데 있어야 오래 숨을 쉰다.
배롱나무 아래 잠시 서서 풍화루를 바라본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바람이 꽃가지를 흔든다. 꽃 몇 송이가 가볍게 흔들릴 뿐 향교는 깊은 침묵 속에 있다. 그러나 그 고요가 비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발자국, 글 읽는 소리와 스승의 가르침이 보이지 않는 층을 이루어 마당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화려한 풍경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장소가 있다. 무엇을 보여 주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밀양향교가 그랬다. 처음에는 배롱나무꽃이 아름다워 걸음을 멈추었지만, 나설 때는 ‘명륜’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품게 된다.
풍화루를 지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다. 자동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저마다 갈 길을 재촉한다. 몇 걸음 뒤 돌아보니 붉은 배롱나무가 기와지붕 위로 다시 고개를 내민다. 수백 번의 여름이 지나가는 동안 저 자리에는 꽃이 피고 졌으며 사람들은 배우고 떠났을 것이다.
나 역시 잠시 머물다 가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여행은 풍경 하나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 하나를 데리고 돌아오게 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배우며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배운 것은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 것인가.
밀양향교의 여름은 그 답을 서둘러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오래된 처마 아래 배롱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또 피운다. 먼저 핀 꽃이 자리를 내어 주면 뒤의 꽃이 이어 피어난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알 것 같다. 배움도 삶도 오래 남는다는 것은 한자리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다음 사람에게 조용히 건너가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