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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귀를 막은 프랑스 친구
상점과 버스안도 쿵쾅쿵쾅
도시 어디를 가나 소음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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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입원실이 아니라면 무조건 텔레비전의 소음을 견뎌야 된다. 이렇게 선택의 권리 없이, 소음 폭력의 횡포 앞에서 포로처럼 무기력하다니. 시끄러운 음악이 충동적인 구매와 연관이 깊은지 상점마다 음악이 고막을 찢는다. 마구 악을 쓰면서 대학살의 진압군처럼 무자비하게 정신을 욕보이고 처형한다. 어디를 가도 벗어나기 힘들다. 집은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프랑스 친구가 우리 아파트에 놀러왔을 때다. 대화 도중, 갑자기 우리 집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볼륨이 최대한으로 높여진 데다 상태가 좋지 않아 찌직거리는 소리가 가득 찬 가운데 퉁명스러운 경비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는 일단 물리적인 소리의 크기에 충격을 받았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막았다. 나는 무안해서 어딘가에 볼륨을 조절하는 장치가 있나 스피커 근방을 보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가 놀라 물었다.
“무슨 비상사태라도 일어났니? 굉장히 위협적인데?”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 방송을 들어 보면 이랬다.
“에에,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부녀회에서 마련헌 장터에서 뭐이냐, 오늘은 깨깟하고 맛있게 준비헌 순대와 돼지머리 삶은 거, 족발 등을 경비실 앞 광장에서 시중보다 저렴하게 판매하오니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모쪼록 많이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겄습….”
내가 할 수 없이 설명을 하자 친구가, “고발하지 그러니?” 그랬다. 무엇을? 시끄러운 무차별 방송을? 부녀회의 영리행위를?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이런 식의 개인 생활을 침범하는 걸 가만히 참다니….”
그러고 보니 내가 한때 살았던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텔레비전 뉴스 앵커들도 그래. 표정들도 굳어 있고 도전적이야. 들을 때마다 거북하고 신경이 꼿꼿이 서는 느낌이 들어. 특히 여자 앵커들의 그 부자연스러운 고음의 억양은 개성이 없고 천편일률적이야. 그리고 왜 화난 커플들처럼 꼭 짝을 맞춰 나오는지 모르겠어.”
그래, 프랑스의 앵커들. 부드럽고 미소 띤 얼굴로 친근하고 편안하게 뉴스를 전하지. 가끔 윙크도 하면서. 거기에 비하면 우리말을 모르는 그가 듣기에는 한국인인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 머물다 왔다. 아침마다 숲 속의 새소리에 눈을 떴다. 네 박자로 우는 검은등뻐꾸기의 노래 소리는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웠다. 도시로 돌아온 나는 도망치고 싶다. 더위가 아니라 악음과 소음의 이 도시로부터. 여름휴가가 다가온다. 자 떠나자. 그리고 자연과 미물의 소리로 귀를 씻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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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씨, 정신 좀 차리시죠!
제목이 '귀를 막은 프랑스 친구' 군요. 프랑스 친구라....제목만 듣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또야? 또 그 넌덜머리 나는 프랑스 타령인가?'
소제목을 보아하니 우리네의 조악한 소음 폭력 현실을 프랑스 친구의 파란 눈을 빌려 마음껏 조롱하려는 글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보겠군요.
저는 미천한 처진지라 프랑스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권지예씨는 프랑스에서 살다가 오셨다고 직접 밝히고 계시네요. 사진으로 뵈었지만 여느 중년 아줌마와는 확실히 달라보이긴 합니다. 프랑스 아우라를 흠뻑 적신 소설가의 이상체라 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비꼬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런 차림으로도 늘 뽕짝 취미의 기사가 모는 버스를 타고 택시를 이용하시나요? 음악도 아닌 장애인의 립싱크 -이게 뭔지 저는 과문한 탓인지 알 수가 없군요. 설마 구걸을 요하는 지체장애인분들이 틀어놓은 음악을 말씀하시는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렴 프랑스에서까지 살다 오신 소설가님이 그런 생각을 하시려구요- 가 쉴 새 없는 지하철도 이용하시고요? 어느 정도의 대중 식당과 영세 카페, 중소 백화점을 이용하시는지는 몰라도 대화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악 소리가 크던가요? 드라마에서 보길, 부유한 귀족층들은 교양있고 잔잔한 클래식 소리만 밟고 다니는 줄 알았거든요. 아, 직접 겪으신 건 아니시고 민생을 위해 대중의 입장에 한 번 서본 것 뿐이라고요? 네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다만 글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였겠지요.
자, 사회가 점차 파편화 되고 개인화 되는 걸 거스를 수도, 비판할 수도 없겠지요. 추세이고 대세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적응하는 우리들도 바뀌어야 하겠지요. 예전같은 먹자판 시골 장터와 벼룩시장이 들어서는 세상이 아니라면 조금씩 조용해질 필요도 있겠네요. 권지예씨 말처럼 누구나 1인 입원실을 사용할 수도 없는 거니까 말이죠.
그런데 권지예씨가 사례로 들며 비판하신 내용을 보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착각하고 계신건 아닌지 의문입니다. 혼자 책을 보려 해도, 잠시 혼자만의 상념에 잠기려 해도 음악이 위협하셨다고 했죠? 권지예씨는 자신을 사랑하는 개인주의자시군요. 맞습니다. 그럼 계속 개인주의의 잣대로 세상을 평가하셨어야죠. 님에겐 음악이 아니라 악음(惡音)인 것도 누구에겐 삶이요, 정보이고, 생활일 수 있거든요. 님이 끔찍해하실 뽕짝 취향 음악은 버스 기사뿐만 아니라 대부분 서민 아줌마 아저씨들이 즐기는 음악이에요. 님에겐 지하철 안내방송이 잔소리로 들리실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유용한 정보거든요. 장애인의 립싱크는 말 그대로 그분들의 생존이겠네요. 왜 님의 개인은 중요하고 그들의 개인은 사랑받을 정당성을 잃어야만 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혐오스런 눈으로 그들을 째려보지 마세요. 우리 모두 진정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권지예씨가 조용히 책도 보고 잠시 상념에 잠기고 싶어하는 것처럼요. 개인주의는 나만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 개인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것이에요. 이기주의와 다른 부분은 바로 그것입니다. 프랑스 친구를 들먹이며 비판하려 워밍업 하시기 전에, 조용히 권지예씨 귀에 이어폰을 꽂으세요. 클래식이어도 좋고 자연의 소리도 좋고 엠씨 스퀘어를 들어도 좋겠네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님은 님대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 받고,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길 아니겠어요? 그게 바로 개인주의 아닐까요?
권지예씨는 참 검소하게 사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에서 든 예들이 어쩌면 실제 체험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파트가 노후한 지라 스피커 상태도 별로인가 보군요. 그래도 라이프 스타일은 역시 저같은 미천한 처지와 다르시네요. 집까지 프랑스 친구가 찾아오시는 걸 보면 말이죠. 게다가 프랑스 친구는 '그'라고 지칭하는 남자이군요. 혹시 게이가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무시 못할 것 같구요. "비상사태라도 일어났니?" "고발하지 그러니?" 프랑스인 남자친구의 말투도 굉장히 자유롭군요.
프랑스인 친구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그는 여기가 프랑스라도 되는 줄 알고 계신답니까? 도대체 상대방의 나라에 와서 그나라의 문화와 풍속과 배경을 접해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생각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것 같군요. 네, 자문화 중심주의 프랑스의 그동안 활약을 모르는 바 아니지요. 남의 나라 식탁에까지 개먹지 마라 조언을 해주시고, 자국 영화를 꼭 지키겠다는 스크린 쿼터의 선봉대잖아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 나라라는 것도요. 뭐, 공식 문서에 영어를 쓰면 벌금이 매겨진다는 것은 경이롭게 잘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전하세요. 니네 나라에서나 그렇게 하시라구요. 니네 나라에서 뭐라고 하건 받아들이겠지만, 한국에 와서는 좀 겸손해지지 않을래? 하고 말이에요.
이 모두가 우리 지식인들의 허무맹랑한 친 프랑스 주의라는 것 알고 계신지요? 왠지 지식인이라면 상업적이고 천박하고 퇴폐적인 미국을 배척하고 그 빈자리에 지성과 낭만의 유럽을, 그 중에서도 예술과 철학의 나라 프랑스를 얹어 놓아야 한다는 그 저질스럽고 변태적인 사고 말이에요. 바칼로레아가 어떠니, 그나라 거지들도 플라톤을 안다느니, 거리에서 키스가 난무하는 낭만이라느니, 에펠탑이 어쩌고, 패션이 어쩌고 저쩌고.... 제국주의 국가 프랑스는 모르시나요? 아프리카 베트남에서 그들이 했던 짓은? 평준화 교육으로 파리 대학들 도서관들이 개점 휴업 상태라는 것은? 우리 국회보다 여성의원 참여율이 떨어지는 나라가 프랑스라는 것은 혹 알고 계신지? 그들의 역겨운 인종차별도 고상한 백조 밑 발길질로 봐야 하나요?
권지예씨 말 들어보면 그나라 앵커는 뉴스 하면서 윙크까지 하나봐요? 그런게 부러우신가요? 프랑스 친구가 또 한마디 하는군요. "왜 화난 커플들처럼 꼭 짝을 맞춰 나오는지 모르겠어." 정말 게이 아닌가요? "그 부자연스러운 고음의 억양은 개성이 없고 천편일률적이야."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불어만 들으면 느끼해 돌아가시겠다구요.
왜 우리 앵커가 경직되고 딱딱하고 윙크도 못하는 것은 비판하시면서, 왜 우리는 해변에서 홀랑 벗고 선탠을 안하나? 왜 우리는 길거리에서 키스를 안하나? 왜 우리네 첫 성경험 나이는 프랑스에 비해 이다지도 늦나? 따위의 질문들은 하지 않으시나요?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인 친구의 게이식 세련된 말투와 비교해서 님 아파트에 나오는 경비아저씨의 말은 더이상 희화화 될 수 없는 사투리의 극치까지 쳐올려다 놓으셨군요.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 방송을 들어 보면 이랬다." 전 또 무슨 대단한 말이나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순대와 돼지머리 삶은 게 그렇게 말문이 막히셨군요. 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따뜻한 정이 남아 있는 곳이 있는지 놀라울 따름인데.
권지예씨가 어떤 소설을 썼는지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그런데 왠지 어떤 소설들을 쓰셨을지 상상이 가는 건 왜죠. 여주인공이 나오겠죠. 사회적으로 성공한 미모의 전문직, 사랑에 그보다 더 쿨할 수 없는 사람이죠. 섹스는 아침 일어나 요구르트 까먹는 것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 뻔하고 결혼은 싫고 아이는 갖고 싶어하겠죠. 물 대신 와인을 먹고, 욕실에 누워 담배도 피겠죠.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첫댓글 핵심에서 빗나간 댓글일 수 있지만, 지칭하는 3인칭 대상의 성별에 관계없이 '그'라는 지시대명사를 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녀'라는 표현은 영어식 표현이라고 지양하라는 이야기까지 있지요.
두 글 다 너무 극단으로만 간거 같다는 느낌이.
저도 님의 글에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님에겐 음악이 아니라 악음(惡音)인 것도 누구에겐 삶이요, 정보이고, 생활일 수 있거든요. 님이 끔찍해하실 뽕짝 취향 음악은 버스 기사뿐만 아니라 대부분 서민 아줌마 아저씨들이 즐기는 음악이에요. 님에겐 지하철 안내방송이 잔소리로 들리실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유용한 정보거든요." 이 부분이 특히 공감갑니다. 다만 뒷 부분은 좀 흥분하신 것 같네요.^^
ㅋㅋ프랑스....그 프랑스 친구가...프랑스 문화를 대변하진 않죠. 소음 때문에 엄청 짜증났던 기억만이..소음에 무척 너그러운 문화라고 생각했는디. 방음시설도 안 된 아파트가 또 좀 다닥다닥 붙어있어야지. --;;
프랑스랑 대한민국은 법률적으로나 사회적, 생활적인 면 등 어떠한 면에서도 대한민국과 밀접한 관계가 없으며 닮은 면면 조차 없다. 그러나 두나라 사이가 아주 밀접한 관계인양 떠벌리는 권지예 작가는 유비추리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 예^^ 맞습니다. 욕먹을 각오 하고 썼어요. 물론 개인차니까요. 하도 열받아서 저걸 메일로 발신할까 생각도 했어요. 120% 흥분해서 떨면서 쓴 것도 맞구요ㅎㅎ 더욱더 무시무시한 생각들도 했었다는...특히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아 왜 여성 칼럼니스트 글들은 다 이따구야? 예전 한겨레 필진 중에 무슨 여성 운동하시는 분 성차별 관련 내용 쓰는 것 나오는 것 하나하나마다 맘에 안드는 것 투성이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요. 그런 얘기 썼다가 돌맞을까봐 곰곰히 곱씹고 묻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 몇몇 계셔서 다행이네요. 죄송(-_-;;;;)
음악도 아닌 장애인의 립싱크... 꼭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지..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안타까운 글이네요..
마지막 글에서 권지예씨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수 있었지만 앞의 글은 사람의 감정을 충분히 흥분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무언가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적절한 비유와 예시가 필요하거늘.. 너무 적나라하게 예를 들어서 글을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군요.. 소설은 저렇게 쓰나 봅니다.
오정해님도 자신과 상반되는 논리를 펼때 자신의 경험담 보다는 약간은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 시켰으면 하네요. 자신의 주장을 마치 타인도 경험한것 처럼 펼친다면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흥분하셨더라고 상대의 헛점을 냉철하게 보시고 자신의 논리를 아주 날카롭게 펼쳤으면 합니다. 어쨌든 글 잘읽었습니다.
주장 자체가 내 생각이고 내 경험에서 나오는 것인데...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논리가 무엇인지 의문이 듭니다. 중요한 문제들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며 놓치지 않을까요? 언론인이 해야할 일 중에 하나가 고정관념이나 편견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 같은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논리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 보고 의심해 보는 그런 것들이라고 봅니다.
잠깐 찾아보니 권지예씨가 워낙 프랑스를 좋아하시네요. 좋아하는 프랑스 친구 앞에서 남다른 경험이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프랑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있고요, 조선일보에서 왜 저런 글을 거르지 않았나(?) 보니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셨군요, 더욱이 제가 생각한 그런 여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쓰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없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권지예씨의 본명은 권순예씨라고 친절하게 나와있는 걸 보면요.
화가 나신 것 같아요. 두 분 다.
저도 소음은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ㅡ.ㅡ 길거리에서도 버스에서도 너무 시끄럽죠. 정말 귀를 틀어막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아침에 버스를 탈 때마다, 제발 오늘은 조용히 눈 좀 붙이고 갔으면...이라고 늘 기도를 할 지경입니다. 제겐 소음인 그 음악이 누군가에겐 음악일 수 있고, 또 그 음악을 공공장소에게 권리가 있다면, 분명히 반대의 경우, 조용히 가고 싶은 사람의 권리도 있답니다. 권지예 씨의 표현이 다소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오정해 씨의 글도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너무 감정이 격양돼 있다는 느낌이 들다보니, 읽으면서 피로감이 드네요.
꼭 프랑스인이 아니라도,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좀 생소한가 봅디다. 특히 버스 기사 아저씨 취향대로 틀어놓은 버스 안의 음악소리나, 지하철 역장님 취향대로 틀어놓은 역사 내의 음악소리는, 많은 승객들이 어쩔 수 없이 들어야한다는 점에서 좀 문제가 있지 않냐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고요. "오랜 시간 운전하시느라 힘드실 테니 좋아하는 노래라도 좀 들으셔야지."하고 이해해주는 게 한국적 정서라고 설명하고 말았는데요....... 권지예씨의 글 자체는 저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문제제기 자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방네 시끄럽게 틀어놓는 음악소리 힘들 때가 있거든요.
권지예씨의 글이 반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들(지하철의 안내방송, 앵커들의 아나운싱 방식 등)마저도 프랑스에 기준을 두고 썼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안 쓰고 단지 조용히 살고 싶다, 좋아하지 않은 음악을 듣지 않을 권리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만 썼더라면 좋았겠지요. 그리고 오정해님의 글이 반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차분히 생각을 밝힌 것이 아니라 격한 감정을 쏟아내셨기 때문에 순화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점이라고 봅니다. 순대와 돼지머리를 삶아서 파는 게 우리 사회의 따뜻한 정인가요? 음,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권지예씨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겠지요.
권지예씨가 단지 소음을 좀 덜 듣고 싶다고만 말했으면 되었지 프랑스는 어쩌고 할 필요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정해님도 프랑스나 타인의 생활방식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적 반응은 하실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프랑스에 살아 보았다든가 그런 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요? 그게 대단하고 무슨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니까 '미천한 저의 처지'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겠지요. 프랑스에 살든 땅끝마을에 살든 사람 사는 방식은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선택하기 나름이고요. 제가 보기에 오정해님께서도 개인주의, 서양, 자유로운 생활방식, 이런 것에 대한 지나친 반감을 갖고 계신 듯하네요. 와인이나 순대나 먹으면 다 똑같아요.
네. 일부러 격한 표현 쓴 것 맞아요, 쳐올리다 이런거 군대용어인거 알거든요^^ 근데 저는 개인주의를 정말 찬성하는 쪽인데, 진정한 개인주의라면 권지예씨 같이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활달하고 약간 조증 비슷하게 있는 사람의 욕망도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예를들면 노홍철을 막무가내로 잠재울 권리가 없잖아요) 그냥 개인 귀에 조용히 이어폰 꽂으면 안되는 건가요? 이런데서 권위를 빌려 비판하지 말고 그냥 이어폰 꽂으면 만사 조용히 해결되는 거 아닌가해서요, 일본 전철에서와 같은 무관심도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뭐 서양,프리스타일, 와인에 반감 전-혀 없습니다. 그런거 가지고 위선떠는 거라면 모를까요.
이어폰도 사용하고 싶지 않고, 들을 필요도 들을 의사도 없는 소음(상행위, 전도행위, 막무가내로 틀어놓은 고성의 음악 등)을 듣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욕망은 왜 무시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음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기 때문에 소음이라고 하지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을 제외하고 타인의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소음을 모든 사람이 들어야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용히 가고 싶은 사람은 조용히 갈 수 있도록 하고, 그 외의 활달하고 약간 조증 비슷한 사람이 귀에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가야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개인주의를 찬성하신다면서 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의 권리는 무시하시는지요?
일본 전철에서와 같은 무관심을 말씀하셨던가요? 일본 전철에서는 적어도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에게 '그러면 네가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권지예씨가 프랑스 문화를 들어 우리 문화를 낮추는 듯 말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그 부분은 마음껏 비판하세요. 그러나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에게 그러면 네가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꽂아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봅니다. 소음은 담배연기와도 같은 겁니다. 피하려고 해도 피하기 쉽지 않은 거죠. 그렇다면 당연히 그 소음, 그 연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선 배려해야죠. '네가 이어폰 써라, 네가 마스크 써라'고 해도 좋은 건가요?
생존을 위한 상행위, 포교의 자유에 의한 전도행위 솔직히 인정해야하지만 공공장소인 전철에서 안된다면 우선 지하철공사에서 확실히 단속하면 끝나는 문제죠. 그럼 그 밖에 뭐 막무가내 고성 음악, 핸드폰 소리, 잡담, 잡음, 어쩔 수 없이 나는 소음들, 누구에게는 죽기보다 더 싫은 그런 불필요한 소음이란 물론 상대적입니다. 100명중에 권지예씨같은 분들, 님같은 분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 고막이 둔하신 분들, 애초 남에게 무관심한 분들 많겠죠. 이분법으로 소음내는 인간들 vs 조용히 살고픈 피해받는 인간들 / 그래서 소음내는 인간들 제발 좀 개념 탑재해라. 이렇게 말하는 게 얼핏 '공공의 선'일수는 있겠습니다.
흘러가는 전파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 그렇지 않은사람 조금 보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에게 무차별 살포되는 전파를 버튼 하나로 끄면 자유롭게 조절되듯이, 어찌되나 결국 갈수록 파편화 개인화 되는 사회에서 부딪히지 않고 해결할 방법 가운데 이어폰 말안거에요. 뭐 '폭력'일 수도 있곘습니다. 워낙 오지랖이 넓은 말이니까. 어려운 문제라고 봐요. 흡연자에게는 60층 건물 전체를 비흡연구역으로 지정하는 것도 폭력일 수 있겠죠. 소음내는 100명을 모두 통제하는게 어렵다면 현실적인 방안으로 1명이 이어폰을 꼽는게 낫다고 봤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었구요,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further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 저 글 읽으면서 기분이 확 나빠졌습니다. 특히나 서두 부문에 '장애인의 립싱크' 란 표현을 본 순간부터 글에 대해 중립적인 감정을 갖고 읽을 수가 없었죠. 권지예씨께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일부 공감하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정말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메시지에 대한 공감까지 흔드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다신 오정해님께서 저와 비슷한 기분으로 글을 쓰셨다고 생각되지만 역시나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드셨던거 같네요.
조선일보는 늘 프랑스에 대해서 안좋은 점을 많이 들추는 것 같아요. 한겨레가 프랑스를 좋아하고 역할모델로 삼아서 그런가..
소설이 별로 맘에 안들었었는데..칼럼도 그다지 잘 쓰지 못하는군..뭔가 공감을 할 수가 없어.
오정해님이 좀 예민하신 듯 해요...오정해님 글에도 분명 논리적 오류가 있어보입니다.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를 비판하면서, 왜 프랑스인이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못하는 건 이해하지 못하시는지...넓은 마음으로 프랑스인들의 정서와 문화도 인정해야 하진 않을까요?...프랑스 문화에 익숙해 진 프랑스인이 자신의 나라와는 다른 우리나라에 대해 당황스러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이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또하나의 문화적 이기주의가 아닐런지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은 너무한 것 아닌가요.일단 소설을 읽어보신 적이 없다면,그런 식의 예단은 지나치신 듯 하네요.제가 권지예씨 소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말 그대로 좋아하지 않아요),일부를 보고 마음에 안드셨다 해서 소설까지 그런 식으로 읽지도 않고 폄하하시는 건 좀 지나치신 듯 합니다.권지예씨가 쓴 글 이상으로,마지막 님 소설 내용에 대한 말은 불편합니다.
권지예씨의 말이 지나친 감은 있지만 님의 태도 역시 지나친 감이 있네요.
리플 역시 지나친 감이 있네요..
저 역시 두 글 모두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글을 올리신 분이 지나치게 흥분하신 것 같아요...^^;;; 권지예씨의 글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기저에 깔린 생각은 공감이 된다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공 장소에서의 소음...정말 심각하죠. 다들 서로 그러려니 생각하는 바람에 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권지예씨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예로 든 건, 그 공간을 공공의 영역이라 생각해서 예를 든 게 아닐까요? 음악을 트는 것도, 또는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모두 개인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공공의 영역에서만큼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일테니 말입니다.
전 집이 지방이라 고속버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요즘은 대부분의 운전기사분들께서 스카이라이프를 틀어놓으십니다. 얼마 전에는 집에 가는 내내 한국과 프랑스 전의 골장면과 하이라이트 등이 방송되는데 정말 시끄럽고 짜증이 났습니다. 조용히 자고 싶기도 하고, 곰곰히 생각할 일도 있었는데 계속되는 골~ 소리가 정말 미치겠더군요. 그럴 땐 이어폰으로도 그 소음이 막아지지가 않습니다...^^;;; 결국 버스기사분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 버스 안에 있던 분들이 다 좋아하시더군요. 다들 말은 하고 싶은데 꾹꾹 참고 계셨던 거죠...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이해관계가 대랍한다면, 서로의 피해를 줄이는 결론이 가장 좋은 게 아닐까 싶네요
위성방송 틀어주는 건 버스회사의 서비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결코 운전기사 아저씨가 원해서 보는게 아니죠..
아, 여담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메인 뉴스를 남녀가 진행하는 것이, 또한 남자 앵커들에 비해서 여자 앵커들이 지나치게 어리고 외모가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다 <영계문화>의 산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요) 남자 앵커는 실력과 연륜으로, 여자 앵커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로...뭐 이런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프랑스와 비교해서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순 없겠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음공해 ,잠복해 있는 문제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층간소음으로 아랫층 사람들이 윗층에게 칼부림하고, 기사 아저씨한테 시끄럽다고 폭행하고 뭐 그런 기사도 가끔 나오지 않습니까...날림공사로 아파트 종이장 마냥 짓는 건설비리도 있겠고.휴대용 개인 기기들이 발달하면서 공공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소리를 듣게되는 개인주의의 충돌 같은 문제에는 심히 공감합니다..권지예씨의 글은 문제제기는 좋았으나 우월한 태도로 남의 문화를 하류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좋네요..
권지혜 씨의 '소음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나, 오정해 님이 쓰신 것처럼 정말 권지혜씨가 저런 상황들을 제대로 겪어 봤는 지가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지하철, 버스 부분이요. 요새는 지하철도 대체로 조용한 편이고 버스는 예전보다 많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권지혜 씨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즉,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 스스로 개선하도록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버스 안에서 아저씨에게 라디오 소리 줄여달라면 줄여줍니다. 라디오 소리 키워달라는 승객은 거의 없거든요. 특히, 아파트에서 스피커가 안 좋으면 관리실에 고쳐달라면 찌직거리지
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아니면 반상회에 나가서 함께 조율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권지혜 씨의 문제제기는 한국의 문화적인 부분입니다. 문화는 사회, 경제 제도 등의 요인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죠. 이를테면 선진국이라는 캐나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횡단보도 신호등을 우리나라만큼 지키지 않습니다. 다운타운의 도로에서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 불인데도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길을 건넙니다. 이건 자동차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보행자에 대해서는 헐렁한 법제도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에도 제도적인 문제가 크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제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할 지 알기 쉬웠을 텐데 아쉽네요. 다시 예를 들자면 반상회에 가서 스피커 볼륨을 줄이자고 했더니 그건 위기시에 위험해서 안 된다는 법이 있다더라. 그러니 법을 고쳐야 한다라든가 말이죠. 그런데 권지혜님의 글은 소음 공해가 심한 문화에 대한 볼멘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결국 해결 방안은 조용한 곳으로 떠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권리를 찾는데 너무 투자를 안 하시다보니 그냥 아이들의 불평, 불만, 볼멘소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짝맞춰'나오는 아나운서들을 욕하는 프랑스인을 또 욕하기 위해서 '게이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것도 별로 관대해 보이지 않는군요. 하긴 그딴 똘레랑스는 '게이스러운 프랑스' 놈들이나 찾는 거겠죠?
단지 '고매한' 신분 덕에 한국적 상황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이들의 '고상한' 비판 따위는 보기에 고까울 뿐 아니라 실제로도 별다른 추진력을 가지지 못하는 게 사실이죠. 권지예 씨 글이 그런 불편한 감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비판한답시고 한국의 모든 '주류적' 취향을 마치 한국의 대표선수 삼아 무차별 옹호하는 논리를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한국인이라고 다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한솥밥 식구 아닙니다. 말 좀 가려서 하세요. 한국식으로 젊은 여자 아나운서 갖다놓고 늙은 남자 아나운서들과 짝짓는 게 보기 뿌듯해하지 않으면 게이라는 겁니까? 그리고 게이라면 또 뭐가 어때서요?
말 가려서 하지 못한 건 좀 부끄럽네요. 근데 님도 좀 흥분하신 듯, 무슨 말인지 솔직히 다는 모르겠네요^^; 제가 그날 저거 보고 글 쓸때보다 님이 지금 읽고 생각하시는 게 시간도 많이 지났고 의견도 많이 있고 훨씬 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담담히 볼 수 있는 건 맞겠죠. 논작문비평방도 아니고 자유게시판이라 자유롭게 좀 끄적였습니다...근데 "왜 꼭 짝을 맞춰서 나오는지 모르겠어" 요게 솔직히 할 소린가요? 저는 무슨 내정간섭 비슷하게 들립니다. 게이 비하는 아니에요. 게이 친구 두 서넛은 가지고 있어야 첨단 뉴요커 비스무리 생각하는 그런 웃긴 생각 하는 여자들이 프렌즈 이후 점점 생기는 것 같아 혹시 그럴 가능성을 배제
않고 나름대로 비꼰다고 쓴 건데, 역시 어렵군요. 어설프게 했다가 인격만 의심받네요. 웬만하면 비꼬는 건 배우는 자세에선 불필요한 듯ㅎ
아, 그리고 왜 제가 잘 이해를 못하나 했더니만, 님 짧은 댓글에 ' ' 작은 따옴표가 너무 많아요. 이건 정말 쓰지 말아야 합니다. 신입기자들도 제일 많이 혼나는게 어디서 봤는지 무조건 ' ' 를 남발하는 건데요, 그거 일선에선 되게 싫어합디다. 언론 잘못된 풍토 중 하나가 ' ' 남용하는 거래요. 솔직히 ' '를 무슨 지식인 특권 용어인양 쓰는 글들 보면 정말 읽기 싫어진다는... ' ' 거 안쓰고도 유려하고 깊은 글들 얼마든지 있거든요.
남의 작은 따옴표 사용을 멋대로 지식인 특권 용어 사용 의도로 규정하셨군요. 님이야말로 갑자기 '게이 친구 두 서넛은 가지고 있어야 첨단 뉴요커 비스무리 생각하는 그런 웃긴 생각 하는 여자들이 프렌즈 이후 점점 생기는 것 같아' 이런 말 써서 논점 흐리시는 이유가 뭔가요?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프랑스의 역겨운 문화적 우월감에 대한 비판을 해서 공감을 얻을 방법은 많은데, 왜 무리하게 특정 계층을 비하해서 갖다붙여야 합니까?
프핫.... 남의 소설 표절한 권지예씨는 자기 문장 역시 문학의 소음일 수 있었음을 알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