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4-10 12:44수정 2025-04-10 13:29
근대화냐, 민주주의냐? 양립가능? 불가능?박정희는《양립불가》선택《민주주의=자동 근대화》아님은 필리핀 등이 입증운동권, 민주주의 간판 아래 전리품 챙겨박정희, 독재권력 사익 위해 쓰지 않았다
▲ 86년 9월 13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보도. 교수연구실에 대못질하는 것을 넘어 시위 중에 수업한다고 강의실에 화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전체주의, 극단주의, 근본주의, 원리주의의 몰인간성》을 느낄 수 있다. 종교가 다르다고 참수하는 탈레반의 행동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민주화란 명분만 있으면 폭력도 정당화 되는가.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편집자 주]
이종권 전 중앙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제자들에게 보내는 연작 서신을 연재한다. 70년대 80년대 강단에 섰던 대다수 교수들이 기본적으로 겪었던 학생들과의 갈등과 고민을 다루고 있다.
학생들, 특히 이른바《민주화 운동권》학생들은 자신들의 투쟁에 교수들의 동참을 끊임 없이 요구했다. 그들에 동조한 교수들은 1987년 6월 26일 가두시위가 격화되던 와중에《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를 결성해 운동권과 보조를 맞췄다. 이런 움직임에 가담하지 않는 교수들은 이른바《어용교수》라 불리며 따돌림과 박해를 받았다.
민교협 이 생기기 전에도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념·철학과 다른 노선을 가진 교수들을《어용교수》라며 수강거부를 하거나, 심지어 교수연구실에 팻말을 달고 못을 박아 폐쇄하는 만행과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교수들이 이런 봉변을 당했다. 학생들과의 이런 갈등은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겐 모두가 겪어야 할 홍역과도 같은 시련이었다.
이 연재는 희수(喜壽)에 달한 필자가 그런 시련 속에 제자들과 가졌던 치열한 논쟁을 회고하며 쓰는 마지막 강의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의 탄생·성장·발전·미래에 대한 중요한 의제(아젠다)가 담겨 있다. 2030 청년들에게도 좋은 논점과 관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권 교수는 서울공대 항공학과 졸업후 다시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가 철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중앙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했다. 대표적 저-역서로는《과학문명사》《수리철학》《현대철학의 쟁점은 무엇인가》등이 있다.
====================
▲ 이 책의 저자는 이강호(필명). 본명은 김용철.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한차례 복역도 한 운동권 출신. 한때 마르크스-레닌주의자를 자처하며 이른바《사회변혁》이란 이름의 혁명운동에 몸을 담갔던 인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박정희야말로 근대화를 이룬 진정한 진보 정치가"라고 평했다. 박정희로 상징 되는 독재체제를 뒤집어 엎겠다는 이른바《민주화 운동가》의 진솔하고 용기있는 자기 고백서다. ⓒ 출판사 기파랑
《민주화를 외쳤고, 외치고 있는 친애하는 제자에게 (제1신)》
자네의 동창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네는 재학 시 동급생들과 함께 민주화를 기치로 내걸고 군부독재에 항거하여《가열찬》투쟁을 벌인 바 있으며, 오늘날도 그러한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당시 자네들의 투쟁의 대상은 군부독재였으며 그《원흉》은 그때는 이미 무덤에 들어간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면서 자신 앞에 놓인 선택지가《조국 근대화》와 《민주주의》이며 그 둘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선택하면 조국 근대화는 불가능하며, 반대로 조국 근대화는 민주주의를 희생하고 독재를 행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당시 우리의 상황에서는 민주주의 대신에 근대화가 옳은 선택이라고 본 것이다.
자네들의 민주화 운동은 박정희의 그 가정이 터무니없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박정희의 그 가정이 옳았는지 여부는 따질 생각이 없다.
하여간 박정희는 옳건 그르건 그러한 믿음 하에서 민주주의 대신에 조국 근대화를 선택한 것이며, 또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독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박정희는 독재를 선택하면서 그 선택이 부도덕하다는 것은 인정했으며, 따라서《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옳지 않은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았지만, 그 수단을 자신의 필생의 목적인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그 점에서 위선적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박정희가 권력을 일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박정희와 박정희의 경쟁자 가운데 공직 기간 중 재산을 늘리지 않은 경우는 박정희가 유일했던 것 같다.)
■ 박정희에겐 너무 가혹, 김일성에겐 너무 관대
박정희는 독재를 18년간 했지만 반대파들에 시달리면서 조국 근대화의 성과를 올렸다.
우리는 이제 거의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섰는데, 박정희의 독재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독재가 선진국이 되는 대가로 괜찮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박정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선택한 자네들의 진영은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내걸고 자신들의 전리품을 챙긴 경우가 너무 많았다는 점》에서 대체적으로 위선적이었다는 것 이다.
자네들이 외친 민주화가 고작 박정희를 쓰러뜨리기 위한 하나의 전술에 지난 것이 아니었다면, 남한에서의 독재가 일단 고개를 숙인 후 자네들의 민주화 노력은 당연히 북한의 독재에 대한 투쟁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북한의 독재와 그 독재에 짓밟히는 북한 인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나의 관찰로는 그들은 아마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독재를 하고 있는 북한을 자신의 편으로 생각했으며, 자신의 편이 하는 독재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심하더라고 관대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우파진영에 대해서는 아무리 작은 반민주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이다.
■ 민주주의 간판 아래 잇속 챙기는 위선자
독재에 대한 자네들의 진영의 이러한 이중적 잣대는 자네들의 민주화 운동의 진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네들이 속한 이른바 민주주의 진영의 민주화는 실은 당파싸움에 불과하며, 그 싸움에서 민주주의라는 간판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아직도 그 간판을 유지하는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러한 싸움을 벌이는 당사자들은 당연히 민주주의자일 수 없다.
내가 자네들을 비롯해서 자네가 속한 당파들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자들이 될 수 없으며《민주주의 간판 뒤에서 잇속이나 챙기는 위선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 박정희의 심경이 담긴 유명한 어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이다. 나도 민주주의가 뭔지 알지만, 선(先)근대화 후(後)민주주의가 내 생각이다, 신생국에서 양립-투 트랙은 불가능하다는 철학을 촌철살인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기개와 결의가 담겨져 있고 비극적 결말까지 암시하는 듯하다. 조갑제 기자가 박정희 일생을 다른 저서 제목으로 택한 것은 탁월했다. ⓒ 조선일보사
■ 정치잇속에 이용당하는 민주주의
자네는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가 성공한 직후 교육부에서는 각 대학에 87년 상반기 시위에 참가하느라 학교 성적이 나쁘게 나온 학생들의 명단과 더불어 그 성적을 무효화하는 한편으로 1학기 등록금을 환불할 것을 지시하는 공문을 내려 보낸 바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웃한 S대학교에서는 이른바 운동권학생들에게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면제하는 조치까지 취해 주었다는 것 이다.
지나친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이른바 민주화 진영이 일단 승리를 거두자마자 이제는 전리품을 챙길 기회가 왔다고 기뻐한 증거로 생각되어 불길한 마음이 앞섰다.
박정희는, ※근대화라는 목표가 진심이었고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으며 ※신생 대한민국의 기초를 확실히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87년 민주주의로의 행진이 시작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민주주의 타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자네는 그 이유가 아마도 상대편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자네가 속한 당파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내건 그 당파가 박정희가 근대화에 진심이었던 것처럼 민주주의에 진심이었다면, 민주화라는 목표는 벌써 달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박정희 덕에 호강하며, 박정희 욕만
진정한 민주주의라면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도 용인 혹은 관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라고 믿어도, 또한 그것이 진리라고 해도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고 믿고 그러한 믿음을 전파할 자유를 법률로 봉쇄한다면, 그러한 민주주의는 북한이 의미하는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박정희는 권력을 가지고 근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려 온갖 욕을 먹어가며 애를 썼지만, 이른바 한국의 민주주의 진영은 민주주의·민중주의 등등의 좋은 간판은 다 내걸고 권력을 쟁취하려고 했으며, 일단 권력을 쟁취하자 국가의 이익이 아닌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과 같은 전리품을 취하려 애쓰는 것 같다.
박정희의 반대자들은 박정희가 별의별 욕은 다 먹어가면서 얻은 성과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들은 내놓고 자녀들을 자신들이 그렇게도 싫어한 미국에 유학을 보내는 등 막상 그것을 가능케 한 당사자인 박정희 자신은 별로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마음대로 누리면서도 아직도 박정희에게 고마워할 것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들의 호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박정희가 아니라 오로지 노동자》라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산섬 대첩이 충무공이 아닌 오로지 그 휘하 장졸들 때문이라는 말 이상의 억지소리라는 것은 자네들도 인정할 것이다.
■ 위선적 이씨조선 양반 계승한 운동권
인간의 삶에는 부도덕한 수단을 무릅쓰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는 가치 있는 목표도 있는 것이며, 박정희가 그러한 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우리의 유가적 전통》은 그러한 수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과거 양반들은 온갖 좋은 명분을 내걸고 그 명분 뒤에서 온갖 부도덕한 짓을 했다.
그 점에서 과거 양반들은 대체로 위선적이었는데, 그러한 양반들을 아주 닮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 한국의 지식인, 운동권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자네가 그 일원이었던 운동권보다는 박정희를 자네와 격한 토론을 했던 과거나 지금이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이다.
《2편에서 계속》
이종권 전 중앙대 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