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영원하고 자비로운 하나님, 내 하늘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게 나타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 안으로 믿었고 그분을 전파했고 그분을 고백했으며 그분을 내 사랑스런 구주와 구속자로 사랑하며 경배하고 교황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무리들이 핍박하고 욕하고 모독한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간청하니 내 혼을 받아주소서.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비록 내 생명이 빼앗길지라도, 비록 이 몸을 버릴지라도, 내가 당신과 영원히 거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며 아무도 나를 당신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 말들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했다, “내 영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오 주여 진리의 하나님, 당신이 나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후 잠잠해지더니 힘이 빠져나갔다. 백작부인은 루터에게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약을 주었고 루터는 부드럽게 “네” 혹은 “아니오”를 속삭였다. 그러자 요나스(Jonas)는 목소리를 높이고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구주며 구속주이심을 고백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루터는 분명하고 큰 소리로 “나는 믿는다”라고 응답했고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손을 꼭 쥐고 부드럽게 호흡하며 한숨쉬기를 잠시동안 계속하다가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깊은 탄식 속에서 새벽 2시와 3시 사이에 예수님 안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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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로보아 루터가 죽을 때까지 교황을 하나님과 같은 선상에서 섬겼음을 잘보여주고 있다,
그럼 그가 개혁을 했을까 개종을 했을까? 죽을때 천주님을 모시고 교황을 섬기며 가슴속에 간직했던 마지막의 고별인사가 이것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분이 루터라고요?
지금 개신교에서 교황을 위해 기도하는 분도 개신 교인입니까?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하시던분들 계시면 한번보시죠?
그럼 루터는 이단이 아닌걸로 할까요?
이렇게 하면서도 다른사람을 향해 이단 삼단 한다고 첫글에 밝혔습니다,
천주교의품에 안긴 그분 제자들은 개종하여 개신교로 한것이고 선생은 원래대로 고수했고?
나는누가 이단인지 삼단인지 모릅니다,
판단은 독자들의몫입니다,
첫댓글 결국 루터는 죽을때까지 교황의 이름을 부르다 죽는 천주교인이었군요?
개신교는 루터교 칼빈교 목사교를 합친 복합교,,,
마지막 부르짖은 이말도 혹시 실수한것일까요?
우리는 루터교도 아니요 칼빈교도 아니요 예수교인 아닙니까?
진작 루터가 천주교인 인줄 알았으면 아예 글도 쓰지 말았을 것을 ,,,,
살짝 답답함이 밀려오는군요. 한가지만 짚겠습니다.
사도바울이 남자나 여자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주안에서 모두 평등하다고 선언한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위의 선언을 한 바울이 과연 시대를 뛰어넘어 <민주주의> 나 <참정권>, 또는 <여성해방>이나<노예해방>등의 이념을
아우르는 통찰을 했던 걸까요?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고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명령은 왜 남겨놓은 걸까요.
모든 사람이 그 시대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사회적 조건이나 시대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는 실존의 선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조건은 실존적 조건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루터나 칼빈의 시대상황이나 사회적 조건보다 더 많은 것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조건속에 있는 금방울님의 실존적 선택은 당연히 루터보다 낫고 진보된 것일 수 있습니다.
역사는 루터나 칼빈과 같은 영웅들에 의해 한 획을 긋곤 하지만 그것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므로
계속 진보하고 재조명되고 재발견되고 재구성되면서 운동합니다. 때로는 역사에 반하는 것들은 해체되고
와해되기도 하죠. 그 자체가 역사입니다. 루터가 교황의 그늘이나 천주교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 역시
있는 그대로의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 무시무시한 세계에서 일으켰던 지각변동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고 그가 남겨준 유산의 혜택을 우리는 분명히 누리고 있습니다.
루터의 공과 실을 구분해서 평가절상된 부분은 냉정하게 짚고 재조명해보는 것은 후대가 해야 할 일이지요.
그래야 역사는 다시 진보하고 변혁의 토양을 축적하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실존적 조건을 만드는 시대와
사회조건이 여실히 다른 인물의 사유와 행위를 평가하면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전제들을 간단히 간과해버리며
오엑스로 단순 도식화하는 우는 범치 말아야겠습니다.
구체적 내용 공감합니다, 그러나 기초적인것 교황 하나하면 따라붙는것이 허다합니다,
다만 첫번째글에 말했듯이 그가 호소한 면죄부 그자체도 오히려 지금 더 후퇴한것아닙니까?
교황제도 인정? 면죄부 실패(오늘날의 교회헌금 천주교에도 없는 일천번재등) ? 그럼 남는것은 무엇인지 알고싶군요?
그의 구원론은 칼빈과 흡사 하더군요? 이거하나 이익인가? 전적타락 무조건적선택 불가항력적 뭐? 기억이안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금방울님..님의 의중은 잘 알겠습니다.
물론 개혁이라는 큰 명제를 두고 여러 방면을 두루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루터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시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개혁의 본질적인 면..즉,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본질적인 것들을 깨닫고
이에 맞지 않는 불의와 부정한 제도나 유전들에 대항하여 올바른 신앙적 가치관을 제시함으로써
소경되어 방황하는 영혼들을 깨우고
개신교계의 불법적인 행태를 바로잡아나감으로 주님의 참된 교회를 만들어 가는데
좀 더 주력했으면 합니다.
금방울님의 개혁에 대한 열정과 강한 의지가 늘 큰 힘이됩니다~
저도 쓸글이 더많이 있지만 운영자님의 의중을 존중하는뜻으로 그만 둘랍니다,
글쓰기가 참답답합니다, 자판도 느리고, 날은 덥고 비는오지요,,물가는 오르지요?
일본놈은 독도를 접수하겠다고 난리지요? 비행기는 떨어지지요? 산은 허물어지지요?
그렇게 믿었던 루터마져 죽을때 교황 타령하다가 죽지요? 세상답답 합니다,
세상을 보면 열받고 한심해서 확 불싸질러 버리고 싶다가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보내신> 예수 바라보면
이 세상...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바로 그곳인지라 여전히 아름답고 소중하고 희망있습니다.
우리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자구요. 주안에서 금방울님을 존경합니다. 샬롬!!
루터.......
먹사들... 모르고 (알아도 모르고)
교인들...당연히 모르고 (알 필요도 없고)
금방울님... 모르시네요. (알 필요 없다고 하시고)
문제가 도대체 뭔가요?
때론 모르는게약이지요 뭐 !!ㅎㅎ
알려진 대로 이신득의는 루터가 착안한 것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조건을 표현한
것으로 이것은 바울의 신학을 토대로 담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이신칭의가 행위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기는 근거로 여겨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과 행위에 일치가 없는 목사들의 값싼 은혜가 외려 복음을 변질시키는 측면이 많다보니 개신교
전체가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이신칭의는 당시의 부패가 만연한 카톨릭의 공로신학에 대한
의문속에서 루터자신이 깨달은 성경적 진리를 간명하게 표현한 것 이었기에 그것이 문제가 될수
있다고 보지는 않구요. 이신칭의는 루터이전에 바울의 주장이었지만.....
이신칭의가 교리로써 강하게 주장되었던 시대적 배경을 무시해서는 않된다고 봅니다.
루터 당시의 서구유럽사회는 로마 카톨릭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생활전반에 카톨릭이 영향을 미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다 보니 이에 따른 부패함은 절정에 이르렀고~
아시다 시피 면죄부를 돈으로 파는 지경에 이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을 개축한다는 명목으로 교황 레오10세가 면죄부를 판매하고
때마침 ~ 루터가 있는 지역에도 교황청에서 파견된 수사에 의해 고용된 웅변이 노련한 연설자가
군중들 앞에서 면죄부를 파는 것을 목격한 루터는 이에 대한 토론을 허심탄회하게 해보자고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95개조항의 반박문을 붙이게 되면서 .....
사실상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게 되는데......루터자신이 종교개혁을 명분삼아 비장한
각오로 로마 카톨릭사회를 정면도전하려는 의도보다는~~
당시의 유럽사회는 토론이 활발했기 때문에 이런 풍토는 자연스러운것 이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도화선으로~루터의 반박문은 일주일만에 독일전역을 강타했고....
한 달만에 전 유럽사회를 휩쓸만큼 급속도로 퍼져 나갑니다.
루터 자신도 깜짝 놀았을 정도로 종교개혁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라
유럽전역에 번지기 시작하는데....루터자신이 종교개혁에 깃발을 꼽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종교개혁의 햇불이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당시의 유럽카톨릭 사회가 너무 무르익었다는 의미로써~
부정적인 의미로 타락과 부패가 너무 만연했기 때문에 루터라는 한 사람을
들어 쓰셨다는 측면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때문에 현시대의 부패한 목사들의 과오로 인해 루터의 이신득의 교리까지
평가절하 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시각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루터 뿐만 아니라,칼빈 즈빙글리,
심지어 웨슬리,존 다비 등
여러 개혁교회의 개혁 선구자들,
교파 교리 선구자들이 그 후손에게 남겨 준
교회 형태,신학의 입장 들이
한동안 좋았지만
지금은 어째 이렇게 카톨릭보다도 더 못한 따라지 기독종교를 이루게 했나?
금방울님의 말은 그것을 재 조명하여
고칠 방법을 찾자는 것이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같은 쓸데 없는 짓은 그만두고
이제는 살길을 찾아 보자는 것 아닌가?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 보자는 것 아닌가?
와 이리 길을 잃고 소란인고?
갈길은 멀고 험한데...
금방울님,
그러니 이제 갈길을 말씀해 보세요!
틀린 것은 알겠으니, 바른 것을 제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