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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옷차림에서 첫 눈에 띄는 것은 빨간 슬리퍼다. 그는 17세기 지체 높은
사람들이나 신었던 빨간 굽이 달린 벨벳 슬리퍼를 신고 있다. 루이14세가 좋아했던 빨간 굽 구두는 17세기 전·후반을 통틀어 권력자들의
상징물이나 다름없었다. 이 빨갛고 네모난 굽은 루이15세 시대가 되면 점점 가운데가 불룩한 모양새로 변한다.(그림 2) 그는 아마도 루이14세 시대의 화가 중 한 사람인 듯하다. 금사로 수를 놓은 재킷,
‘갸렁스’라는 염료로 물들인 빨간 벨벳천으로 된 무릎덮개는 그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보여준다. 윤택한 그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른 오브제는 의자다.
이 의자는 이름도 거창하게 ‘여왕의 안락의자(fauteuil a la renne)’라고 한다.(그림
3, 4) 그깟 의자가 뭐 그리 대단하냐 할 수도 있지만, 17세기 파리지엔들의 60퍼센트는 방 하나에서 평생을 살았다.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이 걸려 대가 취급을 받지만 당시에는 중견 화가였던 르넹 형제(freres Les Nains)는 죽을 때 옷장 2개, 테이블
2개, 등받이가 달린 의자 7개를 남겼다. 아주 성공한 화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시몬 부에(simone vouet)의 집에나 가야 이 여왕의
안락의자를 볼 수 있었다. 또 천 값이 나무 값보다 비쌌던 시대에 화가가 깔고 앉은 금술 달린 초록색 의자 덮개가 얼마였을지는 상상에 맡길
일이다. 이런 의자를 작업대 앞에 두고 다리를 꼬고 앉은 화가의 태도는, 의자값 정도는 무심히 넘기는 듯 당당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당대의 화가
중 한 명이라는 시몬 부에에 버금가거나 더 높은 명성을 누렸다는 추리를 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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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당시 화가들이 큰 벽화 등을 그릴 때 이젤 대신 사용했던 ‘샤블렛’이라는 기구 위에 올려진 그림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그림 5) 아폴론으로 분장한 루이14세가 앉아 있고, 아래에는 팔을 뻗어 그의 은혜를 입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샤블렛 옆의 좌대에는 이 그림의 인물 모델을 그리기 위해 가져다 놓은 듯한 남자 나신상이 있고, 아래에 깔린 것은 철필로
그린 그림의 스케치다. 더 자세히 보면, 그림 속 인물들이 아폴론 아래에 애원하는 인물들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 루이14세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던 화가 부류는 오직 하나였다. 왕의 화가라고 불리는 특권 계급으로 루브르궁에 작업장을 두고 살았던 그들은 화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대가들이었다. 17세기의 화가는 건실한 직업 장인이었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방랑하며 살아가는 예술가적
이미지의 화가가 등장한 것은, 인상파에 들어서부터이다. 17세기 화가들은 엄격한 훈련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적게는 세 살에서 많게는 일곱 살
사이에 화가의 작업장에 들어가 도제 생활을 시작했다. 훈련의 대부분은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에 관한 것이었고, 물감이나 붓 등이 없던 시절이라
모든 것을 만들어 써야 했다. 가장 처음 배우는 것은 동물의 수지나 각종 식물들로부터 염료를 추출해 내는 기술이었다. 오랜 시간 돌을 빻고
찧어서 염료를 추출해 내면 이것을 호두기름이나 계란 흰자 등에 개어 물감으로 사용한다. 유명 화가의 작업장이라면 어디든 고유의 색을 추출하는
비법이 있었고, 온갖 재료들이 염료를 추출하는 데 동원되었다. 17세기 사람들이 감탄했던 시몬 부에의 노란색은 딱정벌레의 진에서 나왔고, 갖가지
식물을 겹쳐 만든 초록색은 아직도 비법 중의 비법으로 남아있다. 이 시절의 화가들은, 마른 벽 위에 습기를 축여 그리는 프레스코화부터 물과 풀,
계란을 섞어 바른 바탕 위에 그리는 템페라까지 다양한 기술을 익혀야 했다. 사이사이에 멧돼지와 돼지털을 모아 굵은 붓을, 다람쥐, 곰,
오소리털을 모아 가는 붓을 만들었고, 기초 테크닉을 익히면서 동시에 스케치를 했으며, 사람의 신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종이에 옮기는 데생 훈련도
받았다.(그림 6, 7) 그림에 많이 쓰이는 천사나 과일 장식들은 장식을 모은 책을 여러
번 베끼면서 익혔고, 나무나 석고로 만든 실제 크기의 인물상으로 사람 그리는 법을 연습했다. 당시에는 실제보다 이상화 된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고상을 모델로 그림을 연습했는데, 화가의 작업장에는 손과 발의 형태를 본떠 만든
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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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터 아름다운 두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들이 가득했다. 뒤러가 쓴
『인체의 비례』 같은 책은 화가 지망생들의 필수품 중 하나였다. 17세 쯤 되면, 비로소 스승이 그린 밑그림에 물감칠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당시 화가는 장인 중 하나라 동업 조합에 그림을 출품해 장인 자격을 따야 했는데, 야심 찬 지망생들은 자격을 딴 뒤 로마로 그림
수업을 떠나기도 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미술 유학의 일번지였는데, 로마가 번영일로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화가 지망생도 ‘자잘한 주문’을 받아
돈을 벌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자잘한 주문’이란, 궁전을 장식하는 벽화부터 책표지에 쓰이는 판화, 축제나 연극의 무대 배경 등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일을 말한다.(그림 8) 요즘이야 대가가 자기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잘한 일에 종사하는 것이 흉이 되겠지만, 17세기에는 이런 주문을 잘 처리하며 공방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화가가 성공한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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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이제
주인공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네모난 캔버스가 아니라 위가 둥근 형태의 패널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단독으로 걸릴 것이
아니라 벽이나 문 위를 장식하는 그림인 듯하다. 또 그는 유행을 따라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의자 옆에 이탈리아 미술을 상징하는
그리스 시대 조각상이 괜히 놓여 있겠는가! 화가들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들이 죄다 먹고 살 만한 지체가 되는 귀족이나 왕족,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화가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그림 실력 외에 사교성과 로비 실력 그리고 귀족들과 대화가 될 만한 교양이 필수적이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조각상 뒤에 놓인 지구본인 듯한 둥근 형상과 책, 고문서 등을 겹쳐 놓은 듯한 종이다발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책을 읽고, 고문서를 볼
줄 알고, 천체와 지리에 밝은 사람이다. 왕의 화가 중 한 명이며, 루이14세를 아폴론으로 형상화시키고, 그 재능으로 인해 루이14세의
초상화부터 베르사유의 천장 벽화까지 17세기 미술을 주름잡은 자이다. 미술사전에 기록된 그의 이름은 바로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이다. 르 브룅은 17세기 프랑스 미술의 거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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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으로 푸생과 시몬 부에의 지도를 받아 로마에서 공부했으며, 베르사유와 루브르
궁전의 장식을 담당한 화가이자 미술아카데미의 설립자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르 브룅의 나이 67세. 이 초상화는 그가 화가로서 명성과 부를
소유한 절정기 때 그려졌다. 4년 뒤 그는 세상을 떠난다. 그래도 초상화가 남아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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