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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상3:10-21(p,409) 하나님과 사무엘의 첫 만남
세상에는 무엇이든지 처음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전화기가 설치된 것은 1896년 11월이었습니다. 전화가 설치된 곳은 궁궐 안이었습니다. 설치되고 2년 후인 1898년에야 개통이 되어 통화를 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때 궁중 전용 전화기는 9대가 설치되었는데는 대한제국 궁내에 설치돼 사용됐습니다
당시 전화는 근대화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고종황제가 신하들에게 전화를 하게되면, 신하들은 4번 엎드려 절하고, 엎드려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전화 소리를 [벨]이라 말합니다. “벨소리가 크다” “벨소리가 작다”는 말을 하는데, 왜 전화기 소리를 [벨]이라 하는가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전화기를 처음 만든 사람이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이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전화기 소리를 [벨]이라 하게된 것입니다.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이날이 1876년 3월 10일 날이었습니다. [벨]이 처음 전화를 만들어, 선을 연결한 후에, 전화가 되는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처음 통화 한 것이 자기의 조수였던 [왓슨]이었습니다.
그때 전화로 [벨]이 했던 말이 [왓슨, 이리 와주게! 자네가 필요하네]
Mr. Watson, Come here! I want you
이 말은 지구 상에 전화기를 통해서 처음 했던 말이기에 사람들은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무엘 쪽으로 방향을 돌려 보겠습니다.
하나님과 사무엘 사이에도 첫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사무엘]이 하나님을 처음 어떻게 무엇을 통하여 만났는가를 살펴 보시므로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항상 이루어지는 행복한 나그네길을 걸어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나님께 서원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서원기도였습니다.
[한나]는 남편에게 [사무엘이 젖을 떼게되면, 사무엘을 데리고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그때부터 성전에 있도록 하겠습니다]했더니, 남편 엘가나는 [그대가 좋게 생각하는 대로 하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사무엘을 젖 떼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젖을 뗀 후에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수소 3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집., 즉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이때 사무엘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삼상2:24절] 말씀에 보면, [아이가 어리더라]하였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을 뗏을 때에 바쳤습니다.
[한나]가 하나님께 드리겠다라고 서원을 했지만, 젖을 때자마자 '성전에서 자라도록 하겠다'라고 서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과 함께 살다가 청년이 되었을 때, 그때 바쳐도 될 것이지만, [한나]는 젖을 떼자마자 [엘리제사장]에게 맡겼습니다.
그 당시 [엘리제사장]에게 [사무엘]을 맡긴다는 것은 쉽지 않을때였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제사장]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었지만 형편없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깡패나 다름 없었습니다. 전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전혀 없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들을 맡긴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성전에 바치려고 올라갈때에,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습니다.
[사무엘]을 바칠때에 하나님께 물질까지 함께 바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무엘은 하나님께 바쳐지게되었습니다.
.삼상3;1절,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사무엘이 성전에 바쳐진 이때는 여호와의 말씀이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지금 신약시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그대로 잘 풀어서 설교하는 목회자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엘리제사장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더라는 말씀은 엘리 제사장의 육신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듯이, 지금 그가 영적으로도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음을 암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져 간다는 것은, 그 당시 구약 교회가 영적으로 침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성도들 가정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저들의 시대에,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이 쓰시기 위하여 지금 준비시켜주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 삼상3: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암울했습니다.왜 이 당시를 암울한 시대라고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실제의 눈도 어두워졌을뿐만 아니라, 영안도 어두워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는 지금으로 말하면 부목사님들인데 망나니들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뒤이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게 될, 홉니와 비느하스는 신앙ㅈㄱ으도 형편이 없었으며, 인간적으로 봐도 개망나니 였습니다.그러니 암울한 시대인 것입니다.
이런 중에도,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잠자리를 정하고 누웠던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 삼상3: 4절 말씀에서 9절 말씀까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무엘이 성전 안에 잠자리를 만들어 누었는데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자기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엘리 제사장이 부른줄 알고 달려간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신 것이 3번이나 반복됐습니다. 3번 전부 사무엘은 엘리제사장이 부른 것으로 알고 3번 전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갔습니다.
3번째에야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엘리 제사장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다시 누웠습니다.
. 본문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아멘
네 번째로 하나님은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두 번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이 부르심이 이제는 [엘리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제사장]이 가르켜준 대로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무엘의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두 번이나 부르셨고, 이 부르심에 사무엘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씀 드리게된 이때부터 사무엘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였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저는 아침마다 학교에 가면 만났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한반은 보통 70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70명은 모두 아침마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는 것은 진정한 만남은 아닙니다.
한번은 선생님의 아들이 놀다가 다쳤습니다. 피가 막 흘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쳐 없고, 사택에 선생님의 아들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때마침 저녁 식사를 하려고 사모님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계셨는데, 아들이 다쳤어 왔으니, 소독약을 갖고왔어 소독을 하고 붕대로 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으로 가려고 인사를 하고 돌아나오는데, 선생님의 아들이 [히야 가지마, 히야 가지마]하면서 제가 간다고 막 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그 아들은 1학년인가 그렇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기를 업고 뛰어갔으니, 제가 힘들어서 쌕쌕대는 것을 다 알잖습니까? 그래서 고맙기도하고, 또 업어주는 제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뜸 히야 하면서 간다고 울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날 선생님 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서 보던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고, 이것 저것 묻기도하였습니다. 그후부터 간혹 선생님 부부가 저녁에 어디 가시게 되면 저에게 “대근아, 오늘 저녁 우리집에 와서 우리 아이들과 놀아다오”하고 부탁도 했습니다.
지금 까지 저는 선생님을, 담임 선생님 정도로만 알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한반에 있던 70여명이 저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이제 선생님이 지금까지 알던 선생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저를 선생님이 아주 믿고 가까이해 주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을 마음으로 만난 것이었습니다.
☎.이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내 인생길에서 만난 경험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도도 합니다. 예배도 합니다. 교회 일도 합니다. 성경도 잘 알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예수님으 누구신지도 알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아멘
이 말은 욥이 고난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귀로 듣기만 했다라고 했습니다.
욥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욥은 동방의 부자였습니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고난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도했습니다.
이란 중에 욥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그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건드릴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주님이 나를 찾아오실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은, 자신들이 좇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되자 슬퍼하면서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져있는 자기들의 살던 곳인 [엠마오]라는 곳으로 내려가면서 예수님의 죽으신 일을 이야기하면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까이 오시더니 같이 동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눈이 가리워졌어> 그분이 예수님인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 두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사람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말씀하신 후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을 때,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을 때, 그제서야 이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것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이 두사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3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계에도 보면 뜨거워져야 살아납니다. 땅이 따뜻해져야 땅속에서 새싹들이 올라옵니다. 강물이 차가우면 물고기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뜨거워져야 예수님을 볼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삼상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요6:66,67,68]
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