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대해 알아본다.
1.설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설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에 3일씩 공휴일로 삼았으나, 오히려 2중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공휴일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귀향인파가 늘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섣달 그믐날 풍속
섣달 그믐날은 까치설날이리고 하여, 어린아이들은 미리 설빔으로 갈아 입고, 어른들은 서로 찾아보고 인사하는데, 이것을 과세(過歲) 또는 ‘묵은세배’라고도 한다. 아마도 정초에 바쁘기 때문에 미리 세배를 하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밤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한편 그믐날 밤에 자면 눈썹이 희어 진다고 하여 밤을 세우는데, 이를 수세(守歲)한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 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면 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신을 감추고 일찍 잔다고 한다.
3.설날 아침의 풍속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새 옷을 갈아 입는 날은 1년에 3일뿐인데, 설날을 비롯하여 수릿날(端午)과 가위날(秋夕)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절날에 입는 옷을 특히 ‘비음’이라고 하는데, 이날 새 옷을 입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생활단계에 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통과의례의 하나인 것이다.
어른들은 설날 아침에 설비음[세장(歲粧)] 위에 예복을 차려입고, 사당이나 대청에서 4대 조상의 신주를 내어 모시고 차례로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성묘를 하고 돌아온다. 설차례에는 떡국을 올리고 차례를 지낸 다음에 음복으로 함께 모여 비로소 떡국을 먹는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의 어른들께나 친구끼리도 서로 집으로 찾아가서 세배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때에 서로 나누는 말들을 덕담(德談)이라고 하는데 덕담의 표현은 시제를 항상 과거형으로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덕담의 형식이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축원으로 변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세배돈을 주는 풍속이 전해오며,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련하는 음식을 세찬(歲饌), 그리고 술을 세주(歲 酒)라고 한다.
4.설의 놀이와 연희
새해에 개인의 신수를 점쳐 보기 위하여 오행점을 보거나 윷점을 치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3일이 지나면, 어린 아이들이 보름날까지 연날리기를 하다가 14일날 저녁에 줄을 끊어 날려 버리면 그 해에 드는 액을 날려 버린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을 ‘액막이연’이라고 불렀다.
설을 지내고 3일째 되는 날에 일반 농촌이나 산촌에서는 마을고사, 또는 동제라고 하는 공동제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농악을 치고 고사를 지내는 ‘지신밟기’를 하였다.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집집마다 조금씩 쌀을 내 놓는데, 이것은 마을의 공동자산으로 삼는다. 마을제사와 지신밟기는 새해를 맞아 공동의 생활공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의미를 갖는다.
5.설음식
설날 차례상과 세배 손님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음식들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세찬에는 떡국, 세주, 족편, 각종 전유어, 각종 과정류, 식혜, 수정과, 햇김치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준비는 가세에 따라 가지 수와 양이 다르지만 정성을 다해 만들며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대표 음식은 떡국이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는 말이 설을 쇠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설 전에 어른들께 귀한 음식을 보내는 일,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보내는 먹을 것들도 세찬이라고 하였다. 그때 보내는 음식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대표적인 것은 쌀, 술, 담배, 어물(魚 物), 고기류, 꿩, 달걀, 곶감, 김 등이었다. o참고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설날- 민족최대명절
6.오늘날 설
근대국가에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음력설[舊 正]과 양력설[新 正]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날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역시 설날이다. 구정이나 신정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날은 추석과 함께 3일간 연휴이다. 그래서 이들 명절에는 이른바 민족대이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수난을 겪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에 태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다.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 長 節)·명치절(明 治 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광복 후 우리 스스로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설에 대해 이중과세라는 낭비성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신정을 강요해도 일반인들은 설날을 명절로 여겼다. 그래서 설날은 급기야 ‘민속의 날’이라는 지극히 어색하고 궁색한 이름이 붙여지고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되었다. 이때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 만에 설날을 찾았다며 떠들썩했다.
오늘날 설날 무렵이면 추석과 함께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명절 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 현상도 일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그래서 설의 세시풍속은 언론매체에 소개되는 것이 일종의 ‘세시풍속화’했을 정도이다. 근래 민속박물관과 민속촌 등 유관기관에서는 민속놀이판을 벌이고 있으며, 이를 찾는 가족들도 날로 늘고 있다.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직 떡국을 명절음식으로 하는 세시풍속이 전승되고 있다. 떡을 먹지 않아서 밥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가정도 있으나 설날과 떡국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7.인접국가 사례
설이 언제인가는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일상력이 기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1월 1일부터 일상력으로 태양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통사회에서는 음력으로 일컬어지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했다. 따라서 설날은 태음태양력에 의한 정월 초하루였다. 이는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들 나라 역시 오늘날에는 모두 그레고리력인 태양력을 일상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1872년에 태양력을 채용했으며 대만의 경우 손문(孫 文)의 중화민국 임시정부 건립 때인 1912년 태양력이 채택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1년,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태양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음력에 의한 설명절은 아직도 중요시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1월 1일부터 5일을 춘절(春 節)이라 하여 명절로 보낸다. 설음식으로는 만두를 먹는데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빚어 먹으며 명절을 즐긴다. 또 우리처럼 제사를 지내고 신년인사를 하며 폭죽놀이 등을 즐기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설날과 추석 무렵이면 대대적인 민족대이동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음력의 날짜를 그대로 양력으로 사용, 양력 1월 1일은 국민의 축일(祝 日)이라는 이름으로 명절화되었다. 1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신사참배를 하는데 이를 초예(初 詣, 하츠모데, 정월의 첫 참배라는 뜻)라고 한다. 그리고 정초 약 3일간은 친구, 직장인들 사이에서 신년 인사를 다니기도 한다. 상인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문송(門 松, 가도마츠, 새해 문 앞에 세우는 장식 소나무)을 비롯한 각종 신년 장식물이 차려진다. 2일에는 황거일반참하(皇 居 一 般 參 賀, 고쿄잇파상가)라 해서 궁성이 공개되고 천황이 발코니에 나와서 인사를 받는다. 이 밖에 동양적 색채와 유럽적 색채가 동시에 존재하는 러시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윗가(vodka, 보드카)’라는 술을 마시면서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프랑스에서는 지금의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전에는 세수가 4월 1일이었다. 1567년 국왕 샤를르 9세 때 세수를 1월 1일로 옮겨 오늘날에 이르렀다. 설날에는 에트렌느(Etrenne, 길조의 선물)라는 선물을 교환하며 덕담을 나눈다. 아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선물을 요구한다. 덕담은 “좋은 한 해를”이라고 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친척이나 이웃에게 덕담을 하러 가는 어린 소녀들은 “제가 아무라 작아도 다리 밑으로 지나왔어요. 서리가 내리고 추워도 새해 인사드리러 왔어요. 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꺼내서 주세요.”라고 한다. 오랜 농경국이었던 프랑스에서는 지역마다 다양한 설 풍속이 있는데 마자르그에서는 설날 새벽에 날씨가 맑으면 과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알프스 저지대에서는 주부들이 설날 아침 일찍 샘물을 길어온다. 맨 먼저 샘에 도착한 주부는 빵이나 치즈 같은 자기가 맨 먼저 만든 것을 우물가에 갖다 놓는다. 그 다음에 온 여자는 이 헌물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고 그 대신에 자기네 것을 갖다 놓는다. 우리나라의 대보름 풍속인 용알뜨기와 매우 유사하다. 시푸르 지역에서는 젊은 부부가 조부모에게 세배를 하러 간다. 리얘스 지역에서는 대소가의 친척들을 나이 순서에 따라 방문하고 서로 껴안고 덕담을 나눈다. 아이들에게는 형편에 따라 1프랑이나 2프랑 또는 5프랑짜리 동전을 세뱃돈으로 준다.
인도에서는 설날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여 냄비에 우유와 쌀을 넣고 죽을 끓인다. 죽을 끓이면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데, 죽이 잘 끓지 않거나 냄비가 깨지면 불행이 닥친다고 한다. 죽이 잘 끓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데 이 죽을 무화과잎에 싸서 친지들에게 선물한다.
베트남에서는 설날 전에 수박을 준비했다가 설날에 손님들이 모이면 수박의 가운데를 가른다. 가른 수박 가운데 빨갛게 익은 정도를 보고 한 해의 길흉을 점친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였을 때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은 찹쌀떡인 ‘바인 쯩’을 바나나잎에 싸두었다가 손님들한테 대접한다.
우리나라에서 음력 설날을 명절로 맞이하듯이
이스라엘은 유대달력에 따라 양력 9월에 설날을 맞는다. ‘로쉬 하사나’로 불리는 설날에 서로 덕담을 하면서 꿀에 담근 사과나 대추를 먹는다. 헝가리에서는 설날 점심 때 콩을 넣은 음식을 먹으면서 부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멕시코에서는 1월 1일이 되는 시점인 자정에 시계탑 종이 열두 번 울리는 것에 맞추어 포도알 열두 개를 먹으며 새해 12개월 동안의 소원을 빈다.
이란에서는 시르(마늘)·세르케(식초)·십(사과) 등 이란어로 ‘시’로 시작하는 7가지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이 음식은 풍요와 건강·행복 등을 상징한다고 한
o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설 (한국세시풍속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