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절망과
그 절망에 잠기지 않을 의지
“쉘터엔 나 혼자가 아니야. 가족이나 동료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있어. 혼자나 마찬가지인 셈이지. 혼자라는 생각, 아주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을 해. 외로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슈리의 말』
만날 수 없는 장소에서의 교감!
이 섬의 가능한 한 정보가 언젠가 전 세계의 진실과 연결되기를. 오키나와의 낡은 도서 자료관에 잠들어있는 수많은 기록. 중학생 때부터 자료의 정리를 돕고 있는 미나코는 세계 끝의 사람들을 향해 온라인으로 퀴즈를 출제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일’을 한다. 두 개의 태풍 사이에 끼인 날, 환상 속 미야코산 말이 나타난다…. 세계가 빠르게 바뀌는 지금, 끈질긴 기도가 절실하게 가슴에 얹히는 감동.
정보’, ‘지식’ 그리고 ‘기억’
장소와 기억,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는 정보의 기록이나 지도 등은 신구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연결해 가는 것이 저자 다카야마 하네코의 작품에서는 친숙한 테마이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모티프가 묘하게 뒤엉켜 있는 데다 정답 없는 퀴즈마냥 작가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를 쉽게 풀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고독하지 않기를, 오키나와로부터 발신하는 메시지가 고독한 독자들에게 작지만 큰 위로가 되기를.
파괴와 변화, 오키나와
오키나와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풍습을 지닌 독립국가 ‘류큐 왕국’이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막강해진 일본은 류큐를 강제로 병합한다. 이른바 1879년의 ‘류큐처분’이라는 사태. 그렇게 류큐는 일본의 한 현이 되었고, ‘류큐색’을 버리고 ‘일본인’으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일본인’이 되고자 할수록, ‘일본인’으로의 완전한 동화를 욕망할수록 ‘오키나와인’이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지는 역설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다. 오키나와와 일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완전한 일본인’으로의 변화를 도모해 간 오키나와의 역사에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든다. 바로 일본의 패전과 미군의 점령이라는 사태다. 일본은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오키나와 제도는 미군정하에 놓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낳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벌어졌던 오키나와전투는 오키나와인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 가운데 ‘집단자결’이라는 사태는 오키나와전투의 비극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로부터 분리되어 무려 27년간이나 미점령하에 놓여 있다가 1972년 일본으로 ‘복귀’되었다. 하지만 일본으로의 ‘복귀’는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지 않는다. ‘복귀’와 ‘반복귀’를 둘러싸고도 여러 의견이 나뉘며, 소수이긴 하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소설 『슈리의 말』은 이처럼 여러 번의 귀속변경을 거쳐온 굴곡진 오키나와의 역사를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배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