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꾸러기 세상이 오면
김 상 립
나는 법 꾸러기 세상이 다가 오는 게 너무 싫다. 눈만 뜨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쳐대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여의도의 어떤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TV에 나와 떠들어대면 나는 단방에 채널을 돌려버린다. 어진 백성들이 낸 세금으로 거금을 주며 부디 나라 일을 대신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건만, 준 돈은 돈대로 챙기고 하는 일이라고는 4년 내내 법, 법 타령을 하다가 다시 선거를 맞으니 맥이 죽 빠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다시 당선되어 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개가 법, 법 하며 앞장서서 핏대를 올려가며 자주 떠들었던 사람들이다. 목소리가 크고, 상대방 공격 잘하고, 독한 말을 즐겨 하는 사람들이 인기가 있다는 얘기다. 선한 백성들이 그들에게서 최면(催眠)이라도 걸렸단 말인가, 아니면 대리만족이라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난 탓인가? 나는 짐작만 할 뿐 그 이유를 들어내어 말할만한 전문가는 아니다.
정말 그들의 주장대로 자꾸 법만 만들어내면 세상이 잘 돌아가고 서민들이 살기가 나아질까? 어림없는 소리다. 새로 법 만들어 살기 좋아졌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그렇게 요란하게 고함치고, 싸우고, 난리법석을 떨어 통과시킨 법도,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 같은 서민은 도무지 실감하지 못한다. 법은 일시적인 사회현상이나 사건사고 따라, 또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을 좇아 제정할 대상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당과 야당이 맞서 민생은 밀쳐놓고 오직 다음 정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힘 겨루기를 시작하면서, 법은 저들 편에 유리한 쪽으로만 만들어져 갔다는 생각이다. 이를 빌미로 각종 이익단체들은 그들대로 요구사항을 데모라는 무기를 앞세워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그 결과 복잡하고 다양한 법들이 자꾸 늘어나고, 오히려 국민들의 삶에는 되려 부담이 되는 결과로 나타난 구석도 적지 않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지기 전에는 법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각자가 할 일은 다 하고 살았다. 정치가 권력을 틀어쥐고 점차 힘을 키워가면서 법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정당이 서로 정권을 잡으려 획책하고, 그러자니 국회를 틀어쥐어야 하고, 국회를 지배하자니 의원 숫자 늘리기에 혈안이 된 결과일성싶다. 요즘 세상에 똑똑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소송전문가 같다. 뻑 하면 소송타령이니 하는 말이다. 어떤 일이 생기면 무조건 법부터 먼저 들먹인다. 하여 노동자들도 소송타령이고, 사회단체라는 조직도 소송에 앞장선다. 심지어 의사들도 고발에 나서고,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자식이나 형제간에도 소송이요, 아차 하면 부부간에도 소송이다. 학부형과 선생 사이에도 고발이 멈추지 않으니 세상이 조용할 때가 없다.
그러다 보니 소송을 잘하는 사람이 큰 소리도치고, 갑 질도 하는 희한한 세상으로 변했다. 바로 법 꾸러기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은 법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한 자리씩 꿰차고 앉았다. 국회의원도, 관리들도, 사회명사 중에도 유독 변호사가 많은 이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변호사 사회가 꼭 기업세계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 영 찜찜하다. 변호사들이 수십 수백 명이 모여 거대 조직을 만들어 힘을 과시하기 시작한 게다. 내가 보기엔 꼭 재벌의 탄생 같다.
나의 청소년 시절에는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변호사가 곳곳에 있었다. 시골 가까운 데나 소도시에도 꼭 있었다.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인심은 훈훈했다. 그런데 그때보다 수 십 배나 잘 살게 되었다는 지금에 와서 소위 말하는 인심이란 잣대는 돈 뿐이다. 그러니 돈 없으면 사건을 맡길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맨다. 결국 사건을 잘 해결한다는 변호사는 돈을 많이 주어야 수임시킬 수가 있고, 조직이 큰 곳의 변호사에게 위임하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문제를 두고 국선변호사가 있지 않느냐고 해명을 하고 있지만,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해 새삼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고 존경한다. 혹자는 그가 오죽 판단력이 흐리고 우유부단하면 그런 평을 듣겠냐고 빗대기도 하겠지만, 세상살이를 온통 법, 법하고 사는 사람보다야 훨씬 인간적일 거라고 믿는다. 대체 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자기 상식 따라 생활하기 마련인데, 그런 삶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정말 착한 사람 아니겠는가? 나는 바보 같고 배짱이 없어서 그런지 법을 내세우는 사람들과 교우를 잘 트지 않는 편이다. 내 고교동창 중에는 변호사 하다가 국회의원 지낸 사람도 있고, 법원에서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재임 중에 나는 그들을 사적으로 만난 적이 한번도 없다. 사람을 소개하거나 간접적으로 일을 부탁하지도 않았다. 살면서 법과 부딪힐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내가 학생시절을 빼놓고는 경찰서나, 검찰, 법원에 나가 본적이 없다. 지금도 나는 그런 곳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시대의 흐름인가 간혹 문인들 사이에서도 법을 들먹이거나 송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 모양인데, 예술정신을 법에 의지할 바에야 차라리 문학을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법을 머리에 이고 나대는 법 꾸러기 같은 인간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고 싶지가 않다. 만약 법 꾸러기 세상이 온전히 자리잡게 된다면, 그 길로 나는 깊은 산 속이나 먼 물가로 향할 생각이다. 법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그냥 자유인으로 살다가 이번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만일에 내가 다시 환생한다면 법이 제일 적은 나라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조물주에게 간곡히 부탁이라도 드릴 참이다. (2024. 5)
첫댓글
모처럼 속 시원한 말씀 한 번 듣습니다.
법꾸러기 세상에 사는한 국민은 불행합니다.
법 없어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예, 공감, 공감합니다.^^
고조선 시대에는 법이 딱 8가지 조항이었다지요~~
저도 그런 단순한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변호사 사회가 기업세계가 됐다는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방송국에 '시민의 소리' 라는 창을 만들어 이런 글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건의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도 법을 앞세우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명희쌤이 가서 살고 싶어하는 고조선으로는 안 갈랍니다.
너무 멀어 차비도 많이 들 것 같고 ......ㅎㅎ
그리고 남평선생님의 말씀대로 법 좋아하는 '여의도**' 에 계시는 분들 일랑은
더욱 같이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책이 국회도서관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진작 알았으면 법 만드는 분들이 뜨끔 하도록 백성들의 소리를 많이 쓸걸 그랬습니다.
존경하는 남평선생님!
법꾸러기에 대한 글을 시원스럽게 잘 읽었습니다.
소진선생님
신노우선생님
이명희선생님
박명희선생님
김복건선생님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