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아버지, 디자이너 아들 저는 공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디자인경영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졸업할 무렵에 브랜드 수업을 들었는데, 취직보다는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왜 하필 ‘생선’이었을까요?
그건 제가 ‘생선장수’의 자식이었기 때문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부산에서 30년 동안 수산업에 종사하셨어요. 생선 중개인이시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세요. 아버지 덕분에 생선은 저에게 아주 각별하죠. 어릴 때에는 매일같이 생선을 먹어서 지긋지긋했는데, 어른이 되니 제가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이 그 생선 덕분이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디자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디자인을 하는 게 더 재미있겠다 싶었지요.
요즘 우리 주변에 디자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게 없어요. 패션은 물론이고, 의자, 공책, 자동차 등등...산업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죠. 농산물 역시 젊은 디자이너와 농부들이 협업해서 만드는 브랜드가 많고요.
그런데 유독 수산업만은 디자인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고 여전히 낙후되어 있거든요. 한국이 전 세계 수산물 소비량 2위라는 사실 아세요? 인구나 국토 규모가 몇 배인 미국이나 중국보다도 생선을 많이 먹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생선을 비린내 나고, 귀찮고 불편한 식품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왜 수산업은 아무도 변신시키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래? 그럼 내가 하지 뭐... 그래서 이제 막 시작한 브랜드이지만 꿈은 높이 잡았어요. ‘사람들의 시선을 바다로 돌리는 블루커넥터’가 되자라고요. 헤헤, 너무 거창한가요?
생동감 있는 디자인, 간편한 패키지 창업을 할 땐,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과 브랜드 인큐베이팅을 했어요. 저는 피쉬앤피쉬를, 친구들은 ‘프로젝트 에디’라는 브랜딩&디자인 회사를 차렸어요. 프로젝트 에디와 함께 브랜드의 전체 컨셉을 잡고 컬러부터 폰트, 패키지 디자인 등 모든 것을 정했죠. 매일 같이 회의하면서 브랜드 통일성을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젊고, 역동적이고, 재미있고 신선한 이미지를 위해 전체 컬러는 레드&블루로 보색을 주고 ‘팝아트’적인 컬러를 덧씌웠죠.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피쉬앤코'라는 모회사 아래 생선을 파는 피쉬앤피쉬, 어묵을 파는 피쉬앤케이크, 그리고 수산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웹진으로 소개할 피쉬앤캣을 구축된 사이트의 핵심 카테고리로 구성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생선이었어요. 우선 생선의 퀄리티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아버지의 도움으로 가장 좋은 생선을 취급하는 제조사를 찾았고 그걸 어떻게 디자인적 감각으로 ‘좋은 상품’으로 만들지를 고민했어요.
중요한 건 ‘간편하게’ 만드는 거였어요. 혼자 살면 귀찮아서 생선을 안 먹게 돼요. 요리가 익숙치않은 사람들은 ‘생선 눈’을 보면 토막 내는 것도 스트레스에요. 그래서 마트에서 다 잘라서 검은 봉지에 넣어주는데 그것조차 귀찮은 거죠. 단순히 ‘예쁘고 재미있게’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건 의미가 없었어요.
우선 생선을 바로 굽기만 하면 되게, 가시를 바르고 적당한 크기로 토막내서 한 마리씩 포장했어요. 그리고 우리만의 레시피를 개발하고 싶어서 ‘시즈닝’ 가루를 넣었죠. 카레, 로즈마리, 갈릭, 허브솔트 4가지의 시즈닝가루가 들어있는데, 이 가루를 뿌리고 굽기만 해도 생선 맛이 제각각이거든요.
조리가 쉽고 편리하다면... 또 디자인도 재미있고 예쁘다면 분명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생선이라는 게 제대로 조리해서 즐길 수 있다면 정말 맛있는 ‘음식’이잖아요.
피쉬앤피쉬의 메인 카피가 ‘Simply your delicious mate’예요. 쉽고 맛있는 당신의 친구. 저는 피쉬앤피쉬의 디자인도 쉽고 재미있는 친구 같았으면 했어요. 생선은 어떤 녀석을 사진으로 찍어서 ‘이걸 당신에게 보내준다’라고 상품 설명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용자를 위해 인포그래픽으로 세트 구성을 자세히 보여주고, 글보다는 그림으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디자인은 ‘생선’이라는 우리 제품을 도와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니까요.
너, 왜 생선장수하냐? 사실, 처음 ‘피쉬앤피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도움이 꼭 필요했어요. 저는 생선을 먹기만 했지 사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버지는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알고는 계셨대요. 수산업을 더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바꾸는 움직임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30년 노하우로 좋은 제조사를 소개해주시고, ‘부산 진심어묵’도 판매할 수 있도록 어묵 제조사도 연결해주셨어요. 아버지가 아니셨다면 할 수 없었던 사업이고 이만큼 오기도 어려웠겠죠.
지금도 친구들은 말해요. ‘야, 너 대학원까지 나와서 왜 생선장사하냐?’고. 친한 친구들이 그런 소리를 하니 내 이 자식들을 콱... 저는 우리 생선과 어묵에 디자인을 덧입히는 이 일이 좋아요.
피쉬앤피쉬의 다음 이야기는 그래서...생선 사장님들, 어묵 사장님, 그리고 패키지의 뒷이야기입니다. 부산의 펄떡이는 어시장의 활기가 느껴지는 다음화도 기대해주세요!
첫댓글 http://storyball.daum.net/episode/2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