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5:21
학기말이 되어서 학부모 만족도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중1 학부모가 9가지 항목에 만점을 주고 한 줄 평가에 ‘이 학교는 모든 면에서 최고입니다.’라고 적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그 글귀를 여러 번 읽다가 이 칭찬을 하나님께 듣는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구나!‘
제 부족함을 알기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도 많습니다.
할 일에 치여서 몸이 부서질 것 같은 밤을 보내는 날도 많습니다.
전진과 안주 사이에서 갈등하며 평안을 간구하는 시간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듣고 싶은 칭찬이 있습니다.
’ 넌 정말 최선을 다하는구나’
우리 주님이 그렇게 말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고된 시간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이 모습이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준비한 슬기로운 신부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깨어 있으라!
분주함을 뚫고도 깨어 있을 수 있는 영적 강건함이 있기를 바라며 말씀으로 제 스스로를 토닥여줍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날 얼마나 기쁠까를 상상해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가끔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있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지 않고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갔더라면, 지금쯤 적당한 곳에 취업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제 목표였으니까요.
목표는 이루었을지 몰라도 행복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투병생활을 하며 말씀을 묵상하면서, 삶의 목표보다는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걸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과 달란트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 내게 작은 달란트만 주셨다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작은 능력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귀하게 쓰이길 원합니다. 나중에 충성되고 착한 종이라고 칭찬받는 자녀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1절, 23절)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
두 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남기 자!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은 우리와 같지 않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자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나 그들에게 같은 칭찬의 말씀과 함께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다보면 친화력이 부족한 탓에 간혹 외롭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에겐 왜 저들에게 있는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각자가 가진 달란트가 크고 작음, 많고 적음에 있지않음을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 위로가 됩니다.
얼마나 충성된 자인가가 중요하지 어떤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달란트도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기에 내 자리에서 충성된 일꾼이 되어 순종하는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는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한 달란트가 전문 기술자 30명정도의 연봉에 해당한다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님을 생각하며, 부족한 제가 가진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는 가가 중요하지 어떤 달란트를 가졌는가는 중요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저의 장점을 말씀과 함께 충분히 발휘하여 쓰임 받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운전하면서 졸리면 라디오를 들어도 음악을 들어도 졸림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요즘 애청하는 김창옥쇼를 들으면 졸리지가 않게 됩니다
김창옥쇼는 공감도 되고 감동도 있어서 집중해서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로 듣게 된다면 그날과 그때가 언제인지 맘 졸이며 기다리지 않고 주님을 더욱 알기에 힘쓰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눈 뜨면서부터 자는 순간까지 주님에 대한 생각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1분 1초도 알 수 없는 미래입니다.
다가올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며 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길 원합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지혜롭고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이 세가지 중에 내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향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혜와 성실함과 이웃을 내 몸과같이 사랑할 수 있음이 내 삶을 이끌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13절)
슬기로운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준비되지 않아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 항상 깨어 준비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밤에 운전할 때, 가끔 가로등과 주변 차들의 불빛 때문에 제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도 앞이 보인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불빛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열 처녀의 비유처럼, 다른 사람의 기름이 내 것이 될 수 없듯이 나의 영적 여정은 스스로 준비해야 함을 묵상합니다.
나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깨어, 꾸준히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 기름을 채우길 원합니다. 항상 예수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자세로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지혜로운 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으로 위로와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에게 잘하는 것이 아닌 주변을 살피고 작은자를 돌보며 사는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이 비유의 말씀으로 그동안 나는 내 주변, 내 주위를 살피고 사랑하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주만이 아닌 지극히 작은자를 보살피고 위해주는 삶을 원하셨습니다.
얼마 전 부모님과 대화 중 어릴 적 교회동생들과 같이 살다시피 했던 과거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가족모임, 쇼핑, 외식 어딜 가도 늘 교회동생들과 함께였고 저희 집에서 먹고 자는 일은 너무 허다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 싫었고 우리의 희생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그것은 우리의 희생이 아닌 당연히 부족한자를 보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사랑해 주는 것이 믿음의 자녀라면 당연한 삶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작은자를 보살피며 사랑하며 주를 섬기는 믿음의 자녀 된 삶의 기쁨을 늘 누리길 소망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주인의 마음을 잘 깨닫지 못해서 받은 것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은 각자에 맞는 달란트를 나눠 주고 그것으로 이익을 남기고 주인이 주려고 했던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랐는데.....
주인의 마음을 잘못 알아 악한 종이 되었고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남과 내 것을 비교하며 시기 질투하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며 그것으로 주님을 또 이웃을 잘 섬기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