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또다시 '진실 게임'으로 들어간다. 2차 대공세를 시작한 우크라이나군 전차(탱크)·장갑차들이 진격 중 파괴당하는 영상을 놓고 러시아와 우크라·미 전쟁연구소(ISW)간에 '진실 공방'이 치열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30일 "러시아 언론과 군사 블로거들이 우크라이나 2차 공세의 실패를 강조하기 위해 과거 영상을 최근 영상으로 포장해 유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근거는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주장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문제의 '탱크전 영상' /캡처 사진 스트라나.ua
스트라나.ua와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온라인에는 전날(29일) 우크라이나 전차 여러 대가 한 곳에서 파괴되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을 보면 후방의 포병 지원을 받는 러시아 탱크 1대가 빠르게 상대를 향해 돌진하면서 포를 쏘아댄다. 포연이 자욱한 가운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진격해 오던 우크라이나 전차(혹은 장갑차)들이 러시아 탱크의 공격에 피격되는 듯한 모습이 보이고, 지뢰 폭발로 추정되는 갑작스런 폭발 장면도 영상에 담겼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포로제 방면에서 우크라이나의 2차 공세가 시작된 뒤 일어난 '탱크전' 장면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러-우크라·ISW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편다. 미국의 ISW는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 반격이 시작된 지난 6월 7일 '라보티노' 근처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알려진 우크라이나군 피해 영상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라보티노' 근처란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주장하는 3~4곳의 진격 루트중 '베르보보예(Вербовое)-라보티노(Работино)' 전선을 말한다. 지난 6월 첫 반격에서도, 2차 대공세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은 큰 전과를 올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전선을 돌파한 뒤 자포로제주(州) 교통의 요지인 토크마크로, 나아가 아조프(아조우)해 핵심 항구도시인 '멜리토폴', '베르댠스크'로 진격할 계획이다. 러시아 본토에서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소위 '아조프 회랑'을 둘로 나눌 수 있는 최적 경로다.
자포로제주 오레호프(맨위쪽)에서 라보티노(왼쪽 맨 아래)로 이어지는 도로망. 맨아래 오른쪽이 베르보보예다. 두 지역을 잇는 지역을 묶어 '라보티노~베르보보예' 전선이라고 부른다./얀덱스 지도 캡처
우크라이나군 탱크의 진격/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이 영상이 7월 초에 촬영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영상의 촬영 장소를 '도네츠크주(州) 벨리카야 노보셀카(Великая Новосёлка)-자포로제주 브레메프카(Времевка)' 전선으로 지목했다. 브레메프카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친러 독립선포국가, DPR)과 자포로제주 사이에 돌출된 교차 지역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이 전선에서 '스타로마요르스코예 마을'을 점령하는 등 전과를 올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영상의 촬영 시점이 지난 6월인지, 7월 초인지, 최근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ISW는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군이 2차 대공세에서 상당한 장갑차를 잃었다'(푸틴 대통령/편집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옛날 영상을 다시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러 DPR의 수반 데니스 푸쉴린은 30일 "러시아군 탱크 한 대가 우크라이나 장갑차 공격을 막는 영상이 전날 나타났다"며 "공화국(DPR)의 북부 지역(브레메프카/편집자) 해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판단에서 러시아군 탱크 승무원들에게 포상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생한 영상을 첨부했다.
논란의 탱크전 영상. 윗 사진의 왼쪽에 돌진하는 러시아군 탱크 1대가, 오른쪽 도로 위에는 두 대의 우크라이나군 장갑차가가 보인다. 아래 사진에는 도로 위에는 장갑차가 사라졌다/영상 캡처
영상에는 '적(우크라이나군)의 탱크와 장갑차량이 접급해 오는 모습'이 보이고, 이를 특수 장비로 지켜보던 러시아군 정찰병이 "러시아군 탱크도 한 대 나타났다"고 동료들에게 알린다. 이후 전투 현장에 대한 촬영이 시작됐고, 여러 차례 폭발로 인한 연기가 자욱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도로 위에서 전차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정찰병은 "적어도 4번의 포 발사로 적 전차 3대가 무력화됐다"고 말했다.
친러 자포로제주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이 전선에서 반격을 시작했고 전날 우크라이나군에게 빼앗긴 것으로 알려진 '스타로마요르스코예 마을'을 탈환했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장에서는 뺏고 뺏기는 공방전이 계속되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