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왕릉 도장깨기 8탄!!
조선왕릉 도장깨기 8탄은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유명해진 단종의 부인이 묻혀있는 ‘사릉’과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묻혀 있는 ‘광릉’을 갑니다. 이 두 곳을 하루에 가는 이유는 거리가 멀지않으며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왕릉이기도 하고 두 곳 모두 5월중순~6월말, 10월초~11월말에 한시작으로 개방되는 숲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이 두 곳을 대중교통으로 보기에 적절하지 않아 이번 도보는 차량봉사로 진행하며 강변테크노피아 지하2층 주차장 내 롯데마트 입구 근처에서 만나 출발하며 만나는 시간은 10시로 합니다. 자세한 배차는 이후 참석인원을 보고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사릉에는 ‘능침뒤편 소나무길’이 있고 광릉에는 ‘복자기나무 숲길’이 있는데 개방하는 때를 맞추지 못하면 걷지 못하는 길이므로 많은 분들이 참석해서 같이 걸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점심식사는 사릉을 보고 사릉에서 광릉가는 길에 위치한(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내로82번길 40-1/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 778-9) 유명한 불백 맛집인 ‘광릉불고기’에서 합니다.
메뉴는 돼지 숯불고기(200g/14,000원), 소 숯불고기(200g/20,000원),돼지 숯불고기(600g/42,000원), 소 숯불고기(600g/60,000원), 비빔막국수 (100%메밀/14,000원), 공깃밥 (1,000원)이고 1인당 1인분씩 주문해야하고 한번만 주문을 받고 추가주문은 받지 않는 곳입니다.
▣ 사릉(思陵, 단종비 정순왕후)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조성 연도 : 1521년(중종 16), 1698년(숙종 24)
왕릉 형식 : 단릉태릉(泰陵, 중종비 문정왕후)
▷ 사릉(思陵) 이야기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1521년(중종 16) 정순왕후가 노산군부인(魯山君夫人)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묘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씨의 집안 묘역인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고, 해주 정씨 집안에서 제사도 지내주었다. 1698년(숙종 24)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사릉이라 하고 묘를 왕릉 제도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이때 사릉 주변에 있던 해주 정씨 묘역을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숙종의 명으로 묘들을 그대로 두어 현재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사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을 세웠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 홍살문 등이 있고, 비각 안에는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朝鮮國 定順王后 思陵)’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다.
▷ 정순왕후(定順王后) 이야기
정순왕후 송씨(재세 : 1440년 음력 3월 12일 ~ 1521년 음력 6월 4일)는 본관이 여산인 여량부원군 송현수와 여흥부부인 민씨의 딸로 1440년(세종 22) 전북 정읍 태인(현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1454년(단종 2)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다음 해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남겨주고 상왕이 되자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가 되었다.
그러나 1456년(세조 2)부터 계속해서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면서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제거되자 1457년(세조 3) 단종은 노산군으로 신분이 낮아져 영월로 유배되었고, 정순왕후도 군부인으로 신분이 낮아져 현재의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하였다.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한 마음으로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이후 1521년(중종 16) 82세로 세상을 떠났고, 1698년(숙종 24) 단종이 왕으로 신분이 회복되자 정순왕후도 왕비의 신분을 회복하였고, 시호(諡號)를 정순왕후라 정한 후 종묘에 신주를 모셨다.
정순왕후는 15세에 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단종과 이별하고 평생 혼자 살았던 비운의 왕비인데, 정순왕후와 관련한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을 향해 통곡을 했는데, 곡소리가 산 아랫마을까지 들렸으며 온 마을 여인들이 땅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치는 동정곡을 했다고 전한다. 그 뒤부터 이 봉우리는 왕후가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하여 동망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한경지략』에 의하면 영도교 부근에 부녀자들만 드나드는 금남의 채소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정순왕후를 동정한 부녀자들이 끼니 때마다 정순왕후에게 채소를 가져다주었는데, 이를 궁에서 막자 정순왕후가 거처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을 열어 주변을 혼잡하게 하고, 계속해서 몰래 채소를 전해주려는 여인들의 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광릉(光陵, 세조와 정희왕후)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조성 연도 : 1468년(예종 즉위), 1483년(성종 14)
왕릉 형식 : 동원이강릉
▷ 광릉(光陵) 이야기
광릉은 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광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으로 조선왕릉 중 최초로 조성된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세조,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광릉은 1468년(예종 즉위)에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본래 이 자리는 동래정씨 정창손의 선대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광릉이 조성되면서 동래정씨 묘역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 것이며, 사대석(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에 따라 능 내부의 방을 석실 대신 회격(灰隔, 석회와 가는모래, 황토를 섞은 혼합 물질)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왕릉 공사에 드는 비용과 인원을 감소시켰다. 이 방법은 광릉 이후에 조성된 왕릉에 모두 적용되었다. 또, 병풍석이 생략되면서 병풍석에 새기는 십이지신상을 난간석에 새겼다. 이후 1483년(성종 14) 정희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광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때 능의 이름을 동광릉(東光陵)으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광릉과 같은 능역에 있다하여 광릉으로 합쳤고, 정자각은 두 능 사이로 옮겨지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조선시대에는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고, 입구에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하마비(下馬碑)가 남아 있다.
▷ 세조(世祖) 이야기
세조(재세 : 1417년 음력 9월 29일 ~ 1468년 음력 9월 8일, 재위 : 1455년 음력 윤6월 11일 ~ 1468년 음력 9월 7일)는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둘째 아들로 1417년(태종 17) 사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세종이 즉위하자 1428년(세종 10)에 진평대군에 봉해졌고, 그 후 함평대군, 진양대군을 거쳐 1445년(세종 27)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대군 시절에 총명하고 영특하여 학문이 높았고 무예에도 뛰어나 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세종 시기에는 세종의 명을 받아 불교 서적 번역을 담당하였고, 향악의 악보 정리에도 참여하였다. 문종이 즉위한 후에는 관습도감 도제조에 임명되어 국가의 실무를 맡아보기도 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실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으며, 2년 뒤인 1455년에 단종의 양위를 받아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후 왕권 강화를 위하여 육조직계제를 단행하였고 호패법을 복원하였으며, 지방의 군사조직을 강화하여 방어체제를 강화하였다. 또, 현직 관료들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職田法)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개혁하였고,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의 편찬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즉위 초에 여러 차례의 단종복위 운동으로 사육신 등과 수많은 정적들을 제거하였고, 단종을 폐위시켜 죽게 하기도 하였다. 재위 후반에는 왕위찬탈에 대한 뉘우침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원각사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1468년(예종 즉위) 왕세자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하루 뒤에 수강궁 정침(현 창경궁)에서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 정희왕후(貞熹王后) 이야기
정희왕후 윤씨(재세 : 1418년 음력 11월 11일 ~ 1483년 음력 3월 30일)는 본관이 파평인 파평부원군 윤번과 흥녕부대부인 이씨의 딸로 1418년(세종 즉위) 홍천 공아에서 태어났다. 1428년(세종 10) 진평(수양)대군과 혼인하여 낙랑부대부인에 봉해졌다.
조선 선조 대의 이기(李墍)가 쓴 글들을 모은 문집 『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정희왕후가 수양대군의 부인이 된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세종대에 수양대군의 부인을 간택하기 위하여 궁궐의 상궁들이 윤번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이때 수양대군 부인의 후보자는 정희왕후의 언니였다고 한다. 그런데 궁중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말에 정희왕후가 어머니 이씨 뒤에 숨어서 어른들 이야기를 듣다가 상궁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언니보다 정희왕후의 성품이 더 뛰어나 수양대군의 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453년(단종 1) 계유정난이 일어날 당시 사전 정보가 누설되어 수양대군이 거사를 망설이자, 정희왕후가 손수 갑옷을 입혀줄 만큼 결단력이 강한 여장부였다고 한다.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예종이 즉위한 후에는 왕태비가 되었으며, 내지(內旨)를 내려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였다. 이후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당시 예종의 아들(제안대군)이 나이가 어려 왕위에 오를 수 없어, 왕실의 어른이었던 정희왕후는 일찍 죽은 첫째 아들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둘째 아들 잘산군(성종)을 왕으로 지목하여 즉위하게 하였다. 그리고 12살의 나이의 왕을 대신하여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하였다. 수렴청정 기간 동안 성종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성종의 태평 치세의 발판을 닦아주었고, 7년 후 수렴청정을 거두었다. 1483년(성종 14) 온양 행궁에서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 세부 일정 및 내용 | |
| ▶일 시 | 2026년 6월 25일( 목요일) 10시 (11시 아니고 10시반도 아닙니다.) |
| ▶도보 코스 | ▷걷는 코스 : 사릉 ~ ‘능침뒤편 소나무길’, 광릉 ‘복자기숲’길 ▷걷는 거리 : 6 km ▷걷는 시간 : 3시간 내외 (휴식 포함) ▷걷기난이도 : 쉬움 ▷속도 - 초급 ▷ 고도 - 초급 ▷거리 - 초급. |
| ▶모임 장소 | ▷만나는 곳 : 강변테크노피아 지하2층 주차장 내 롯데마트 입구 근처 ▷헤어지는 곳 : 강변테크노피아 |
| ▶회 비 | ▷카페 찬조금 1천원(진행자 제외 모든 참가자) *찬조금은 참석 당일 출발지에서 내시면 됩니다 *발도행 리본 2천원 입니다. |
| ▶식 사 | ▷점심 : 매식 '광릉불고기' |
| ▶준비물 | * 짬짬이 먹을 간식과 충분한식수 * 걷기와 계절에 알맞은 복장/ 동.하절기 대비 * 일기 불순 예보가 있으면 우의나 우산 * 오프로드 트레킹화나 등산화 착용. * 위생수칙 철저실천 |
| ▶주의 사항 | * 도보중 일어나는 어떠한 안전사고에대해서도 카페나 카페지기.운영자및 진행자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 개인의 안전은 각자에게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참가신청한 분은 이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이 프로그램은 여행자보험을 들지 않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개별적으로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 발도행의 걷기진행자는 모두 자원봉사자입니다. 늘 예의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
| ▶기 타 | * 참가신청 하신 분은 카페 내의 본인 개인정보 전화번호가 맞는 지 확인해주세요. * 개인정보는 운영자만 볼 수 있으며, 특별한 일이 있을 시 비상연락망이 됩니다. * 가급적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 걷기 후 비공식행사인 식사(뒷풀이)가 있으면 ,1차에 한하여 진행자 비용을 참석자가 n/1로 나누어 부담합니다. * 발도행 표식과 단체걷기 주의사항 보기 : http://cafe.daum.net/way./bx08/4 |
| ▶진행 | 재터리 010-8769-6712, 총무 땡큐 010-5910-2234 |
| 참가 신청 방법과 순서 | |
| ▶공지글 아래 <댓글 박스>에 예시처럼, 참석명수,참가자 닉네임, 발도행 리본 유무, 하고싶은 말을 적어 신청합니다. ▶댓글 예시 : 참가 1명 / 참가자 닉네임 기재 / 양재 탑승 / 함께 걷는 즐거움 ~~ ^^ | |
※ 참석 여부 변경이 있을시 변경사항을 새로운 댓글로 작성 하여 주세요.
※ 작성한 댓글은 삭제 하지 마세요.
※ 출발전 추가 안내공지 여부룰 확인 하세요.

첫댓글 참석/배짱/감사합니다~
참석1배짱/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