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에는 여의도에 홍수가 졌다
시범아파트도 없고 국회도 없었을 때
나는 지하 3호실에서 문초를 받았다
군인사법 94조가 아직 있는지 모르지만
조서를 쓰던 분은 말이 거세고 손이 컸다
그해 여름 내내 나는 섬을 생각했다
수갑을 차고 굴비처럼 한 줄로 묶인 채
아스팔트 녹아나는 영등포 길을 끌려가면서
세상에서 가장 심심한 작은 섬 하나 생각했었다
그 언덕바지 양지에서 들풀이 되어 살고 싶었다
곰팡이 냄새 심하던 철창의 감방은 좁고 무더웠다
보리밥 한 덩이 받아먹고 배 아파하며
집총한 군인의 시끄러운 취침 점호를 받으면서도
깊은 밤이 되면 감방을 탈출하는 꿈을 꾸었다
시끄러운 물새도 없고 꽃도 피지 않는 섬
바다는 물살이 잔잔한 초록색과 은색이었다
군의관 게급장도 빼앗기고 수염은 꺼칠하게 자라고
자살 방지라고 혁대도 구두끈도 다 빼앗긴 채
곤욕으로 무거운 20대의 몸과 발을 끌면서
나는 그 바다에 누워 눈감고 세월을 보내고 싶었다
면회 온 친구들이 내 몰골에 놀라서 울고 나갈 때
동지여 지지 말고 영웅이 되라고 충고해줄 때
탈출과 망명의 비밀을 입 안 깊숙이 감추고
나는 기어코 그 섬에 가리라고 결심했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없는 섬 영웅이 없는 그 섬
드디어 석방이 되고 앞뒤 없이 나는 우선 떠났다
그러나 도착한 곳이 내 섬이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부양가족이 있었다
오래전 그 여름 내내 매일 보았던 신기한 섬
나는 아직도 자주 꿈꾼다 그 조용한 섬의 미소
어디쯤에서 떠다니고 있을 그 푸근한 섬의 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