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그 후 3-Barcelona!】
스페인내전에 관한 마지막 글입니다.
스페인은 1982년에서야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고 1986년에는 유럽 경제 공동체(EEC)회원이 되어 이웃 유럽 나라들과 교류를 크게 확대했는데 이 기구는 1993년 EU로 발전했다.
프랑코 시대에 파쇼 독재정권으로 배척당하고 따돌림당하던 스페인은 유럽에서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이은 유럽 4번째의 경제대국이 됐다.
1492년 카스티야-아라곤 왕국에 의해 통일 스페인을 건설했지만 그 후에도 사실상 연합왕국이었을 뿐 각 왕국은 자치적이고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해왔다.
특히 바스크지방과 바르셀로나가 속해있는 카탈루니아 지방은 언제나 자치 독립 문제로 카스티야와 싸워왔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스페인은 하나의 나라라기 보다는 여러 나라의 연합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레알 마드리드,FC바르셀로나 같은 세계적인 축구 클럽,투우,플라멩고
스페인이 지금의 대국으로서 자리잡은 것은 불과 2~30 여년 전 부터입니다.
서울 올림픽 다음 번으로 치뤄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프랑코 독재 이후 달라진 스페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올림픽 이후 지역 감정이 상당히 완화되었으며 개최도시였던 바르셀로나는 올림픽 이후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발돋움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만 다뤘지만 스페인은 오랜 역사동안 부침을 반복했죠.
유럽 최고의 富國이었던 적도 있었고 그 이전에는 오랜 기간 동안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야 했으며 근대에 들어와서는 유럽에서도 2류국가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의 스페인의 상황들을 우리 나라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전 이전 상황도 그렇고 내전의 발생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첨부한 영상은 프레디 머큐리와 스페인의 소프라노 가수 몽세르 카바예가 부르는 'Barcelona'입니다.
정장 차림의 말쑥한 모습의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죠?
프레디 머큐리는 몽세르 카바예의 팬이었죠.
프레디 자체가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몽세르 카바예를 만날 수 있게 되자 얘들처럼 좋아했다고 합니다.
몽세르 카바예는 자신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에 대한 노래를 구상해서 프레디에게 작곡을 요청했고 프레디는 이 명곡을 작곡합니다.
이때가 1987년.
아직 서울올림픽도 개최되기 전입니다.
프레디 머큐리와 몽세르 카바예가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는 큰 인기를 끌어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공식주제가가 거의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프레디 머큐리가 1991년 AIDS로 사망했고 조직위원회에서는 공식주제가로 지정은 안했지만 개회식에서 이 노래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조직위원회에서는 계속 우기고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반대하는 상황에서 결국 급히 공식주제가를 만들었고 ,스페인 출신 테너 호세 카레라스와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가 공식주제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