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상은 1월 29일과 31일 2일동안 퇴촌에서 촬영하였습니다. 제목은 [Impossible To Possible 불가능을 가능하게]라고 하였습니다.
而化는 촬영을 하러 갈 때 무엇을 촬영할 것인지를 미리 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가서 보이는 것 중에 而化가 좋아하는 장면을 찾아 그것을 적절한 구도로 연출하여 촬영을 합니다. 이것이 而化가 말하는 [현장예술]입니다. 예술사진을 [어디 가서 찍어 오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찍는 것이다] 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而化가 말하는 현장예술의 개념입니다. 현장예술은 창작활동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而化가 지금까지 찍어 온 [예술사진]의 대부분은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일상의 [운동]에 도움이 되는 활동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연출을 한다는 것은 사진 찍으려고 무대 위에 올려 놓는 행위를 말합니다. 而化의 [현장예술]은 무대가 현장에서 꾸며지게 되는 것을 말하고 사진예술은 그 무대 위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 무대 위에서 음악연주가 있었다면 음악연주사진이 되어 음악연주가 예술이 되게 됩니다. 코끼리쑈가 있었다면 코끼리쑈사진이 되고 코끼리쑈가 예술이 됩니다. 사진을 보라고 찍는 것이 아니라 음악연주실황이나 코끼리쑈실황을 보라고 찍은 것이기 때문에 이 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영상의 [Photo Today]처럼 而化가 산책길 옆 수로를 마치 바다처럼 찍고 거기에 돌고래 처럼 보이는 수석을 넣어 돌고래가 헤엄치는 바다로 보이도록 찍었다면 그것은 而化가 민물수로로 무대장치를 하고 찍은 바다사진과 다를 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대가 현장 속의 무대라는 점에서 그 무대의 [소재가 되는 현장] 즉 민물수로가 실제 존재했다는 것을 사진으로 입증했다는 점이 繪畵(그림)와 다릅니다. 다른 말로 [수로에서 이렇게 바다와 돌고래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졌는데 바다에 가서 찍은 것 같지? 놀랍지 않니?]라는 이야기가 담겨지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사진예술은 사진 그 자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보라고 찍은 사진이 예술사진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표지 사진의 경우에도 [개 같지? 그런데 몸뚱이가 거품인 희안한 개야. 신기하지? 개 식용 종식법 때문에 몸근육 가치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라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가정할 때 이것은 그런 개가 실제는 없기 때문에 [개 이야기]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이 경우에는 그 거품 개의 [사진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실제 그러한 거품 개가 현실 무대 위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사진으로 입증하게 되는 것이죠. 위 민물바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바다가 없기 때문에 [바다 이야기]가 아니라 [사진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 예술의 대상이 되게 되는 특이 현상이 있게 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사진예술은 향후 더욱 빛나는 예술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예술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언가 손에 잡힐 듯 하면서 잘 잡히지 않는 묘한 특성이 있어서 그것에 지속적인 도전을 하게 되고 그 결과가 몰입으로 이어져 현실 스트레스도 잊고 병도 잊고 나이도 잊게 되어 늙지 않아 건강백세를 이루는데에도 적쟎은 도움될 것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다는 것 보다는 어쩌면 명확한 개념정립을 해 주지 않고 각자가 정의해서 그에 맞춰 사진 활동을 하면 되도록 하는 것이겠죠. 그래야 각자 자신의 특성을 살리게 되는 것이죠. 그에 대해 아무도 시비걸 사람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