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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족장 갈렙의 신앙
숫 14:6-15 / 계강현 목사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다룬 이야기다. 가나안 정복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백성 된 우리들이 아직 정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가르쳐준다. 내 안에 죄악을 정복하고, 불신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고, 악한 세력들과 싸워가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과 목장의 vip들을 구원해야 하고, 아직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그의 통치가 임하도록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미(already) 구원받았지만, 아직 완성은 아닌(not yet) 사이의 긴장과 사명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는 특별히 유다 족장 갈렙이란 사람이 등장한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중요한 성들을 정복하기를 거의 마쳤다.(수 10장-12장) 그는 이제 나이 많아 늙어 전쟁의 일선에 나설 수 없었다. 아마 그의 나이 대략 100세가 넘었을 것같다. 그때 여호수아는 하나님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을 분배하게 된다. 이때 85세의 노익장인 유다족장 갈렙이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요구했다. 여호수아는 갈렙이 요구한 헤브론 땅을 분배해 주었다. 제비뽑기를 하여 땅을 분배했는데, 유다 족장 갈렙에게만 예외를 둔 것이다. 땅 분배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 갈렙의 이야기는 아직 정복할 과제가 남아있는 우리들이 영적전쟁을 어떤 신앙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샘플이다. 유다족장 갈렙의 신앙은 어떠했나?
1.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되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 기울이며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여러분은 충성스런 신앙인인가? 가나안 땅을 공정하게 나누기 위하여 지파별로 제비뽑기를 하였는데, 그 첫 번째로 유다 지파가 제비를 뽑았다. 왜 유다지파가 가장 먼저 땅을 분배받았을까? 땅분배의 원칙은 인구수에 비례해서 제비뽑아서 분배하라고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민 26:53, “땅은 사람 수에 따라서, 그들의 유산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v56,“각 유산은 제비를 뽑아 나누어야 한다. 사람 수가 많은 지파들은 큰 땅을, 사람 수가 적은 지파들은 적은 땅을 놓고 추첨하여야 한다.”) 가장 인구수가 많은 유다지파가 먼저 분배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유다지파가 영적 장자 지파이기 때문이다. 장자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의 첩을 범하므로 잠자리를 더럽혔기에 장자권을 상실했다.(대상 5:1) 그 대신 요셉이 장자의 명분을 받아 에브라임과 므낫에 두 지파가 기업을 받았다.(대상 5:2) 하지만 야곱의 예언처럼 실제적인 영적 장자는 유다지파이다.(창 49:10) 이 지파에서 다윗왕이 나오고 메시야가 탄생한다. 거기에 유다지파 족장인 갈렙의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v6을 보면 유다족장 갈렙이 먼저 나서서 여호수아에게 옛일을 상기시킨다. 여호수아도 알고, 우리도 알다시피, 모세가 광야생활 초기에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도 정탐꾼으로 뽑혔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정탐꾼들은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막대기에 꿰어 어깨에 메고 왔고 석류와 무화과도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나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인지 보여준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는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 마디로 좋은 땅이긴 하나 그곳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고, 그들에 비해 자신들은 메뚜기 같이 연약하고 작은 존재이기에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그걸 들은 백성들은 절망감에 통곡하면서 모세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회중들을 가로 막고 옷을 찢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아닙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합시다. 능히 이길 것입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국 10명의 정탐꾼들은 믿음 없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보고를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보고를 하여 칭찬을 들었다. 그것을 갈렙은 vv7b-8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돌아와서, 내가 확신하는 바를 그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나의 형제들은 백성들을 낙심시켰지만,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습니다.”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는 바로 그의 믿음의 확신에서 나온 보고였고, 주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른 신앙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습니다.’ 이것은 갈렙이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민 14:24, “그러나 나의 종 갈렙은 그 마음이 남과 다르고, 또 전적으로 나를 따랐으므로, 나는 그가 다녀 온 그 땅으로 그를 데리고 가겠고, 그의 자손은 그 땅을 유산으로 받을 것이다.” 갈렙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랐다는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셨다. 이 부분이 v8, v9, v14에 세 번씩이나 반복 강조되고 있다. v8에서는 갈렙 자신이 그렇게 고백하고 있고, v9에서는 모세가 “그래서 모세는 그 날 ‘네가 주 나의 하나님께 충성하셨으므로’”하며 갈렙의 신앙을 인정해주고 있고, v14b에서는 여호수아가 “그것은 그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갈렙이 헤브론 땅을 차지한 이유를 그렇게 기록해놓고 있다. 갈렙의 하나님에게만 충성하는 신앙은 하나님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인정한 탁월한 신앙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신실하게 충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과 다른 사람이 그렇게 인정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충성된 신앙을 갖자.
여러분은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할 때 “예”라고 할 수 있나? 모두가 “예”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 여러분은 “아니요”하고 외치는가?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만 충성스럽게 따를 수 있나? 갈렙의 신앙은 바로 그런 신앙이다.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에 처하면서도 비록 소수의 의견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담대하게 개진하였다. 홀로 악에 저항하고자 하는 용기와 시류를 편승하지 않는 의지가 그에게 있었다. 이런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신앙이 그를 고립시켰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갔다. 오늘 우리가 남은 정복전쟁을 하려면 이런 갈렙의 신앙이 필요하다. 죽은 고기처럼 물결 따라 흘러가면 안 되고 산 고기처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요즘 같은 세속화된 세대에 제대로 신앙생활하려고 하려면 주위로부터 뭘 그렇게 별나게 예수 믿느냐는 핀잔을 좀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이나 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술자리를 만날 수 있다. 여러분은 그럴 때 어떻게 하나? 똑같이 마시며 어울리나? 아니면 무조건 도망가서 왕따를 당하나? 늘 말하지만, 술은 마시지 말고 끝까지 남아서 음료수 마시며 안주 먹으며 섬겨라. 지저분한 거 치워주고, 픽업해주고, 대화해라. 세상으로부터 도망하는 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도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충성된 자가 결국 승리한다. 요즘은 꼭 술 마시지 않아도 영업을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더라. 그런 문화와 분위기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 끝까지 싸워 이겨라. 직장생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억지로, 마지 못해서 하지 말고, 천직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일하라.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런 충성된 신앙은 흔히 외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 나도 집사야! 한 잔 해! 뭘 그렇게 별나게 믿어?” 오히려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 교회는 뭘 그렇게 전도에 목을 매냐? 좀 편하게 신앙생활해라.” 오히려 자칭 신앙 좋다는 전통 교인들로부터 무시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롭더라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그런 자녀가 되기 위해 온전히 하나님만 따르는 충성되고 신실한 신앙인이 되자.
2. 언약의 말씀을 붙잡는 신앙이다.
여러분은 신앙생활하면서 무얼 붙잡고 사는가? 여러분의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갈렙이 v12, “이제 주님께서 그 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하신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v6을 보라. “당신은 주님께서 나와 당신에 대하여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알고 계십니다.” v10에도 “이제 보십시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 일을 말씀하신 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며 마흔 다섯 해를 지내는 동안,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나를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여든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또 v12, “이제 주님께서 그 날 약속하신 이 산간지방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 때에 당신이 들은 대로, 과연 거기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은 크고 견고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그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갈렙은 다섯 번씩이나 ‘주님께서 말씀(약속)하신 대로’란 말을 사용했다. 즉 그의 요청은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참된 신앙은 늘 이렇게 언약의 말씀의 토대 위에 서는 것이다. 다른 근거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언약의 말씀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갈렙이 40세 때에 주셨던 말씀이다. 갈렙은 하나님이 그 언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광야 45년 동안 자신을 생존하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자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유도 바로 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이해했다.
갈렙은 왜 꼭 헤브론 땅을 달라고 고집하고 있을까? 기름지고 좋은 땅이라서? 그게 아니라, 그곳이 바로 45년 전에 하나님이 갈렙에게 주시겠다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이다. 신 1:36, “다만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이 그 땅을 볼 것이다. 그가 정성을 다 기울여 나 주를 따랐으므로, 나는 그와 그 자손에게 그가 밟은 땅((the land on which he has set foot)을 주겠다 하셨습니다.” v9에서 갈렙이 주장하는 대로, “그래서 모세는 그 날, ‘네가 주 나의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므로, 너의 발로 밟은 땅이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유산이 될 것이다.’하고 맹세하였습니다.” 갈렙이 정탐하면서 밟았던 땅이 헤브론이고 바로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기에 그는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여기 헤브론은 언약적 관점으로도 중요한 성읍이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이별할 때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떠난 후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곳이 바로 헤브론 산지이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 가나안 땅 막벨라 굴을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구입해서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삼았던 땅도 바로 이곳 헤브론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유업을 받은 후 유일하게 소유했던 땅이 바로 헤브론 땅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출애굽 할 때 자기 뼈를 거기에 묻어달라고 당부했던 땅이기도 하다.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의 숨결이 남아있는 추억과 축복의 땅 헤브론 산지인 셈이다. 그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갈렙은 45년 동안을 살아왔다. 이제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할 때 아직 점령되지 않는 산지, 강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지만 약속의 말씀만 의지하고 그 산지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갈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을 믿은 사람이다. 45년 전에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할 때 했던 믿음의 보고나 45년이 흐른 지금 85세 때나 하나님과 그의 언약을 꽉 움켜쥐고 따라가는 모습이 일편단심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런 믿음의 사람, 언약의 말씀의 사람이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개그우먼 조혜련 씨의 회심 간증이 참 감동적이다. 한 4년 전에 구원받았고 지금은 집사가 되었다. 그녀는 경남에서 1남 7녀 중 여섯 째 딸로 태어나 구박 받으며 고생도 많이 하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도와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했다. 막내 남동생을 낳을 때까지 어머니가 딸을 일곱을 낳았다. 딸 7명이 남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길 정도로 어린 시절 자신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뭐든지 열심히 했다. 한양대 영연과를 졸업하고 고생 끝에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개그우먼을 할 때도 남보다 하나 더 치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여자로서는 자존심마저 포기한 골름 캐릭터 연기조차 했다. 마치고 화장실에서 창피해서 울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마스터하며 해외진출까지 노렸다. 그러면서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하고 이혼을 하고 말실수로 방송을 하차하는 위기의 순간을 만났다. 나름 찾고 또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던 진리 때문에 공허함을 채우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남묘호렌게쿄를 믿었고, 위기의 순간에는 법륜 스님도 만났고,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이란 책도 읽고 직접 저자를 만나 영적 세계의 의미를 묻기도 했다.
안 믿던 시절, 조혜련 씨의 주위에는 코미디언 이성미 집사, 김지선 집사 등 그녀를 위해 기도해주는 많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그러던 조혜련 씨가 재혼한 남편이 기독교인이었고, 남편의 중보기도 속에 45세의 나이에 기적처럼 교회를 나가고 예수를 믿게 되고 이제는 하나님의 딸이 되었다. 남편과 예수영접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겠는가?”라는 질문에 30분 이상 대답을 못하다가 마침내 “예”하고 대답할 때 모든 무거운 짐이 다 벗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보니 의외로 모태신앙인인 남편을 비롯해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안 읽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기적을 구하고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거다. 그런 기적은 자신이 믿던 남묘호렌게쿄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니 그건 전혀 차원이 다른 진리였다. 그녀는 주님과 성경읽기에서 마음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제가 44년간 살면서, 많은 책을 읽고 종교를 접했지만 성경만 안 읽었던 거예요. 저는 신을 믿지 않았어요. 원숭이로부터 인류가 진화됐다고 생각했고, 불교의 법화경도 읽고 윤회도 믿었었어요. 믿든 안 믿든, 이 성경을 한 번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고 쓰기 원하는 게 이런 거 같아요.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안 읽잖아요? 하나님 말씀도 모르면서, 상상 속의 예수를 믿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 물어보면 ‘날 구원하신 분’이라는 간단한 것 외에 말하지 못해요. 하나님께서 ‘정말 너희들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구나’ 하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욕하다 돌아온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제게 하나님께서는 크리스천, 그리고 넌 크리스천들에게 제가 보는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바람을 잡아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네가 누구니? 딴따라 아니니? 삐에로 같은. 그러니 진짜 성경이 재미있다고 여기저기 다니며 이야기해서 성경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와라’ 그런 마음이신 듯해요.” 이제 그녀는 ‘성경만 안 읽다가, 성경만 읽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 그녀는 성경에 푹 빠져 산다. 매일 성경을 5장씩 읽고 녹음해서 공유한다. 성경구절을 낭독하는 찬송 앨범도 발표했다. 그 모친은 믿은 지 2년 되었다는데, 매일 성경을 4~5시간씩 읽고, 성경을 벌써 오독을 했다고 한다. 허리에 쇠를 박았는데, 성경을 그리 오래 읽으려면 몸이 힘들지 않냐 고 묻자, “사람이 죽어서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은 흙으로 돌아갈 텐데, 결국 뽀사질 육신 아껴서 뭐하겠노?” 그러시는데 정말 오래 된 권사님 포스가 느껴졌다. 조혜련 씨는 요즘 정말 성경 바람잡이로 많은 교회를 다니며 간증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붙잡고 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가만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이 느낌에 의존해서 신앙 생활한다. 그래서 뭘 하겠다고 했다가도 조금만 상황과 환경과 여건이 바뀌면 마음을 접는다. 어느 때는 막 웃고 업 되어서 그러다가 금방 다운되어서 우울해한다. 이렇게 감정에 의존하면 우리는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바뀔 수밖에 없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지, 우리 자신의 감정이나 우리의 믿음 그 자체가 아니다. 레온 모리스라는 신학자가 말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굉장한 믿음>보다 <위대하고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변덕스런 내 느낌을 의지할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자. 사람의 말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자.
목장사역도 생각해보라. 목원 바라보고 vip 바라보고 하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온다고 해놓고 말도 없이 안 오면 실망스럽다. 하나님 바라보고 말씀 붙잡고 사역해야 한다. 상황과 여건이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여러분의 남은 길을 달려가길 바란다.
3.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자세이다.
갈렙이 요청한 헤브론 땅은 산간지방에 위치하여 높고 험하고 여전히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견고한 성이었다. 이스라엘이 공격하기를 꺼려하는 성 중에 하나였다. 여기서 우리는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갈렙의 신앙을 본다. 전쟁에서 산간지방을 점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냥 올라가는 일 자체만도 힘들다. 올라가다가 지치고 올라가면서 성위에 적군에게 다 노출된다. 남한산성을 생각해보라. 아무래도 밑에서 올라가면서 싸운다는 것은 여간 불리한 전투가 아니다. 게다가 그 산지에는 골리앗 같은 거인 아낙자손들이 살고 있다. 정복하기 가장 까다로운 성과 적군이기에 여태껏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85세 노익장 갈렙이 위험부담을 안고 그 일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가 다 주저하는데도 내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바로 내가 정복할 산지요, 사명이기 때문이다. ‘뭐 구태여 헤브론 산지의 아낙 자손까지 건드릴 필요가 있을까? 이만 하면 된 것 같은데 계속 피를 보면서 더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생각으로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는 사명을 포기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렇게 안주하고 있었다.(18:3)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들을 두려워하며 포기하고 있었다.(17:18) 그런데 나이 85세의 갈렙은 하나님의 뜻이 포기되는 것을 보고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갈렙의 적극적인 신앙자세이다.
v12b,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이 말은 의심의 소리가 아니라 믿음의 기대의 고백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불가능은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요단강 건너기, 여리고 성 함락, 아이 성 함락, 남쪽 다섯 연합군과의 전쟁 승리, 북쪽 총 연합군 격파 등 어느 걸 봐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님이 하셔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갈렙은 그 믿음을 고백하며 용기백배하여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러한 믿음의 도전을 귀하게 보고 갈렙을 축복하면서 그의 요청대로 헤브론 땅을 그에게 주었다. 우리의 영적 정복전쟁인 영혼 구원에 포기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혜련 씨는 자신을 위해서 새벽기도 때마다 기도한다는 코이디언 이성미 집사에게 “언니, 그 기도 명단에서 내 이름 빼줘!”라고 하며 계속 거부하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 7년 동안을 중보 기도한 이성미 집사가 말하길, “나는 전도를 위해 기도하면서 주위에서 ‘조혜련이는 빼! 갠 안 믿을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다. 결국 하나님이 구원해주셨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의심하는 믿음이 문제다.”라고 고백했다. 조혜련 씨는 믿은 후 3년간 그녀의 변화를 본 모친과 언니와 여동생과 남동생이 구원받았고, 또 이혼 후 반항하던 두 자녀가 열심히 믿고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었다. 남은 네 명의 형제들과 주위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오늘도 힘쓰고 있다. 우리도 좀 더딜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가족 구원과 vip 영혼 구원을 포기하지 말자.
갈렙의 이야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연령 제한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또한 그가 어떤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여호와를 온전히 따르기만 한다면 그 상황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내가 아직 어린데 뭘 할 수 있겠나?’하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이제 이 나이에 무얼 하리.’ 그러고 연로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 평생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열심히 도전하며 살길 바란다. 이제는 편히 쉬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일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생명의 삶에 60세 이상 되시는 분들이 세 분이나 오셨다. 70세 넘으신 분도 오셨다. 우리 젊은 분들이 그런 걸 보고 각성해야 한다. 나이 드신 분도 하시는데 젊은 사람들이 편하게만 생활하려면 안 된다. 열심히 배우고 알아, 남 주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영적인 게으름이다. 나태함과 영적인 안일함과 싸워야 한다. 모든 영적 게으름은 그릇된 자기 사랑에서 나온다. 이걸 철저하게 십자가에 못 박자. 게으름은 영적인 축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다. 이것이 나의 발목을 잡고 10년 이상을 예수 믿어도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게 만든다. 오늘 갈렙은 85세인데도 여전히 영적으로 근면하고 성실하다. 그래서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을 자신에게 달라 한다. 갈렙은 40년 전에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던 사람인데 45년 후에 85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며 도전적으로 살고 있다.
말씀을 맺자. 갈렙의 이야기는 아직 남아 있는 사명을 어떤 자세로 수행해야 하는지 모델이 된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갈렙의 신앙을 배우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의지하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 같이 고백하자.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자. 아직 우리에게는 영적 싸움과 사명이 남아있다. 남은 싸움을 갈렙과 같은 신앙으로 무장하셔서 열심히 싸워 마침내 승리하고 축복과 상급 받는 성도이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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