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여신 신전.. 성 요한 교회에 오르다
터키 파묵칼레 Pamukkale 에서 버스를 타고 데니즐리 를 거쳐
출발한지 3시간반인 13시에 셀축 에 도착해 파리호텔 Paris Hotel 에
체크인을 하고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기차역에 들러 이즈미르 기차 시간을 확인합니다.
그러고는 셀축 시내를 걸어서 오른쪽에 성채를 오르는 언덕을 지나 10분만에
높은 탑이 서 있는 공원 옆에 자리한 에페스 고고학박물관
Efes Arkeoloji Muzesi 에 도착해서는 입장료 10리라를 내고 들어갑니다.
로마시대 도시 에페소스의 여러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을 끄는 것은
그리스의 달의신이자 사냥의 신으로 동방에 풍요의신으로 전해진 아르테미스 여신 입니다
에페스 박물관을 나와 야자수가 늘어선 대로를 걸어 이사베이 자미와 성 요한교회
이정표를 보고는 오른쪽 도로로 접어드니 이 길에 늘어선
야자수 가로수 는 어찌나 큰지 목이 아프도록 한참 동안이나 올려다 봅니다.
왼쪽 숲에 기둥이 하나 보이니 아르테미스 신전터 Artemis Tapinagi 인데 아르테미스 신전은
AD 401년에 최종적으로 파괴된후 방치되어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대영박물관이
후원한 존 터틀 우드가 이끄는 탐사대가 6년의 탐색 끝에 1869년 재발견 하였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BC 2천년 경에 아나톨리아 지모신 키벨레의 신전 을 세웠다는데, 천년 세월이
흐른후 그리스 이오니아인 들이 이주해 와서는 새로운 주인이 되어
유방이 무수히 달린 다산과 풍요를 상징 하는 "아르테미스 신전" 을 세웁니다.
에페소스(셀축)는 사르디스, 마그네샤와 함께 옛날부터 아시아의 아르테미스 신앙의 중심지로
아르테미시온 이라고 불린 아르테미스 신전 은 BC 8세기에 세워졌는데 칼리마코스는
아마존족 이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기원전 7세기에 옛 신전은 홍수에 의해 파괴됩니다.
이후 BC 550년경 옛 신전 부지 위에 리디아왕 크로이소스 가 자금을 대고 크레타 출신의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가 거대한 이오니아식의 디프테로스(二重周柱式)
이중주주식으로 건축하였으니 장대하고 화려하여 고대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입니다.
그후 BC 356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탄생일에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허영심에 병든 헤로스트라토스 (Herostratos 의 방화로 소실되어 버립니다.
신전은 알렉산더 대왕의 원조도 있어 B.C. 3세기 중엽에 재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길이
137m, 바닥 면적이 69m 로 쾰른 대성당의 2배 에 가까우며 기둥의 총수 127개라고 합니다.
이후 A.D. 263년 고트족의 약탈 로 다시 파괴된 후에 재건되었지만 기원후 401년에 최종적
으로 파괴된 후로는 방치되었으니 현재는 신전의 토대와 기둥 하나 그리고 조각 파편만이
남아있는데 이스탄불 하기아 소피아의 기둥 몇주는 여기 아르테미스 신전의 것이라고 합니다.
신전의 석재는 다른 건축물 재료로 쓰이고 여름에 황새가 원기둥에 집을
짓는다는데 하지만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목록을 작성한 것이라고 계시록에서
밝히고 있으니 예언서 인데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 사자에게 편지 보낸 일은 실제
시돈의 안티파트로스 는 당대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으니....
나는 전차(戰車) 를 위한 길이 나 있는 바빌론의 높이 치솟은 성벽 을 보았고,
알페우스가 세운 제우스 신상(神像), 공중정원, 태양의 거상과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높은 피라미드 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그러나 내가 구름 위에 치솟은 아르테미스의 집 을 보았을 때 그들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보라, 올림푸스를 빼면, 어떤 장대한 것에도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였구나"
아르테미스 신전을 떠나 야자수 가로수 길을 걸으면 왼쪽에 이사베이 자미 가 보이는데
이슬람 사원은 하도 여러차례 본지라 생략하고 마을로 들어가서는
오른쪽 언덕을 오르니 거기 왼쪽에 옛 건축물 잔해가 늘어선 고대 유적지 가 보입니다.
우선 언덕에 마주치는 성문 하나는 오랜 세월이 흘렀으면서도 너무나도 거대해서
위압감을 주네요... 성 안으로 들어가서는 10리라를 내고 입장하는데
여직원이 입장 마감 시간이 4시 30분이니 이제 25분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네요?
마눌은 놀라서 입장을 망설이는데 내가 해석하기로는 이 유적지 말고 그 위쪽 산 정상부에
있는 성채에 입장하는 마감시간 으로 알아 들은지라 마눌을 설득해서 함께 들어가는데
설사 이 유적지라고 하더래도 25분이 아니라 5분이 남았더래도 우선은 들어가고 볼 일입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겠습니까? 유적지는 옛 도시 인데 집이나 건축물은
대개는 파괴되고 기둥이나 벽 일부가 남은 정도라.....
고대 유적지에 상하수도를 갖춘 집들과 신전 터며 공공시설등은 오랜 세월이 흐른지라
페허에 가까운데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듯 미로 를 헤메는 기분입니다.
그러고는 드디어 언덕 중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그 중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걸로 보아 저 건물터가 필시 "성요한 교회 자리" 라고 생각합니다.
다가가니 옛 교회 건물 모형도를 하나 만들어 두었는데 서양인 참배객들의 모습이 마치
옛날 예루살렘의 분묘교회 나 베들레헴의 탄생교회 에서 보았던 순례자들 같은데
한가지 다른점은 감정이 최고조에 달해 격정에 흐느끼지 않고 조용하며 진지하다는 것이네요?
여기 셀축의 아야술록 언덕에 위치한 성요한 교회 는 예수님 12제자 중
순교하지 않은 "요한 사도" 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교회라고 합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 사후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여기 에페소스(셀축) 에 와서 살았으며
이 언덕에서 움막을 짓고 성서와 찬가를 저술 했다는데 인근 유적지는 발굴 중이랍니다.
그러니까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6세기경에 사도 요한 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 교회 를 지었고 7세기에는 주변에 성을 쌓았다고 전합니다.
이후 셀주크 투르크 에 점령된후 14세기 초에 이슬람 사원 으로 쓰이다가 황폐화되었으니
오늘날 교회터와 건물 유적만 남아 있으나 그리스도교인들의 성지순례 장소 입니다!
신약 성경의 예언서이자 마지막 문헌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사도 요한이 AD 95년 밧모섬에 유배 됐을때 예수가
환상으로 보여준 계시를 기록한 것을 요한계시록 이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지시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될 일을 기록한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 사자에게 편지 보낸 일은 실제 사건이라고 합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터키에 일곱 교회가 있었고 우상숭배 가 성행했기 때문입니다만
하지만“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표현처럼 사도 요한이 일곱 교회에 편지를 실제로
보낸 것이 아니라 계시록이 성취될때 사명자가 편지하게 될 것을 보인 것 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터키에 있는 일곱 교회가 편지를 받은 증거는 없으며 사도 요한도 후년에
여기 에베소(에페소스) 교회 담임이었으니 요한이 본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특성을 빗대 기록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언덕을 올라가서는 산 정상부에 위치한 높고도 견고해 보이는 성채 로
올라가는데 요한 교회 뒤편 언덕에 위치한 성채는 사도 요한의 무덤
세례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훗날 셀주크 투르크 시대에 성채가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산정에 위치한 성채로 들어가는 샛문 이 열려있기는 하나 우리는 다시
오토가르로 가서는 버스를 타고 쿠샤다스 를 보고는 셀축으로 되돌아와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쉬린제 까지 다녀와야 하는지라 그만 되돌아 서서 성문을 통과해
내려와서는 올라온 길과는 반대쪽인 왼편을 따라 걸으니 대로변에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기념품 숍이 보입니다.(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