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願)
제 1 층. 어리석은 여름.
눈 앞이 서서히 밝아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뭔가 끔찍한 장면을 본 것 같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지금 시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과 뒷목이 욱신거린다는 것 정도일까.
주위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그녀가 가장 불러주기를 바라는 소리,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소리,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의 소리다. 그가 그녀를 부르고 있다. 그녀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리카는 눈을 떴다.
"여기…는?"
"네리카! 정신이 들었어?"
네리카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녀가 항상 바라보던 남자의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라미티의 어깨 너머로는 어딘가를 응시하는 나츠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네리카는 힙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거야?"
뒷목을 빼고는 딱히 어딘가 아프다는 느낌을 들지 않았다. 뒷목을 부여잡으며 자신이 나츠에게 맞았다는 것을 기억해낸 네리카는 그녀를 향해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 전에 나츠가 입을 열었다.
"來るのか."
("오는건가.")
물론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기에 그녀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나츠가 바라보고 있던 방향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두 명의 사람이었으며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두 명이 걸어오고 있고, 한 명이 실려오고 있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었다. 네라를 업어오고 있던 실리가 워낙 몸집이 작은터라 네라의 거대한 몸에 파묻혀 있었기에 두 명으로 보였으며 실리가 업었기에 네라의 긴 다리는 땅에 조금씩 끌리고 있었다. 실리는 거대한 몸집의 짐을 업으면서 오고 있었지만 균형을 무너뜨리지도 않은 채 가볍게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네리카는 비로소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빠!"
날카롭게 외치며 그녀가 그들을 향해 달리자, 파라미티도 역시 그녀의 뒤를 따르려고 했지만 그의 눈에 나츠의 모습이 보였다. 나츠는 고개를 젓더니 한숨과 함께 팔짱을 끼고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태도에 파라미티는 두번 다시 네리카가 그녀의 아버지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리카가 달려오자 실리는 네라를 업으면서도 한 팔을 흔드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다들 무사하네~."
네리카는 실리의 인사를 무시하고는 바로 그녀의 등뒤의 네라를 잡아 흔들었다.
"아빠! 괜찮아? 아빠! 눈 좀 떠 봐!"
"아휴. 그렇게 흔들다간 돌아가신 분도 깨어나겠다. 조금 기다려."
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등 뒤의 네라를 조심히 땅에 뉘었다. 눈을 감고 있는 네라는 그저 편안히 잠든 모습이었다.
"아빠! 잠에서 좀 깨봐!"
네리카는 계속해서 네라를 흔들어댔다. 네라의 거대한 덩치가 그녀의 손에 의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어찌보면 피식 웃어버릴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그의 상태를 알아챈 일행은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네라를 흔들던 네리카는 실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거야, 아빠는!"
공격적인 그녀의 눈빛에 실리는 어깨를 살짝 들어올리더니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돌아가셨어."
네리카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세계가 무너진다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눈 앞이 새까매지고 네라가 그녀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이젠 좀 여자답게 살아야지."
"나 보고 치렁치렁한 옷이나 입으라고? 싫어!"
그녀는 그 후로도 한번도 치마를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에서야 치마를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사고 쳤다며! 빵집의 롤 녀석을 아예 두들겨 놨다던데!"
"그 녀석이 건드는 데 어쩌란 말이야!"
그녀는 그 다음 날 롤을 찾아가서 매우 강하게 안마를 해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에서야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라미티 녀석이 그렇게 좋냐? 결혼할꺼야?"
"당연하지! 그 녀석과 결혼하기 위해서 난 태어났거든!"
파라미티는 항상 그녀에게 일순위였다. 가장 먼저였고, 가장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에서야 그녀는 그보다 먼저이어야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미안해. 아마 화살에 맞고 즉사하셨나봐."
네리카는 현실로 돌아왔다. 왠지 눈에 거슬리는 여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별로 본 적도 없으면서 이상하게 파라미티에게 친한 척 하는 데다가 반말을 해대는 것도 재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데려온 아빠는 죽어 있었다.
"그나저나 이쪽은 어떻게 한거야? 어라? 이 불탄 자욱은 뭐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자신의 아빠의 죽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네리카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우와. 이거 번개라도 떨어진거야? 아니, 진짜 번개가 떨어진 것 같은데?"
네리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리에게 다가갔다. 실리 역시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할 행동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것이 네라의 죽음에 대한 실리의 자그마한 사죄였기에.
"너어."
"응? 왜?"
실리는 웃으면서 돌아섰고 더이상 그녀의 웃는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네리카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감정이 실린 일격이었고, 가장 마음의 고삐를 풀어버린 일격이었지만 실리는 넘어지지 않았다. 단지 고개가 돌아갔을 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며 씁쓸하게 웃는 실리를 보며 네리카는 더욱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네가. 네가!"
실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분노에 젖은 네리카의 목소리는 주체없이 떨렸다.
"네가 아빠를 죽였어!"
그녀의 외침에 실리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작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네리카는 그러한 그녀의 태도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보기도 싫었다. 아니 그녀의 모든 것이 싫었다.
"꺼져!"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에 실리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두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가던 길로 먼저 앞서서 나가는 실리의 행동에 일행은 당황했다.
"시. 실리경!"
"실리씨!"
히스와 파라미티는 그녀를 부르고는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네라와 네리카를 놔두고 섵부른 행동을 할 순 없었다. 그런 그들을 구제해준 것은 나츠였다.
나츠는 조용히 다가와 히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いってこい."
("다녀와.")
그녀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히스는 네라와 네리카를 흘깃 쳐다보고는 실리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실리경! 같이 갑시다!"
나츠는 그들의 뒤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몸을 돌렸다. 파라미티는 네리카를 달래고 있었고, 네리카는 그제서야 감정의 봇물이 터진 듯 엉엉 울고 있었다.
"네리카. 네라씨는 행복한 곳에 가셨을꺼야."
네리카는 파라미티의 품에 뛰어들었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그의 품에서 울고 싶다는 것 뿐.
"실리씨도 어쩔 수 없었겠지."
파라미티의 그 말은 역효과였다. 네리카는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울음을 멈추고 멀어져가는 실리들의 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섬뜩한 말이 흘러나왔다.
"개 같은 년. 너 때문에 아빠가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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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러 갑니다.
언제나와 같은 즐거운 행복을.
첫댓글 뭔 내용이야...? / 기도라니...? 무슨 기도? 새벽기도를 말씀하시는 건지? 교회 안 간지 오래되서 잘 모르는;;
헐 개같은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게 왜 실리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