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1.mp3 4.58MB 2022. 4. 11. 성주간 월요일(요한 12,1-11)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다.』
성주간 월요일의 복음은,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고하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바로 앞에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신고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요한 11,57).”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공개적으로 ‘지명 수배’를 한 상황입니다. 사도들과 신자들도 그 지명 수배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11장 53절에는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는 말이 있고, 또 12장 10절에는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들과 신자들이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어떻든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요한 12,1-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게 되면, 베타니아에 있는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남매의 집을 숙소로 삼으셨습니다(마르 11,11). 그러나 지금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진 집은 그들의 집이 아닙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는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마태 26,6; 마르 14,3). 그 잔치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시몬이 자신의 병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일을 축하하는 잔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요한 12,3).”
마리아의 행동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새겨 준 일입니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라는 말은, 참석자들이 그 일을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더라도,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거행하려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이 장례라는 것은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예수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최상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요한 12,4-6).”
여기서 유다의 말은, 마리아의 순수한 신앙심을 부각시키는 배경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설명하는 말씀을 하시게 된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마리아의 신심과 존경심은 보지 않고, 오직 돈만 보았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마리아는 ‘향유 값’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다는 마리아가 쓸데없이 돈을 낭비했다고 비난하는데, 어쩌면 그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 자체를 ‘낭비’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가 부자여서, 비싼 향유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 남매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신심 깊은 사람들’입니다.) 또 마리아가 예수님만 생각하고 가난한 이들을 외면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움을 받는 사람들’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 생각은 고정관념이고 편견일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도 ‘가난한 이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고, 예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오랫동안 돈을 모았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7-8)”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리아도 아니고, 유다도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만 바라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니라 마리아만 바라본 사람들이 많았고,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라는 말씀은, 마리아를 비난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마리아 말고 당신을 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내 장례를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고 있었던 마리아의 신심을 기억하여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향유를 이미 모두 부어버렸기 때문에 간직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이 말씀은, 정상적인 장례식을 거행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의 죽음이 긴박하고 비참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의 부활을 암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이라는 말씀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은 너희가 평소에 늘 해야 하는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특별한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가난한 이들을 잠시 잊어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가난한 이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당신 사업이 절정에 도달하는 때라는 뜻입니다.)
원문보기▶ Rev.S.Moyes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