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5일(월)
* 시작 기도
주님...
하나님의 공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합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기브온 족속과 맺었던 그 언약을 사울 왕이 어겨 그들을 죽였습니다.
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이나 계속하여 기근이 들게 하심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이를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을 받은 다윗은 사울의 남은 자들 중에 다섯을 붙잡아 기브온의 손에 넘겨 공의를 시행하도록 하였습니다(삼하 21장).
이런 공의가 저에게도 마땅히 시행되어야 함에도 지금까지 유예되고 있음은 나의 義나 잘남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義인줄 아오니 그 은혜 앞에 엎드릴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사방을 둘러봐도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오나 이 시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히 12:1-11
제목 : 세상의 fun을 내려놓고 오직 그 나라의 Joy를 사모하며 누리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가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이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 나의 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주어진 뜻을 이루고 성취하였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 높은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으시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늘의 기쁨(Joy)으로 인함이다.
이 기쁨 곧 Joy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오기에 이 모든 고난을 감당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나도 나아가는 것이다.
그 길은 곧 십자가의 길이요 부끄러움의 길이다.
비록 세상이 날 향하여 비난하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요 부끄러움의 길이라면 나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복음을 위하여 받는 수치와 부끄러움은 아버지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걸어가는데 심지어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이처럼 피 흘리기까지 싸우기 위해서는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주를 하되 오직 우리의 목표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십자가와 고난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포기하고 싶어하는가?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갈등하는가 말이다.
또한 진정한 기쁨(Joy)이 거기에 있는데 우리는 만물 안에 있는 한낱 즐거움(Fun)에 마음이 빼앗겨 눈을 들어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은 오직 날마다 아버지를 바라보시고 아버지와 교제와 사귐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나는 기쁨의 근원이신 주를 바라보지 않고 자꾸만 무거운 것이나 얽매이게 하는 죄에 빠져 그런 fun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의 것에 매몰되어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주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나와 같은 죄인을 끝까지 참으시고 십자가를 대신 지신 우리 주님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육신의 아버지가 친아들을 징계하지만 그 아버지를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한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을 책임지신 영혼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땅에서도 징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아들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과 같이 대우하시므로 징계는 마땅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를 징계하시되 결코 진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 징계는 곧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당신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비록 받는 징계가 당시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슬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징계를 받고난 후에는 그로 인하여 연단을 받게 되며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
징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징계가 없다면 그 관계는 온전해질 수 없다.
아버지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을 때는 징계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징계를 받는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는 존재였다.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전에 이미 범죄를 하였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는 죄의 결과를 얻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들 역시 그로 인하여 죄의 몸으로 태어났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담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하나님과 분리된 자가 된 것이다.
(고전 15:22a)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 길은 다름 아닌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길이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가죽옷을 입혀주실 것인데 그 가죽옷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창 3:15, 21).
이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은 생명을 얻게 된다.
(고전 15:22b)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생명)을 얻으리라.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믿음은 결코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그 목표는 그리스도이며 그 목표를 향하여 경주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징계를 받을 때 인내하고 복종하는 일을 통해서 그 결과가 드러난다.
이 일에 그리스도께서 창시자와 완성자가 되셔서 먼저 그 길을 가셨고 또한 목표에 도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
(히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 또한 고난을 통해 완전한 구원자가 되신 아들을 그리스도로 믿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아들과 같이 대우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와 함께 하늘의 영광과 기쁨(Joy)를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 것이 마땅하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나는 경주자다.
세상에 속한 존재물을 얻기 위하여 달리는 경주자가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과 같이 그 나라와 거기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달려가는 경주자이다.
그런데 나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나라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하면서도 주변을 돌아보며 내 마음을 얼마나 많이 빼앗겼는지 모른다.
육신의 정욕과 재물에 대한 탐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 등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멸 받아 마땅하며 지옥의 아랫목이 나의 거할 처소여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아주 죽이지 않으셨다.
게다가 날 대신하여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벌거벗음의 수치를 당하게 하셨다.
그 고통과 부끄러움은 내가 받아야 할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러한 고통과 부끄러움을 참고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 보좌에서 누릴 영광과 기쁨(Joy) 때문이었다.
이제 나 또한 세상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Fun)을 벗어버리고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한 주의 첫 날, 나의 첫 걸음은 그 나라를 향한 발걸음이다.
이 자리가 주께서 바라신 기쁨의 나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날 구원하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이 자리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임한다.
(11절)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의와 평강은 결코 내가 원한다고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아나이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이오니 오늘도 주께서 심판하시는 자리에 그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하옵소서.
(시 94: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아 26: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영혼이 징계와 심판을 통하여 공의를 얻게 하시고 공의의 열매로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구원을 이루신 주님을 향하여 오늘도 걸음을 힘차게 내딛게 하시고 그 자리가 바로 아버지의 품이요 하나님 나라이오니 그곳만이 나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fun을 내려놓고 오직 그 나라의 Joy를 사모하며 누리는 자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