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이었다.
난 같은 반 이푸용(가명,21세), 김빈구(가명,19세) 이 두 사람과 교양수업
10분을 남기고 매점을 갔다.
간단히 음료수를 먹으러 갔던 거였는데.. 식성좋은 푸용은 음료수 하나로
만족할리 없었다..
속이 허하다던 푸용은 매점쪽을 유심히 살폈다.아주 번뜩거리는 눈빛으로..
몇초 후 그의 초점이 어딘가에 꽃혔으니...
야채 크래커였다!!
해태인지 롯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아무튼 야채 크래커였다!!!
시간은 5분 정도 남은 상태였고..매점과 강의실의 거리를 계산했을 때,
야채 크래커를 다 먹기엔 좀 빠듯해 보였다..
난 지각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푸용과 김빈구는 배고픔에 바로 야채크래커의 겉옷을 벗겨내고
있었다.내가 말릴려고 손을 뻗었을 땐, 이미 야채크래커의 상의가 벗겨져 있
었다.비록 얇고 작아 보였지만 아주 촘촘하게 수많은 크래커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난 별 생각이 없었지만,모두의 지각을 막기 위해 부리나케 야채 크래
커 5개를 입에 쑤셔 넣었다.더 빨리 삼키고 더 빨리 먹기 위해 포카리 스웨트
도 한모금씩 첨가해 주었다.
평상시 야채 크래커는 정말 맛있었다..
난 크래커 하나 하나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었다.
"음~ 이건 당근.. 음~ 이번 건 오이.. 음~ 넌 양파로구나!! 크래커 속 야채들
아!! 내 몸에 살과 피가 되주지 않으련~!!"
난 평소 남달리 야채 크래커를 좋아했으리라...
그러나 이 순간엔 정말 진흙을 삼키는 기분이었다.크래커 하나 하나 다 목에
걸렸다.수업 시간은 점점 다가왔고,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야채 크래커는
줄어들지 않았다.
느긋하게 야채향을 즐기며 먹던 이푸용과 김빈구도 의외로 양많은 야채 크래
커에 적잖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들이 당황하며 크래커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는 그 순간에도, 난 절대 지각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빌어먹을
크래커를 억지로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포카리 스웨트도 떨어지고 목은 점점
메어왔다.. 그렇다고 물 뜨러 갈 시간도 없었다..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고.. 야채 크래커들이 식도를 조여들고 있었다..의식은
점점 혼미해졌고...그 동안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있었다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도 먹어야만 했으리라...........
먹어야만 했다..!! 그 빌어먹을 크래커를 집어 삼켜야만 했다..!!
그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야채크래커를 억지로라도 식도에 꾹꾹 눌러 담아
야만 했다..!!!
야채 크래커를 사온 장본인 이푸용도 그때서야 후회하기 시작했다.김빈구 역
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야채 크래커를 무지막지하게 집어 삼켰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우셨던 것일까..?!!
우리가 야채 크래커를 다 해치웠을 땐,기적적으로 약 3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
다!! 뛰면 지각을 면할수 있었다!!
그 동안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 왔던 나를 비롯해 이푸용과 김빈구는..
그 촉박한 순간에서도 야채크래커 잔해와 먹은 캔을 치우는 도덕성을 보여
주었다.
1초를 다투는 그 촉박한 와중에서도, 우리 세 사람은 우리 학교 청결과 매점 직원들을 배려했고..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치우는 투철한 책임감을
보인 것이었으리라....
우린 약 2분을 남기고 부리나케 매점을 나왔다.근데 생각보다 가까웠다.
바로 앞에 강의실이 보였다.뛰지 않았다.바로 앞에 있었기에.....
걸음에 힘이 실려 있었으나.. 우린 여유롭게 강의실로 향했다.지각이 아님을
확신했다.
같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는 거에..우린 서로 쳐다보며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었다.야채크래커도 우리의 뜨거운 의리와 단합앞에 무너진 것이다!!
우린 행복한 얼굴로 아주 위엄있고 당당하게 강의실로 들어섰으리라..
난 너무 당당했는지.. 8자로 건들건들하며 들어갔다.
내가 그 동안 수많은 곳을 건들대며 들어가 봤지만,강의실은 처음이었다.
강의실 분위기때문에 그곳에서 만큼은 건들걸음을 자제했었다..
그러나 뭔가 해냈다는 그 뜨거운 무엇인가가 날 강의실에서까지 건들대게
만든 것이었다..
난 들어가려고 문쪽으로 갔다.그런데..한 목사님과 여자분이 나를 강하게
거부했다.못들어가게 했다.
나보고 2층으로 가라고 했다.내 자리가 1층이라고 말했는데도 2층으로 가라고
했다.
난 속으로 아~ 오늘은 그냥 아무데나 앉아서 체크하나 보다..오늘 무슨
날인가..? 라고 생각했다.계단 쪽을 보니 이미 2층으로 올라가는 이푸용과
김빈구의 섹시한 다리가 보였다.난 급히 그들의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가니..
여자분이 저쪽으로 앉으라며 자리까지 인도해주셨다.
1층에선 맛보지 못한 기분이었다.마치 1등석에 앉는 것 같았다.
갑자기 가슴 속 깊히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아~!!!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지각을 면하게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주님... 아멘..슈퍼 울트라 아멘!!!!
가까이 이푸용과 김빈구의 모습도 보였다.
출석체크 용지로 보이는 종이가 한장 한장 전달되었다.
팬이 없어서 못쓰고 있었다...난감했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옆에 모르는 다른 과 여학생이 알아서 나에게 팬을 빌려주는 것이었다!!
난 출석용지에 학번을 적으며,다시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오..주여....어찌 죄많은 절 이리도 도우시나이까....제가 무엇이관대....
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채플을 다른 때보다 씨리어스하게 경청했다.
내가 그 동안 이토록 초롱초롱한 눈으로 목사님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야리기 일수 였는데..
근데..이상하게도 아까부터 이푸용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똥이 마려워서 그런가했다..
혹시나 하고 내손에 쥐어져 있던 출석체크 용지를 다시 한번 펼쳐 보았다.
(읽고 계신 분 다 예상했겠지만....)
지각체크 용지였다...!!
쭉 가슴 속 깊히 파고들던 목사님의 연설이 점점 귀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알수 없는 뜨거운 무엇인가가, 야채크래커 잔해라는 걸 깨달았
다..급히 먹느라 소화가 안된게지....
교양수업이 끝나고..
나와 이푸용 그리고 김빈구는 "씨발 야채 크래커..!!"란 말을 내뱉었다!!
500원짜리 야채크래커..이푸용이 300원만 있었을 때,내가 200원을 보태지만
않았어도.. 이런 쪽팔린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난 무정한 하늘을 향해 울분과 분노의 소리를 부르짖었다!!!
"하나님 미워잉~!! 왜 우릴 안 도와주셨어염? 왜 착한 우리들을 고난에
빠뜨리세염~?!!" 이라고....
아무튼 그 후로 우리 세 사람은 쌩 야채를 먹는 한이 있어도,결코 야채크래커
는 먹지 않는다.......
<끝>
활화산열혈남아riue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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