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갈릭 시 로라'
(maligalig si lola)
제게 친 딸과도 같은, 아주 꼬마일 때부터 안아주며 데리고 다닌 크리스틴(Christine)이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또 저희 선교 사역지인 필리핀 민도로섬 반수드 중심가에서 예쁜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3월에(2025년)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는 크리스틴의 배려로 크리스틴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머물렀습니다.
저희 집을 교회 성경학교 공부실로 다 내어주고 살림도 다 나눠주고 해서 머물 곳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호텔에 머무는 열흘 남짓 동안 늘 즐거운 파티를 열었습니다. 원래 저희 필리핀 집은 중심가에서 몇 km 떨어진 산기슭, 강가에 있는데(교회 건물과 함께) 거리가 멀어서 자주 찾아오지 못한 사람들이(특히 어릴 때부터 제가 가르치고 도운 아이들) 모두 모여 늘 식사를 함께 하고 차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호텔 방이 집보다는 훨씬 비좁아서 그리 편하진 않았으나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도 있고 크리스틴이 늘 먹을 것도 가져다 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젠 집을 내어주었으니 선교지에 머물 때마다 크리스틴과 함께 머물게 될 것 같습니다.
짐을 크리스틴 호텔로 옮기고 정리하던 첫날에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크리스틴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니 'maligaligsilola'라고 합니다. 처음 보는 이상한 말이어서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maligalig si lola'를 붙여서 쓴 것이고 '잔소리가 많은 할머니'라는 뜻이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크리스틴에게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시고 사실 그 할머니가 크리스틴을 키우다시피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외롭고 조용한 아이로 자라던 예쁜 크리스틴을 제가 항상 데리고 다니고 또 저를 늘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가 크리스틴을 잘 키우기 위해서 잔소리를 많이 하셨겠지요. 그리고 크리스틴은 할머니 잔소리 덕분에 어여쁘게 잘 자랐습니다.
크리스틴의 할머니는 반수드 시장에서 장사하다가 이젠 연로하셔서 그만두고 쉬고 계십니다. 저희와는 오랫동안 대단히 가깝게 지내고 계신 분입니다.
자기가 운영하는 호텔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잔소리 많은 할머니'라는 데는 할머니의 잔소리, 돌보심에 대한 크리스틴의 감사하는 마음과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필요한 잔소리는 사람을 살리고 바르게 합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잔소리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