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집 주모와 걸판진 협객들(천안 중앙시장)

[나먹통아님]

천안 중앙시장

 

드디어 시장 앞에 나즈막히 솟아있는 남산에 하루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남산 공원 입구에 올망 졸망 모여 앉아, 염소 수염을 쓰다듬던
허허 백발의 구부정한 할아버지들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저자거리엔 하루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었다

 

천안 중앙시장 어물 골목

 

폐점시간이 임박한 식육점과 어물전, 생선가게는, 꽁치 대가리, 갈치 대가리, 닭 대가리들이

제멋대로 나 뒹굴고 있었고, 시장 앞 남산공원 입구에 모여 있던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날 할머니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들을 하고 계시기에
시장앞 공원 입구에는 할아버지들만 올망 졸망 모여 앉아 계셨을까 ?

 

오호라 ! 이제야 알것 같다 !

시장 앞 공원 입구에 할배들이 올망 졸망 모여 앉아, 염소 수염을 쓰다듬고 있을때,

할매들은 시장 골목 노점에서 보따리 풀어놓고, 호박, 오이, 마늘, 양파, 무우,

고추 등등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늙어서 까지도 할아버지들은 바깥 어른 노릇을 하시느라 대단히 노고들이 많으신것 같다
젊은 시절, 남자의 얼굴은 두번 다시 쓰기 싫은 이력서와도 같았고

여자의 얼굴은 씨도 때도 없이 무엇인가 요구를 하는 청구서와 같다고 했는데

이제는 세월이 흘러, 할배, 할매가 되어 버리니까,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늙으막에 할배들의 얼굴이 청구서가 되어 뿐지고

그 반대로 할매들이 이력서를 쓰고 있는것 같았다

 

천안 중앙시장 입구에서 야채노점을 하는 할매들

 

호박을 겨우 세개만 놓고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한 개에 천원씩인데 다 팔아 봐야 삼천원이다

 

지나는길에 호박 3개 몽땅 사버리면서

이미 폐점시간이 임박한 시장을 한바퀴 돌아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천원짜리 호박을 딱 3개 놓고 팔던 구부정한 할머니는

어데서 호박이 나왔는지 이번에는 2개를 그릇속에 펼쳐놓고 있었다

 

이번에는 지나던 어느 아줌마가 호박2개를 몽땅 팔아 주었는데 할머니는

옆집 노점판 좌대 아래에있는 요술보따리에서 호박 2개를 더 꺼내 펼쳐 놓는것이 아닌가 ?

 

아하 ~~ 저런 수도 있었구나 !

나도 장사꾼이지만 저런 장사 방법은 오늘 첨 본다

나도 저 호박 장사 할머니에게 한수 배워야 할것 같다 ^_^

 

이 곳은 쥐약 장수가 쥐약을 팔고있는 시장통 골목인데, 저 번에는 쥐약 하고 바퀴벌레 약만

팔더니, 이번에는 물쥐약 하고 이약, 그리고 개미약까지 가지고 와서 팔고 있었다  

 

쥐약하고 개미약은 사람들이 사가는것을 더러 본 적이 있었는데, 이약하고 빈대약을 사가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한 번 도 본 적이 없었던것 같았다. 그래도 누군가 사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장날 마다 와서 팔텐데, 도대체 이약 하고 빈대약을 사가는 사람들이 누구까 ?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지만, 오늘 하루 웬종일 장구경 하는사람들도 별로 없는데다, 저 쥐약장사

는 오늘 장사 완전히 조지고 있는것 같아 그냥 지나쳐 버렸다. 물어본 김에 이약 하고 빈대약

사가라고 하면, 꼼짝없이 사가야 할 판인데, 그 놈의 이약과 빈대약을 워디다 써 먹을건가 ?

 

두어개 사다가 이브자리 이불가게 아재하고, 아즈매 하나씩 골고루 나누어 줄것을 그랬나 ?

그리고 부산의 이종보이 한테도 하나 보내 주고, 승호 엄마도 하나 주고, 그리고 또....승호하고

지윤이 한테도 하나씩 줄걸 그랬나 ?

빈대나 이 같은것 있으면 비오는날 집에서 빈대떡 붙여 먹으며 빈대나, 이같은것 잡으라구... 

 

천안 중앙시장 - 이곳 천일시장을 기준으로 왼쪽은 천일시장, 오른쪽은 중앙시장이다

 

천안 중앙시장 - 이곳 천일시장을 기준으로 왼쪽은 천일시장, 오른쪽은 중앙시장이다

 

천안시에서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21세기 천안을 만들자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는데

쥐새끼들을 싹싹 잡아 죽여 인류공영에 이바지 하자고 외치던 더벅머리 쥐약장사도 보이지 않고
좀약장사, 고무줄장사, 수세미 장사, 머리핀 장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쯤 이 별이 빛나는 밤에 어디에서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
텅빈 저자거리에는 둥근달 하나가 전봇대에 걸려있다

 

어둠이 내린 천안 중앙시장(천일시장)

 

천안 중앙시장 어물 골목

 

좁은 터널을 지나듯 시장구석 골목을 돌아 굴속같이 좁은 주점에 낮은 포복을 하듯 기어 들어갔다

 

천안 중앙시장 보령집

 

일어서면 머리가 천정에 닿을것 같고 뻗으면 손바닥이 벽에 닿을것 같은

70년대 시절의 판자집같은 왕대포집이다

 

저 주점에는 70이 조금 넘은 할매가 하고 있는 주점이었는데 얼마전에 주인이 바뀌어 버렸다

너무 연로해서 힘에 부치기 때문에 대포집을 그만 접고 자손들과 함께 산다고 한다

 

저곳을 찾는 손님들은 시장 난전 장꾼들과 이 부근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생선장수 할매와 노숙자들도 간혹 찾아 오는곳이기도 했었다

 

노숙자들이나 주머니에 돈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외상술도 마시고 가는데

외상값이 십만원 가까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소주 한 병 이천원, 막걸리 한병 이천원, 안주는 꽁짜로 콩나물국...

그런데도 외상값이 십만원이면 쐬주가 50병이다

 

쐬주를 50병씩 외상으로 주는 할매도 무던하기는 하지만 뭐 외상값 받을 생각을 하고 주었겠나 ?

날은 춥고 갈곳은 없는데 쐬주 한 잔 생각은 나지...주머니에 돈은 없지...워쩌것나 ?

일단 먹고 나서 외상 해야지...^_^

물론 외상값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예 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숙자들이었다  

 

 

대역 - 부산 광안리에 사는 이종보이...^_^

그 주점에는 오늘 낮동안 시장에서 보았음직한 사나이 하나가
새마을 모자를 뒤집어 쓰고 술 한잔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있었는데
일제시대 종로의 협객 김도깡이보다 더 의리가 있어 보였다

 

케케한 검은 양복 새마을 모자에 하얀 쉐모 구두를 신은
이 시대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의리로 똘똘 뭉친 사나이 같았다

구태여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아도 손 동작, 발동작 하나 하나에
지나간 세월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이 시대의 보기 힘든 협객이 틀림 없어 보였다

 

" 으~음 ! 보아하니 그래도 이 시장에서 한 가락 하시는 인물님 같습네다 "

" 꺼얼 껄 ! 역쉬 인물이 인물을 알아 보는뱁 !

오랫만에 우리 당대의 인물님들끼리 만났응께 얼큰하게 한 잔 하입시다 "

술잔이 오고 가고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두리며 거나하게 노래를 불렀다

 

아 아아아 ~ 으악새에 슬피우우니이 ~

가을인 가아아아요오 ~

 

지나아치인 ~ 그으 세에월이이 ~

나아를 울립니이이다아 ~

 

여울에 아롱 저어즌 이르러지인 ~ 조가악달 ~

강물도 출렁 출렁~ 목이 멥~ 니이 ~ 다아 ~

 

노래 소리가 때에 쩌들은 현광등 불빛을 타고 시장골목으로 울려 나간다
이런때는 돌아가신 루치아노 파바로티 형님께서 살아 오신다 해도 맥을 못출것이다  
70이 넘은 주모도 끝장나게 장단을 잘 맞춘다

걸죽한 목소리 하나
케케한 몸동작 하나

그야말로 움직이면 움직이는대로
동작 하나 하나 법문 아닌것이 없고 예술 아닌것이 없다.
나는 앞으로 30년이 더 걸려도 저 동작 저 목소리를 터득하기 힘들것 같다 

 

아아 ~ 뜸북새 슬피우우니이 ~

가을인 가아아요오 ~

 

잃어진 ~ 그으 사아~랑이 나를 울~립니다아 ~

들녁에 떨고 서어었는~ 임자읍는~ 들구욱화아 ~

 

바람도 사알랑  사알랑 ~ 맴으을 돕~ 니다아 ~

그때 주모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하던 장단을 뚝 멈추고 주름 잡힌 눈가에 잠시 우수가 고여온다
아마 그 주모가 왕년에 명월이 였었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얼굴은 이력서이고 녀자의 얼굴은 청구서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은 청구서가 되어 버렸고
할머니들의 얼굴이 이력서가 되어 버렸다

그날 나는 보령집에서 이력서도 쓰지 않았고
주모도 청구서를 발행하지도 않았다

 

천안 중앙시장 달봉이네 방앗간

 

천안 중앙시장 보령집

 

도인은 깊은 산중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천안 중앙시장바닥 보령집에도

머리위에 무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칠십 몇년 묵은 도인이 있다

담배 한대 꼬나물고 술잔에 먹칠을 한다해도 
보령집 주모에게는 법문 아닌것이 없다.

 

아무리 염치없이 엉겨붙는 날파리 일지라도
외로운 날엔 그래도 반가운거 !  

아는가 ? 
이 광활한 세상은 정지해 있고

시간조차도 흐르지 않는 시장구석의 대포집

 

다만 왕대포를 파는 주모와 주객만이

저 하늘에 흘러가는 한장 뜬구름 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뿐 

주모여 !

어짜피 살아 못 버릴 뜬 세상
막걸리 한 사발로 뒤짚어 엎어 버립쉬다

기울어지는 해도 뒤집어 엎고  
떠오르는 달도 뒤짚어 엎고

 

취하여 목이 타면 은하수도 들러 엎어 버리고
우리네 인생도 왕대포잔 처럼 기울이고,

 

미친춤 들친춤 날라니 춤에

주전자나 실컷 두두리며

입이 말라 비틀어지도록 노래나 부릅쉬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처엉춘은 즈을거워 ~

피었다아~가  시들으면 다시 못 필 내에 청춘 ~

 

마아시고 또 마시어 취이하고 또 취해서 ~

이이 바암이 새기전에 춤을 춥시다아 ~

 

부우기 부우기 부기우기 ~

부우기 부우기 키타 부우기 ~

춤을 춥시다아 ~

 

노래소리는 현광등 불빛을 타고

어두컴컴한 시장 골목으로 울려 나간다

[nongbu]

나는 언제나 시상일 접고 이러고 살 날이 오까... 오는 날이 가는 날이까? ^^

[샤도우]

중앙시장통 집에서 멀지 않응께 천안 터줏대김님 께서 날 한번 잡아 보이소~!^^천안주민끼리 한번 몽쳐야 안되겠는지요..목통아님님 하루만 따라 댕기도 세상 구경 반은 하지 싶은데..^^*

[사입손청휘파]

덕분에 보령집에서 한잔 자알 마시고 갑니다.

[이영희]

옛날 노래에 나오는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시요이..

[샤도우]

영희님^^ 그곳이 바로 우리집 문턱 앞에 있다지요....능수버들 늘어지고 지금도 삼거리엔 옛 주막도 있답니다..거기서 동동주 맛있다고 홀짝 거리다가 나중에 일어나지도 못하지만.....^^*

[이영희]

샤도우님이 사진이라도 올려주시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