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은 아직 실재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별이 죽어서 만들어지는 천체이다. 웜홀이라는 이름은 사과의 벌레 구멍에서 유래했다. 요즘은 흔치 않지만 예전에는 사과의 한쪽과 다른 한쪽을 연결하는, 애벌레가 만든 구멍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구멍은 사과 표면의 서로 떨어진 두 지점을 껍질의 곡면을 따라가는 것보다 빠르게 연결해 주는 지름길인데, 우주에도 중력 붕괴로 인한 블랙홀의 변종으로 이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웜홀의 존재와 그를 통한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제시한 이가 바로 물리학자 킵 손이다. 그가 1988년에 발표한 논문의 이름에는 영화“인터스텔라‘의 제목과도 깊이 연관되는 인터스텔라 트래블, 즉 항성간 여행이 등장한다.
원래 웜홀의 개념은 입구인 블랙홀과 출구인 화이트홀로 나뉘어 있었다. 화이트홀은 블랙홀과 반대로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토해내는 흰 구멍으로, 그 존재 근거는 블랙홀에 물체가 빨려 들어가도 질량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므로 그 질량을 어디론가 밖으로 방출해야 한다는 수학적 가정이었다. 그런데 블랙홀이 강력한 제트 형태로 가스를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되자 용도폐기 되었다. 그래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구분하지 않는 킵 손의 웜홀모델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옛 이론에 따르면 블랙홀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고 화이트홀로는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한쪽은 언제나 입구, 다른 쪽은 언제나 출구다. 따라서 웜홀을 발견한다 한들 왕복 여행은 불가능 하다. 그런데 킵 손의 웜홀모델 덕분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웜홀을 통해 왕복 우주여행이 시작될 수 있었다. 문제는 블랙홀 주변에서는 강한 중력으로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즉 블랙홀의 중력에 의한 거대한 조석간만의 결과로 산더미만한 파도가 생기는가 하면, 행성표면에서 단 몇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만 우주공간의 인듀어런스호에서는 수십년이 지나는 시간지연 현상이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견했듯이 이런 현상은 블랙홀같이 중력이 아주 강한 곳 주변에서 일어나는데,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늘 일어나고 있다.
모든 물체에는 질량이 있고, 질량이 있는 곳엔 중력이 있고, 크건 작건 중력은 반드시 시공간을 왜곡한다. 일상에서는 그 효과가 너무 적어서 알아채기 어렵지만 정밀한 실험을 통해 그 존재가 증명되었다. 가장 극적인 예는 2010년 미국표준기술연구소의 제임스 칭원 초 박사팀이 37억년에 1초미만의 오차를 가진 초정밀 광시계를 이용해 지표에서 두 뼘이 채 안 되는 높이에서도 중력의 차이에 의한 시간지연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33㎝ 높이에 놓은 시계가 지면의 시계에 비해 10경분의 4 정도 빨리 간다. 이것은 인간이 모두 정확히 79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33㎝ 높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900억분의 1초 일찍 죽는다는 뜻인데, 물론 실생활에서의 영향은 전무하지만 물리학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진다.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
그런데 이 시간지연 효과가 우리 생활 속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데, 늘 활용하는 내비게이션의 위성위치추적장치(GPS)가 바로 그것이다. GPS는 지구의 중궤도인 2만㎞ 상공에 떠 있다. 따라서 지구의 중력이 지표보다 훨씬 덜 미치기 때문에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위성의 내부시간이 조금씩 빨리 간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GPS위성은 시속 1만3800㎞의 고속으로 지구를 공전하기 때문에 중력효과와는 별개로 내부시간이 늦어진다는 점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크거나 속도가 빠르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시간이 늦게 간다. 그런데 GPS는 약한 중력 상태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전자(약한 중력)는 시간을 빠르게 하고 후자(빠른 속도)는 느리게 한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GPS 좌표를 정확히 알려면 컴퓨터를 통해 이 빨라짐과 느려짐의 오차를 계산해서 보정해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위치는 매번 엉뚱하게 나타나고 내비게이션은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터스텔라 속 기묘한 세상은 실은 우리 삶에 이토록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