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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토요일 맑음.
별로 할 일 없는 푸쉬카르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후레쉬로 더듬거리며 숙소에서 내려왔다. 주인 할머니만 일어나 청소를 시작한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공기는 신선하다. 버스정류장 까지 걸어가는데 발걸음이 가볍다. 무사히, 바가지 쓰지 않고 시험에 통과한 합격자같이 어깨피고 걷는다. 주변에는 사원이 무척 많다. 하기야 이 작은 마을에 사원이 550개가 넘는다니....... 버스 정류장엔 로컬 버스 2대가 서 있다. 아주 낡은 버스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아지메르를 가는데 올 때보다 2루피가 싸다. 7시40분에 버스는 출발했다. 거친 돌산 길을 넘어간다. 낡은 버스지만 힘은 좋은 것 같다. 아침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지메르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사람들이 엄청 많고 복잡하다. 자기차를 타라고 지명을 외치는 사람에게 자이뿌르행 버스를 물으니 밖에 있단다. 자기차가 간다고 따라오란다.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버스는 개인이 영업하듯이 호객행위를 해서 손님을 하나라도 더 태우려고 목청껏 외친다. 뒤차 차장이 와서 버스를 발로 차면서 빨리 가라고 성질을 낸다. 재미있어 웃음이 나온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 정비된 도로는 처음이다. 4차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다. 중간에 3곳 정도 쉬었다. 가는데 도로변은 엉망인 비포장이지만 도로만은 잘 정비해 놓았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도 있어 요금을 받는다. 220루피씩 두 번을 낸다. 고속도로 위는 경운기도 달리고 오토릭샤도 달린다. 시원하게 평야지대를 달린다. 2시간 정도를 달려 드디어 자이뿌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엄청 넓은 버스정류장이다. 자이뿌르는 최고의 관광지답게 공여 및 사설버스도 잘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역에서 1.2km정도 떨어져 있는 RSTC 버스 스텐드다. 버스에서 내리니 정신이 없다. 엄청난 사람들로 거리는 꽉 차 있다. 일단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이드 북에서 미리 봐둔 에버그린 G.H를 목표로 삼았다. 자이뿌르는 숙소가 몰려있는 일명 여행자 구역이 없어 불편하다. 그나마 에버그린 G.H 골목에 5개정도의 숙소가 모여 있다고 해서 이 숙소를 목적지로 정했다. 오토릭샤가 다가온다. 못 이기는 척하고 올라타기 전 숙소를 말하고 가격을 흥정한다. 20여분을 달려 골목에 있는 에버그린 G.H에 도착해 들어가 숙소를 물어본다. 더블 룸 300인데 창문도 없고 샤워실도 없는 엉망인 방이다. 호텔의 규모는 큰데 상당히 불친절하다. 맘에 드는 숙소를 찾기 위해 나왔다. 우리가 타고 왔던 오토릭샤가 기다린다. 릭샤비를 받지 않을 테니 자기가 안내하는 숙소에 가보잔다. 에버그린 G.H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이다. 깨끗하고 따듯한 물도 잘나오고 시설도 좋다. 호텔 HEERA PALACE이다. 더블 룸이 400인데 맘에 든다. 릭샤꾼에게 얼마를 주는지 모르지만 키를 받아들고 숙소로 올라왔다. 뜨거운 물이 잘 나와 좋았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다시 에버그린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의 음식 맛이 훌륭한 편이라고 책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다. 탈리와 야채 볶음밥을 먹으니 이제 자이뿌르에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자이뿌르는 델리, 아그라와 함께 북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라자스탄 주의 주도이자 허브시티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 인도 북서부의 사막지대에 있지만 도로, 철도, 항공노선이 교차하고 있어 상거래의 중심지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자이뿌르의 역사는 라지푸트 출신인 카츠츠와하 왕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사실 12세기 까지만 해도 라자스탄 주는 자신들이 크샤트리아 계급의 후예라 믿는 라지푸트들의 크고 작은 왕조가 난립해 있던 지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와같이 어지러운 시대는 무굴제국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게 되고, 라지푸트들은 저항대신 공물을 바치는 사대 정책을 펼치며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 왕조가 바로 카츠츠와하다. 무굴제국과의 정략결혼마저 불사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에 혼란한 정국 속에서도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결국 제국의 쇠퇴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카츠츠와하 왕조는 자이뿌르로의 천도를 감행 새로운 시작을 위한 도약점으로 삼기에 이른다. 카츠츠와하 왕조는 무굴 이후 인도의 지배자가 된 영국에 대해서도 협조적인 자세를 유지해 꾸준히 독립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카츠츠와하 왕조가 얼마나 영국에 협조적이었는지는 자이뿌르가 가진 별칭인 ‘핑크 시티’의 유래에서도 찾을 수 있다. 훗날의 에드워드 7세가 왕세자 시절에 자이뿌르를 방문 했을 때, 마하라자는 온 도시를 분홍색으로 칠해 열렬한 환영을 표시했다. 인도에서는 붉은색이 환영을 뜻하기 때문이다. 결국 도시 전체가 왕세자를 반긴다는 과장된 행동을 통해 자이뿌르의 존립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지닌 자이뿌르가 21세기의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관광산업이다. 현재 자이뿌르에는 무굴제국과 영국을 대신해 21세기의 새로운 군주로 등극한 관광객을 환영하기위해 핑크색 건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심지어 구 시가지는 다른 색을 건물에 칠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만큼 핑크시티로서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대단하다. 핑크시티의 진면목을 보려면 걷는것이 좋을것 같아 가볍게 배낭하나를 짊어지고 숙소를 나섰다. 돌아올 때를 대비해 주변 건물을 기억해 두었는데........(워낙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로 어려움을 겪었다.) 책에 나온 지도를 살펴보니 각 볼거리들 간의 거리도 멀지않은데다 이것저것 찬찬히 둘러보기에도 도보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목표는 시티펠리스다. 구시가지에 볼거리가 모두 모여 있다. 천천히 걸어보니 거리의 모습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잔디 운동장을 갖고 있는 카토릭 계 중고등학교도 기웃거려 본다. 학교가 끝나면 학생들을 실어가려는 자가용과 오토릭샤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겨우 찾아 만난 구시가지의 핑크빛 성벽과 상가를 보니 왜 핑크시티라고 하는지 알것 같다. 핑크색 페인트가 엄청 들었겠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자이싱 2세가 설계한 도시답게 지도만 가지고도 충분히 볼거리를 찾아다닐 수 있었다. 구시가지에 들어서는 입구는 엄청 붐빈다. 승용차와 버스 트럭 등의 각종 차량과 오토릭샤,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와 크락션 소리로 정신이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과 차들만 붐비는 것이 아니라, 낙타 수레도 보이고 소달구지도 어슬렁거리고, 흰색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가는 돼지도 보인다. 소를 신성시 하는데 이곳에서는 소달구지가 많이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바삐 서둘러 달려가는 바퀴달린 물건들 그리고 여러 동물들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한가한 소 한 마리가 장사꾼이 벌여놓은 홍당무를 자기 밥인 양 먹다가 달려온 주인에게 야단맞고 슬며시 물러난다. 오늘의 미션 시티 펠리스로 향했다. 자이싱 2세가 지은 궁전으로 자이뿌르 시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다. 땅콩을 한 봉지 사고, 입장료 300루피를 내고 들어갔다. 궁전 안에는 마하라자가 살고 있는 구역과 마하라자 자이싱 2세 박물관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하라자라는 말은 위대한(마하)과 왕(라자)의 합성어인데 인도의 지방 군주를 일컫는다. 특히 라자스탄 주는 ‘왕들의 땅’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현재에도 많은 마하라자가 남아 있다. 무굴에 대항해 끝까지 독립을 지켜낸 마하라자의 지위는 영국의 지배 하 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단다. 그 이유는 영국이 라자스탄 사람들의 자부심인 마하라자의 권위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라자스탄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한 영국의 전략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지방 군주세력을 정치적 상징으로 놓아두는 것이 주민을 통제하기에 한결 수월했기 때문이다. 영국 측의 이 같은 계산은 정확히 들어맞아 세포이 항쟁을 비롯한 많은 인도 독립운동과정에서 마하라자는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하기위한 방편으로 빈번히 영국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매국노와도 같은 행동이었지만 마하라자의 장밋빛 시절은 인도가 독립한 후에도 유지 되었다.
어떻게든 인도를 하나의 나라로 묶고 싶었던 네루와 국민회의 정부가 각 지역의 행정권을 확보하기위해 마하라자의 특권을 대부분 인정했다. 물론 인디라 간디가 수상이 된 뒤 특권을 상당부분 제한한 적도 있었지만 21세기 현재까지도 마하라자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단적인 예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 괄리오르라는 도시에서 전직마하라자가 도지사에 출마 했을 때, 다른 정당은 후보 출마를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마하라자와 경쟁하는 것 자체가 망극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란다. 이런 의식이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도가 안고 있는 모순의 일부로 이상하게 생각될 뿐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나라다. 신분도, 정치도, 문화도, 삶도........ 우리가보면 혼돈이다.
시티 팰리스 앞에 섰다. 규모도 크고 핑크색 일색에 흰색 줄 도안으로 예쁘다. 박물관에는 역대 마하라자가 사용했던 화려한 일상용품은 물론 왕가에서 수집한 무굴 세밀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규모가 작은 왕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누렸던 호화로움은 대 제국의 황제 못지않은 편이다. 심지어 왕비가 입었던 9km의 금실로 짠 사리도 있다.
박물관에는 조금 엽기적인 전시물도 있다. 마하라자 자이싱 2세가 입었던 붉은 색 가운이다. 길이 2m 에 너비 1.2m, 무게가 무려 250kg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가운으로 단순한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도 입었던 것이란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입구를 지키는 위병들과 사진을 찍었다. 한사람은 핑크빛 가운에 금색 터번을 썼고 두 사람은 하늘색 터번을 쓴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통점은 검은 색 피부에 콧수염이다. 정원에서 라젠트라 게이트로 들어가면 마하라자의 공식 및 개인 접견실인 다와니암과 디와니 카스가 나온다. 디와니 카스 앞에 있는 은 항아리는 영국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위해 배를 타야했던 마호싱 2세가 갠지스 강 물을 담아가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란다. 이렇게까지 갠지스 강물을 떠가야했던 이유는 바다를 건너면 자신의 지위(카스트)를 잃는다는 힌두교의 믿음 때문 이란다. 참고로 이 은 항아리는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 은제품으로 기네스 북에 기록되어있다. 은 항아리에 비친 건물 모습도 재미있고 벽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걸어놓은 총들도 재미있다. 왕궁 안이라서 인지 일반인이 통제되고 관리가 잘 되어 조용하고 깨끗하다. 잘 조각된 코끼리 상이 인상적이다. 공작문의 섬세한 조각도 놀랄 정도다. 고급 승용차가 대기해 있는데 왕가의 금빛 문양과 함께 번호판이 붙어있다. RJ 14 UC 9999번이다. 이들도 9라는 숫자를 좋아하나보다. 줄지어 세워 둔 대포 옆에서 사진도 찍으며 둘러보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별천지다.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시끄럽고 냄새난다.
옆에 있는 잔타르 만타르로 갔다. 기하학적인 모양의 잔타르 만타르는 건축,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자이싱 2세가 세운 천문대란다. 인도 달력의 개량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잔타르 만타르는 인도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1724년에 델리를 시작으로 웃자인, 자이뿌르, 바라나시, 마투라에 세워졌다. 그 가운데 마투라의 것은 파괴되어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 그 중 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총 18개의 천문대와 적도시계, 해시계 등을 갖추고 있다. 천문대의 경우 20세기 초 까지도 실제 천체 관측이 실시되었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고 한다. 하지만 천체를 감상 할 수 있는 밤 시간 대에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기 때문에 그 진가는 확인해 볼 수 없다. 다만 낮 시간에 방문하여 외관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첨성대라는 천문대를 갖고 있는 우리민족과 비교하니 좀 기분이 나쁘다. 잔타르 만타르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발걸음을 하와마할로 향했다. 시내는 정신이 없다. 교통이 엉망이고 뒤죽박죽이지만 막히지 않고 단지, 늦을 뿐이다. 재미있다. 해가 길게 누워 그늘이 길다. 걸어서 하와마할을 찾아간다. 길가에 병풍처럼 세워져 있는 하와마할은 정말 인상적이다. 인도 푸의 건물로 온통 핑크색이다. 일명 ‘바람의 궁전’으로 통하는데, 1799년에 지어진 자이뿌르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특히 바깥출입이 제한된 왕가의 여인들이 하와마할 창가에 서서 시가지를 구경했다고 전해져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대변하는 장소로 꼽힌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건물 곳곳이 낡았다. 특히 내부구조는 상당히 허술하다. 그래도 핑크 빛을 칠한 외형은 빛이 난다. 길 건너편에 서서 카메라 앵글에 잘 들어가도록 몇 번 사진을 찍어도 뭔가 아쉽다.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구시가지 사거리에 있어 오가는 차량으로 복잡하다. 센트럴 뮤지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시가지의 길게 늘어선 같은 모양의 상가는 정말 재미있다. 없는 물건이 없고 정돈이 없어 완전 무질서다. 물건보다도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구시가지의 상가 네르 게이트를 나와 우회전 하여 동물원 방향으로 찾아가니 중앙 박물관이 버티고 있다. 1887년에 지어진 박물관으로 빅토리아 풍 외관에 무굴제국 양식을 가미한 실내 장식이 인상적이란다. 전시물은 대부분 자이뿌르 왕가에서 사용했던 화려한 물품들이기 때문에 시티팰리스 박물관을 먼저 본 우리는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엄청 많은 비둘기 떼가 지는 하늘을 까맣게 덮는다. 어두워진다. 우리는 자이뿌르에서 유명하다는 라시 왈라를 찾아가기로 했다. 걷기에 부담되는 거리라 오토릭샤를 탔다. 도착해보니 라시 가게가 줄줄이 있다. 원조라는 라시 왈라 가게로 들어갔다. 3대에 걸쳐 운영하는 전통 있는 라시 가게를 찾아야하는데,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들어간 가게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막히게 맛있단다. 라시보다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일회용 용기가 더 재미있다. 앉은 김에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알루(감자)와 커리를 사용해 만든 ,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인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감자 죽이다.
라시 왈라 가게를 나오니 날이 어둡다. 전기사정이 별로여서 큰 길인데도 밝지 않다. 지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숙소와 거리가 가까운데 찾기가 어렵다. 겨우 물어물어 숙소를 찾아왔다. 기준으로 삼았던 에버 그린 게스트 하우스는 아는 사람이 많았다. 바나나와 토마토를 사가지고 숙소에 와서 후식으로 샤워하고 먹으니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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