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가 허니문 떠났을까?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소슬바람이 입추를 앞세워 살랑댄다. 오랜만에 장산 등산에 나섰다. 7부 능선쯤의 옥녀봉에 오르면 고추잠자리 떼가 공중곡예를 하면서 가을무대를 열 텐데 파란하늘에 뭉개구름만 떠있다. 유래 없는 폭염 탓일까? 이맘때쯤엔 숲속을 갸웃대는 햇살이 달군 후텁지근한 등정(登程) 중에, 땀을 훔치다 마주치는 고추잠자리의 난렵한 동작은 더위를 잊게 했다. 잠자리 중에서 고추잠자리의 곡예가 제일 아슬아슬 볼만할 것이다.
광안대교
황옥공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주황색의 몸뚱이로 번개 치듯 요격 비행하는 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천부적인 재능일 테다. 놈들은 강가나 저수지, 늪지대나 연못, 웅덩이에서 6~7월에 우화(羽化)하여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뜨거운 여름, 등산 중에 마주친 고추잠자리 떼의 군무(群舞)는 등산의 고행을 위무하는 자연의 버라이어티쇼다. 얼마 전에 우화했을 주황색의 고추잠자리는 높은 지대로 날아와 여름을 지내다가 기온이 내려가면 산 아래로 하강한다.
▲해운대해수욕장의 너울파도▼
이 무렵에 놈들은 공중에서 짧은 시간에 교미를 하고 허니문에 든다. 암컷은 수컷의 보호를 받으면서 저수지나 물웅덩이 수면에 배를 부딪쳐 산란한다. 대게 500~1,200개 정도의 산란판의 알을 띄엄띄엄 낳는데 암컷은 주위의 다른 수컷들과도 여러 번 교미하고 산란을 반복한다. 프리섹스 바람둥이 고추잠자리의 난삽한 짝짓기는 우화에 이은 새끼의 생존율이 빈약한 땜일 테다. 암튼 7월하순경 나는 해운대해수욕장 앞 13층 옾텔에서 며칠간 놈들의 군무를 즐기면서 불원간에 폭염도 사라지려나 하고 기대를 했었다.
백 백일홍
▲ 고사백합(대만나리)은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피는 나팔모양의 꽃, 달콤한 향기가 나고 깨끗한 물가에 서식한다 ▼
근디 폭염은 이어지고 놈들은 자취를 감췄다. 어찌됐을꼬? 허니문 떠났을까? 늪이고, 웅덩이고 저수지까지도 바닥이 드러난 가뭄과 폭염에 놈들의 행방이 불길했다. 사뿐사뿐 유영하다 번개 같은 공중서커스로 즐거움을 주는 익충(益蟲) 고추잠자리가 어디다 산란이나 했을까 궁금했다, 허나 오늘의 장산폭포는 노인이 오줌 지리듯 흘러내리고 저수지도 바닥이 들어났다. 놈들은 필시 가뭄이 덜한 중부지방으로 허니문 떠났지 싶다. 낙동강은 녹조땜에 외면하고. 찬바람 부는 가을을 기약해 볼수밖에~! 오늘 못 본 고추잠자리의 아쉬움을 공원 입구의 배롱나무가 붉은 꽃으로 위무하고 있었다.
피토스포럼 토비라 (Pittosporum tobira)
▲매말라가는 장산계곡▼
순환하는 자연의 신비와 묘미는 우리들 삶에 희열과 희망의 에너지이다. 고추잠자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대만, 인도차이나반도,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성충은 11월까지 볼 수 있어 놈들의 현란한 춤사위를 기대한다. 제발 비가 와야 한다. 갓 우화한 고추잠자리는 가슴이 황색이고 배는 주황색인데 수컷이 가을엔 가슴이 갈색으로 배는 빨간색으로, 암컷은 누르스름하게 변한다. 수컷의 빨간색이 고추처럼 붉어 고추잠자리라 한단다. 어릴 때 푸나무가지 끝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고양이 흉내를 냈던 기억이 아련하고 그립다. 요즘 애들은 꿈이나 꿀까? 2026. 08. 09
장산폭포도 가뭄탓에 시늉만 내고 있다
▲공원입구의 배롱나무와 협죽도▼
▲고추잠자리 대신 애완견을 대동한 채 피서객을 즐겁게 하는 견공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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