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의 검을 품은 시코쿠의 지붕
글·사진 산야로(山野路) 일본 트레킹 전문가·협찬
일본 100명산을 가다
도쿠시마현 츠루기산(劍山·1955m)
츠루기산은 서일본(본토의 오사카 아래 지역과 시코쿠를 포함한 지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봉이며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 부근의 츠루기산신수(劍山御神水)는 일본 환경성에서 선정한 명수백선(名水百選)에도 들어간다. 츠루기산은 북알프스 다테야마에 있는 츠루기다케와 이름이 비슷해 많이 혼동된다. 츠루기산이라는 이름에 관한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정상에 있는 보장석(寶藏石)아래에 안토쿠천황(安德天皇·1180~1185년)의 검이 묻혀 있어 신성시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 아래에 있는 높이 35m의 커다란 바위가 검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시코쿠(四國)에는 일본 100명산에 속하는 산이 2개 있다. 시코쿠는 면적이 18,000㎢로 제주도의 10배에 육박하며 제일 높은 산은 에히메현에 있는 이시즈치산(石鎚山·1982m)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일본에서 생산되는 귤의 70%가 이곳에서 생산이 된다. 이시즈치산과 츠루기산을 중심으로 1500m이상 되는 산악 지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매주 화, 금, 일요일에 인천을 출발하여 1시간 35분이면 다카마츠(高松)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공항에서 츠루기산까지 연결되는 버스가 없다.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공항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이렇듯 시코쿠의 산들은 교통편이 없어 접근하기 어렵다. 필자는 11월 중순 제주항공이 12월 21일 다카마츠공항에 운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100명산을 함께 등반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전부 9명. 인원도 많고 해서 렌터카 2대를 빌리기로 하여, 차 한 대는 필자가 운전하고 다른 차는 후지산 전문 트레킹을 하는 야마토 티엔씨의 황일휘 소장에게 부탁했다. 12월 후반의 산행이라 걱정이 되어 츠루기산 근처의 관청에 문의하니 겨울 산은 위험한데다 눈도 2m정도 내리니 내년에 오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한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산장이나 여관들도 11월 말로 문을 닫고 고치공항에서 접근하는 가까운 도로도 눈으로 인해 폐쇄되는 경우가 많다고 만류한다.
산으로 접근 할 수 있는 방법은 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여 돌아가서 중간에서 숙박을 한 후 가야 한다고 한다. 1년 전 동경 근교 2천m급산을 갔을 때에는 눈이 별로 없어 산행에 무리가 없었다. 경험상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라고 판단을 했지만 그 지방의 공무원들이 자제해달라는 요청에 고민이 되었다. 혼자서는 판단이 어려워 일행들과 상의하여 근처까지 가서 접근을 못 할 경우에는 주변 관광을 하자고 의견을 일치했다.
눈 덮인 도로와 엔고를 넘어 츠루기산으로
11월 중순 이후로 매일 같이 현지의 기상을 체크 하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다. 12월 초에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폭설이 내렸다. 우리나라의 구름이 일본으로 흘러가 이 지역을 지나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 후 며칠 지나 현지에 연락해 보니 산악지역 내 도로가 폐쇄된 곳이 많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엔화까지 100엔에 1600원까지 치솟아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다시 일행들과 상의해 12월 15일경에 출발 유무를 결정하기로 했다. 다행히 출발하기 전까지 들려오는 소식은 일본 현지의 날씨가 따뜻해 많은 눈들이 녹아 통행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린 출발하기 전에 현지 관공서에서 이치우(一宇) 지역의 온천 호텔을 소개 받아 산행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드디어 12월 21일. 만약을 대비해 일행들에게 6발 이상의 아이젠, 스패츠, 비상식, 방한복을 철저히 준비시킨 후 새벽 6시, 10명 전원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제주항공을 탑승하니 188개의 좌석이 거의 만석이다. 제주항공을 탑승해 처음으로 기내서비스를 기대했다. 그런데 국제선의 타 항공사와는 다르게 맥주도 주지 않고 제주 감귤쥬스와 물, 커피만 제공하고 어린이들을 위해 풍선을 불어 여러가지 동물들을 만들어 준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최대한으로 경비를 절약하는 것 같다. 1시간 30분 만에 고치공항에 도착 했다. 날씨가 흐리다. 전날 일기예보는 오후에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지야 문제가 없지만 산 위쪽은 걱정이 되었다. 정식 국제공항이 아니라 임시로 국제선을 오픈한 것이라 입국 수속에 다소 혼잡을 이룬다.
도착 한 당일에는 고치시내와 주변을 관광하고 다음 날 느지막하게 공항에서 승용차를 렌트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지방의 고속도로라 통행하는 차량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우리나라와 차선방향이 다른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 운전이건만 크게 어색함이 없었다.
한겨울이 아니라면 고속도로를 40여분 달려 오스기에서 나와 츠루기산으로 향하면 1시간 30분이면 도착 할 수 있지만 산장도 문을 닫았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우회했다. 다카마츠와 도쿠시마의 분기점에서 우측 방향인 도쿠시마 방면으로 우회전해 미마(美馬)IC를 나와 438번 국도를 따라 사다미츠(貞光)을 지나 츠루기산 방향으로 올라갔다.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다카마츠나 도쿠시마 방면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이곳까지 접근해 택시를 타고 츠루기산까지 가야 한다. 여름철의 경우 7, 8월에 한해 이곳을 기점으로 주말에 임시 버스가 운행 되므로 출발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IC에서 숙소까지는 실제로 18Km 밖에 되지 않지만 계곡길이 1차선으로 구불구불한 탓에 30분 만에 츠루기의 야도 이와도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숙박한 곳은 깊은 산속의 계곡 가에 위치한 곳으로 동네 주민들을 위해 조성한 휴양시설로 온천을 겸비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온천을 즐기고 일찍 취침했다. 한밤중이 되자 빗소리가 계곡 물소리와 섞여 들린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문을 열어 보니 제법 비가 내린다.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은 산에는 눈이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오기 힘든 곳인데 일정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억울해서 아침까지 잠을 설쳤다. 새벽녘이 되자 구름 사이로 별들이 반짝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6시 기상,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본격적으로 구불구불해지는 도로를 따라 츠루기산을 향해 차를 몰고 올라가기 시작햇다. 무사히 1400m의 고개를 넘어 가야 할 텐데…. 저 멀리 정상으로 보이는 산에는 눈이 덮여 있다. 길이 상상외로 구부구불해 운전을 하는 동안 걱정할 틈도 없다. 고도가 1천m 부분에 다다르자 눈이 보인다. 다행히도 앞서 몇 대의 차량이 지나간 흔적이 있어 도중에 차가 못 올라간다면 돌아 올 생각으로 계속 올라갔다.
1100m 고지에 위치한 스키장을 지나자 눈이 한층 더 쌓여 있다. 차량이 미끄러지기 시작 했다. 올라가다 멈추면 차가 헛돌아 흠칫했다. 다행이 언덕 정상에 올라섰지만 내려가는 것은 더욱 위태롭기만 하다. 서서히 미노고시로 이동해 숙소를 출발한지 1시간 30분만인 8시 30분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평상시라면 1시간 정도면 다다를 수 있는 거리다.
고목에 피어오른 겨울꽃, 설화
겨울산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눈이 띄지 않는다. 주차장에는 3대 정도의 차량이 있다. 우리가 빨리 출발을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주차장 근처에는 10여개의 산장이나 여관들이 즐비하게 서 있지만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일행들은 장비를 정비 후 8시 45분에 드디어 출발했다. 등산시간을 단축하려면 미노고시역(1420m)에서 니시지마역(1730m)까지 15분 정도 소요되는 1인승 등산 리프트를 타면 간단히 300m의 표고를 올릴 수 있다.
산장을 지나 거대한 츠루기 신사의 시멘트 계단을 100여개 정도 올라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5cm이상 눈이 쌓여 있어 등산하기에 적당하다. 앞으로 지나간 발자국을 보니 2사람 밖에 없다. 그러나 12월 초에 내린 눈이 녹아 생긴 얼음 위에 눈이 덮여 미끄러워 주의가 필요했다. 일본의 산은 대체로 등산로 초입에 우리나라의 서낭당 같이 조그만 신사가 있는데 그곳에서 등산안전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우리 일행들도 안전산행을 기원했다.
거대한 너도밤나무 숲을 지나면 등산 리프트 아래로 짤막한 터널이 있다. 터널이라야 리프트에서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장치를 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바로 분기점을 45분 정도 걸어 니시지마 신사에 도착했다. 이곳을 지나 약간 급경사를 올라가면 캠프장이 나온다.
날씨가 맑으면 이 지점에서 정상이 보이지만 눈이 내려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는다. 니시지마역까지는 바로 목전이다. 입구를 출발한지 50여분이 지났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으로 진행할 곳을 확인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세 곳으로 나누어지는 등산로를 선택 할 수 있다. 츠루기산 정상을 중심으로 돌아서 가는 1시간 20분 소요되는 코스와 가타나가케노마츠(刀掛けノ松)를 경유해 이치노모리(一ノ森·1879m) 돌아 정상까지 가는 2시간 10분짜리 코스, 그리고 츠루기 신사를 거쳐 40분 만에 정상까지 가는 코스가 있다. 우리는 날씨 관계상 최단코스로 올라갔다가 가타나가케노마츠를 경유하여 내려오는 코스로 정했다. 완만한 길을 돌아 20분 정도 가면 츠루기 신사의 모습이 보인다. 츠루기 신사의 뒤에는 츠루기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35m정도 높이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신의 돌(御神石)이 있고, 이 바위 밑에서 신의 물(御神水)이라 불리는 샘이 솟는데 일본 100명수에 든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 길 양쪽으로는 산죽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겨울이라 두껍게 서리가 내린 산죽을 바라보면서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 코스와 합류하여 바로 오른쪽 정상 아래에 있는 산장을 지나 이치노모리에서 오는 분기점과 다시 합류하여 올라가면 산정의 언저리에 가게 된다. 좌측으로 무인 측후소가 있고 산정일대는 산죽 사이로 산림의 황폐를 방지하고자 목도가 펼쳐져 있는데 이곳을 헤이카바바(平家馬場)라고 부른다. 이곳은 헤이카 일족이 재기를 하기 위하여 검술, 승마훈련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목도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인 삼각점에 도달한다. 날씨가 맑으면 동쪽으로는 이치노모리산과 이시즈치산이, 서쪽으로는 세토내해가 보인다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니시지마역을 출발해 오츠루기 신사로 가는 구불구불한 길에 눈꽃이 만개했다.

니시지마 신사를 지나면 산죽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니시지마역이 목전에 있다.
가타나가케노마츠를 경유해서 하산하는데 이곳은 거대한 고목들이 눈꽃과 서리로 뒤덮여 있어 설산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나무 등의 침엽수림대가 분포되어 있고 등산로도 돌길로 되어 있어 걷기에 편하다. 정상에서 20여분 가다보면 가타나가케노마츠의 분기점이 나오는데 시간이 없어 이치노모리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쉽다. 이곳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10여명의 등산객들을 만났다. 일본 100명산이라 굉장히 붐빌 줄 알았는데 기상 탓도 있었겠지만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조금 더 내려가니 니시지마역에 다다르고 올라 왔던 길로 하산하면 등산입구에 도착한다. m

고목나무는 겨울에 찬란한 설화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