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함께한 임진왜란 7년의 이야기 "난중일기"를 바칩니다. 이순신 장군이 쓴 책은 "함경도 일기(최초 부임지 함경도에서 쓴 일기)", "서간첩(편지를 책으로 묶은 것)", "임진장초(임금님께 올린 편지)" 등이 있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이순신이 죽은 뒤 약 200년 후, 정조때 "이충무공전서"를 엮으면서 당시 학자들이 명명하였다. 한때 일본 황족이 빼앗아 가려고 했으나 후손들이 잘 지켰으며, 1967년 난중일기 일부를 도난당했던 일도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 담화문까지 발표하는 등 나라가 발칵 뒤집혔었지만 10일만에 되찾아 지금은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다.
※ 이순신 장군 : 1545년 3월 한양 건천동에서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변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순신의 어머니 꿈에 "시할아버지가 나타나 아이 이름을 정해 주었다. 장차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것이니, 순임금 순(舜), 신하 신(臣)을 써서 순신이라 부르라고 하였다."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은 정치가였는데 반대파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했다. 이러한 탓에 아버지 이정은 벼슬을 하지 않았다. 세살 위인 서애 유성룡과는 한 동네에 살면서 어린시절을 함께 하였으나 이순신의 가족이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으로 이사가게 된다. 20살에 아산에서 보성군수 방진의 딸과 결혼을 하였고, 1576년 무과에 합격하여 첫 부임지로 백두산 아래 함경도 동구비보의 수비대장으로 발령 받는다. 2년 뒤 한양에 있는 훈련원 봉사로 근무했으며 42살인 1586년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부임한다. 1591년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 좌수사로 임명되며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거북선(나대용)을 만든다. 여러차례 승리로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긴다. 1597년 왜군 대장 고니시의 음모로 한양에 끌려가 감옥에 갇히나 정탁 등의 상소로 풀려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다. 1598년(무술년) 12월 16일(음력 11월 18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
충남 아산시 어라산 양지바른 곳에 모셔져 있는 이충무공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