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 사람
황 석 영
아니 이건 누굴 놀리는 거요?
당신이 부드러운 얼굴로 제법 가까운 척해 보이지만 내가 믿을 줄 아십니까. 나야 기왕 도마에 오른 고기요, 댁 같은 나리님야 맘 탁 놓구 내 신세타령을 듣자는 거지, 뭐 별수 있습니까. 나두 머리가 꽤는 돌아가는 사람이고 그런 눈치쯤야 어깨 너머루 배웠지요.
이거 보쇼. 내 수갑 찬 손목이 조여서 아파 죽겠군요. 선생은 알록달록 근사한 넥타이를 목에 두르셨는데, 내 모가지에 굵다란 삼밧줄이 걸리는 걸 상상해보시지요. 덜커덩! 하면서 목뼈가 딱 부러지는 장면을 말이오. 어쨌거나 죽는 놈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나두 그 새끼를 죽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구요. 정신을 차려보니 자빠져 있데요. 그 녀석이 무슨 죄가 있었겠어요. 운이 나빴던 거죠. 나두 재수 옴붙어버린 놈이구요. 그러니 할말두 별루 없구, 댁의 허여멀쑥한 얼굴을 대하기두 싫으니까 얼른 가보시오. 좀 쉬구 싶습니다.
사실 내 옛날부터 당신네 같은 사람을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뭐라구…… 이해한다구요? 이해 좋아하시는군. 쳇, 그게 당신네들 상투 수작입니다. 댁은 나하구 아예 인종이 틀려요. 모두들 그런 식으루 속이더군요. 속고 또 속으며 자라나서 이제 나이 스물다섯이라 그 얘깁니다. 생각하면 씨팔, 내라는 놈두 한많은 청춘이죠. 자, 내 입 더럽히기 싫으니까 말 좀 시키지 마쇼. 내 식칼은 이미 피맛을 봤다구요. 엉뚱하게 그런 녀석이 걸려들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저기 좀 보시지. 저기서 어떤 도둑놈이 손가락에 잉크칠을 하구 피아노를 치는군요. 지문이 올라갈 테니 저놈두 인제 완전히 찍힌 거죠. 저 새끼 빌빌 싸는 꼴이란 정말 복날 강아지 새끼로군. 어떻게 좀 빌붙어서 요놈의 사회에 용납될 수 없을까 하구 갖은 아양을 다 떠는 모양이오. 그러면서 저 혼자 불쌍하구 버림받은 척하지요. 나 같은 놈두 그런 식으루다 살아왔지만 이제야 알겠다 그 말입니다. 젠장, 밥 세 끼 안 놓치고 먹고살려구 버둥댄 게 뭐 그리 잘나 자빠진 거라구…… 애초에 뭔가 잘못돼 있었다 그거예요.
나으리들은 척 알아보시는 모양입니다. 내 면상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점잖아지든데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나 같은 건 축에두 못 끼울 정도루 치사하구 간사스런 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 것 같습디다요. 그걸 빤히 아니까 나같이 어리석구 천한 놈두 이렇게 뻣뻣하구 당당해지데요. 나는 내숭을 떤다든가 똥따리를 붙이는 일은 정 못하겠습디다. 그러니 나 비슷한 놈들은 선생께서 제일 꺼리는 놈이겠지요. 말하자면 나는 당신네가 싸지른 똥이라 그겁니다. 컴컴한 구덩이에 뚝 떨어져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썩는…… 조금 전까지도 선생님네 뱃속에 들어앉았던 뜨끈뜨끈한 온기가 남은 똥이란 말입니다. 아, 좋지요. 담배를 태우는 것두 과하 불쾌하진 않겠군요. 그러구 보니 내가 너무 흥분했던 모양인데, 지금 나는 제정신이 아니라서요. 사실은 선생께서 팔자소관을 나보다 낫게 타구나신 거구, 뭐 그런 거지 나하구 정 다른 사람일 리야 있겠습니까요. 내가 공연한 심사를 부린 거지요. 배가 고파서 그런 모양입니다. 선생님, 실례지만 저…… 찐빵이라두 좀 사다주시겠습니까. 가만 생각해보니 잡히기 전부터 지금까지 꼬박 네 끼를 아무것두 못 먹 었군요. 헌데 왜 자꾸 묻는 겁니까, 좆같이. 그 뒈져버린 불쌍한 새끼가 선생의 조카 녀석이라두 된단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어느 날 몇 시 어디서 흉악범이 사람을 식칼루 쑤셨다는 게 얘기의 전부라니까요. 그게 아니라…… 뭐 인간적으루요? 허허, 그 참 좋은 말입니다. 선생 같으신 분이야 머리 써서 글깨나 읽으셨으니 깊은 이치라두 캐겠다는 겁니까? 아무래두 내 심정은 모를 겝니다. 나두 산전수전 겪은 놈이죠. 벌써 요 나이에 수십명을 죽여본 사람이오. 아, 물론 전쟁터에서 그랬지만요. 내가 잡힌 건 순전히 저 불쌍한 놈 하나 때문이죠. 선생께선 사려분별이 깊으시고 세상살이 처세두 모두 익힌 분이니까 뭐 별 사고 없이 한 여든 남짓 살겠는데요. 나야 곧 넥타이 공장인가 하는 험악한 데루 직행할 놈이지만.
자꾸만 그렇게 꼬치꼬치 물으시니 얘기를 해볼까요, 까짓 거! 고깃값두 못하구 가는 터에 무슨 얘긴들 못할라구요. 나두 내 속을 확 뒤집어 뵈는 게 시원할 것두 같습니다. 뭐 쥐뿔두 특별한 것 없지요. 흔한 얘기니까. 헌데 주의 좀 해주쇼. 원체 성미가 급해놔서요. 선생께서 내 얘기를 듣는 동안 절대로 아는 체한다든가 말참견은 하지 말아주시오. 그렇잖으면 내 두 발이 아직 자유로우니까 선생의 사타구니를 차버릴지 몰라요. 댁은 안락의자에 앉아 말발깨나 조기는 분이시고 나는 시방 수갑을 찼다 이겁니다. 아, 씨팔, 나는 정말 신세 조진 사나이로군 그래.
2
제대한 지 다섯달 만에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시골에는 형님께서 노모를 모시구 계신데, 조카가 젖먹이까지 합쳐 자그마치 여섯 명이나 됩니다. 우리 형님이야 법 없이두 사실 착실한 양반이죠. 배운 거라군 그저 때맞춰 농사짓는 일입니다. 자작은 못되고 남의 땅이나 부쳐먹는 처지에 식구들은 많지요. 그러니 군대에서 딴 나라 전장에까지 나가 고생하구 온 놈이 어디 그냥 얹혀 빈둥거릴 수가 있어야죠. 노골적이지 농사일은 하기 싫었구요. 나 같은 놈이 뭣 땜에 시골 구석에서 썩으려구 하겠어요. 세상의 쓴맛 단맛을 안다는 놈이 말요. 꼭 자수성가해서 남부럽잖은 사람이 되어 식구들을 호강시키리라 결심 했던 겁니다. 그게 지난 가을이었나요. 서울역에 척 내려서자마자 앞일이 아득하더군요. 주머니에는 이리저리 꿍쳐두었던 삼천원이 전재산이었습니다. 어디라구 붙일 곳이 있어야죠. 무턱대구 찾아다니다가 우선 근로자 합숙소에서 당분간 고생하며 기거하기루 했지요. 대처에서 겨울을 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땐 몰랐습니 다.
한달 동안은 갈월동 노동회관에서 사십원짜리 숙박을 했었지요. 창고 같은 델 널판자로 칸막이했구요, 시멘트 바닥 위에다 다다미를 깐 좁다란 방에 스무 명쯤이 서로 발바닥을 맞대고 누워 자는 형편이었죠. 침구라곤 반으로 자른 군용 누비이불이 전부죠. 창문이 없어서 아침에도 불을 켜야 할 정도루 어두웠어요. 거의 날품팔이들인데, 열여덟살짜리부터 환갑이 가까운 늙다리들까지 천차만별입니다. 밤 아홉시쯤에 하나둘씩 모여들고 아침 여덟시엔 관리인이 전부 바깥으로 쫓아내더군요. 저녁마다 이방 저방에서 보잘것 없는 술판이 벌어지고
법석대며 싸우는 난장판 때문에 새벽이 되어야 겨우 코고는 소리들이 들리지요. 문 앞에서부터 벌써 퀴퀴한 더러운 살냄새가 나구요, 벌거숭이 사내들이 빨지 못해 누리끼해진 속옷 바람으로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은 무슨 짐승우리 같은 느낌입니다. 아니, 바깥 길거리가 헐벗은 들판이거나 야산이라면 또 모르되 아침마다 신사, 숙녀들이 꽃 같은 차림으로 지나가는 바로 열 걸음 안쪽이 그 모양이니 말씀이지요. 처음 자던 날로 나는 가졌던 돈을 몽땅 잃어버렸어요. 자는 사이에 누군가 홈쳐간 모양이었습니다. 내 옆자리에는 마흔살쯤 된 엿수와 기동이라는 내 또래 청년이 있었는데 사흘이 못 가서 식구처럼 친해졌지요. 기동이가 일러준 대로 나는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빌딩을 짓는 공사장에 찾아가 막일꾼을 자원했어요. 십장이 지원자에 따라 노임을 깎고 일을 붙여주데요. 모래나 자갈이 담긴 들통을 지고 비계를 올라가는 일이었습다. 거름지게와 나뭇짐을 지며 자라온 내게는 견딜 만한 밥벌이였습니다. 그런데 일거리를 매일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네 같은 놈들이 한둘이라야 말이죠. 조금이라도 시간 차질이 나면 그날 하루는 공을 치는 거였습니다. 다시 합숙소로 돌아와 막일꾼을 모으러 오는 떠돌이 십장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중앙시장으로 가서 채소나 나르는 일거리가 걸리길 바라고 어슬렁대죠.
선생, 내 얘기를 듣고 계십니까? 그래 내가 아까 흔해빠진 얘기라구 그랬잖소. 지금이라두 당장 서울역 부근에 나가보슈. 나 같은 놈들이 하나둘인가. 거기 막국수 좌판이나 순대 함지 곁에 잠깐만 서 있어보쇼. 웬 젊은 녀석이 다 떨어진 작업복에 아직도 나뭇결이 선명한 지게를 느슨히 걸쳐메고 정작 사먹지도 못하면서 좌판 앞을 기웃거릴 겁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머니 영감 애새끼 들까지 모두 철 따라서 대처엘 왔다가 시골루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지요. 시골이나 대처나 몸 붙일 데가 없지만 그런 짓이 몇 년이구 되풀이되다 보면 그것두 어엇한 생활이죠. 개중엔 나처럼 젊은 신세를 망쳐버리든지, 계집년인 경우엔 대부분 작부나 갈보로 흘러버립니다. 언젠가 골목에서 고향 아주머니 한분을 만났는데 웬일이냐구 그랬더니 부촌의 집집으루 돌아다닌답니다. 무슨 장사냐구 했더니 장사가 아니라 젊은 부부 사는 집을 찾아가 빨래나 해주고 밥 한끼 얻어먹고 또 다음 집을 찾아가구 한답디다. 시골에 양식이 돌 동안 그 짓을 계속하는 거라 이 말씀이오. 식모살이두 연줄이 없으면 힘들지요. 식모를 누가 살기 싫어한답디까. 그런데 우리네 같은 한창 나이의 젊은 놈들은 매일 잡지도 못하는 일거리를 찾아 돌다가 겨우 일당 이백원이 평균 꼴인 셈이죠. 입장을 생각해보슈. 하루 기백원을 가지고 먹고 자고 하는 게 이런 도시에서 얼마나 어렵겠나. 그것두 늘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어떤 때엔 한 푼도 없이 쫄쫄 굶으며 이틀까지 넘길 때두 있다 그거요. 어느 날, 나두 밥값을 딱 한번 구걸해본 적이 있습니다. 빈 지게를 메고, 뭔지 다정하게 지껄이며 지나가는 내 또래의 젊은 쌍에게 옆으로 따라가며 수작을 건넸죠. 여자가 나를 힐끔 보더니 사지가 멀쩡하니 어쩌니 했던 것 같습니다. 좌우간에 그날 얼마를 적선받긴 했
지만, 다시는 못할 짓이더군요. 사람 타락시킵디다. 지게를 지는 일이 고행이지, 어째서 귀천이 없느니 신성한 노동이니 하는질 모르겠다 이 말입니다. 용을 쓰며 결음을 옮길 때 근육을 구경하기야 아주 좋겠죠만. 니기미, 하지만 가끔 배쿄프고 추울 때 구걸할 생각은 꿀떡같이 떠오르데요. 하루를 살기가 이처럼 매정한데 아무리 부지런해봤자 희망은 파리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습디다.
다행히도 기동이가 어느 날 일거리를 찾아갖구 왔습니다. 교외에다 어느 벼락부자 양반이 호화주택을 짓는데 인부가 다섯 사람 필요하다구 그런다나요. 우리는 그날로 합숙소를 나와 집 짓는 데서 착실히 한 달쯤 지냈지요. 일거리두 편하구 노임도 괜찮습디다. 기동이란 녀석이 신세가 편해지니까 시멘트 포대를 슬쩍 해먹는 통에 다시 하루살이 인생으로 되돌아가구 말았지요. 어언 첫눈이 내리고 날씨가 매섭게 추워졌습니다. 예전처럼 싹수 그른 날엔 노숙을 한다거나 물이나 마시고 끼니를 거른다든가 하는 짓은 더이상 못하게 된 거죠. 속이 비면 겨울엔 꼼짝없이 얼어죽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으니까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일거리는 차츰 떨어져갔습니다. 짓다 만 시장 점포 건물 구석에다 가마니를 치고 닷새를 버티던 어느 날 기동이가 혼자서 씨부립디다.
―쪼록이나 잡으러 갈까부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고 나는 그게 개천의 물고기 이름이나 되는 줄 알았지요.
―어이, 자네 천원 벌이 하구 싶잖은가? 단 삼십분에 천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대길래 나는 기동이란 녀석이 농담하는 줄로 여기면서도, 그 애가 서울 밑바닥 생활 고참이길래 한편으로는 행여나 하는 기대도 가졌습니다. 기동이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 보이면서.
―이거…… 이거 말이다.
하더군요. 나중에 알구 보니 그게 바로 종합병원으로 찾아가 피를 파는 짓이었습니다. 아마 피 뽑혀 나오는 소리가 빈 뱃속에서 회치는 소리하구 비슷한 모양이지요. 나를 팔아 내가 먹는다! 살자구 서울 올라와 구결까지 하고 한뎃잠이나 자는 판에 어쩌자구 제 목숨을 갉아먹는담, 하는 따위의 생각이 들어서 선뜻 내키진 않았습니다만 달리 어쩌겠습니까. 그날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우리는 염천교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하루에도 여러차례 오가던 다릿목이건만 그날따라 눈발에 덮인 철로가 처량한 느낌을 주더군요. 난장이 서던 자리엔 눈만이 소복이 쌓였고 행인들도 별로 보이질 않았지요. 나는 일거리가 없을 때 가끔 거기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서 역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는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와서 내리고 타고 올라가고 내려갔습니다. 나는 그 다리께에만 오면 시골 동네가 가차워지는 기분이 들곤 했지요.
피검사를 받고 채혈할 수 있는가를 판정받은 다음에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죠. 나는 기동이와 함께 수도에 가서 숨이 가빠질 정도로 물을 들이켰습니다. 혹시 또 압니까? 피 대신에 물이 빠져나올지…… 나두 사람이란 말입니다. 목숨이 모질다는 생각으로 악착스럽게 혼자 다짐하면서도 막상 철침대에 가서 주삿바늘을 꼽고 누우니까 두려운 생각이 들데요. 내 생명이 모두 한방울 두방울 밖으로 새어나갈 것 같았구요. 어쩐지 억울했습니다. 간호원이 말했죠.
―주먹을 움직여주세요.
나는 손을 쥐었다 펐다 하면서 링겔병 속에 차올라가는 피거품을 바라봤습니다. 수돗물, 국수, 수제비, 앙꼬빵, 우묵, 가래떡, 암죽, 어머니 젖·…‥ 에다가 비스켓, 씨레이션, 파인애플까지도……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내 땀, 열흘쯤 고인 채 묵어 있을 용갯물, 염천교 위에 넋을 잃고 서서 참아뒀던 눈물……등등을 상상하는 사이에 주삿바늘이 뽑혀 나가데요.
―삼백팔십씨씨입니다. 전표 가져가세요. 다음 분·…‥
공연히 그런 것 같아서였는지 복도로 나오는데 연탄가스 설먹은 놈처럼 사지가 따로 놀고 휘청대는 기분입디다. 영양빵 두 개를 받아 한편으론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씹어대며 오백원짜리 두 장을 받아쥐고 거리로 나왔죠. 내게는 빨각거리는 돈만이 생각날 뿐, 그 첫번째 벌이에 관해 이렇다 하게 뚜렷이 기억 되는 일이 없습니다. 기동이가 서울역 지하도를 지나면서 푸념하던 말은 대강 생각나는군요.
―쪼록은 원래 오입질하는 거나 마찬가질세. 궁하면 하구 싶구, 저지른 뒤엔 후회되지. 노동하는 놈이 쪼록 맛을 들이면 볼장 다 보는 거네. 애달캐달하기가 싫어지고…… 우리 개고기라두 한그릇 사먹지. 아니면 술이라두 실컷 퍼먹든지.
그러나 우리는 실비집이라는 밥집에다 일주일 식대로 맡겨버렸지요. 정말 그러구 나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배짱도 두둑해져서 잘하면 한밑천 잡을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쪼록은 낚싯밥 같은 거라서 한번 당하구 나니 두번째엔 더 쉬워지데요. 두번째는 겨우 열흘이 지나서였습니다. 안전기간이 차지 않으면 채혈을 하지 않으니까 다른 병원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죠. 그때에 만난 게 중앙시장서 아홉살부터 똘마니 노릇으로 자라났다는 넙치라는 뎃방이었습니다. 뎃방을 다른 말로는 쉬파리라구두 하지요. 참말이지 우리보다두 더 악착스럽구 매정한 인생입디다. 병원 주변에 얼씬거리다가 이미 꾼이 될 소질이 있어 뵈는 쪼록쟁이를 만나면 한사코 붙어서 구전을 빨아먹는 놈이지요. 소개받고 구전을 안 주는 날에는 역전 바닥에 붙어 있을 재간이 없지요. 그런 녀석에 비하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실감이 됩니다. 왜 그런 살벌한 때에 진작 작은 죄라두 저지르고 유치장에 갈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여름쯤엔 다시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세상에서 전과자라는 녀석들 지금 생각해보니 뭐 별거 아닌 거 같군요. 한끼에 목을 매단 놈이 어디 사람입니까. 어차피 사람 아니긴 매일반 아닙니까. 아 선생님께서두 노동자나 마찬가지라구요? 절대루 그렇진 않습니다.
대체 노동이란 게 뭡니까. 손으로 땀 흘려 하는 일이 노동이지요. 네, 그릴까요? 선생께서 사무를 보면서 나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구 있을 때, 그때에 선생은 저와 같다 이겁니까? 절대로 그렇진 않습니다. 요는 그런 말 속엔 일의 조건, 사람의 조건 같은 건 깡그리 무시되구 있다 그 말입니다. 나는 그전엔 몰랐습니다. 내가 왜 이런 조건 속에서 무섭고 혹독한 인생을 견디고 있나, 하는 의심조차 품지 않고 참기만 했었죠. 참 놀랍도록 미련하게 참았죠. 그런데 내가 이 거리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아 나두 사람이었구나. 헌데 어째서 나는 이 떨어진 군복을 입고 있을까, 왜 내의도 못 입고 추운 겨울 바람에 떠나, 왜 굶나, 왜 피까지 파는가…… 하다보니 나뿐만 아니라 이 도시 전체가 사람이 아닌 것들로 들끓고 있는 것 같았지요. 구찌를 터준 값으로 넙치에게 이백 원을 떼어주고 육백원 받았어요. 이왕에 뎃방을 잡은 터라 세번째 팔아버렸죠. 세 번을 뽑구 나니 확실히 전신의 근육이 풀려버린 게 느껴지데요.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고 눈이 어둡고 앉았다 일어설 땐 핑 돌면서 귓속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니까 내가 졸도를 한 것은 그저께 일입니다. 선생께 한 말씀 드리구 싶습니다. 비록 내 말이 거칠기는 하지만, 선생께서 내게 악심을 품지 않은 만큼 나두 댁네들께 적대심을 갖진 않았습니다. 미워할 방향마저 나는 잃어버린 놈이니깐요. 미운 쪽이 너무 크고 잡히질 않으니 알 수가 있어야죠. 한편 생각해보면 사실 내 고생이란 아무 것두 아닌지도 몰라요. 나하구 비슷한 놈들이 좀 많겠습니까. 그 점을 미처 생각 못하고 오히려 실수한 셈입니다.
3
내가 졸도하기 전날 아침에, 기동이는 벌이를 나가서 아예 시장 빈 터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지방도시로 껴져버렸거나, 청소부나 경비 따위의 안전한 직장을 구했는지도 모르죠. 내라도 무슨 좋은 수가 있었다면 소리없이 사라졌을 테니까. 나는 더이상 공사판을 찾거나 지게를 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벌써 악성빈혈 증세가 심해져 있었어요. 둘이 함께 지내다가 혼자 남게 되니 더욱 불안했구요. 될 대루 되라는 식으루 오랜만에 술이나 실컷 퍼먹구 싶어졌지요. 그래서 도동의 당구장으루 넙치를 만나러 갔습니다. 넙치는 내 몰골을 훑어보고 고개를 흔들더군요.
―소개는 좋지만, 보아하니 쪼록 인이 박혔는데 어떻게 할려구 그래. 괜히 송장 치다 살인나게?
나는 이번 한번만 거래를 붙여달라구 사정했지요. 넙치는 신중히 생각해보더 니,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론 서로 안면 바꾸는 거야, 다음에 아는 척 했다간 묵사발을 만들 테니깐.
하고 나서, 알아보겠다고 전화를 걸러 갔어요. 잠시 후에 커다란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재수 좋았는데. 잔칫집이 걸렸어!
그는 영문도 모르는 나를 끌고 남산을 넘어 병원이 아닌 주택가로 갔습니다. 축대와 계단이 남대문만큼 높더군요. 뜨락이 우리 시골 동구 앞 공터보다두 넓 었습니다. 넙치가 중년 부인에게 병원에서 보낸 사람이라며 뭔가 속삭이더니 돈을 받는 눈치데요. 그는 돌아가면서 내 등을 두드려줬지요.
―자, 인제 쥐구멍에 볕 들었다. 내 밖에서 기다릴 테니 구전 천원만 주구…… 나머진 장사 밑천 하라구.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죠. 부인네가 나를 식당으루 안내하데요. 떡벌어진 상이 차려져 있습디다. 서울 와서는 말할 필요두 없구, 시골 집에서도 먹지 못했던 음식들 앞에 앉자 나는 여우에 홀린 기분이었습니다. 부인네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나는 정신없이 허겁지겁 갈비를 뜯고 국을 들이켜고, 전을 닥치는 대루 쑤셔넣으며 완전히 포식을 해버렸어요. 숨이 가쁠 지경이라 앞뒤 사정 볼 것 없이 식당 벽에 등을 대고 바닥에 질펀하니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어느 정도 내 입장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넙치가 잔칫집이라고 좋아했던 것이겠죠. 나는 누군가에게 수혈을 해주어야 될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생면부지의 부랑자에게 이유도 없이 좋은 음식을 차려 먹이겠습니까. 아무리 돈이 좋아 못할 짓이 없다지만, 사람이 사람의 피를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와 대접이겠지요. 부인네가 안내를 해서 어느 방으루 들어가니까 역시 웬 깡마른 늙은이가 잠옷 바람으로 누워 있더군요. 간호원이 와 앉아서 준비중이었어요. 나는 방 한쪽에 엉거주춤 서 있었는데, 부인네가 보약이…… 어쩌구 하면서 자고 있는 늙은이를 흔들어 깨우데요. 늙은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곤 아무 말두 건네지 않았어요. 나는 늙은이 옆에 바늘을 꽂고 누워서 눈을 감았습니다. 참말, 만감이 오락가락합디다. 어쩌다 눈을 뜨고 올려다보면 이상한 구슬이며 꽃무늬가 달린 전등이 산산이 흩어진 채로 보이는 것 같았어요. 간호원과 늙은이가 주고받는 얘기가 들렸지요.
―탈 없겠지. O형인가?
―네 회장님, 검사는 다 해봤는데 아주 건강한 사람이에요.
―늙어서 일을 하려면 우선 건강이 제일 이지. 보신하기두 이거 원 번거로워서.
―회장님 어떠세요, 확실히 다르죠?
―좋아진 거는 같은데 뭐 효험이 좀 있을까?
―그럼요. 젊은 청년이나 꼭같이 원기왕성 해지실 텐데요.
나는 주먹질을 계속했습니다. 주먹을 쥐었다가 펼 때마다 석유통에서 난로로 석유가 새어나가듯 내 피가 가늘게 새는 소리가 들렸지요. 쫄쫄 쪼로록…… 피가 가끔씩 공기 방울에 막힌 채 링겔병 속에 차오르는 게 보였지요. 한 스물댓 번 주먹질을 하구 나니까 곧 사백 씨씨가 됐지요. 입속에서 쇠녹 비슷한 맛이 감돌면서 침이 바싹 마름디다. 주삿바늘이 빠져나갔지요. 나는 휘청대며 일어나려다가 문설주에 걸려서 다시 넘어졌습니다. 부인네와 간호원이 부축을 해주는데 그제서야 콧날이 찡합디다. 쉬었다 가라는 것을 마다하고 가까스로 문 앞까지 나왔는데 흰 봉투 하나를 주머니 속에 꾹 찔러주더군요. 철문이 내 등 뒤에서 쾅 닫히고, 까마득하게 내려다뵈는 계단을 내려갈 일이 감감했습니다. 회충약을 많이 먹었을 때처럼 세상이 온통 샛노랗게 보였죠. 아래서 기다리고 섰던 넙치가 올라와 저를 부축했습니다.
―괜찮다, 살기가 그렇게 힘든 거야. 영양보충은 엔간히 해뒀을 테니 물이나 좀 마셔둬. 얼마 받았지? 사백씨씨면 사천원일걸. 나는 그 녀석을 뿌리치고 땅바닥에 오백원짜리 두 장을 내던졌어요. 그놈은 멀거니 나를 바라보더니 뭐라고 툴툴대면서 돈을 집어갖고 뺑소닐 쳐버렸지요. 전봇대를 잡기도 하고 담에 기대기도 하면서…… 땅을 보면 발이 헛딛어지는 것 같아 노랗게 흐려진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고 허청허청 걷는데 눈물이 자꾸 귀밑으로 흘러내립디다. 어떤 골목으로 들어서서 시멘트 쓰레기통에 상반신을 기대고 얼마쯤 쉬었습니다.
잠깐 깜빡, 했던 모양인데 눈을 떠보니 벌써 사방은 캄캄한 밤이었어요. 눈을 뜨자마자 흐릿한 별들이 보였거든요. 나는 일어날 생각도 않고 오랫동안 별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어째선지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일어나려니까 온몸이 굳어버렸는지 얼었는지 감각이 없었습니다. 몇 걸음 걷다가 기대고는 다시 걸으면서 큰길로 나갔지요. 몸이 아주 조그맣게 되어버린 것두 같구, 사지가 길게 늘어나서 걸리적거리는 것같이두 느껴집디다. 나는 천천히 낮에 왔던 길을 거쳐서 남산을 넘었습니다. 양동 쪽으로 내려가기 전에 나는 잠깐 동안 벼랑 난간에 서 있었습니다. 서울의 꽃밭 같은 불빛이 내려다보입디다. 자동차의 불빛들이 일렬로 엇갈려 흘러가데요. 그제야 나는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을 돈 삼천원 생각이 났지요. 리어카나 한대 살까, 행상이나 할까, 국민학교 앞에 가서 설탕과자나 만들까, 번데기를 받아다 팔까, 별의별 할 만한 장사가 다 떠올랐다가 힘없이 스러져버렸지요. 억척으로 살아갈 맘이 내키질 않았습니다. 우선 나는 술을 마섰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마시니까 고주망태로 취해버렸지요. 그리고 시장에서 두 뼘쯤 되는 식칼을 한자루 사서 신문지에 뚤뚤 말아 가슴속에 챙겨넣었습니다. 통행금지가 될 무렵까지 정처없이 거리를 쏘다녔지요. 가슴속에 칼을 품자마자 누구든지 아무나 걸리기만 해봐라. 사정없이 쑤셔버릴 테다――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내 온몸엔 활기가 넘치는 기분이었죠. 나는 그제서야 이 거리의 사람들 틈에 끼여진 듯이 여겨지데요. 갑자기 품은 살기 때문에 나는 얼마 전 병정이었을 때의 자랑 비슷한 게 생겨났지요. 그뿐 아니라, 여자 생각이 납디다. 여자! 포근한 가슴이며 따뜻한 배와 부드러운 콧소리를 내는 여자. 삶은 게의 냄새 같은 땀내를 풍기는 똥치라도 좋지요. 우선 사창가에라두 가서 여자의 푹신한 가슴에 머리를 얹고 폭 자고 싶었어요. 분이든, 영자든, 애란이든…… 솔직히 그게 하구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물건두 서울 와서 굴러다니는 사이에 사타구니 끝에 솔방울처럼 말라붙어버렸으니까요. 제년들 내력을 내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김이나 매고 새참이나 나르다가 앞뒤 동네에 식순이 살러 갔던 누가 왔는데 돈 모았다더라 하니까, 꼭 나처럼 눈에 쌍불을 켜고 도시루 도망 나왔겠죠. 해서는 촌년을 노리는 포주 앞잡이한테 걸렸겠지. 어느 놈인가를 시켜 콱 덮치고 나서 에라 이왕 썩은 거기 돈이나 벌어라―하구 나면 그런대루 쌍말에 재미도 붙이구, 부녀보호소에 들락거리구, 종자를 알 수 없는 애새끼두 떼면서 똥치의 관록을 쌓았겠죠. 그런 줄 다 알면서두 어쩐지 야코가 팍 죽습디다. 어찌나 사람을 시큰둥하게 대하는지, 나는 내처 정신없이 잠만 잤습니다. 자다가 가끔 더듬어보면 새탕을 뛰느라구 출장 나가서 끝끝내 안 돌아오데요. 잡년들이 분명한데 우리 같은 건 사람으루 생각하질 않아요. 손 닿는 것조차 싫어하는 게 아마 고향 사람 같아서 그러는 모양이지요.
4
해가 높다랗게 솟아오른 뒤에야 나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날 밤 술값 천백원 날아가고 포주에게 천오백원, 칼 사느라고 백원, 주머니에 남은 건 꼭 삼백원뿐이었어요. 잔치가 하루 만에 끝장난 거죠. 일거리를 잡느라고 싸돌아다니거나, 추위에 떨고 굶주려야 할 기약두 없는 보통 날들이 호주머니 속에서 기다리구 있는 걸 알았어요. 어디로 가야 할 건가? 무작정 아무 버스나 올라탔죠. 나는 엔진 앞자리에 앉아서 어슷비슷하게 지나가고 다가오는 서울을 내다봤습니다. 젠장 할…… 이상하든데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봤다 그겁니다. 그 녀석은 호주머니에다 두 손을 찌르고 넝마 같은 차림으루 비틀대며 걸어갑디다. 나는 분명히 버스에 타구 있었는데, 내가 여전히 거기서 걸어가구 있더란 말입니다. 나는 그날에야 어렴풋이 서울을 알았다구나 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처지를 이해했다 그거죠. 아니면, 죽지도 않고 사람을 약으루 알구 있는 그 뻔뻔한 늙은 부자와 함께 나란히 누웠을 때에, 진작에 알아버렸을지두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가 식칼을 샀겠지요. 나는 버스가 흔들거릴 적마다 갈비를 건드리는 식칼의 자루를 느꼈지요. 뽑아서 쑤시리라. 그런데 어디를, 누구를 쑤셔야만 숨이 콱콱 막힐 듯한 답답함이 가실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칼 끝은 내 발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번화가를 벗어나 자꾸만 샛길로 빠져들어가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변두리의 종점에 닿았을 때, 나는 난민촌 비슷한 수라장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던 겁니다. 나는 종점을 지나 누구 아는 이라두 찾겠다는 듯이 어슬렁대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취해서 길가에 늘어진 놈이 없나, 대가리가 깨져라구 싸우는 놈들이 없나, 길은 똥오줌으로 범벅된 질척한 진탕입디다. 애새끼들이 아랫도리를 벗은 채루 맥없이 집 앞 양지쪽에 서 있구요: 부인네가 봉지쌀을 사들구 골목 한옆에 조그맣게 오그라들어가지구 지나갑디다. 천막 안에서
주정뱅이가 마누라를 패는지 죽여라, 살려라, 악쓰는 소리가 들리데요. 그래두 이게 동네려니 생각하니까 다정한 느낌이 들었어요. 서울이 보이질 않아요. 갑자기 세상에서 없어져버린 것 같더군요. 버스를 부리나케 타고 되돌아오면 요사스런 거리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어요. 생각 속에만―아, 서울―하며 있는 게 아니라 서울은 분명히 그 수많은 사람들하구 함께 있었지요. 그런데두 한편으론 서울은 상상 속에만 있었습니다. 다시 다른 버스를 탔죠. 또 종점에 이르러 보면 거긴 내가 가려던 곳이 아니죠. 되돌아 시내로 들어와두 그렇구요. 몇달 전에 고향을 떠나서, 또 며칠 전에 피를 팔면서까지, 조금 전에 버스를 타고 달아나려구 했던 바로 그곳에 돌아와 있는 겁니다. 나는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중심가로 오락가락하면서 그곳은 바로 내 자신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는 나 이외의 아무것두 깨닫지 못했지요. 나중에 선생님께 얘기하겠지만, 죄를 짓고 나서야 전체적인 윤곽이라두 알아챈 겁니다.
내가 봉천동 종점에서부터 상도동을 지나가고 있었을 때엔 어스름한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겉돌지 않고 서울 속에 스르르 녹아져 들어가구 싶었습니다. 밑두끝두없이 상도동에서 내렸지요. 남은 돈은 버스삯으로 거덜이 나버렸고, 우선 하룻밤 잘 곳도 막연했어요. 나는 공연히 주택가를 싸돌아다녔습니다. 좁은 골목을 걷노라면 텔레비에서 극하는 소리, 도란거리는 식구들 말소리, 생선 굽는 냄새, 갓난애 어리광하는 소리들이 아득하게 들려오더군요. 어느 집 앞을 지나려니까 대문이 열려 있고, 누군가 그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았데요. 아마 임자가 방금 타고 와서 잠깐 그 집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무심코 몇 발짝 지나쳤다가, 되돌아가서 천연덕스럽게 자전거에 올라탔지요. 그러고는 한길을 향해 정신없이 페달을 저었습니다. 얼마쯤 가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구, 차가 경적을 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지데요. 그런 기분도 잠깐이죠. 노량진을 지날 때쯤부터는 강바람이 상쾌했어요. 그대루 시골까지 밤새껏이라두 달려가구 싶었어요. 나는 아마 노래두 했을걸요. 그래서는 자전거 임자에게서가 아니라, 식칼을 품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달아났지요. 핸들부터 바퀴살까지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에 번쩍거릴 정도루 새 자전거였어요. 나는 한달음에 한강을 건너 용산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용산엘 가니까 차가 많이 밀려서 달릴 수가 없더군요. 얼마쯤 주춤주춤 가다가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잠깐 쉬고 있었지요. 몸이 나빠진 탓인지 식은땀이 목덜미루 마구 흘러내렸습니다.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정류장에서 서성대던 웬 할망구가 나를 자꾸 쳐다봐요. 나두 켕기는 구석이 있어놔서 자꾸 쳐다봤지요. 할망구가 내게루 옵디다. 보니까 웃는 얼굴이라서 안심 했죠.
―놀다 가슈. 이쁜 애 소개해주께.
'나는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앉아 할멈을 쓱 내리훑었죠. 뭐 나쁘지 않을 거 같데요. 어제두 갔는데, 오늘 같은 날 안 갈 건 없잖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돈이 없다구 그랬더니,
―자전거가 썩 좋구만요.
한단 말예요. 그래 이걸 받구 재워주겠냐니까, 두말없이 가자는 겁니다. 할멈을 따라갔지요. 아주 수줍어하는 애가 있었어요. 비쩍 말라서 볼품은 없었지만 정말 순진한게 똥치 같지 않았어요. 나는 군대 애기를 해줬고, 그애는 보호소 얘길 합디다. 거기서 이용기술 배우던 일, 담을 넘어 도망하던 일, 식사가 나쁘다구 데모하다가 맞은 일, 어릴 때 얘기…… 밤새도록 얘기를 했죠. 그렇게 통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서울 와서 노동 품팔이로 골병이 들었다니까 격 려를 해주데요.
나는 다시 역전 근처루 나가서 열심히 일해보리라 다짐했지요. 오전 내내 돌아다녔지만 예전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두 끼나 거르고 오정 때가 되니까 걸어다닐 기력조차 없이 지쳐빠졌지요. 나는 노천 대합실 의자에 누워 여러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그 자전거라는 물건이 삼천원은 훨씬 넘을 것 같았어요. 화대가 천오백원이면, 이럭저럭 깎아친다 해두 남는 게 한 천원쯤 되리라 계산이 나오데요. 차라리 자전거를 팔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전거를 맡은 쪽은 포주지 그 애가 아니라는 생각, 또한 포주가 그 애를 착취하구 있다
는 것에까지 생각이 가더군요. 돌아가서 그 남은 돈을 계산해달래야겠단 작정을 했지요. 어떻게 좀 사정조루 빌붙으면 편리를 봐줄 것두 같았습니다. 웬걸 순진한 건 고년이 아니라 바루 나였지요.
―저는 댁에를 뵌 기억이 없는데요.
이러잖겠습니까. 내 딱한 사정을 몇 마디로 추려서 읊었지만 아랑곳없더군요. 포주가 달려나와서 벌써 두 팔을 걷고 악다구니를 썼습니다.
―뭐라구, 천원을 돌려줘? 너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뼉다군데, 호에 들어와서 뗑깡이야. 그래 잘 왔다. 그 자전거가 네 거냐, 네 거야? 갖다 꼬나박으면 너만 손해구 하소연할 데두 없으니까 좋게 말할 때 얼른 꺼져.
나는 히히닥거리며 구경하는 창녀들에 둘러싸인 채 묵묵히 서 있었지요. 그러다가 그년이 간밤에 꼬리치던 생각을 해보니 참을 수가 없어서 세상에 떠도는 갖가지 쌍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지요. 욕이나 실컷 해주고 돌아갈 셈이었습니다. 그때에 뒤에서 굵다란 목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무슨 일야, 어떤 놈의 행패냐?
힐끗 돌아다보니 방범대원 복장을 하구 있습디다. 아마 그 부근서 꺼덕거리는 놈이었겠죠. 새끼, 얼굴이 샛노랗구 핏기가 없는 게 밤샘질하느라구 녹아나는 모양입디다. 나는 아무 대답두 없이 품에서 신문지에 싼 식 칼을 뽑았죠. 그리고 돌아서며 담담하게,
―넌 뭐야, 이 새끼.
하면서 푸욱 찔렀습니다. 칼 맞을 상대가 나타나, 짜릿하도록 반가울 정도였습니다. 배에 가서 꽂혔으니 벌써 첫방에 그 새끼는 뒈졌을 겁니다. 그런데두 나는 넘어진 놈을 타구 앉아서 쑤시고 또 쑤셨습니다. 멍청히 앉아 있자니 그 녀석은 피로 곤죽이 됐구, 나두 피루 멱감은 거 같았어요. 골목 안엔 한사람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자, 이렇게 내가 사람 하날 죽이게 된 겁니다. 식칼은 그렇게 누군가를 쑤시구 말았죠. 헌데 노골적이지 나는 그 새끼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그 말이죠. 그놈은 나하구 똑같은 놈이거든요. 전장에서, 시골서, 서울 노동판에서, 또 피 병원에서까지 끈질기게 참아냈던 내가 그 녀석에게 참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거예요. 뭐라구요? 애정의 표현이라뇨? 딴은 만만하게 믿었던 데가 있었을지두 모릅니다. 아까두 얘기했지만 변두리에 가보니까 알 것 같더군요. 그렇죠. 너까지 그러기냐, 하는 마음이 잠깐 지나갔는지두 모르겠어요. 나는 칼 끝이 어디루 향해야 할지두 모르는 채 칼을 품고 다녔으니까. 그놈은 나한테 죽은 게 분명하지만 어쩌면 나에게 죽지는 않았는지두 모르겠구, 나는 내가 찌르지 않은 것 같단 말입니다. 저 딴 나라의 전짝에서 휘두른 내 총부리가 그랬던 것처럼요. 죄를 짓구 나서 내가 배운 게 있다구 그랬지요.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끼리 이래야 하는 건지 답답합니다. 저기 내 담당 취조관이 오는군. 시간이 다 된 모양인데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참, 재판 전에 내 어머니에게 연락 좀 해주시겠습니까.
〔창작과비평 1972 겨울; 객지, 창작과비평사 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