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를 맞는 초가을 새벽에 몇줄 적다
49일 영가축원을 모시는 가운데
생전 32년을 뵜던 영가의 49재를 또다시 맞는다
생사는 중요하며 고귀하다
팔구십년이 긴 듯하지만 실상 살아온 당사자 입장에서는
찰라요,허망하다
부처님은 그 허망함을 일깨워 생사라는 무상의 다리를
건너는 길을 가르치셨으니
오직 그 경전의 말씀에 집중하며 거듭되고 깊은
수행의 공덕을 쌓아 고해를 건널 것을 주문하신다.
쓸쓸함과 허망함은 사바삶의 흐름이요,색깔이다
우리 윗대의 어른들은 험악하고 파도치는 처절한
시대적 상황에도 결코 굴하지 않은 위대한 분들이었다
우리가 그 분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새로운 세상인
극락세계로 모셔 이 승과 저승이 하나로 맺어지고
흘러가게 하니,우리 산 자들의 몫이다.
스스로 옷매무새를 고추세워 앞서 가신 분들의 지난한
여정을 생각하며 '자신의 지금'을 견고히 다지는
정진의 고삐를 다잡아야 한다.
사바삶의 오가는 길이 힘들고 험하듯
백년 여정의 마무리 단계까지도 자신을 달래며
때로는 깊은 절망,때로는 큰 고통에 스스로 어쩔수 없었
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온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이요
사바의 위대한 도인들이었던 것이다.
투철하게 살다 병들어 노쇠한 육신을 이끌며 마지막까지
뒷정리하고 자신의 마음을 갈무리하는 그들은
가히 불심천자요,영원한 수행자였던 것이다.
결코 남을 원망하지도 않고 자기복을 알아 근면과 성실
로 살아왔으니,부처님은 그들을 영접하며 극락과 천상
그리고 인도환생의 차후 선택의 선연을 베풀 것이니,남아있는 우리는 내 위치에서 불심으로 더욱 정진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불심 사문은 공히 생사의 파도치는 중생을 배에 태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막중한
바,부족한 역량과 협량의 빈도에 스스로 부끄러울 뿐이
다. 아직도 그 분들이 어디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생각
이 안드니 살아생전 그 음성과 모습이 깊은 의식에 각인
되 있어 거듭 튀어 나와 생각의 물결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덥던 두달이 가 이제 아침저녁으로 스산한 대기
가 다가서니 그 분들이 가신 길목에도 때로 외롭고
스산한 여정이 펼쳐질 것이되 그 때 바로 아미타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이 나타나셔 "두려워 마라,걱정하지 마라
추워 말고 배고파 말고 내 밝은 진리의 등불을 벗삼아
담대하게 스스스의 염불속에 앞으로 나아가라"는
법문을 주실것이니,이승과 저승 모두 자기집중과
자기일심의 길을 꿎꿎히 다져 전진할 뿐이다.
근 20년간 60여분의 불심 노보살님 노처사님들중
40여분 넘게 가시고 이제 열세네분이 힘겹게 노년을
맞고 계신다.소납 또한 초로의 길목에서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니,그 분들의 이승의 황금노을을 맞게
해 드리고 나도 떠나야 한다는 책무가 자꾸 희미해져
감을 부인할 수 없다. 수십년을 불심으로 다지고 이으
며 함께한 그 분들은 불심행자들의 긴 대중속에서
무던히도 인욕과 선정을 다진 위대한 부처님의 상수
제자들인 것이다. 새벽 공기가 차 이틀째 상의 세타를
입고 걸으며 잠시후 사시에 올릴 49재를 생각하며 한
생각을 적는다. 궁상맞다 핀잔주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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