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8)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9)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10)
새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너를 위하여'(너에게)라는 뜻의 '레카'(leka)라는 말이 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본문의 '너'는 모세를 지적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모세가 80세에 부르심을 받고 120세에 죽었으니, 처음 희년이 될 49년 후에는 모세가 살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기 25장 9절에서도 동일한 '너'가 희년에 나팔을 불어야 할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문의 '너'는 모세 뿐 아니라 장차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세대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여기서 '너'(ka)라는 단수 어미가 사용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집합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 하며, 본질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이 그날의 연수를 세고 그 날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의 '일곱'은 거룩함과 온전함과 이러한 것들의 완성 및 기쁨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더군다나 일곱의 일곱은 가장 거룩하고 온전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희년이 가르쳐주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희년의 주기가 49년이므로 일찍 죽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인생에 한번은 완전한 기쁨을 상징하는 희년을 맞이할 수 있기에,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은혜가 차별없이 골고루 미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9)
레위기 25장 9절은 희년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를 밝히고 있다. 희년은 제49년 7월 10일 즉 유다 종교력 디스리월 10일에 시작하였다. 디스리월 10월은 유다 민간력으로는 1월에 해당되며,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9,10월경이다.
희년의 시작일인 7월 10일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대속죄일이었다 (레위16,29~34; 23,26~32).
이러한 속죄일은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물을 바쳤고 (레위23,27), 또한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진 아자젤 숫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날이었다 (레위16,6~10).
즉 이 날은 이러한 종교적인 행사를 통해 인간의 죄를 속죄함으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 날이다.
이 날에 잃었던 상속(기업)이 회복되고, 종 되었던 자들이 해방되며, 빚진 자들의 부채가 탕감되고, 땅이 안식을 누리는 희년이 선포됨으로써, 하느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기초로 해서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9)
'너는 ~울려라'로 번역된 '하아바르타'(haabartha)는 '가로지르다'는 뜻의 '아바르'(abar)의 사역형 2인칭 동사로서 '너는 가로지르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팔'로 번역된 '쇼파르'(shopar)는 '뿔' 또는 '양의 뿔'을 가리키는 말이며, 여기서는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이란 뜻으로 쓰였다.
또한 '소리'로 번역된 '테루아'(theruah)는 '소리 높여 외치다'라는 뜻의 '루아으' (ruah)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기쁨의 외침', '부는 소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희년을 선포하는 자가 먼저 온 땅을 가로지르며 나팔 소리를 울리고 (haabartha), 그를 뒤이어 온 백성이 따라서 나팔을 크게 불라(thaabiru;타아비루)는 명령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이 거주하는 모든 땅에 해방과 기쁨이 선포되어야 할 것을 거듭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10)
'너희 땅'으로 번역된 '빠아레츠 레콜'(baarets lekol)에서 '뻬아레츠'(baarets)를 직역하면, '그 땅'으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상속(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말하고, '레콜'(lekol)은 '모든'이라는 뜻이니, 가나안 땅 전부를 말한다.
또한 '해방'으로 번역된 '떼로르'(deror; liberty)는 그 어원이 '넘쳐흐르다', '빛을 발하다'라는 뜻의 '따라르'(darar)로서 '자유로운 흐름'이란 뜻을 가진다.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희들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자들을 위해 자유로운 흐름을 크게 외치라'이다.
여기서 '그 땅에 ~자유로운 흐름'은 경제적인 부채로 인해 제한된 땅에서 속박된 자로 살아야 하는 자들이 풀려나 자유롭게 자신의 땅과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이동, 실질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10)
'희년'으로 번역된 '요벨'(yobel; a jubile)은 그 어원이나 의미를 쉽게 밝힐 수 없는 단어이다.
어떤 이는 여호수아서 6장 4절, 6절, 8절, 13절에 근거하여 '양각'(羊角; 양의 뿔) 이라고 번역된 '하요벨림'(hayobellim)을 레위기 25장 10절의 '요벨'과 동일한 어근으로 보아 본문의 '요벨'을 '양의 뿔'이란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런 견해는 레위기 25장 9절에 희년이 나팔을 크게 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 내용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나, 레위기 25장 9절에 이미 '양의 뿔'이라는 '쇼파르'(shopar)가 사용되었으므로 레위기의 '요벨'과 여호수아서의 '요벨'이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분명한 것은 내용에 있어서 레위기의 '요벨'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처소로 회복될 수 있는 해'라는 의미를 가지는 하나의 고유명사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요벨'의 정확한 어근 추적이 어려우므로, 번역본들은 히브리어 '요벨'의 음을 그대로 빌려와서 표기했음을 알 수 있다.
영어 성경은 '요벨'의 음을 따서 '희년'을 '쥬빌리'(Jubilee)로, 독일어 성경은 '유벨야르'(Jubeljaar) 즉 '요벨의 해'로 표기했다.
그리고 이 어원을 기초로 해서 '환희', '경축'을 뜻하는 영어 단어들(jubilat: 환호하는;jubilate: 환호성을 울리다; jubalation: 기쁨)이 파생되었고, 한글 성경은 파생된 의미에 기초해서 이를 '희년'(禧年) 즉 '좋은 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그러니까 한글 성경의 번역은 '요벨'의 어원적 의미보다는 '요벨'의 해가 지니는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반영하는 신학적 번역인 것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10)
'너희는 ~돌아가야 한다'로 번역된 '샤브템'(shabthem)은 '돌다'는 뜻의 '슈브' (shub)의 2인칭 능동형 복수이다.
이것은 주인이 종되었던 자들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종되었던 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속했던 곳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희년의 해는 자유로운 흐름이 허락된 해였으므로, 누구든지 주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도 자신의 본래의 것을 회복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