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여순 10.19평화인권문학상 대상]
만성리 형제묘*
고주희
죽어서라도 의지하라고
손 맞잡고 나란히 누운 곳
동백나무 줄사철나무를 거쳐
돌출된 만과 해안선을 한 없이 걸어 이곳에 도착했네
발 묶인 안개를 관통하는 총성들
빈 젖을 문 아이도 온몸이 부서져라 소리치던 사람도
날기를 멈춘 새처럼 고요하네
검은 관에는 연소되지 못한 이름들
눈물인지 피인지 오줌인지
질끈 눈 감은 나무들은 비명을 삼킨 채 가슴만 텅텅 치다
재가 되어버렸네
부역 혐의 채 벗지 못한 새들은
아침마다 묘역을 휘돌고
행여 누가 볼까
기름 붓고 큰 바위 굴려 은폐해도
침묵에 눌린 진실의 입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네
문득 뒤돌아본 산야에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컴컴한 입을 가진 돌멩이들 소리치네
밤이면 몰래 서러운 밥물을 풀어
떠먹일 입
비겁한 침묵이 없는 당신의 세계는 다정한지
나는 평생 이곳에서 손을 씻는 사람,
아직은 헤엄쳐 나올 수 없는 급류 속
외롭게 눈 감은 들꽃 하나 거두지 못한 채 떠내려 가네
아이와 어른이 손 붙잡고 오르던
막막한 밤을 사이에 두고
신발도 없이 무서운 허기를 건너던 그날
아직, 흐린 눈 부릅떠 당신을 좇네
더 이상 이곳에 소중한 것이 남지 않아
문을 열 안쪽이 사라진다 해도
아픈 핏덩이처럼 살아있는 그때 그 나무들
부질없는 소나기처럼
노래와 기도 사이 간간이 새가 날아드네
녹슨 탄피 같은 몸에
벗을 수 없는 죽음의 의복을 걸치고도
너와 나 끝내 떨지 않을 한 덩이 진흙이라고
말갛게 놓인 흰 국화 몇 송이 앞에 두고
죄 많은 이마를 제단에 포갤 때
모든 기념일은 사죄와 같아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땅의 역사,
머리 위로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네
*1949년 1월 13일, 여수시 만흥동 149-1번지 일대에서 희생된 민간인
125명의 억울한 넋이 잠들어 있는 묘역,
이중구속/여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