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한 사람들(행 13:13~48)
서론
오늘 본문은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중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본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찬송한 사람들과, 그 말씀을 버리고 스스로 영생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46절의 표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그렇게 규정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영생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태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I. 회복과 재도전의 자리 (13~16절)
바울 일행은 밤빌리아 버가에서 요한(마가)이 떠나는 아픔을 겪습니다(13절). 사역의 동역자를 잃은 자리였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나아갑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회당이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고,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회당장들이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청합니다(15절). 하나님은 낙심할 만한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전할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II. 바울의 설교 — 구속사를 통해 예수를 증거하다 (17~41절)
1.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 (17~22절)
바울은 출애굽부터 다윗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합니다. 애굽에서 택하시고, 광야에서 참으시고,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고, 사사와 사울을 거쳐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짚어갑니다. 이는 청중이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통해, 지금 전할 복음이 결코 낯선 새 종교가 아니라 그 역사의 성취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2. 약속하신 구주, 예수 (23~37절)
역사의 정점은 23절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바울은 세례 요한의 증언(24~25절), 예루살렘 사람들의 무지로 인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27~29절),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사건(30~37절)을 차례로 설명합니다. 특히 34~37절에서는 시편을 인용하여, 다윗은 썩음을 당하였으나 예수님은 썩음을 당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부활의 역사적·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3.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 복음의 핵심 (38~41절)
설교의 절정은 38~39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루어냅니다. 이는 이신칭의(以信稱義) 복음의 핵심 선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박국 1:5을 인용하여(41절) 이 말씀을 멸시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을 경고하며 설교를 맺습니다.
III. 두 가지 반응 (42~45절)
설교 후 반응은 엇갈립니다.
열린 마음: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권면을 받는 사람들(42~43절).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모여들었습니다(44절).
시기와 반박: 유대인들은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합니다(45절).
같은 말씀을 듣고도 반응이 이렇게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받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IV. "자처하기로" — 스스로 결정한 자들의 비극 (46절)
본문의 핵심 구절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여기서 "자처하다"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헬라어 원문의 뉘앙스는 그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재판관이 되어 판결을 내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씀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결정지은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엄중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영생은 누군가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부함으로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우리는 매번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자로, 혹은 스스로 합당하지 않다고 자처하는 자로.
V. 이방인의 기쁨과 하나님의 작정 (47~48절)
유대인들의 거부는 오히려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됩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8절)
여기서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
인간의 실제적 믿음: "다 믿더라"
이 두 요소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믿음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 믿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46절의 유대인들이 스스로 거부하여 자처한 것과, 48절의 이방인들이 기쁨으로 받아들여 믿은 것은 정확히 대조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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