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9 - 자한(子罕) - ㉚ |
| 1 |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당체(唐棣) 꽃이여! 바람에 흔들리는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리오. 집이 멀기 때문이다. 唐棣 郁李也 偏 晉書作翩 然則反亦當與翻同 言華之搖動也 而 助語也 此 逸詩也 於六義 屬興 上兩句 無意義 但以起下兩句之辭耳 其所謂爾 亦不知其何所指也 당체는 향기로운 오얏이다. 偏은 진서에 翩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反 역시 翻과 같아야 마땅하니, 꽃이 요동치는 것을 말한 것이다. 而는 조어다. 이것은 지금은 잃어버린 시인데, 6義 중에서 興體에 속한다. 윗 두 구절은 별다른 뜻이 없고, 그저 아래 두 구절의 말을 일으킬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너라는 것은 또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朱子曰 此唐棣自是一篇詩 與今常棣詩別 論語及召南作唐棣 爾雅作棠棣 無作常者 而小雅常字亦無唐音 爾雅又云唐棣 棣常棣移 則唐棣常棣自是兩物 而夫子所引非小雅之常棣矣 주자가 말하길, “여기의 당체는 스스로 한 편의 詩이니, 지금 상체시와 더불어 구별된다. 논어 내지 시경 소남에서는 당체라고 쓰고 있고, 이아에서는 棠棣라고 쓰고 있는 등 常으로 쓰는 것은 없다. 그러나 소아의 常자에는 또한 당이라는 음이 없다. 이아에서 또 이르길, 唐棣의 棣, 常棣의 栘라고 하였으니, 당체와 상체는 당연히 다른 두 개의 사물이나, 공자께서 인용하신 것은 소아의 상체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或問偏之爲翩 朱子曰 非獨晉史爲然 角弓之詩 固有翩其反矣之句矣 혹자가 偏을 翩으로 여기는 것에 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단지 진나라 역사서에서 그렇게 여기고 있을 뿐 아니라, 각궁의 시에서도 본래 ‘翩其反矣’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讀反爲翻 則遠字亦叶於圓反 反을 翻으로 읽는다면, 遠자 역시 발음을 於圓反으로 맞추어야 한다.
汪氏曰 韻書栘下註云 其華反向後合 詩云 翩其反而 據此讀如字 亦可 尤與遠叶 왕씨가 말하길, “운서에 栘자 아래에 주석하여 이르길, 그 꽃잎이 반향한 후 합하였다고 하였고, 시경 소아 각궁에 이르길, 그 꽃잎이 펄럭인다라고 하였으니, 이에 근거하여 원래 글자대로 反으로 읽는 것도 또한 가능하고, 遠자와 더불어 더욱 운이 들어맞는다.”라고 하였다. |
| 2 |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어찌 집이 멀리 있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夫子借其言而反之 蓋前篇仁遠乎哉之意 공자는 이 말을 빌려 그것을 반박한 것이니, 대체로 앞 편의 ‘仁이 멀리 있는 것이겠는가?’라는 뜻이다.
○ 程子曰 聖人 未嘗言易以驕人之志 亦未嘗言難以阻人之進 但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此言 極有涵蓄 意思深遠 정자가 말하길, “성인은 일찍이 쉽다고 말함으로써 사람의 뜻을 교만하게 만든 적이 없었고, 또한 어렵다고 말함으로써 사람의 나아감을 가로막은 적이 없었다. 단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지언정, 어찌 먼 것이 있겠는가? 라고 말했을 따름이다. 이 말은 품고 있는 것이 지극히 많고, 그 뜻이 대단히 심원하다.”고 하였다.
以爲易 則忽心生而驕 쉽다고 여기면 곧 소홀히 하는 마음이 생겨서 교만해진다.
以爲難 則畏心生而阻 어렵다고 여기면 곧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나서 가로막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是理之在人 以爲易知乎 則精深微妙 未易可知也 以爲難知乎 則其在人之理 本自不隱也 若言其易 則驕人之志 而不肯下堅苦之功 若言其難 則阻人之進而遂生疑畏之意 但曰未之思也 夫何遠之有 則只是平鋪地道著 無一毫助長益生之意 所以極有含蓄意思深遠 極有涵蓄者 該道體之微顯 進學者之工夫 皆寓其中 意思深遠者 令人涵泳之 但覺意味淵永 無有窮盡也 非聖人之言 疇克爾哉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 이치가 사람들에게 있어서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정밀하고 깊으며 은미하고 오묘한 것을 알 수 있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알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에게 있어서의 그 이치는 본래부터 당연히 은미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쉽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뜻을 교만하게 하여 굳세고 고생스러운 공력을 쏟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그것이 어렵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나아감을 가로막아 마침내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뜻이 생기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 무릇 무슨 먼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한다면, 그저 평이하게 말한 것으로서 조금도 조장하거나 생겨남에 보태는 뜻이 없다. 따라서 지극히 함축하는 것이 많고 뜻이 깊고 먼 것이다. 함축하는 바가 지극히 많으면, 道體의 은미함과 드러남을 모두 갖추어서 배움을 증진시키는 공부가 모두 그 안에 깃들어 있다. 뜻이 깊고 먼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優游涵泳하게 하여, 단지 그 의미가 깊고 영원하여 다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성인의 말씀이 아니라면, 무엇이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逸詩所謂爾思以思其人言 夫子所謂未之思以思此理言 理之所在 思則得之 何遠之有 不思則不得 始見其遠耳 何以知爾思之爲思其人 以室字知之 但不知所謂爾者指何人耳 然辭意婉而平和 無褻狎態 東坡以爲思賢之詩 亦或然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산일된 시에서 말한 이른바 ‘너를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이른바 그것을 아직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 이치를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이치의 소재는 생각하면 그것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니, 무슨 멀리 있음이 있겠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이니, 비로소 그것이 멀리 있음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무엇으로써 ‘爾思’가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는가? 바로 室자 때문에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른바 ‘爾’라는 것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는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말의 뜻이 완곡하고 화평하며 親狎하여 버릇없는 모습이 없으니, 소동파는 현자를 생각하는 시라고 생각하였다. 이 또한 혹여 그럴 수도 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