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이 외수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들만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 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페이지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인생이 내 계획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인생은 나를 위해 또다른 계획서를 써 놓았다.
현명하게도 그것은 나한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내가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이제 인생의 저무는 황혼 속에 앉아
난 안다, 인생이 얼마나 지혜롭게 나를 위한 계획서를 만들었나를.
그리고 이제 난 안다.
그 또다른 계획서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이었음을.
글래디 로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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